제주도 바람은 누구의 것인가?
2017.08.03 11:08:30
[프레시안 books] <바람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그리고 이성과 감성으로 체득한 이론과 논리만큼 투철한 것은 없을 것이다. <바람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펴냄)도 그런 성과물 중 하나라 평가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환경운동과 환경사회학 전공을 병행한 저자 김동주는 지난 10년 동안 지역사회와 함께 지난하게 실천했던 에너지 운동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본인 스스로 밝히듯, 이 책은 석사 논문 <제주도 풍력발전에 나타난 녹색 개발주의>와 박사 논문 <자연의 사회적 변형과 풍력발전 : 제주도 바람의 자본화와 공유화운동>을 재구성한 것이다.

에너지 전환이 정치적 화두로 떠오른 지금, 제주 풍력발전의 역사적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제는 악마의 맷돌로 여겨지는 핵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을 줄여나가면서, 동시에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20%로 확대하겠다는 '신재생 3020' 전략과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제주 풍력발전의 현재 모습은 어떤 과제를 던지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주는 뭍에서 전개된 재생에너지 흐름과 분명 다른 길을 걸어왔고, 몇 년 앞선 새로운 실험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대립과 대안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에너지 전환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변화의 문턱에서, 흡사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 할 '에너지 배틀'에서 제주의 눈으로 국가를 다시 생각해보자. 무엇보다 책의 부제인 "제주도 풍력발전의 개발과 풍력자원 공유화운동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재생에너지 공유화 운동과 그로 인해 현실화된 제도적 장치들은 양질의 재생에너지로 도약하기 위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비록 가짜뉴스와 음모가 판을 치고 있지만,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핵발전과 석탄화력발전 말고도 재생에너지에도 쟁점은 많다. 2012년부터 설비용량 500MW 이상의 발전사업자들은 RPS제도에 의해 일정 할당량을 자체적으로 생산한 재생에너지로 채우거나 다른 곳에서 발전량을 조달해야 한다. 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았지만, 아무튼 지난 5년 동안 7.8GW 정도가 확대된 것으로 잠정 집계된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신재생 3020의 이행계획 수립을 위해, 현재 정부 부처, 출연기관, 한전, 학계, 협회, 엔지오가 참여하는 민관합동 회의(6월 29일)가 개최되고 있고, TF는 구체 계획을 짜고 있으며, 8월말이면 이행계획이 제출될 예정이다. 3020 목표를 달성하려면, 최근 연평균 증가세 1.7GW에 더해 연평균 2GW가 추가되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대받던 재생에너지의 보급 실적을 감안해야겠지만, 이런 양적 성장을 뒷받침하려면 질적 측면에서 대폭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질이 양을 담보하지 못하면, 악화(bad money)가 양화(good money)를 구축하듯이 나쁜 에너지(bad energy)가 착한 에너지(good energy)를 몰아내는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TF의 분과 구성과 주요 의제를 살펴보면 정부가 신경 쓰는 대목이 드러난다. '규제개선 분과'는 계획입지 제도 도입과 인허가 관련 규제 완화를, '수용성 분과'는 주민참여 모델 개발과 성공사례 창출․확산을, '지역, 공공 분과'는 지역별 신재생 보급 확대방안과 한전 등 공공기관 참여방안을, '일자리․산업 분과'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생태계 조성과 중소․중견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방안 등을 마련한다. 아직 세부적인 내용이 완성되지 않아 평가하기 어렵지만, 신․재생에너지 3020 전략 포럼(7월 25일) 등의 발표 자료를 참고하면, 대체로 태양광․풍력 입지난 해소(지자체의 이격거리 규제 개선, 계획입지제도 도입), 주민참여 활성화로 신재생 수용성 제고(농촌태양광 활성화, 주주참여형 모델 개발), 계통접속 애로 해소 등 신재생 인프라 확충, 지자체․공공기관 등의 참여 확대(지자체 신재생 보급 계획 수립, 공기업의 대규모 신재생 복합단지 추진),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소규모사업자 지원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3020 이행계획 TF에서 논의하고 있는 내용들은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신산업 종합대책(7월), 특히 신재생에너지 보급 활성화 대책(11월)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미 이전 정부도 기존 재생에너지 정책의 한계를 인지하고 개선 방안을 찾고 있었다. 이 부분은 정권교체로 인한 정책의 단절성이 아니라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구분하자면, 박근혜 정부 말기부터 시작되어 문재인 정부 초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책 변화의 흐름은 국내 재생에너지 정책의 시즌2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에너지시스템에서 2등 에너지 취급을 받으며 제한적인 보급 대상에 불과했다면, 최근 양적 성장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양과 질이라는 두 측면 모두가 중요해진, 말하자면 '재생에너지 전환관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접근이든, 아니면 해외 모범 사례 적용이든, 정답을 미리 정해놓고서 지역과 현장에 정책을 대입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효과는 반감되거나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는 순서를 밟아야겠지만, 이와 동시에 '에너지 분권'이 단계적로 보장되지 않고서는 큰 힘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몇몇 개별 사업만으로는 탈핵, 탈석탄은 물론이거니와 신재생 3020은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만 분산되어서는 곤란하다. 에너지 권한과 책임도 분산되어야 한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만 논의될 것이 아니라 신재생 3020 이행계획, 나아가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핫 이슈로 다뤄야 한다.

이 대목에서 <바람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는 우리의 고민을 풍부하게 해준다. 제주의 독특한 풍력발전의 날것 그대로의 역사에서 교훈과 과제를 얻을 수 있다. 1975년 3kW급 1기가 설치된 이후, 제주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풍력발전 테스트베드가 됐다.

1980년 풍력발전 등 청정에너지 이용 문화복지마을 육성 기본지침 수립(제주도), 1981년 한․독 태양-풍력 복합발전시스템 개발시범도 지정(과학기술처), 1991년 클린 에너토피아 제주 계획 구상(정부), 1998년 행원풍력 상업운전 및 전력판매 개시, 2008년부터 현재까지 카본프리 아일랜드 계획 수립 및 시행(제주도).

무려 4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풍력발전은 제주도에 뿌리내려왔다. 그러나 2006~2007년 난산풍력, 성산풍력, 삼달풍력, 삼무해상풍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그 갈등은 격화되었다. 김동주는 이렇게 제주에서 벌어진 풍력발전단지 건설의 부정적 측면과 그 갈등 양상을 '녹색 개발주의'라는 개념으로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제기한 '풍력자원 공유화'라는 실천과 이론의 대안 운동은 지역사회의 피드백 속에서 진화해왔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중 풍력자원의 공공적 관리 조항(304조) 신설(2011년), 제주특별자치도 풍력발전사업 허가 및 지구 지정 등에 관한 조례 제정(2011년), 제주에너지공사 출범(2012년), 제주특별자치도 풍력자원 공유화 기금 조례 제정(2016년).

얼핏 보면, 벌써 많은 것들이 육지로 올라와 몇몇 지자체가 수용하고 있고, 최근 중앙정부가 도입하려는 국내 선행 사례로도 이해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공적 관리 개념, 계획지구 지정제도 및 주변지역 마을 참여 모델, 지역에너지공사, 이익공유화 및 지역에너지전환 선순환 재원 활용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제도화라는 험로에서 경험했던 숱한 쟁점과 그 함의,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한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또 하나의 탁상행정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김동주는 에너지시스템과 전환, 자연의 자원화와 자본화(사유화와 상품화), 사회운동론(프레임과 레퍼토리)이라는 이론적 개념과 분석틀을 활용하여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제기한다. 바람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혁신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바람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풍력발전 갈등이라는 사회문제를 겪으면서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고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성에서 해법을 찾아가는 전 과정은 "1부 제주도 풍력발전의 개발"과 "2부 제주도 풍력자원 공유화 운동사"에서 추적할 수 있다. 지하수(삼다수)의 '공수화(公水化)'라는 맥락에서 어떻게 바람자원의 공개념이라 할 수 있는 '공풍화(公風化)'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내막과 디테일은 독자의 몫이다. 부록으로 정리된 '제주도 풍력발전 일지(2017~2016)'도 독자의 이해를 높이는 데 한몫 톡톡히 한다.

<바람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를 통해서 김동주가 에너지시스템에 품고 있는 근본적인 의문과 이 의문을 우회하지 않고 펼치는 대안 논리가 꽤나 매력적이라 다소 편파적인 서평이 돼 버렸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제주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제주 지역의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연대와 공동 행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대서사였을 테니, 저자에게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다.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갈 오래된 미래에 주목하고 우리도 여기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바다 건너 먼 제주의 이야기라 대충 넘기지 말고 경청해보길 권한다. 에너지 주제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제주대학교 SSK연구단의 <공동자원의 섬 제주1: 땅, 물, 바람>과 <공동자원의 섬 제주2: 지역 공공성의 새로운 지평>에 도전하는 것도 좋겠다.

끝으로 김동주는 지하수, 토지, 바다, 경관 등 "자연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를 실현하기 위한 이론적, 실천적 작업을 계속한다고 하니, 앞으로의 행보에도 기대를 걸고 싶다. 무엇보다 이 책은 현 시점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에너지민주주의'를 말하는 시기에 그 형해화를 극복하려고 꺼내든 급진화라는 거대한 도전, 이렇게 해석하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에너지 이슈가 정치화될수록 탈정치화를 시도하는 기득권과 한판 붙자면 이 정도 무기는 휘둘러야 하지 아닐까. 에너지를 바꾸려면 사회도 함께 바꿔야 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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