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권리, 사람과 동등할까?
2017.05.06 14:23:31
[격월간 민들레] 다큐멘터리 <철장을 열고>
동물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을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이런 질문은 '배부른 소리'로 취급되었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어째서 동물 팔자까지 신경을 쓰냐는 뜻이었으리라. '동물권'은 다른 이슈보다는 더디지만, 조금씩 한국에서도 사회적 의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동물권'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지난한 투쟁을 거치며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의제로 조금씩 정착 중인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면, 그 권리는 사람과 동등할까? 앞선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했던 사람이라도 이 질문에는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동물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어느 정도 상식이 되었지만, 그 권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깊게 논의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면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2016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철장을 열고>(크리스 헤지더스·D.A. 페네베이커 감독)는 그 투쟁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 다큐멘터리 <철장을 열고> 스틸 컷.


진보적인 사안을 다루는 이 다큐멘터리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만들었을 것만 같지만 웬걸, 이 영화를 만든 두 명의 감독은 미국 다큐멘터리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둘 중 나이가 더 많은 D.A. 페니베이커는 아흔 살을 훌쩍 넘긴 노장이다. 그는 미국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로버트 드류 감독의 <예비선거>(1960) 제작팀에서 활동했다. 196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서 허버트 험프리와 존 F. 케네디의 당내 경선 과정을 담아낸 <예비선거>는 각본에 맞춰 제작되던 이전의 다큐멘터리와 달리 촬영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다이렉트 시네마' 기법으로 제작된 첫 작품이었다. 하지만 빌 클린턴의 대선 후보 시절을 기록한 <워 룸>(1993)을 제외하면 두 감독이 직접적으로 사회 이슈를 다룬 작품은 없었다. 1977년부터 밥 딜런, 에릭 클랩턴, 존 레넌, 오노 요코 같은 음악가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내며 반평생 동안 꾸준히 '음악'에 초점을 맞춰오던 두 노장 감독들이 최근 '동물의 인격권'이라는 사회적 이슈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 논쟁이 미국 사회에서 꽤 심도 있게 전개 중이라는 사실을 뜻하기도 한다.

노예 해방, 여성 해방, 그리고 '동물 해방'

<철장을 열고>는 '동물의 권리'를 놓고 벌어진 법적 투쟁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약 30년간 동물 권리 보호를 위해 노력한 변호사 스티븐 와이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원래 동물권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전공은 화학이었지만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68운동'의 물결에 휩싸여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평범한 변호사로 살아가던 그의 삶을 한 권의 책이 바꿔놓았다. 철학자이자 생명윤리학자인 피터 싱어가 펴낸 <동물 해방>(김성한 옮김, 연암서가 출판)이다. 68운동과 함께 환경운동이 대두하며 조금씩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던 상황에서 <동물 해방>은 그저 동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에게 지배받거나 차별받는 것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지적해 화제가 되었다. 스티븐 와이즈는 이 책을 읽고 평범한 변호사를 넘어 동물의 권리를 위해 법정에서 싸우는 투사로 활약하게 된다. <철장을 열고>에 등장하는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의 '인격권'을 인정하라는 소송은 그 싸움의 일부다.

하지만 동물권에 대한 논의나 법적 논쟁이 오래전부터 활발했던 미국에서도 스티븐 와이즈의 소송은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판사도 스티븐 와이즈에게 굳이 이런 소송을 해야 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한다. 이미 동물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있는데, 굳이 유인원들에게 '인격권'을 줘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은 것이다. 언론도 재판에서 승소하면 영화 <혹성탈출>(프랭클린 J. 샤프너, 1968)처럼 유인원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 아니냐고 비꼬고, 사람들도 언젠가 닭이나 소에게도 인격권이 인정되면 더 이상 닭고기나 소고기를 먹을 수가 없게 되는 거냐고 농담조로 묻는다.

그러나 스티븐 와이즈는 자신이 진행하는 소송을 지금 당장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주장이라고 카메라를 향해 차분히 이야기한다. 그는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흑인 노예와 여성이 차별받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스티븐 와이즈는 지금은 상식이 된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이 아니라, 기나긴 투쟁의 산물임을 언급하며 동물이 인간과 같은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 역시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자신의 신념에 자부심을 갖는다. 그의 삶을 바꾼 책 제목대로 언젠가는 '동물 해방'이 이뤄질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보호'라는 이름의 억압

물론 이러한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동물 해방'이라는 급진적인 주장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현재 대다수 동물들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스티븐 와이즈와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단체 'NhRP(Nonhuman Rights Project, 비인간 권리 프로젝트)'의 행보에 조금씩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 다큐멘터리 <철장을 열고> 스틸 컷.


'철장을 열고'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작품은 철장 속에 갇혀 있는 유인원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어떤 유인원은 실험을 이유로 인간들에게도 위험한 약물을 계속 투여받고, 또 다른 유인원은 인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반려동물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두 부류의 유인원들은 차이가 없다. 실험의 희생양이든 반려동물이든 일평생을 철장 속에 갇혀 지내야 하는 삶은 똑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도 독방에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 점차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처럼, 태어나서 쭉 철장에 갇혀 지낸 유인원들 역시 조금씩 심리가 불안정해진다.

유인원들을 계속 철장에 가둔 인간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안전한 상품을 제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물 실험을 할 수밖에 없고, 유인원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지켜주는 마음으로' 계속 우리에 가둔다. 하지만 스티븐 와이즈와 NhRP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가 전부 변명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시절에도, 여성을 남성보다 하등한 존재로 규정지었을 때에도 비슷한 이유를 들었기 때문이다. 정작 이들이 놓여 있는 삶을 진정성 있게 들여다보려는 노력도 없이 백인 남성들은 흑인과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며 억압했다. 비슷한 일이 동물들에게도 계속 벌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언론은 물론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마저 스티븐 와이즈를 비웃거나 조롱할 뿐, 왜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지 깊이 있게 고민하려는 움직임은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언젠가는 '동물 해방'도 이뤄질 것이라는 스티븐 와이즈의 말이 맞았던 것일까. 영화는 결말부에서 유인원의 인격권에 대한 소송이 오랜 재판 끝에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록 지금까지 진행한 소송은 모두 패소했지만, 그럼에도 서서히 개인과 언론이 이들의 주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과 함께하며

<철장을 열고>는 내용도 흥미롭지만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영화다. 한국은 여전히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갖추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조금씩 동물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나 제도가 도입되고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을 지나친 것으로 취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2월 말, 관객들이 만드는 영화제, 'FoFF 2017(The Festival of Film Festivals 2017)'의 <철장을 열고> 상영회는 주목할 만한 자리였다. 영화제를 기획하는 관객들이 직접 이 다큐멘터리를 선정했고 영화를 본 뒤에 관객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국내에서 동물권에 대한 인식과 논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장이었기에 의미가 컸다.

서울 성북구의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철장을 열고> 상영이 끝난 뒤, 협동조합식 동물병원 '우리동생'의 정경섭 이사장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정경섭 이사장은 '동물의 인격권'에 대해 한국은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황윤 감독의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에서도 지적했고 최근 조류독감과 구제역 광풍에서도 드러나듯, 정부 차원의 인식이 너무나도 일천하기 때문이다. 공장형 축산에 대한 규제도 없고, 무분별한 개발 사업으로 파괴되는 동식물의 삶터에 대한 성찰도 부족하다.

하지만 이런 속에서도 정경섭 이사장은 분명 희망이 있음을 말했다. 한국인의 20퍼센트가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있으며, 동물시민보호단체 카라의 회원 수가 2만 명에 이르는 등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바라보는 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덕분이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시도들이 늘어날 것이라 말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끼리 함께 만나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교류하면 생각이 훨씬 깊어질 수 있거든요. 그렇게 의기투합하다 보면 위대한 결과를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뒤이어 진행된 관객들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상영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지만, 관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영화의 의미를 확장해갈 수 있었다. 역시 좋은 작품을 그저 관람하는 것을 넘어, 영화를 보고 나서 둘러앉을 수 있는 장이 필요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다른 글 보기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