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공부하는 후배 눈치보느라 순찰업무도 부담"

매년 1월 치러지는 경찰 승진시험 앞두고 '열공' 분위기…연가 사용도 늘어 인력공백 우려

# 경기도 내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 A씨는 지난해 경찰 승진시험을 앞두고 출근했을 때만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당시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직원들이 근무시간 중 시험공부를 하면서, 서로 눈치만 보느라 무전기 소리도 줄이는 등 경찰 본연의 업무는 등한시 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선배 경찰 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순찰을 하면서도 이어폰을 꽂은 채 승진시험 강의를 듣는 동료가 많지만, 시험 준비에 방해하는 느낌이 들까봐 직설적으로 지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뿐만 아니라 경찰 업무 특성상 유사시 지름길 파악 및 예상 도주로 확인 등 사전 현장 확인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 순찰차량을 세워둔 채 승진시험 강의를 듣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이 같은 조직 내 분위기가 매년 연말이면 되풀이 되는 모양새다. A씨 역시 점점 무뎌지는, 체념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 도내 한 지구대 소속인 경찰 B씨 역시 비슷한 불만을 갖고 있다.

20여년 간 경찰 생활을 했던 B씨지만, 연말이면 시험을 준비하며 이전과 사뭇 다른 결연한(?) 표정의 후배들 눈치만 봐야 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업무 수행 과정에서 틈나는대로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입장에서, 승진시험을 위해 핸드폰 강의를 듣는 후배를 응원하는 입장으로 역할이 바뀐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는 그다.

B씨는 초임 시절 격일제 근무 여건 속에서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체육관이나 헬스장을 다니며 체력을 단련했던 때와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제는 '시험공부 하기 좋은 부서'마저 스스로 파악해 지원하는 당돌한 후배들도 어렵지 않게 접한다고 한다.

B씨는 "경찰 승진시험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며 "현재는 신입 경찰들이 승진시험 준비 대신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한 선배 경찰들을 상대로 '나이에 비해 계급이 낮다'며 무시하는 풍토마저 번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처럼 매년 초 치러지는 '경찰공무원 정기승진시험'을 앞두고 연말 경찰인력들의 분위기가 '열공' 모드에 들어가면서 본래의 업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공무원 승진임용 규정'에 따라 매년 1월 초 시험에 응시한 경찰들을 대상으로 정기승진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시험은 해당 법에 따라 연 1회 실시되고 있다.

이에 올해도 역시 지난 8일 오전 9시 20분부터 낮 12시 50분까지 각 경찰청 시험장인 36개 학교(총 1083개 교실)에서 시험이 치러졌다.

그러나 앞서 열거한 사례와 같이 1년에 한 번 뿐인 승진 기회를 잡기 위해 매년 연말만 되면 경찰 업무에 영향이 미칠 정도로 시험 공부를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매년 연말에 연가를 몰아서 사용하면서 일각에서는 치안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프레시안이 경찰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전국 각 지역 경찰청별 경찰 휴가 사용 자료'에 따르면 매년 연말 연가 사용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국 단위로 확인했을 때 2019년 경찰 인력 1인당 한 해 평균 연가 사용일 수는 12.93일이지만 같은해 12월 평균 연가 사용 일 수는 2일로, 평균 0.65일의 연가를 사용한 2월보다 3배 가량 많았다.

한 해 평균 14.63일의 연가가 사용된 2020년에도 11~12월 사이 각각 평균 1.85일, 2.1일의 연가가 사용되면서 평균 0.47일의 연가가 사용됐던 3월보다 4배 가량이나 차이났다.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프레시안(전승표)

경찰관 1명당 담당하는 인구수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500여 명 대로, 가장 경찰 일손이 부족한 경기도 지역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경기남부경찰청의 경우 2019년 평균 13.91일의 연가가 사용됐지만 같은해 12월 2.14일의 연가가, 2020년에는 평균 15.53일의 연가 중 12월에 2.56일이나 연가가 사용되면서 한 해 평균 연가 사용량(각각 1.15일, 1.29일)보다 2배 가량 높았다.

경기북부청도 2019년 평균 12.83일의 연가 중 연말 1.87일의 연가가 사용됐으며, 2020년에도 평균 14.83일 연가 중 11~12월 사이 3.44일의 연가가 사용되는 등 연말 경찰 인력의 '공백'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상황이 이렇자 경찰 내·외부에서는 1년에 한 번 치러지는 승진 시험과 관련된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 내부에서 운용하는 여러 승진제도 가운데 시험 승진의 경우 상대적으로 다른 승진에 비해 객관적이고 전문성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그러나 시험을 준비하며 업무에 영향이 간다는 부작용도 계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개선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에도 시험승진과목 일부를 업무전반에 대한 실무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개선했으며, 이처럼 현장의 의견을 접수해 세부적으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