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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서 성고문사건' 이후 20년, 전진해왔다 믿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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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서 성고문사건' 이후 20년, 전진해왔다 믿었는데…"

[인터뷰] 20주년 맞은 노동인권회관 박석운 소장

지난 1986년 서울대 의류학과 재학 중 노동운동에 뛰어들기 위해 위장 취업했던 권인숙 씨가 부천경찰서에서 입에 담지 못할 '성고문'을 당했다. 전두환 군사독재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다. 온 나라를 충격에 빠트렸던 그 사건은 결국 권 씨의 승리로 끝났다.

권 씨가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 3000만 원으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한구석에 문을 연 '노동인권회관'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노동운동의 접목"을 목표로 첫 발을 디딘 노동인권회관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20년을 보냈다. 구로공단 인근의 노동조합 지원으로 시작해 10여 년 전부터는 이주노동자로 그 눈길을 옮겨왔다. 그리고 이제는 비정규직을 위한 활동을 모색 중에 있다.

지난 20년 동안 달라진 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는 셈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삶의 조건은 상당 부분 개선되었지만,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이주 노동자들이 참혹하고 열악했던 20년 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민주화의 결과, 인권이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인권'은 집단적 이기주의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인정받은 노동조합의 기본 활동조차 각종 제약을 받는 상황이다.

<전태일 평전>의 저자이자 권인숙 씨의 변호를 맡기도 했던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이름을 지었다는 노동인권회관 설립 20주년을 맞아 박석운 소장으로부터 이 시대의 '노동인권'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 조영래 변호사가 이름을 지었다는 노동인권회관 설립 20주년을 맞아 박석운 소장으로부터 이 시대의 '노동인권'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프레시안

"구로공단에서 시작해 새로운 사각지대, 이주 노동자와 함께 하다"

지난 2일 만난 박석운 소장은 노동인권회관의 첫 시작을 함께 했던 사람이다. 지난 1989년 설립된 직후부터 3년간 노동인권회관을 맡았고 지난 1998년부터 다시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실 박 소장은 그 전부터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시민공익법률상담소'에서 노동자들을 만났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노병직 박사가 회관의 소장으로 있었던 10년 동안에도 박 소장은 '노동정책연구소'와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을 만들어 노동 현장 가까이 있었다. 이 두 조직은 지난 1998년 노동인권회관과 통합됐다.

권 씨가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 3000만 원으로 어렵게 문들 연 노동인권회관은 크라운전자, 남성전기 등의 노조를 지원하고 노동자를 상대로 노동법실무교육을 벌였고, 한국역사강좌도 진행했다. 박 소장은 "당시로서는 최초로 이런 저런 시도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10여년 전부터 노동인권회관은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이주 노동자 지원 활동으로 중심축을 옮겨갔다.

"87년 이후 10여 년 동안 우리 노동자들의 환경은 많이 나아졌다. 노조 활동도 정착됐고 많은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됐다. 당시 새로운 사각지대는 이주 노동자라고 생각했다. 한국어교실, 이주노동자 상담, 이주노동자 정책 개발 등을 통해 새 사각지대를 찾아간 것이다. 그 이후 이주 노동자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었고 지원 단체도 많이 생겨났다."

"비정규 노동자가 새로운 소외계층으로 부각됐다"

▲박 소장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가 이주 노동자였다면 지금은 다시 비정규직이 새로운 소외계층이 되 버렸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박 소장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가 이주 노동자였다면 지금은 다시 비정규직이 새로운 소외계층이 되 버렸다"고 말했다. 당연히 앞으로의 계획도 비정규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거 이주 노동자가 그랬던 것처럼 비정규직 문제도 기존 노동자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측면이 크다. 절실하게 싸우는데 승리의 경험이 없다. 비정규직 투쟁을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을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박 소장은 "그러나 아직 답이 잘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비록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찾는 중이라지만, 그는 "선수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비정규직 뿐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에 예산과 인력의 절반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실 대기업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보다 중소영세 노동자 조직화가 10배 어렵고, 서비스 노동자 조직화는 100배 더 어렵다. 인생의 경륜을 가진 역전의 용사가 새로 대중을 만나야 한다."

"사회적 '왕따' 당하는 노동인권이 주류 담론이 되야 한다"

오랜 시간 노동자 곁에 있었던 박 소장은 "지난 20년 간 조금씩 전진해 왔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 기초가 공격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심지어 노동자 인권에 대해 사회적 왕따 분위기마저 팽배하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노동 배제적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는 노동인권 강화가 핵심이다. 노동이 주류의 세력으로, 주류 담론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노동자와 노동조합 스스로도 목전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지식인과 여론 주도층이 제대로 된 의식을 가져야 한다. 노동자를 중심에 세우고 세력화하는 일이 우리 사회를 바로잡는 첩경이다."

박 소장은 "노동자의 권리는 이익 투쟁의 측면도 있지만 공공적 의미도 분명히 있다"며 "사회 공익적 측면이 조금 더 강조될 수 있도록 여론 주도층이 애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 복수노조 노조 전임자 관련해서도 그는 "노조 전임자 임금보다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저지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13년 동안 유예된 두 법의 핵심은 쿠데타, 날치기 노동법의 잔재라는 것이다. 당연히 잔재 청산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입법부의 압도적 열세 상황에서 폐지는 쉽지 않다. 비록 차악이긴 하나, 아주 잘 싸우면 또 유예될 것이고 차차악은 현행법대로 시행되는 것이다."

"의기투합하지 않으면 모두 '찌질이'가 된다"

▲노동인권회관과 박석운 소장을 떨어트려놓기는 어렵지만, 그가 가지고 다니는 명함은 무려 4가지 종류가 있다. ⓒ프레시안
노동인권회관과 박석운 소장을 떨어트려놓기는 어렵지만, 그가 가지고 다니는 명함은 무려 4가지 종류가 있다.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이기도 한 그는 최근 '진보대연합'의 실현을 위해 분주하다고 했다. 일단 목표는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다.

"단계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1단계로 우선 공동 선대본 정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진보대연합을 전제로 민주대연합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민주대연합에는 민주당이나 친노 세력도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진보대연합'은 사실 진보정당의 분당 사태 이후 계속 나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지난 10.28 재보선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오지 못했다. 그 이유를 놓고 박 소장은 "눈 앞의 작은 이익에 매몰돼 패권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박 소장은 현실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DJP 연합"을 거론했다.

"의기투합하지 않으면 모두가 '찌질이'가 된다. 국민이 진보를 메이저리그가 아닌 마이너리그로 보는 일이 계속된다. 진보의 주류화는 대통합이 필요조건이다. 그를 위해 내가 공정한 통합의 접착제가 되려고 한다."

노동인권회관 20주년을 맞은 박 소장의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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