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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정당없는 민주주의, 삼성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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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정당없는 민주주의, 삼성공화국

[화제의 책]최장집 교수 등 <어떤 민주주의인가>


12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제자들이 현 정치상황에 대한 '진단'을 내놓았다.

<어떤 민주주의인가>(최장집·박찬표·박상훈 저. 후마니타스 펴냄). 유권자들의 냉담 속에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고 있던 '재미없는 대선'에 최 교수가 던진 질문도 그다지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칙적인 것이다.

최 교수가 제기한 원론적인 질문과 이에 대한 분석은 대선을 채 50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설로 흔들리고 있는 현상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세를 불리기 위한 목적으로 대선을 앞두고 급조된 것이기는 하나 원내 제 1당의 대선 후보는 10% 중반의 지지율을 넘지 못해 고전하고 있는 반면, 출마 여부도 불투명한 데다 정당적 기반도 없는 이회창 전 총재는 출마설이 나온지 2주도 안 돼 2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 <어떤 민주주의 인가>최장집,박찬표.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펴냄ⓒ프레시안

이 전 총재는 'BBK 주가 조작 의혹' 등 각종 도덕성 검증 뿐 아니라 한반도대운하, 특성화고 300개 설립 등 그의 대선공약을 둘러싼 엄청난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위협하는 유일한 인물이 됐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을 갉아먹는 것은 범여권 후보가 아니라 이 전 총재라는 사실은 현 집권세력이 아닌 보수세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높은 기대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당은 사라지고 인물만 남은 선거, 후보들이 표방하는 정책의 방향성과 타당성은 중요하지 않고 정책 집행 능력만이 평가 잣대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 또 현 집권세력인 소위 민주화 세력에 대한 강한 실망감이 보수세력에 대한 '묻지마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 등 이번 대선의 특징적 현상은 우리사회 민주주의의 수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할 필요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고, 또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가?



민주화 이후에도 유지된 '강력한 대통령제'
▲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정책 형성 과정에 관료·전문가 집단의 참여를 확대시켰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개혁'을 표방한 노무현 정권의 정책 방향 설정 과정에 삼성의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사진은 '2007 투명사회협약 대국민보고대회'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노 대통령. ⓒ뉴시스

최 교수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된 '강력한 대통령 권력'과 '허약한 정당체제'가 이런 현상을 불러온 핵심적인 문제들이다.

'강력한 대통령 권력'이 유지된 원인은 권위주의 체제로부터 민주주의로 이행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대통령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 특히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민주화의 핵심으로 이해되어져 왔기 때문이라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이런 민주화 과정을 거쳐 대통령은 민중권력의 대변자, 그리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제기된 요구와 의제들을 실현할 임무를 가진 '개혁의 조타수'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이런 이미지의 정점에 서 있는 게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대중의 운동적 에너지를 기반으로 극적으로 당선될 수 있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이런 대통령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한나라당과 대연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지지자들의 이해나 요구와는 상반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10년, 30년을 내다보며 고민하는 대통령으로서의 고독한 결단' 등 운운하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당정분리'를 원칙으로 강조하면서 더욱 정당의 역할을 최소화 시켰다. 이는 자연스럽게 정책의 형성과 결정과정에서 관료, 지식인, 전문가 집단의 참여를 확대했다.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를 표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당과 시민사회의 참여를 배제한 '국가중심의 민주주의'를 강화시켰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개혁의 조타수'라는 대통령에 대한 이해는 국민들로 하여금 점점 더 '강력한 대통령'에 갈망하게 만든다. 이번 대선에서 보이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묻지마 지지'는 이런 기대감에 기반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 사실상 해체되는 등 후보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정당이라는 것을 상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후보 개인의 '능력'은 향후 5년의 국정운영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로 인식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표방하는 '서민의 대통령'

더군다나 주요 후보들 사이에서 큰 정책적 차이를 발견하기도 힘들다. 비정규직 문제, 한미 FTA 등 사회경제적 문제에 있어 민주노동당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 사이에 큰 입장 차이가 없다. 오히려 후보들은 6%냐, 7%냐, 8%냐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에서도 '경제성장'이 정부의 유일한 정책적 목표였고, 이를 기반으로 국민들에게 평가받으려 하고 있다. 이런 성장주의적 정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는 급속히 확산됐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됐다.
▲ 대기업 CEO 출신이면서 1000억 원대 재산가인 이명박 후보도 '서민 대통령'을 자처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포항 죽도시장을 찾아 상인들이 선물한 '아이스케키 통'을 둘러맨 이 후보. ⓒ뉴시스

양극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은 너도나도 '서민 대통령'을 자처하고 있다. 궁핍했던 어린 시절을 경쟁하다시피 내세우면서 '서민의 아픔'을 아는 후보임을 강조한다. 동시에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모든 후보가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정책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표방하는 '서민 대통령'이 난무하는 현실과 관련해, 최 교수는 정당들간의 정치적 갈등이 사회경제 정책의 차이를 기반으로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한국의 정당들은 모두를 대표하면서도 누구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이처럼 정당간 경쟁이 사회경제적 정책이 아닌,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은 정당의 존립 기반이 대중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약한 정당체제'가 형성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다.

한국 사회에서 '허약한 정당'은 분단체제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사회주의 이념은 애초부터 배격해야 하는 좁은 이념적 틀 속에서 계급 정당 체제가 뿌리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 교수는 또 87년 민주화를 추동했던 한 축인 노동자들이 민주화 직후 결정적 국면에서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정당이 제도화되지 못한 원인으로 꼽았다. '386'으로 호명되는 당시 대학생을 중심으로한 도시의 중산층 엘리트들만이 민주화를 거쳐 정치의 중심세력이 됐다.

그 결과로 "한국의 정당들은 민주화 이후 사회에서 분출하는 광범한 개혁 요구, 특히 IMF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 불평등의 심화로 표현되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대해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데에서 극도의 무력함을 보였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지난 10년간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박정희식 성장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경제적 정책노선을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중을 동원해 정당을 구축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나는 보수세력에 대한 강한 기대감은 민주화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냉정한 평가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박정희'와 '짝퉁 박정희' 사이에서 차라리 화끈하게 '진짜 박정희'를 선택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보수적 민주주의의 결정체, 삼성공화국
▲최장집 교수ⓒ프레시안

국민들의 '보수화' 역시 현 집권세력이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소외됐던 노동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정치 참여는 여전히 제약되어 있고, 중산층 및 지식인 전문가 집단의 정치참여는 폭발적으로 확대됨으로써 보수적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정치의 영역에서 경합함으로써 시장체제가 갖는 불평등 효과를 제어할 정당체제, 즉 정당이 중심이 된 '민주적 계급투쟁'의 기능이 제도화되지 못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같은 책에서 박상훈 박사(정치학. 후마니타스 대표)는 보수적 민주주의의 결정체로 노무현 정부와 삼성의 정치적 연계의 문제를 지적한다.

박 박사는 "정당의 매개없이 국가를 운영하고자 했을 때 언론의 매개 기능과 재벌의 정책로비 기능은 극대화될 수 밖에 없었고 전문가 집단의 자문과 정책 작성 기능에 대한 의존 역시 커졌다"면서 전형적인 사례로 '삼성공화국'의 문제를 들었다.

그는 "2003년 인수위 시절부터 최근 한미 FTA 추진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정부 핵심정책의 이면에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재벌의 정책 로비용 보고서가 갖는 영향력이 컸다"면서 노무현 정부의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론, 동북아 중심 국가론, 신성장 동력 개발론, 혁신주도형 경제론, 산업 클러스터론 등의 개념이 모두 삼성 보고서를 통해 발전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긴밀한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정부의 혁신을 기한다는 이유로 공무원들을 삼성인력개발연구원에서 연수 받게 한 일"이라면서 "재벌을 관리.감독해야할 정부기관들이 재벌의 인력관리회사의 교육대상이 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삼성은 5대 재벌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 뒤 민주정부,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 삼성의 성장은 놀라웠다"며 "2005년 기준으로 삼성은 5대 재벌 일반 자산의 50.8%, 자본 총액의 45.9%, 매출액의 39.5%, 당기순이익의 46.2%를 차지하는 '재벌 중의 재벌'로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의 허약함이 근본 원인

국가-재벌 연대가 주도하는 경제성장의 '부스러기' 이외에 다른 것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재벌과 더 연대를 잘해 '부스러기'라도 더 많이 떨어뜨릴 것 같은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민심은 이런 측면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5년을 유효기간으로 하는 것일 뿐이다. 정치가 현재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현상을 그대로 둔 채 계속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그래서 "오늘날 한국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의 기원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대면해야할 민주주의의 허약함에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최 교수를 포함한 이 책의 저자들은 교과서적이고 원론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당 민주주의'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회의 균열과 이익을 안정적으로 대표하고, 선거를 조직하며, 경쟁하는 다른 정당들과 뚜렷한 차이가 있는 이념과 목표를 제시하면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거나 이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정당이 제도화되지 않은 조건에서는 어떤 제도도 제기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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