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미 일방적 요구 말고 건설적 해법 찾자" 속뜻은?

'제재 해제' 집착 대신 다른 '상응 조치' 요구할 수도

한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수확을 거두지 못한 이른바 '노 딜'이었다는 일부 보수층의 비난에 대해, 한미 정상회담은 무엇인가를 협상하러 간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딜'이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간담회에서 이기동 부원장은 "한미 정상회담은 전략적 논의를 하기 위한 것이다. '노 딜'이라는 표현은 한미 정상회담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앞서나간 (평가인)것 같다"고 밝혔다.

이 부원장은 "한미 간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는데 이번 회담은 긴급한 현안을 논의하러 간 실무회담의 성격"이라며 "이런 회담에서 공동성명 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조율된 형태의 보도문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초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날짜를 확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전통적으로 정상회담과 관련해 미국은 그 자리에서 수락하지 않는다. 이건 관례적으로 그렇게 하는 일"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방한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 부원장은 한미 양측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전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한미가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것을 언론에 공개하면 그게 전략인가"라고 반문하며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이 공개됐지만 그 안에 이번 결과가 함축돼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난 11일(현지 시각)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북한, "남한 '오지랖'"…발언 속뜻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성과가 없었다는 지적과 함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에 대해 '오지랖'을 부리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북미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는 남한의 운신 폭이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기동 부원장은 "이는 문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이라기보다는 정부 입장에 대한 비난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를 두고 남북 정상회담이 어려워졌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라고 진단했다.

이 부원장은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이 지금까지 당사자가 아닌 것처럼 비춰지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북한은 남한에) 중재자와 촉진자 역할을 하되 당사자 관점에서 이러한 역할을 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즉 중재자 역할을 좀 더 강화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상응 조치가 제재 완화 일변도에서 탈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조미 사이에 뿌리깊은 적대감이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6.12 조미 공동성명을 이행해 나가자면 쌍방이 서로의 일방적인 요구 조건들을 내려놓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부합되는 건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힌 대목에 주목한 분석이다. 전략연은 '김정은 시정연설 특징 분석' 자료에서 이를 협상안이 조정될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역시 김 위원장의 연설 이후인 지난 14일 "조선이 제재해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행동조치로 저들의 적대시정책 철회 의지와 관계개선 의지, 비핵화 의지를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고 밝혔다. 북한이 자신들의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로 제재 해제나 완화가 아닌 정치‧군사적인 요구를 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제재에 조급한 모습을 보인 것이 미국으로서는 제재에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 들게 했을 것"이라며 북한 역시 자신들의 이같은 태도가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 요인으로 진단하고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도 계속 미국에 제재 해제 또는 완화를 요구하면 미국과 협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일단 북미 간 대화 가능성을 이어가기 위해 제재가 아닌 다른 상응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이기동 부원장 역시 "김 위원장은 올해 말로 협상 시점을 설정했다. 그 이전에 북미 협상이 추동되길 바라는데, 제재 완화만 밀어붙이면 미국이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북한도 알고 있다"며 "그래서 북한은 종전선언이나 체제 안전과 관련한 상응 조치 등을 내놓으면서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가려는 것 같다"고 관측했다.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제재 해제 문제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북한에 대량살상무기(WMD) 전체 폐기로 확산되고 있는데, 행동 대 행동, 말 대 말 등 등가적 방식으로 협상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기동 부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유가 실무협상이 부진했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상회담 개최 전에 미국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는 정상 간 협의하는 소위 '탑 다운' 방식은 유지하되 실무협상의 비중을 늘리겠다는 취지가 담긴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이밖에 최선희 북한 외무상 부상이 국무위원회에 진입한 것에 대해 이 부원장은 "그동안 대미 협상을 통전부가 주도했다면 향후 대미협상은 외무성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사 조치를 통해 보여준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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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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