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반도 정책 대혼란…한국이 로드맵 그려야"

남북관계 진전과 중국, 러시아 등 다각적 외교 노력 병행 필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다양한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을 감안해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4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주권자 전국회의, 겨레하나, 다른백년은 '새로운 구상과 로드맵을 위하여'를 주제로 시국강연회를 가졌다. 이날 강연을 진행한 강태호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은 "북핵 문제는 북미 간 적대관계의 해소를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지만,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합의를 이행할 수 있을 것이냐는 관점에서 본다면 북미 간 합의는 매우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 전 소장은 "북한도 '빅 딜'을 합의한 뒤 미국이 이를 지킬 수 있을 것이냐는 부분에서 근본적 회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회담 결렬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미러 관계를 중국에 대한 견제 전략에 입각해 변화시키려는 정책(이른바 역 닉슨 전략)이 러시아 스캔들과 미국 내 반(反) 러시아 정치세력들의 공세, 트럼프 자신의 모순된 정책(러시아와 핵무기 경쟁, 중거리핵전력제한조약 탈퇴 등), 말 뒤집기 등에 의해 사실상 폐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가 안고 있는 불확실성 내지 한계'를 극복하면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그를 바탕으로 한 협력 구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어떤 행정부도 거스를 수 없는 큰 평화의 흐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전 소장은 "과거에 미국이 가지고 있는 한반도에서 영향력 역할, 비중 등을 새롭게 평가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합의의 과정이 이미 중국하고 러시아가 '쌍중단', '쌍궤(병행)'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흐름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노이 회담의 결렬은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시작된 이른바 '평창 프로세스의 한계와 실종'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제 남북미의 3자구도에 매몰되지 말고 중국과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프레임을 만들어 가는데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4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주권자전국회의, 다른백년, 겨레하나의 공동 주최로 강연회가 열렷다. ⓒ다른백년

이날 강연자로 참석한 스테판 코스텔로 전 미국 평화재단 부이사장 역시 현재 한반도 정책에 관해 미 행정부가 한마디로 '대혼란'에 빠져 있다면서, 현재 트럼프 정부에 의존해서 한반도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날 미국은 동맹국으로서도, 외교 상대로서도 정상(normal)이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 하노이 회담을 둘러싼 미국의 행보에서 대통령은 한반도 정책을 구상하지 못했고 장관과 차관이 대통령의 의지에 반해 움직이고 있다. 정부 관료와 언론인들은 한반도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뭐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코스텔로 전 부이사장은 "미국은 현재 극심한 정부의 위기와 더불어 정치제도와 정책, 정책입안 등의 거버넌스가 요동하는 상황을 겪고 있다. 이는 적어도 3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과 동맹으로 같이하되, 보다 많은 책임을 스스로 지고 워싱턴의 역할을 줄여"여 하며 "북한의 요구사항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담아내고 합의된 사항을 실행하는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서울 당국이 누구보다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임을 인식하고 준비된 전략을 실천하고 촉진하는 자가(自家) 운전자가 되어야"하며 "새로운 지원과 자금이 북한에 투자되도록 장기적인 제도와 기구를 북한과 함께 준비해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강연자인 정영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구조의 해체를 위한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힘은 바로 남북의 관계 변화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북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핵심 변수는 남북관계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0년 북미 간 직접 협상 과정에서도 남북의 관계 변화가 결정적 배경이었고, 현 상황도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 관계의 극적 변화가 배경으로 놓여있다"며 "한반도의 거대한 구조가 비록 우리가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 하더라도, 이의 해체와 새로운 구조 창출에는 남북관계가 핵심적인 변수로 놓여 있었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남북 관계의 진전을 통해 우리의 발언권이 커지고 한반도에서의 주도적 역할이 강화된다면 강고한 구조인 북미 간 대립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이 커지고, 우리의 요구를 반영한 구조 해체와 새로운 관계의 설정에 마땅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남북관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한반도 구조를 직접 해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과 미국의 적대 관계를 직접 변화시킬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구조에 갇힌 힘'이라고 할 수 있다"며 "더욱이 우리는 한미 동맹이라는 '구조의 종속'에 있으며, 우리가 가진 힘은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남북관계 변화 등의 '국면'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결론적으로 현 국면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여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이미 지난 3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전쟁 없는 한반도'와 군사적인 긴장 완화와 의미 있는 조치들을 담은 '군사합의서' 채택, 남북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약속했다. 남북 간 합의한 사항들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국제법'과도 같은 제재의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남북 간 진전시킬 수 있는 협력 사업을 창의적으로 모색하고, 진행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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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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