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냉기류, 남북관계 한파로?

북한,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전격 철수한 이유는?

북한이 지난해 4.27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에 근거해 설치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전격 철수했다. 북한은 철수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 겸 남북공동연락사무소장은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북측은 오늘 오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연락대표 간 접촉을 통해서 '북측 연락사무소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통보하고, 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천 차관은 북한이 '상부의 지시' 외에 다른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말씀드린 그대로"라며 "딱 그만큼(상부의 지시)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북한의 철수 입장과 관련해 저희가 (북한의) 의도라든지 입장 등을 예단하지는 않겠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이런 상황과 같은 부분들은 연관 지어서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천 차관은 "(북한이) 철수한 데 대해서는 굉장히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북측이 조속히 복귀해 연락사무소가 정상 운영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마련된 것인 만큼, 북한의 이번 조치가 남북 정상 간 합의를 파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천 차관은 "합의 파기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상황인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파악을 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연락사무소 폐쇄가 아니라 인원들만 철수시킨 만큼, 향후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단정적인 해석을 경계한 발언이다.

청와대도 이날 오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를 열어 후속 대응을 논의했다. 북한이 연락사무소 인력을 철수한 배경을 분석하고 향후 남북 및 북미 관계에 미칠 영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해 9월 14일에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 ⓒ통일부

북한, '강경 대응'의 시작?

정부는 북한의 이번 조치의 배경에 대해 2차 북미 정상회담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선을 그었지만, 회담 이후 북미 관계의 추이를 보면 하노이 회담 결렬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북미 협상에 관련된 도널드 트럼프 정부 주요 인사들은 일제히 일괄타결식 빅딜론을 공식화하며 대북 제재 공조를 단속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이날 독자적 대북 추가 제재를 단행한 직후 북한이 연락사무소을 철수한 대목도 남북 채널 중단을 통해 미국에 보내는 항변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북한이 북미 간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남조선은 중재자가 아니고 플레이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정부는 대북 특사 파견을 검토 중이지만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아직까지 북측이 입장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남북 간 소통에 진척을 보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의도에 대해
"남한이 미국을 좀 더 적극적으로 설득하라는 이야기"라며 "북한이 신년사 때부터 이야기했던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재개와 관련해 남한이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불만을 표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역시 "북미 협상 과정에서 남한에 대해 섭섭함이라든가 (남한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실제 연락사무소의 폐쇄보다는 남한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철수 과정 곳곳에서 드러났다.

우선 북한은 연락사무소의 남한 내 인원의 체류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2016년 2월 10일 남한 정부가 개성공단의 가동 중단을 밝혔을 때 북한은 다음날인 11일 현지 남한 체류 인원들에게 이날 오후 5시까지 모두 개성공단에서 나가라며 강경한 대응을 보인 바 있다.

실제 천 차관은 "오늘 오전 근무를 마치고 2시에 (남한으로) 넘어오는 상황에서 북측 연락대표는 사무소에서는 철수를 했지만 저희를 안내하고 전송했다"고 말했다. 남한 인원의 개성 출입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은 셈이다.

또 연락사무소에는 여전히 남한 직원들이 체류하고 있는 상황이고 북한도 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이다. 천 차관은 "연락사무소에 9명, 그리고 지원 인원 16명이 내일(23일, 토)과 모레 이틀 동안 근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측 인원은 철수했지만 연락사무소 취지에 맞게 저희 남측 사무소는 계속해서 근무를 할 생각"이라며 "(다음주) 월요일 출·입경은 평소와 같이 진행한다는 입장에서 실무적인 사안들은 가능한 대로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인원이 사무소에 구비돼있는 다른 자재나 장비 등을 가지고 철수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이같은 추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천 차관은 "북측 인원들은 간단한 서류 등은 가지고 가는 것으로 보였지만 기본적으로는 인원만 철수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고 전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이와 관련 "북한이 남측 인원의 철수까지 요구하거나 연락사무소 폐쇄를 결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입장이 바뀌면 북측 인원이 복귀함으로서 연락사무소가 재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지속할지 매우 심각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한국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미 설득을 압박하기 위해 북측 인원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북한이 이번 철수를 계기로 미국과 협상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앞서 지난 15일 최선희 부상은 평양에서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김 위원장이 미국과 협상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동엽 교수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1월 1일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에 대한 발표가 임박한 신호일 수도 있다"며 "(북미 간) 중재든 촉진이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내달 11일로 소집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관련 메시지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정 본부장도 "북한이 주요 국가 공관장을 평양에 불러들인 데 이어 연락사무소의 북측 인원까지 철수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 전략과 대외정책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징후일 수 있다"며 "조만간 북한이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나 정부 명의로 비핵화 협상과 관련 대외적으로 강경한 성명을 발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지난해 5월 26일처럼 당장 주말에라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약식 정상회담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이 취할 모든 비핵화 조치와 북한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상응 조치 모두를 미국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양 정상이 담대한 빅딜을 추구하도록 김 위원장을 적극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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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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