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빠졌나?

북한 최고지도자로 처음…'정상국가' 향한 의중 반영된 듯

북한이 5년만에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치른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의원에 포함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12일 북한에서 의회 격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당선자 687명의 명단이 발표됐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관영매체 조선중앙TV 역시 이날 당선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김 위원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5년 전인 2014년,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처음 치러진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김 위원장은 '111호 백두산선거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북한 매체들은 선거가 있은 다음날 김 위원장의 당선 소식을 별도로 보도하고 그 다음날에는 전체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대의원 선거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을뿐만 아니라 백두산선거구 자체가 제외됐다. 북한 매체들이 발표한 명단에 따르면 제111호는 백두산선거구가 아닌 '직동선거구'였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가 대의원에 포함되지 않은 경우는 1948년 제1기 대의원 선거가 실시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김일성 주석은 1994년 사망할 때까지 1~9기 대의원이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1년 사망 때까지 7~12기 대의원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에 김 위원장의 이번 결정을 두고 스스로 대의원을 포기하는 것을 통해 '독재국가'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이른바 '정상국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의 일환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지난 6일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며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고 말해 이같은 의도를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사실상 김 위원장이 북한의 모든 분야를 통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이름을 올려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6일 해당 서한에서 김 위원장은 "형식주의에 빠져 있으니 객관적 현실을 인정하라"라고 말했는데, 이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집권 이후 형식주의를 배격해왔다. 이를 감안했을 때 이번 대의원 불출마 결정 역시 실용주의적인 그의 통치 스타일의 일환이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는 일종의 명예직이고 회의도 자주 열리지 않는다"며 "물론 대의원에게 일정한 특권이 따르지만 김정은에게 그러한 특권은 필요 없다. 이건 김 위원장의 실용적인 측면을 보여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김정은은 집권 이후 주변 간부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대의원 불출마가 실질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지만, 형식적으로는 최고인민회의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보여주기 위해 이같은 움직임을 보였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김정은이 외치나 대외관계에 집중하겠다는 의중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인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에게 투표하기 위해 이 대학에 마련된 투표장을 찾았다고 12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 주역들, 대의원에 이름 올려

김 위원장은 대의원에서 제외됐지만 그를 가장 가까이서 수행하고 있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제5호 갈림길선거구'에 당선됐다. 김 제1부부장은 2014년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으나 2016년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 모습이 포착되면서 보선으로 대의원에 당선됐다는 추정이 나오기도 했다.

김 제1부부장이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고 당 제1부부장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함께 그가 당선된 선거구가 고 김일성 주석의 고향인 만경대구역의 선거구 중 하나라는 점에서 김씨 일가의 정통성이 다시 한 번 강조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었던 북한 내 외교‧안보 실세들도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리수용 당 부위원장 등은 13기에 이어 14기에도 대의원에 당선됐다.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이번에 대의원에 새롭게 진입했다. 물론 북한이 이들의 직함을 따로 표기하지 않아 동명이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다른 대의원 당선자들의 면면을 살펴봤을 때 이들의 당선은 사실상 확실해 보인다.

당초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나면서 북한 내부에서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비롯해 리용호 외무상 등이 대의원에 오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북한에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대의원 제외나 경질 등의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북한의 대외 인사 경질 가능성에 대해 "그 가능성은 상당히 낮을 것이라고 본다. 리용호 외무상이나 최선희 외무상 부상을 경질하면 (회담이 결렬된) 귀책사유가 북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밖에 중국통이라고 알려져 있는 김성남 당 국제부 제1부부장과 리길성 외무성 부상,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 등도 이번 대의원에 포함됐다. 또 과거 북한 대미 외교의 선봉에 섰지만 최근 활동은 뜸했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역시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남 업무를 맡고 있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도 대의원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11월 남한에 내려왔던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겸 조국통일연구원장, 남북 종교교류 등에 관여하는 강지영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도 대의원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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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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