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무슬림 아니냐는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이같이 답했다.
경쟁자를, 그것도 여론조사에서 자신보다 앞서있던 후보를 인종 문제로 공격해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하고 역전을 노려볼 수도 있었지만, 매케인 의원은 그러한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민주‧공화당을 불문하고 미국 내 많은 정치인들이 매케인 의원을 존경했던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5일(이하 현지 시각) 매케인 의원이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의원실은 그가 애리조나 주 히든밸리에 위치한 자택에서 부인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매케인 의원은 지난해 7월 말기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을 이어왔다.
매케인 의원은 베트남 전쟁 때 5년 동안 포로로 붙잡혀 있었던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미 해군에서 22년 동안 복무한 뒤 1982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이후 1986년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2018년 현재까지 내리 6선에 성공했다.
그는 2000년부터 대권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공화당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패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2004년에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도왔으며 2008년 마침내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정치 신예나 다름없었던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켰고, 결국 매케인 의원은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다. 하지만 그는 선거 결과가 확정된 이후 "이번 선거는 역사적인 선거다. 아프리칸-아메리칸을 위한 특별한 순간"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 승부에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8년 대선에서 경쟁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매케인 의원과 나는 세대도 다르고 자라온 배경도 달랐지만, 미국인과 이민자들이 똑같이 싸우고 전진하고 희생했던 이상에 대한 믿음을 공유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그에게 빚을 졌다. 미셸과 나는 신디(매케인 부인)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매케인 의원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는 선의의 경쟁자였지만 정작 같은 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상당히 각을 세웠다. 그는 지난 5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미국의 가치를 지키지 못한 인물"이라는 혹평을 남기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매케인 의원과 껄끄러운 관계임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13일 매케인 의원의 이름을 딴 국방수권법에 서명하면서도 정작 매케인 의원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매케인 의원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본인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매케인 의원의 가족에게 가장 깊은 연민과 존경을 표한다"며 "우리의 마음과 기도를 당신과 함께할 것"이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매케인 의원은 지난 1989년 한국을 방문해 노태우 대통령과 만나는 등 미국 내의 대표적인 '지한파' 의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2013년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6월 미국을 방문해 매케인 의원과 단독으로 면담을 가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26일(한국 시각) 페이스북에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은 자유를 향한 미국의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면서 "한미동맹의 굳은 지지자이며 양국 간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해 워싱턴 방문 때는 방미 지지 결의안을 주도했고 미 상원의원들과의 면담도 이끌어주었다. 평화의 한반도로 가기 위한 첫 걸음에 큰 힘이 되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그는 "오직 국가를 위해 한 길을 걸었던 고인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애국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고인이 추구했던 자유와 평화가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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