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ICBM, 러시아로 반출하면 합리적 해결"

[좌담] 백준기 통일교육원장·이남주 성공회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한국시간으로 오는 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에 방문한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약 3주 만에 이뤄진 이번 방북에서 북미 양측이 어떤 합의를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북한이 어느 정도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향후 협상의 전개 방향이 달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조치에 따라선 그에 맞는 적합한 보상이 수반된다. 한반도 주변국 가운데 미국과 중국, 일본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러시아의 역할에 대해선 제대로 알려진 내용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 러시아 전문가인 백준기 통일교육원장은 이란 핵 합의를 예로 들며 "미국은 정치적으로, 중국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러시아는 군사(무기)적으로 북한에 체제 보장을 해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백 원장은 이란 핵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란은 핵 주기를 완성하여 핵물질을 보유하더라도 핵시설에 대한 군사적 방어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러시아에게 방공 미사일 시스템(S300) 무기체계 판매를 요청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는 군사용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으면 대공 미사일 방어체계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며 "이러한 딜레마는 실제로 이란의 정책 결정 지도부가 핵 협상에 임하는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고, 이란 핵 합의가 타결된지 몇 달 후에 러시아는 이란에 S300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백 원장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도 이와 같은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즉 북한 핵에 대해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2015년 세계 2차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등 북한 대표단이 러시아에 방문했을 때 북러 간 S300 미사일 방어 체계의 제공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이에 대해 당시 러시아는 앞서 말한 이란 케이스와 동일한 원칙을 견지했다는 전언이 있었다"고 전했다.

백 원장은 "북한에 핵을 포기하는 대신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안전 보장)를 주려면 정치적인 보장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부분도 필요하다"며 "이걸 보장해줄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종전선언에 중국이 참가하는 문제에 대해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은 종전선언 자체는 정치적 의미가 강하고 상황에 따라 이뤄질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며 중국 당국은 종전선언에 반드시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다만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상황에서는 중국은 반드시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종전선언은 현재의 프로세스를 역진되지 않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는 기초이기도 하다"며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빠르게 진행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 대해 중국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지난 6월 30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좌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지난 5월 31일 평양에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오른쪽) 러시아 외무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

프레시안 :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이후 양측의 접촉이 약 3주 만에 재개됐다. 향후 북미 간 움직임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나?

이남주 : 일단 미국 측에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전, 혹은 2002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전에 뭔가가 끝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이후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북미 간 협상이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미리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데, 양측이 대화 과정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목록은 어느 정도 나왔을 것으로 본다.

지금은 양측이 이 사항들을 어떻게 맞춰갈 것인지에 대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가장 큰 이견은 북한이 어느 정도의 조치를 하면 미국이 어느 정도의 제재를 풀 것인가의 문제에 있는 것 같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 협상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제재 해제가 중요하다. 북한의 인민들에게 무엇이라도 보여주려면 제재 해제 조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남한에 대한 불만도 있을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도 하고 철도와 도로 건설 문제에 대한 회담도 진행했는데 대체 언제 철도와 도로 건설 작업에 착수할 것이냐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남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문제 때문에 좀 기다려달라고 하는 상황인데, 이걸 두고 북한에서는 성의를 보이라는 요구를 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번주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북미 간에 비핵화 과정과 관련해 어느 정도 의견이 근접했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남주 : 북미가 전부 합의를 본 것 같지는 않고, 서로 시소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은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무엇인가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고 있고 북한도 9.9절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에 인민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뭔가 결과를 만들어야 하고 이에 따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북한은 경제부문과 관련한 가시적인 조치를, 미국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의미 있는 조치를 원하는데 이걸 두고 양측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나?

이남주 : 그렇다. 특히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에 위협이 되는 요소를 북한이 얼마나 걷어내 줄 것인가가 핵심이다. 예를 들면 북한이 어떻게 ICBM을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북미 간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이런 와중에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담은 유엔 안보리 언론성명을 추진하려다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백준기 : 지난 6월 28일(현지 시각) 러시아와 중국이 공동으로 안보리 성명서 초안을 올렸는데 여기에 대해 미국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이건 실제로 성명이 나오느냐의 문제보다는, 양국이 이러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핵심적인 두 개의 국가가 이제는 제재 완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동시에 요구한 것이기 때문에, 이걸 그냥 제스처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이 제재 완화와 관련한 소위 '액션 플랜'을 염두에 두고 먼저 치고 나간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밝혔으니 구체적인 정치적 해소 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는 정치적 의지를 표명한 것 아닌가 싶다.

또 실제로 지금은 CVID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남북‧북미 정상회담에서 보인 북한의 정치적 의지가 어느 정도 인가가 중요한데, 결과적으로 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의 정치적인 의지가 있다고 확인한 것 같다.

프레시안 :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 성명까지 냈지만, 결국 북한에 대한 제재를 중단하려면 비핵화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일부에서는 북한의 선제적 조치로 러시아를 활용하는 것 어떠냐는 조언도 나온다. 소련이 20년 동안 핵무기를 폐기해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해서 북한의 핵무기를 러시아로 가져가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백준기 : 북미 고위급회담이나 실무회담에서 ICBM에 관한 협상이 중요한 의제였던 점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과 ICBM을 러시아로 보내는 것은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러시아는 이란 핵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와 유사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란 핵 타결 성과물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도출하는데 결정적 기준이 되었던 두 개의 원칙, 즉 '핵물질 스와프'와 '단계적 공동행동(step by step)'을 제시하거나 수행한 국가가 러시아다.

러시아는 이란이 2006년 핵 기술 완성을 선언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제시된 이란의 핵 물질을 스와프하는 방안을 성공적으로 중재하고 실행하였다. 즉 핵무기 제조에 전용할 수 있는 사용후 핵연료를 러시아로 보내면, 러시아에서 재처리하여 민간 핵 발전에 쓸 수 있는 저농축 우라늄으로 변환해 다시 이란에게 주겠다는 계획이었다.

두 번째는 단계적 원칙을 제안했다. 이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이 제안한 것인데 비핵화 단계로 들어가면 거기에 맞춰서 제재를 해제하고 보상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와 함께 무기 차원에서 이란에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란의 핵 개발이 드러난 이후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시설을 공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란이 핵 시설을 보호하려면 MD, 즉 대공 미사일 방어체제가 필요한데 이를 이란에 제공해줄 수 있는 국가는 러시아뿐이었다.

이란은 핵 주기를 완성하여 핵물질을 보유하더라도 핵시설에 대한 군사적 방어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러시아에게 방공미사일시스템(S300) 무기체계 판매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군사용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으면 대공 미사일 방어체계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딜레마는 실제로 이란의 정책 결정 지도부가 핵 협상에 임하는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고, JCPOA가 타결된 지 몇 달 후에 러시아는 이란에 S300을 제공하였다.

이외에도 러시아가 핵 문제와 관련하여 이란을 관리 통제한 또 다른 방식은 국제 제도로의 초청 문제였다. 이란은 미국으로부터의 제재와 국제적인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상하이협력기구(SCO) 등 외교 안보 및 경제 분야의 국제기구에 가입하기를 희망하였으나 핵문제 해결을 내세운 러시아의 반대로 좌절됐다. 그러나 핵 문제 타결 뒤 러시아의 지원으로 이에 가입했다.

▲ 백준기 통일교육원장 ⓒ프레시안(이재호)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도 이와 같은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즉 북한 핵에 대해 미국은 정치적으로,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5년 세계 2차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등 북한대표단이 러시아에 방문했을 때 북러 간 S300 미사일 방어 체계의 제공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에 대해 당시 러시아는 앞서 말한 이란 케이스와 동일한 원칙을 견지했다는 전언이 있었다.

북한에 핵을 포기하는 대신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안전 보장)를 주려면 정치적인 보장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부분도 필요하다. 이걸 보장해줄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밖에 없다.

또 핵탄두의 운반체인 북한의 ICBM을 러시아로 넘기는 것도 합리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북한 ICBM의 원천 기술이 러시아에서 들여온 것이 많기 때문에, ICBM을 미국에 넘기는 것(일종의 미국식 '프론트 로딩', front-loading‧초기 이행)을 러시아가 반대할 수도 있다. 러시아에 넘기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원래 본인들의 기술이기 때문에 기술 유출 문제는 없는 셈이다. 또 실질적으로 러시아에 북한 ICBM이 들어간다고 해서 갑자기 러시아의 ICBM 전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군사적인 측면 때문에 지금 러시아는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북한에 군사적으로 보장해줘야 할 부분이 있고, 이는 러시아가 해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큰 카드를 들고 상황을 지켜보다가 개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한편 북미 간 원활한 협상을 위해 이란의 부셰르 원전 문제도 참고할만하다. 2010년 유엔이 대 이란 제재를 결정할 때 미국은 부셰르 원전건설 등 민간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러시아는 부셰르 원전이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라며 이란을 비호했다.

만약 부셰르 원전건설을 강제로 중단시키거나 백지화하면 이란 국민들이 이를 정치적 패배나 굴복으로 인식할 수 있으므로 아무리 좋은 합의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란 지도부가 국민과 국내 지배 엘리트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러시아는 파악하고 있었다.

북미 간 협상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북한에 일방적인 포기를 강요하면 이는 정치적인 패배로 인식되고, 북한 인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에 CVIG와 함께 북한이 정치적으로 패배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추가적 조치를 안겨줘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제재 해제가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미국은 정치적으로, 중국은 경제적으로, 러시아는 군사(무기)적으로 북한에 체제보장(CVIG)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상대방과 외교를 할 때 가치와 명분을 이야기하지만, 러시아는 거래를 이야기한다. 어느 한쪽도 일방적으로 이기거나 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북미 간 협상도 마찬가지다. 협상이 북한 주민들에게 정치적 패배로 인식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단계적인 조치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이남주 : 긍정적인 측면에서 해석하자면 지금 미국이 중국에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대북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기보다는 제재를 풀더라도 자신들이 풀겠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제재 국면을 완화시켜서 북한의 협상력을 높여주면 안된다. 즉 협상 판에서 북한의 레버리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중국에 이러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백준기 : 이와 더불어 북핵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 유럽과도 함께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관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고 유럽이 이란 핵 협의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유럽 쪽을 끌어들이는 전략도 필요하다.

유럽은 이란 핵 합의를 상당히 잘된 협상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 정부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 협상과정에서 충격 효과를 주기 위한 술수일 수도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당시 합의에 스와프 조항이 들어있기 때문인 것도 아니라서 북한 핵 협의에 이란 핵 협상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이란 핵 합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는데, 트럼프 정부는 해당 합의에서 결국 탈퇴했다. 이 사안이 북핵 문제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것 같은데, 유럽이 세컨더리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란 핵 합의를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미국이 다시 합의에 들어오도록 내용을 수정하는 방향을 택할까?

백준기 : 미국을 제쳐놓고 합의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조정작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은 관세 문제에 북핵 문제도 있어 쉽지 않지만, 이러한 사안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이란 핵 합의가 다시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봤을 때 중동 지역의 사안과 동북아 지역의 사안이 동시에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 미국은 동북아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란 핵 합의는 오바마 전 대통령 것이고, 북핵 문제가 본인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또 이란의 핵 프로그램 관리가 잘 되고 있다. 따라서 일단 이 문제를 잠시 두고 북핵 문제를 해결한 다음 트럼프가 자신만의 모델이 있다며 이란 문제를 건드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프레시안 :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 사건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을 러시아에 넘기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미국의 여론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남주 : 북한의 ICBM 위협이 사라지는 것이라면 미국 국민 여론에도 부합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ICBM 발사대 폭파하고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는 ICBM을 어떻게든 해결하면 그걸로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크게 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지난 6월 12일(현지 시각)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러시아, 통일 한반도 지지하는 이유는

프레시안 :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한반도의 국제정치 지형의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백준기 : 러시아의 학계나 언론, 전문가 그룹에서는 북한이 이야기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약간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비핵화는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이 두 가지가 핵심인데 이 두 부분에 대해 모두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러시아 외교는 장기 구조적인 성격이 강하다. 국제질서와 체제전환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장주기(long cycle)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편이다.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는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바라고 있다.

러시아는 남북이 공존하고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한반도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분단을 관리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남북이 자체적으로 통일되면 이는 러시아의 국익에 합치된다는 인식도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에서의 단일한 통일국가가 동북아시아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가 이러한 판단을 하는 이유는 동북아에서 중국에 비해 열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러시아에 반대하지 않는 정권이 들어서기만 하면 괜찮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한반도가 미중 사이에서 균형만 맞춰준다면 러시아는 동북아 정세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여한 당사국이기 때문에 러시아와는 입장이 다소 다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에 대해서는 중국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종전선언과 관련한 중국의 정확한 입장은 무엇인가?

이남주 : 중국은 종전선언 자체는 정치적 의미가 강하고 상황에 따라 이뤄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빠르게 진행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 대해 중국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상황에서는 중국은 반드시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중국 당국보다는 민간이나 학자 차원에서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전선언에서 중국이 빠질 경우 이를 중국을 배제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현재의 프로세스를 역진되지 않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는 기초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초기 단계에서는 북미 간 협상에 불안요소가 많기 때문에 가시적 성과로 만들자는 차원에서 종전선언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물론 종전선언에 제일 적극적인 것은 한국 정부다. 한국은 어쨌든 지금 상황을 조금 더 앞으로, 불가역적으로 진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백준기 : '동결의 정치'라는 말이 있다. 분쟁 대상 지역은 첫 번째로 분쟁을 동결시키는 단계를 거친다. 이걸 우리의 상황에 대입해보면 우리는 이미 동결의 정치로 들어간 상태다. 이게 70년 정도 이어져 온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면 동결의 정치를 끝내고 해소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이 해소의 입구가 종전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는 남북 정상회담 끝나고 종전선언 문제가 나왔을 때 이와 관련해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종전선언보다는 이후 프로세스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프레시안 : 국제정치 지형이 바뀌면 그에 따라 경제적인 움직임도 활발히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 러시아, 북한과 중국 사이의 향후 경제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백준기 : 꾸준히 교역은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수준은 굉장히 낮다. 무역도 미미한 액수다. 북한과 러시아는 교역보다는 전략적인 문제와 '신동방정책'에서 더 중요한 관계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극동이나 시베리아 개발에서 북한을 도외시할 수가 없고,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러시아의 신동방정책도 활로가 트인다고 보고 있다.

이남주 : 중국은 북한과 경제적 관계도 중요하다. 지난해까지 북중관계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는 점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에 특사로 방문했는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를 만나지 않았다.

또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쑹 부장을 맞이했는데 테이블에 앉아있는 인원이 달랐다. 북한 인원은 3명이었고 중국은 8~9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탁자 위에 물도 없었다. 이게 11월 당시 북중 관계를 보여주는 징표였다.

▲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그래서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한다고 할 때 중국이 상당히 당황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상당히 주동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지난 3월 25~28일 이뤄진 김 위원장의 1차 방중 때 나왔던 공식 보도문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요청에 의해 김정은 위원장이 비공식 방문한 것으로 설명돼있다.

그러나 만찬과 관련한 북한 보도를 보면 북한은 자신들의 전격적인 방문 제의를 중국이 수락했다고 밝혔다. 또 짧은 시간에 김 위원장의 방문이 성과적으로 진행된 것에 대해 중국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건 김정은이 먼저 중국 방문을 제의한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다 결국 지난 6월 19일 방문에서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한반도)와 지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는 역사적인 여정에서 중국 동지들과 한 참모부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협동할 것"이라는 표현을 쓰며 중국과 관계가 굉장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국제 정세 변화와 관계 없이 △북중 관계 발전 △조중(북한과 중국) 인민들의 우호적인 감정 △사회주의 북한 등에 대한 자신들의 지지는 변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높은 수준에서의 북중관계가 복원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레토릭은 과거 어떤 시기보다도 양측이 높은 수준에서 북중관계를 언급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두고봐야 한다. 중국이 대북 제재를 먼저 해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다른 부분이다.

중국은 제재가 풀리면 움직일 것으로 본다. 특히 북한과 맞닿아있는 중국 동북지역은 최근에도 경제성장률이 미미한 상황이다. 따라서 지방정부나 민간 차원에서는 북한과 무엇인가를 하려고 계속 기회를 보고 있다. 단순히 중국이 지원하는 것이 아닌, 동북 지역 차원에서 북한을 경제 발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북한과 협력이 필요하다. 중국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일대일로'가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만약 남북이 연결돼서 중국이 구상하는 일대일로가 한반도까지 뻗을 경우 상당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인도적 지원, 포괄적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프레시안 :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이 프로세스가 동아시아의 공동안보라는 장기적인 과정으로 가기 위해 남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남주 : 일단 제재 하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찾아볼 수 있고, 제재가 완화되는 국면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남한 정부는 제재 국면에 대해 지나친 우려가 있는 것 같다. 정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미국보다 우리가 앞서나가면 안된다는 지점인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미국이 잘 풀어주면 괜찮은데, 북미 간 막혔을 때는 남한이 그 국면을 적극적으로 돌파해낼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프레시안 : 평창 올림픽 기간에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중지한 사안은 우리가 미국보다 앞서서 제기했고 결국 우리의 뜻이 관철된 측면이 있다. 제재 문제도 우리가 좀 선도적으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히 인도적 지원 부분은 시도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백준기 : 미국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외교의 최고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한다. 이 부분을 고려해서 우리가 선도적으로 인권에 대한 포괄적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즉 인도주의적인 교류 및 지원 문제도 포괄적 인권 해석 안에서 이뤄지는 조치라고 규정한다면 미국 민주당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에는 정치범 문제 등 시민적 권리도 있지만, 사회적 권리와 경제적 권리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러한 점을 부각시켜 설득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북미 관계의 비핵화에 대한 조치가 확실하게 결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남한 정부도 제재 문제나 인도적 지원 문제에서 일단 지켜보고 있는 것인가?

이남주 : 남한 정부는 일단 남북미 종전선언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여론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텐데, 미국이 멈칫하는 부분에서는 우리가 상황을 끌고갈 수 있는 준비를 해둬야 한다.

또 북한이 이미 핵과 미사일 동결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상황을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좀 더 전향적 태도를 가져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는 것 같다.

▲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에서 대화하고 있는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판문점 공동취재단

이와 함께 의회 외교가 살아나야 한다. 미국의 민주당과 한국의 민주당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부터 당 대 당 외교를 이어왔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때 이 외교의 흐름이 깨졌는데, 당 대 당 외교를 복원시켜서 새로운 제도의 틀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재 미국 내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민주당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북한이 개방의 길로 나오면 우리가 북한에 선제적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도 북한에 뛰어들지 않을까?

이남주 : 남한에서는 철도와 도로 건설 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이거 중국에서 들어오면 가성비 측면에서 우리가 중국을 따라가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개방될 경우 다양한 가치와 이익 목표를 갖는 플레이어들이 뛰어들 텐데,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남북중, 남북러 등의 소(小)다자로 시작해서 이를 묶어가는 방식도 가능하다. 어차피 중국과 같이 할 일과 러시아와 같이 해야 할 일의 성격이 좀 다르기도 하고, 이런 방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면 동북아 다자안보로 연결될 수도 있다. 북한 경제의 문이 열리기만 하면 우리가 전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백준기 :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나 중국의 일대일로, 한국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등의 사업들은 북한이 결합될 때 비로소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개방의 길로 나와서 동북아가 하나로 연결된다면 이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만들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안보 체제도 따라올 수 있다. 결국 북한이 관건이다.

이남주 : 그런데 북한이 왜 내가 다자와 함께 하는 사업에 들어가야 하냐고 말할 수 있다. 자기 내부의 개발 권한이기 때문에 다자로 하지 않겠다고 하면 사실 반박하기가 어렵다.

이런 방식에 북한을 참여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자금 공여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 개발에 대해 양허성 융자라든지, 은행, 펀드 등의 시스템을 만들어 북한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북한이 참여할 것이다. 동시에 다자협력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남북간에 할 수 있는 일에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이 다른 나라들을 경쟁시킬 수도 있다. 우리를 비롯해 중국, 일본 심지어는 유럽 국가들이 아이디어를 쏟아낼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북한이 우리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좋은 방안을 가지고 있느냐도 관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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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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