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사라져 마땅한' 인간들의 긴긴 싸움
2019.12.03 08:49:47
[현장] 한국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 85일차인 요금수납원들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들의 점거 농성장으로 향하는 모든 길은 막혀있었다. 한국도로공사 본사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지하 주차장뿐이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 길의 입구에는 신원을 검사하는 경찰과 본사 직원이 지키고 앉아 있었다. 건물 내부도 철통 감시가 이어졌다. 농성장인 건물 2층 로비로 가는 모든 길에는 경찰이 서 있었다. 농성 중인 요금수납원들의 이동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 사람 나를 알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세상사람 모두 다 도화지 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점심 시간이 되자, 1층 로비에서는 '7080' 가요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한국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들이 매일 점심 주최하는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서 부린 '꼼수'다. 익숙한 노랫말과 멜로디가 수납원들의 목소리를 가로 막고 있었다. 그런다고 포기할 수납원들이 아니었다. 


"나와라 이강래. 숨지 말고 나와라.
나와라 이강래. 지금 당장 직접고용."


한국도로공사 2층 로비에 앉아있던 수납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금세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까지 달려나갔다. 경찰이 농성을 금지한 장소다. 이 자리에서 수납원들은 '우리가 이긴다'라고 적힌 빨간 손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김천 본사에 들어온 첫날에도 외치던 구호였다.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들의 점거농성이 86일(3일 기준)을 맞았다. 가을에 시작된 농성은 겨울이 되어도 이어지고 있었다. 2일 기자가 찾은 점거 농성장은 세상과 단절된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 수납원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 농성장 벽에 걸린 걸개그림. 조합원들의 바람이 적힌 글이 빼곡하다. ⓒ프레시안(최용락)


▲ 도로공사 본사 농성장 안에서 경찰 앞에 앉아 있는 수납원들. ⓒ민주일반연맹


판결이 나올 때마다 마음 졸여야 하는 수납원들


이날 기자가 만난 수납원들의 관심사는 코앞으로 다가온 1심 판결이었다. 12월 6일 김천지원과 1월 10일 성남지원에서 도로공사 불법파견에 대한 또 다른 법원 판결이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는데, 설마 그걸 뒤집겠어요."


판결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미자 씨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판결이 다가올 때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도 했다.

이번 판결이 나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해당자만 직접고용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후 1심 판결에서 직접고용 판결을 받은 사람을 직접고용하겠다고 한국노총과만 합의한 바 있다.


"또 먼저 받은 사람부터 직접고용한다고 갈라 치지 않겠어요?"


김미자 씨의 말에 둘러앉은 수납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마 전 교섭을 하겠다고 했다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함께 하지 않으면 교섭을 하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꾼 이강래 사장도 수납원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이미경(가명) 씨는 이강래 사장의 마음을 이렇게 짐작했다.

"혼자 책임지기는 싫다는 거 아닐까요. 전에도 국토교통부랑 청와대가 시켜서 했다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러니 을지로위원회라도 끼라는 거겠죠. 이번 1심 판결까지는 봐야겠다는 마음도 있을 거고요."

"엄마가 집에 다시 오게 되면, 그때 우리 더 행복하게 살아요"


식사시간이 끝나고 오후 6시 본사 후문 앞에서 문화제가 열렸다. 수납원들은 패딩을 꺼내 입고, 본사 후문 앞에 자리했다. 이날 문화제에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사드 반대 투쟁을 진행했던 소성리 주민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수납원 중 한 명의 중학생 딸이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그 말은 틀린 것 같아요. 거리가 멀수록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커지네요. 어렸을 때는 밤에 나가는 엄마가 싫었는데 지금은 엄마가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을지 알게 됐어요. 잠도 못 자고 집안일 하고 우리를 챙기는 게 얼마나 고될지. … 엄마가 직접고용 되면, 그래서 우리 집에 다시 오게 되면, 그때 우리 더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그리고 그 때 엄마 무게 나눠줘요. … 엄마 믿어요. 힘내요. 사랑해요."

편지를 읽기 전까지 발언자의 말에 웃기도 하고, 공연을 보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던 수납원들이 숙연해졌다. 문화제가 끝난 뒤, 전화기를 꺼내 통화하는 수납원들이 눈에 띄었다. 


▲ 하루를 마무리하며 종례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 조합원들은 조회와 점심집회, 종례를 하는 공간을 직고광장이라고 이름 붙였다. ⓒ프레시안(최용락)


문재인 정부의 최대 비정규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공기업 여성 노동자들


1500여 명의 수납원이 해고된 지 156일이 지났다. 수납원들에게서는 자신들의 싸움이 너무 길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예전에 남들 싸움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사람들이 맞지 하다가도 '너무 길게 싸우는 건 아닐까. 빨리 합의하면 좋겠다' 그런데 당사자가 되어보니 아니더라고요. 우리가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게 아니잖아요. 저희도 빨리 이 사태가 끝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강래 사장이 교섭 자체를 하지를 않아요."

그 긴 시간 동안, 수납원들은 이강래 사장과의 교섭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했다. 한여름을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보냈고, 청와대 앞 아스팔트 바닥에서 노숙 농성도 했다. 이제는 도로공사 주무부처 장관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배출한 집권여당 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까지 찾아다니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가이드라인에서 자회사를 열어두지 않았다면, 대법원 판결대로 직접고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말하던 대통령과 그를 배출한 당은 어디로 간 걸까. 


수납원들은 86일째 도로공사 본사 2층 로비 대리석 바닥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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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기자
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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