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전도사' 미국은 왜 '핵무기철폐조약'에 반대하나?
2019.12.02 17:34:40
[인터뷰] 틸만 러프 핵무기 철폐 국제 캠페인(ICAN) 회장
핵무기의 종말인가, 아니면 인류의 종말인가? 지금 한반도에서는 북핵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사실 핵무기는 기후 온난화와 함께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적 문제다. 인도-파키스탄의 소규모 핵전쟁으로도 26년 간 핵겨울이 지속되며 이에 따른 식량 감산으로 최대 20억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최근 연구 결과를 이를 웅변한다.

지난 2017년 유엔 총회의 핵무기철폐조약을 주도한 '핵무기 철폐 국제 캠페인(ICAN)'의 틸만 러프(Tilman Ruff) 회장은 핵무기는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적 자살 폭탄(global suicidal bombs)'이라면서 핵무기도 생물, 화학무기와 마찬가지로 절대로 사용돼서는 안 될 비인도적, 불법적 무기라는 점에 대해 최대한의 국제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22개 국가의 찬성으로 통과된 핵무기철폐조약은 현재 80개 나라가 서명하고 34개 국가가 비준함으로써 원폭 75주년인 내년에 발효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조약은 50개국이 비준한 후 90일 뒤에 효력을 갖게 된다.

지난 11월 27일 '평화와 건강 정의(Peace and Health Justice)'를 주제로 한 2019 한국건강형평성학회 가을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러프 회장을 만나 핵문제와 ICAN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러프 회장은 핵무기가 불법 무기라는 국제적 합의가 정착된다면 그 다음에는 핵무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이후 핵무기의 제거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에서도 핵무기철폐조약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핵무기라는 지구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구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중보건의 출신의 그는 호주 멜버른대 교수로 1985년과 2017년 각각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IPPNW(International Physicians for the Prevention of Nuclear War)의 공동대표이자 ICAN(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의 초대의장을 역임했다.

인터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통역은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이 맡았다.

▲ 틸만 러프 ICAN 회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의사들이 핵무기 철폐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한국에서는 좀 생소하게 느껴진다.

러프 : 사실 보건 의료 전문직에서는 핵무기가 핵심적인 이슈다. 공중 보건 사업이 인류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의사가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또한 공공정책, 정치 등을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 영양, 기후 변화, 약물 남용 등 모든 것들이 사실 공중 보건의 영역인데, 그중에 핵문제는 아주 근본적으로, 또한 전 지구적으로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사안이다. 핵무기는 절대 사용돼서는 안 될 무기이며 이를 실제로 없애려면 정부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건 굉장히 전통적인 공중 보건의 작동 방식이다.

연구 근거를 보면 핵무기를 썼을 때 건강에 주는 영향은 매우 치명적이다. 일단 작은 핵무기 하나라도 도시에서 폭발하면 모든 보건 의료나 응급 의료 체계들이 그 문제를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재난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이처럼 문제가 일어난 뒤에는 도저히 이를 처리할 능력이 안 된다면 당연히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방향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보건기구(WHO)도 1983년 핵 문제가 가장 임박하고 중요한 공중 보건의 위기라고 판단했고 1990년대 말에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거론하거나 여기에 관여되는 것을 꺼린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너무 정치적이며 (강대국 정치, 군산복합체 등)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보건 전문가들은 핵 문제가 자신의 전문적 영역을 벗어나는 이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엄존하는 문제들을 직접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또 핵 문제가 인류의 절멸을 초래할 수 있는 아주 임박한 문제라는 점에서 개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존재론적 문제다. 즉 인류 전체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핵 문제는 모든 이들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사안이지만, 특히 공중 보건 문제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전문가들이 여기에 관여해야 한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공중 보건 문제가 핵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돼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프레시안 : 일반적으로 핵무기의 인명 피해라고 하면 폭발(blast), 화상, 방사능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1983년부터 핵겨울(nuclear winter)에 의한 식량 감산, 즉 핵기근(nuclear famine)이라는 피해가 알려졌고,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규모 핵전쟁으로도 핵겨울이 최대 26년 지속되고 이에 따른 식량 부족으로 최대 20억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핵무기 피해에 대해 설명해 달라.

러프 : 첫 번째는 규모의 문제다. 핵 실험 중에는 인류 역사에서 사용된 모든 폭발을 합한 것의 4배가 되는 규모의 실험도 있었다. 1953년 소련이 실험한 50메가톤 규모의 수소탄이 그것이다. 그걸로 인해 생기는 폭발과 화재, 화염 등의 규모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준이다. 예컨대 1945년 히로시마에서 사용된 원자탄(15킬로톤)은 대략 13 평방킬로미터 내의 모든 생물과 물질을 증발시켜버리는 데 비해 현대의 핵무기(5메가톤)는 1600 평방킬로미터 안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핵폭발에는 세 가지 아주 독특한 측면들이 있는데 하나가 방사능 문제다. 방사능 물질이 비 또는 바람을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번 터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출된 사람에게는 평생에 걸쳐서 위험이 지속되고 이에 따라 고통을 받게 되는 문제가 있다. 심지어 세대를 넘어서, 어떤 방사능 물질은 수 만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식물과 동물에서도 유사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인간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니다.

두 번째는 EMP(전자기펄스) 문제다. 핵이 공중에서 터지면 모든 전자기기의 작동을 대륙적 스케일로 망가뜨린다. 정보통신뿐만 아니라 전기로 된 모든 것이 영향을 입게 된다. 전기, 통신, 교통, 수도, 컴퓨터, 의료, 그리고 은행과 상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현대 문명 전체의 종말을 초래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기후 변화 효과가 있다. 기후 문제에 이 사안만 독특한 효과를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규모가 다른 요인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실제 대규모 재래식 폭격이 있었던 이라크전쟁이나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이 떨어졌을 때 국지적이지만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굉장히 폭넓은 지역의 화재를 촉발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촉발시키는 힘이 굉장히 컸다. 핵무기에 의한 화재는 그 규모가 폭발 그 자체의 1000배를 넘는 에너지를 갖는다.

핵이 폭발하면 모든 것들을 태우는데, 이 과정에서 수백만 톤의 검은 스모그가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폭발 온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대기권 위로도 화염이 올라간다. 그 다음에 나머지는 더 낮고 어두운 스모그가 아래에 깔리게 된다. 대기권 위로 올라가면 비에 씻겨 나가거나 바람에 날리지 않으니까 계속 그 곳에 머무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햇빛이 차단되기 때문에 생물의 생장도 멈출 수밖에 없다. 수 년 동안 작물의 생산이 감소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핵겨울). 그리고 성층권으로 올라간 스모그들이 오존층을 파괴시키면 자외선 노출이 많아져 동식물에 유전적 변이가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식량 생산이 감소하면 수십 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에 처할 수 있다(핵기근).

핵전쟁은 파키스탄이든 이스라엘이든 국지적으로 벌어지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스케일의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폭탄이 터진 후에 대규모의 인명 살상도 문제가 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세계적인 기근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 핵무기는 인류의 자살폭탄(global suicide bombs)이다.

핵무기철폐조약이 만들어지기까지

프레시안 : ICAN(International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은 2017년 유엔 총회를 통해 핵무기철폐조약을 성사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단체의 설립 배경과 핵무기철폐조약 성립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달라.

러프 : ICAN이 공식 출범한 것은 2007년 4월 23일이다. 하지만 관련된 아이디어가 모아지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였다. 당시 5년마다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컨퍼런스에서 한 달 동안 핵무기 감축 논의가 있었으나 아무런 진전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교착 상태에 빠졌고 실제 핵무기를 가진 국가들은 비핵화 문제를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매우 당혹스러웠다.

그때 '핵전쟁 방지를 위한 국제의사들(IPPNW, International Physicians for the Prevention of Nuclear War, 1985년 노벨 평화상 수상)' 회원이자 말레이시아의 산과 의사인 론 매코이가 전 세계 시민들의 핵무기 철폐 운동을 제안했다. 시민 단체들이 먼저 핵무기 철폐를 위한 조약을 만들고 여기에 각국 정부를 참여케 하자는 것이었다. 조직 명칭도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ICAN을 제안했다.

▲ ICAN 홈페이지 갈무리


그런데 핵무기철폐조약의 성공에는 중요한 선례가 있었다. 예컨대 1999년 발효된 대인 지뢰 금지 협약이 그것이다. 대인 지뢰 금지 협약은 처음에 캐나다 정부가 주도했고 이후에 몇몇 나라들이 참여하면서 10년 안에 협약을 체결한 성공적인 사례였다. 이 협약이 중요했던 이유는 강대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합의에 도달하게 됐다는 점이었다. 실제 러시아, 중국, 미국은 이 협약에 반대했고 심지어 이 국가들은 아직도 서명하지 않았다. 

2010년 발효된 집속탄금지협약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 협약도 통상적인 프로세스를 따랐는데, 시민 단체와 일부 정부가 나서서 협약을 추진하면 광범위한 연합을 통해 이를 아젠다로 만들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서 다시 여러 정부들이 여기에 동의하게 되면 유엔으로 들고 가 공식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사실 생물무기금지협약(1975년 발효)와 화학무기금지협약(1997년 발효)도 대인지뢰, 집속탄 금지협약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이 무기들에 대해 인도적 견지에서 사용될 수 없다는 합의를 이끌어내고, 일단 사용을 금지시킨 다음 제거하는 과정을 밟았다. 즉 정당한 무기가 아니라는 낙인찍기(stigmize), 금지(prohibit), 그리고 제거(eliminate)라는 수순을 밟은 것이다.

핵무기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국제적인 캠페인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인지뢰나 집속탄금지협약이 체결된 것처럼 광범위한 시민사회가 동맹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적인 방향으로 잡았다. 그리고 핵무기는 절대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국제적인 합의를 조약 형태로 완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는 IPPNW 혼자서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IPPNW 호주 지부에 계신 분의 아이디어에 따라 IPPNW 주도의 프로젝트 방식으로 ICAN 그룹을 조직했고, 핵무기 철폐에 동의하는 세계 시민단체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즉 ICAN은 IPPNW가 인큐베이팅을 한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핵 문제는 가장 중요한 공중 보건 문제이며 그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여러 그룹들이 협력을 맺어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혀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조직들이 힘을 합쳐 캠페인을 하는 연합 형태로 가는 것으로, 즉 캠페인을 위한 일종의 네트워크 형태를 구상했다. 현재 ICAN에는 100여 개 국가에서 500여 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어쨌든 IPPNW가 일종의 사무국 역할을 맡았다. 자금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호주의 한 부유한 가문이 거액을 후원했다. 이 돈으로 처음에 캠페인을 조직하고 자료를 만들었고 2006년에 초기 3년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서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핵무기 철폐 조약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또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관찰했다. 일본과 유럽 등등을 방문했고 평화 운동 단체 등도 만나면서 폭넓게 활동했다.

이후 2006년 여름 헬싱키에서 열린 IPPNW 세계 총회에서 ICAN 운동이 의제에 올라왔고 각 국가의 협회들이 이 활동을 IPPNW의 핵심 활동으로 하겠다고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특히 당시 인류 최초의 피폭 도시인 일본 히로시마의 시장이 이 운동에 굉장히 자극을 받아서 ICAN의 첫 번째 파트너로 참여하게 됐다.

2007년 4월 처음으로 호주에서 이 운동의 지부를 출범시켰는데 과거 보수당 정부의 총리였던 말콤 프레이저도 이 운동에 결합했다. ICAN 활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들을 정했다. 우선 한 기관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으로, 그리고 작고 단순한 조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점을 확정했다. 캠페인의 목표는 분명하게 핵무기를 금지하는 협약, 그래서 핵전쟁을 예방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

우선 핵무기에 의해 야기되는 인도주의적 결과, 인도주의적 위기의 실상을 밝히고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정치적이거나 안보와 관련한 논쟁보다는 실제 핵무기가 쓰였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에 대해 주목했다. 핵무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초래하는 건강 문제들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접근하고 싶었고, 이 부분에서 IPPNW가 핵무기 피해에 관한 권위 있는 데이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핵무기의 실제 피해를 입었던 당사자, 즉 피폭자들의 목소리를 앞세우는 것도 중요했다. 강대국들이나 핵무기에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들이 핵이 국가 안보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도구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주입시켜서, 이를 뒤집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핵무기가 굉장히 끔찍하고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국가의 안보 논리에 젖어들게 되어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지난 2014년 유엔 군축담당 고등판무관 안젤라 케인은 "생물무기 보유국이라고, 또는 화학무기 보유국이라고 자랑하는 나라가 얼마나 되는가?", "페스트나 소아마비 균을 정당한 공격무기라고 주장할 사람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국제사회가 생물, 화학 무기는 불법적 무기라는 점에는 전폭 동의해 이들 무기에 대한 국제 금지조약을 맺은 반면 유독 핵무기는 국가 안보에 필요하고 실제 전쟁에 사용할 수 있는 정당한 무기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시리아 내전 당시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이 문제시되자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시리아 정부는 러시아의 중재에 의해 화학무기를 폐기했다. 하지만 핵무기에 관한 한 이런 일은 벌어진 적이 없다.

▲ 틸만 러프 ICAN 회장 ⓒ프레시안(최형락)


또 많은 사람들이 핵무기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정부가 알아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지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이러한 생각을 깨뜨리려면 원폭 피해 당사자(피폭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전달해주는 것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핵 문제가 국제정치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정치인들이 벌이는 게임이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핵에 의한 피해는 세대를 거쳐 전이되기 때문에 더 심각한 이슈라는 점도 알리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핵 문제의 심각성과 위급함을 알리려면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나는 핵무기의 공포라는 측면, 핵무기가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 진실을 알려야 하는 측면이 있고 다른 하나는 '희망'이라는 측면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같이 가져야 했다. 또 이러한 문제를 너무 심각한 분위기에서 가져가는 것보다는 나름의 유머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봤다.

덧붙여 특정한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적 캠페인으로, 그리고 모든 연령과 세대에 이러한 캠페인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했다. 핵무기 피해는 특정 지역, 국가에 한정되는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냉전 이후에 태어나 성장한 젊은 세대들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핵무기와 함께 살아왔기에 핵무기 없는 세상이 어떠했는지를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히 젊은 사람들을 캠페인에 합류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또 풀뿌리 차원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계몽하는 것과 정부를 상대로 압력을 넣는 것 모두를 해야 했다. 그래야 협약을 만들 때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97년 핵무기 반대를 위한 변호사, 의사, 과학자연합 등 세 단체가 핵무기 철폐를 시범적 조약안을 만든 바 있는데 이를 현 상황에 맞도록 바꿔주는 작업도 필요했다.

우리의 전략은 우선 핵무기를 불법적 무기로 규정한다, 그 다음 사용을 금지하고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핵무기를 가진 나라들은 핵을 제거할 생각이 전혀 없으므로 제거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핵무기의 불법화와 금지를 앞세운 것이다. 즉 핵무기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핵무기에 영향을 받는 나라들이 있으니 이 나라들을 설득해서 우선 금지와 관련해서 합의를 만들어내자는 생각이었다.

대인 지뢰와 집속탄, 생물, 화학무기 금지 협약 등을 통해 얻은 교훈이 있었다. 첫 번째로는 이 무기들이 금지돼야 할 과학적 근거들을 잘 구축하는 것이었다. 어떤 정부든 핵무기를 썼다 하면 무차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는 국제 인도주의적 규범들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이러한 근거들을 기반으로 법률적 조약 형태로 핵무기의 제조, 배치, 사용 등을 금지하는 것이 필요했다. 협약에 이런 무기들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 원칙을 모든 국가들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했다.

물론 대인지뢰, 집속탄 금지협약 등이 체결됐다고 해서 실제로 이러한 무기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무기들이 정당한 무기라는 아니라는 국제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했다. 기존 강대국들이 주장했던 핵무기의 정당성, 즉 국가안보를 위해 핵무기는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핵무기의 정당성이 박탈되면 이것을 금지하는 다음 합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인지뢰, 집속탄 금지협약도 모든 나라가 서명한 것은 아니지만 협약 체결 이후 생산, 거래, 사용 등이 줄어들게 됐다. 금지 협약이 견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협약 때문에 어떤 무기도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산과 실제 사용에는 중대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생물무기, 화학무기, 대인지뢰, 집속탄 등 비인도적 무기들이 다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무기인 핵무기에 대해서만 유독 아직도 금지 협약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2010년부터 핵무기 피해에 관한 과학적 사실들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고 2016년부터는 이를 국제 조약화 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핵무기철폐조약(The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은 8개월의 사전 준비, 4주간의 직접 협상 끝에 2017년 7월 7일 유엔 총회에서 122개 국가의 찬성으로 의결됐다. 반대와 기권은 각 1개국으로 네덜란드가 반대했고 싱가포르는 기권했다.

미국 등 핵 보유 9개 국가와 나토 27개 국가, 그리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한국, 일본, 호주는 논의 자체에 참여하지 않았다.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는 “서명, 비준은 물론이고 참여조차 하지 않겠다(We do not intend to sign, ratify or ever become party to it)”고 공식 선언했다.

대인지뢰와 집속탄 금지협약 등은 별도의 국제회의에서 조약으로 만들어진 데 비해 핵무기 철폐조약은 유엔 총회 결의로 조약이 됐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핵무기 감축 논의는 NPT와 유엔 군축회의 등에서 이루어졌지만 핵무기 감축을 위한 실제 진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NPT와 유엔 군축회의가 만장일치제였기 때문이다. 미국 등 단 한 나라만 반대해도 핵 감축을 위한 어떤 노력도 진전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핵보유국의 핵 감축 및 철폐를 위한 성실한 협상 의무'를 규정한 NPT 6조에도 불구하고 NPT를 통한 핵 군축은 전혀 진전되지 못했다. 유엔 군축회의에서는 현재까지 22년 이상 핵군축 의제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 등 핵보유국의 반대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세계 민주주의(global democracy)의 보편적 장으로서 유엔 총회를 통한 핵무기철폐조약을 추진한 것이다. 유엔 총회의 첫 결의안(1946년 1월 24일)이 바로 “핵무기 철폐(for the elimination of national armaments of atomic weapons)"였던 점도 중요했다. 비록 핵보유국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유엔 총회를 통해 비핵 국가들의 결의로 핵무기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이의 금지 및 철폐를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강대국들의 지저분한 압력

프레시안 : 핵무기철폐조약은 50개 국가가 비준한(ratify) 다음 90일 이후 발효하게 돼 있다. 자료에 따르면 2018년 8월 현재 60개 국가가 서명했고 14개 국가가 비준한 것으로 돼 있는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러프 : 80개 국가가 서명하고 34개국이 비준했다. 50개국이 비준하면 3개월 후부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무기가 투하된 지 75년인 2020년 8월이 되기 전에 핵무기철폐조약이 발효됐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효력을 가졌던 대부분의 국제 조약은 100개국 이상이 비준을 했기 때문에 이 조약에도 100개 이상의 국가가 비준하길 바란다. 그런데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들이 주변 국가들에게 압력을 넣어서 토론도 협상도, 서명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이들은 굉장히 지저분한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나의 사례를 말씀드리자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인 라오스의 경우 굉장히 많은 대인지뢰가 남아있고 아직도 연간 수백 명이 지뢰로 사망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대인지뢰금지조약에 따른 지뢰 제거 비용을 대주지 않겠다는 압박으로 라오스의 핵무기철폐조약 참여를 막았다.

▲ 틸만 러프 ICAN 회장 ⓒ프레시안(최형락)


또한 조약 협상이 진행되던 2016년 10월 남아공 측 협상 대표는 미국 등 서방 핵보유국으로부터 협상에 참여하지 말라는 “지독한 압박(incredible pressure)"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11개국이 핵무기철폐조약에 불참했다. 이 가운데 9개 국가는 이미 아프리카 비핵지대 조약에 참여했던 나라들이다. 미국 등은 원조 중단을 무기로 이들 국가의 조약 참여를 막았다.

하지만 강대국의 지독한 압박에도 핵무기철폐조약을 비준한 나라도 있다. 태평양의 섬나라인 팔라우인데, 미국은 1990년대에도 팔라우의 NPT 협약 체결을 저지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은 팔라우에 11번의 압력을 가했다. 심지어 정치인을 암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팔라우는 핵무기철폐조약을 비준했다. 이는 엄청난 정치적 용기다. 불행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음에도 가장 먼저 서명하고 비준했기 때문이다.

비준 국가가 많아지고 있지만 비관적인 전망을 하게 하는 신호도 있다. 강대국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현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상당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2년 핵무기 현대화를 위해 30년간 1조 달러 이상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면서 명시적인 위험이 늘어가고 있다. 사드도 이러한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핵무기철폐조약 통과 이후 노르웨이의 국부펀드, 네덜란드 연금펀드, 도이체방크 등 유럽 연기금과 은행들이 핵무기 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다고 했다(2018년 ICAN의 'Don't Bank on the Bomb' 운동의 결과). 반면 호주의 경우, 4개 은행이 2014년 1월에서 2017년 10월에 이르는 동안 핵무기 생산 기업에 64억 840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했다. 핵무기에 대한 투자로 돈을 번다는 게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러프 : 미국에서도 투자 철회가 일부 있긴 한데 규모가 작다. 보스턴 인근의 케임브리지 시, 캘리포니아의 몇몇 도시, 메릴랜드의 몇몇 도시 등이 핵무기 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했다.

지자체부터 중앙정부까지 정부들의 기본 목표는 시민,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핵무기 철폐에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수준에서도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워싱턴 D.C.와 캘리포니아 주, 뉴저지 주, 오레건 주 등 지방정부 차원에서 이 조약에 대한 지지 표명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핵무기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핵무기산업에 대한 투자 철회는 유럽의 연기금들이 주도적으로 해왔다. 일본에서도 규슈 지역에 있는 은행들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촉진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네덜란드에서 몇 주 전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14개의 금융기관들이 투자를 철회했다. 만약 핵무기철폐조약이 효력을 발휘하면 이러한 움직임이 훨씬 더 가속화될 것이다. 이미 금융 기관들이 금지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무기들과 관련한 투자들을 철회하고 있어서 다른 곳들도 이를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핵무기에 일종의 낙인을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투자한 연금이나 펀드가 핵무기에 투자되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거부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자신과 상관없는 정치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내 돈이 핵무기 개발에 쓰이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핵무기가 나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9년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하면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핵무기 현대화에 30년간 1조 달러 이상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사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무기를 만들었고,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한 국가라는 점에서 핵무기 확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국가 아닌가.

러프 : 오바마 대통령이 핵무기 철폐운동에서 일정하게 역할을 한 것은 맞다. 그의 '핵무기 없는 세상' 연설은 중요한 시점에서 나온 것이다.

2007년 11월 미국의 거물 정치인들 즉 공화당의 헨리 키신저와 조지 슐츠, 그리고 민주당의 윌리엄 페리와 샘 넌이 공동으로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을 통해 핵무기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협한다고 선언하면서 핵무기 위협 감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경고가 핵무기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고 2008년 대선 당시 후보였던 오바마에게도 많은 영향을 줬다고 본다.

오바마의 '핵무기 없는 세상' 연설은 말하자면 이러한 호소에 응답한 것이었다. 결정적인 단계에서 오바마가 핵무기 철폐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점은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통찰력을 공적 공간에 이야기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었다. 미국이 핵무기 감축, 그리고 철폐를 선도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이들이 이러한 경고를 한 것은 미국이 특별히 이타적이라서가 아니라 핵무기가 실제로 미국의 안보에 가장 실질적인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슐츠나 키신저 같은 '냉전의 용사'들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예상 밖이긴 했지만.

노벨 평화상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그동안 활동에 대한 인정과 승인도 있지만 앞으로 잘하라는 격려도 있다. 오바마의 수상은 순전히 격려 차원이었다.

그런데 당시 오바마의 '핵무기 없는 세상' 선언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들은 여러 곳에서 압력을 행사했다. 결국 오바마는 취임 직후 자신의 최우선 정책과제로 핵무기 감축이 아닌 '오바마 헬스 케어'(의료보험 개혁)를 택했다.

사실 핵무기 감축은 대통령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집권 초기 반대 세력이 크지 않았을 때 이를 밀어붙일 수 있었는데 그걸 하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다. 냉전 직후인 1990년대 초,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핵무기를 3만 개 정도 줄인 전례가 있다. 역대 최대 감축이다. 오바마도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결국 핵무기를 줄이지 못했다. 오히려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추진했다.

또한 미국은 핵무기철폐조약 협상을 아주 집요하게 반대했다. 2016년부터 미국은 12명으로 구성된 국무부 팀을 유엔 총회에 파견해서 강력한 반대 운동을 펼쳤다. 미국 측 입장은 논의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가장 걱정한 것은 핵무기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이었다. 즉 핵무기가 불법적이며 비인도적인 무기로 국제적인 낙인을 받는 사태를 가장 두려워했다.

미국은 나토 회원국들의 협상 참여 자체를 막았다. 조약이 통과되면 핵무기가 불법화 될 것이며, 이는 핵무기를 주축으로는 나토의 군사전략을 망치게 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핵무기가 국제적으로 불법화 되는 사태를 두려워한 것이다.

미국은 겉으로는 핵무기철폐조약이 아무것도 아닌 척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극렬히 반대하는 것만 봐도 이 조약이 원래 목표하고자 하는 바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국이 우려하고 있는 모든 사항들은 사실 우리가 이루려는 진실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년은 NPT 50주년이자 최초의 원폭 투하 75주년인데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들은 계속 이 조약을 극렬하게 반대해갈 것이다. 미국 정부 역시 반대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 국무부가 인력도 적어지고 정확한 지침도 없는 상황이라 반대조차도 잘 조직화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핵무기 철폐 밤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담으로 유엔 회의에서 미국 쪽 인사들을 만나면 이들은 태연하게 대인지뢰 금지를 위한 건배를 제안하기도 한다. 미국은 대인지뢰 금지협약을 처음부터 반대했고 지금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당혹스럽다. 일관되지 않다.

프레시안 : 하지만 호주 정부 역시 핵무기철폐조약에는 등을 돌리고 있다. 게다가 호주 은행들은 핵무기 산업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핵무기철폐조약에 대한 호주 정부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호주 시민사회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러프 : 유감스럽게도 호주는 대표적인 '너구리(weasel)' 국가다. 이 말은 핵무기철폐조약 협상 과정에서 외교관들 사이에 널리 사용된 말인데 '책임 회피'를 뜻한다. 겉으로는 핵군축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외부의 핵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제3국의 핵우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핵우산 국가를 지원하는 국가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이중기준은 너구리 국가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며 또한 핵 확산을 조장한다.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핵문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 틸만 러프 ICAN 회장 ⓒ프레시안(최형락)


아마도 호주는 너구리 국가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나라일 것이다. 핵무기철폐조약 협상의 모든 과정에서 반대를 일삼았다. ICAN이 정보공개법에 의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호주 관리들은 자신들이 미국을 위해 “온갖 궂은 일”을 감당했다고 떠벌였다. 또한 조약이 통과되고 2주일도 되기 전에 조약 서명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국가 중의 하나다.

이는 이제까지 생물무기, 화학무기, 대인 지뢰, 집속탄 등 모든 비인도적 무기의 금지 조약에 참여해 왔던 이전 호주 정부와의 태도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사실 호주 정부는 화학무기 금지협약 성립을 주도한 국가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호주 정부가 핵무기 철폐조약에 서명해야 한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하고 있다.

첫째, 호주의 시민단체들과 광범위한 연합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83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데 모든 주요 환경단체를 비롯해, 일부 교회와 노동조합, 전문직 단체 등 다양한 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

둘째, 주요 야당인 노동당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노동당 의원의 80%가 핵무기철폐조약을 지지하며 호주의 가입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ICAN 의회 서약'에 참여했다. 또한 2018년 12월에 열린 노동당 전국대회에서는 노동당이 집권할 경우 핵무기철폐조약에 서명하고 비준하겠다는 당 강령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우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당의 각 지방 지부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셋째, 당파를 초월해 의회 차원의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핵문제는 현실 정치를 뛰어넘는 인도주의 문제이자 인간 안보 문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핵문제에 관한 최신 정보들을 호주 의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왜 호주가 핵무기철폐조약에 참여해야 하는지,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보고서를 발간해 모든 호주 의원들에게 보냈다.

넷째, ICAN은 호주에서 생겨난 단체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이것이 우리의 위상과 신뢰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 멜버른에서 캔버라까지 노벨 평화상 메달을 달고 자전거 행진을 벌였다.

다섯째, 호주의 지방정부들에 대해 'ICAN 도시 서약'을 채택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핵무기의 문제점과 핵무기철폐조약의 필요성을 알리는 한편 핵무기 제조회사에 대한 투자를 삼갈 것을 권고한다. 지금까지 시드니, 멜버른, 캔버라 등 23개 도시가 이 서약에 참여했다.

여섯째, 저명한 ICAN 홍보대사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영국이 호주에서 행한 핵실험으로 피해를 입은 호주 원주민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 피폭자의 생생한 체험담을 전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호주의 은행과 연금펀드 등에 대해 핵무기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프레시안 : 핵무기 철폐 운동과 관련해 한국의 시민사회에 조언할 게 있다면.

러프 : 나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IPPNW나 국제 적십자와 국제 적신월, 그리고 세계의사협회와 프란치스코 교황 등은 모든 국가들에 대해 핵무기철폐조약에 참여해 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을 몇 번 방문한 경험에 미루어보면 한국에서는 아직 핵무기철폐조약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나 토론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핵무기철폐조약은 모든 국가들이 핵무기 철폐를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의무로서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유일한 길이다. 한국이 이 조약에 참여한다면 지역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핵무기의 위험을 낮춤으로써 모든 한반도 주민의 진정한 안보에 기여할 것이다. 한반도는 현재 끔찍한 핵 위협에 직면해 있지 않은가.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의 긴장 상태는 역설적으로 핵군축이 시급한 과제임을 웅변한다. 현재의 긴장 상태가 불안정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핵무기의 실존적 위협이라는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만일 한국이 다른 동북아 국가들과 함께 핵무기철폐조약에 참여한다면 오랜 기간 갈등과 대결로 점철돼온 이 지역을 평화로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다.

후쿠시마 핵 발전소, 일본 정부가 제일 문제

프레시안 : 2011년 동일본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피해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비교해 어느 정도인가? 내년 도쿄 올림픽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어떻게 보고 있는가?

러프 : 체르노빌에 비하면 후쿠시마 쪽이 오염 물질의 규모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은 것이 문제다. 현재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경우 원자로의 상층부에 70%의 방사능 물질이 밀집돼 있고 그게 봉쇄되지 않는 상태다. 이 방사능은 매우 강한데 이걸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만약 또 다른 지진이나 쓰나미가 발생하면 이 물질들이 더 유출될 것이다. 심지어 바다로도 계속 오염물질이 나가게 될 것이다. 지표 오염 방사능 물질도 계속 이동 중이다. 최근에 태풍으로 오염토를 담아 놓은 용기가 유실되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부분은 일본 정부의 대응이다. 이들에게는 공중의 보건보다 재난 처리의 비용 감소가 우선순위인 것 같다. 이들은 사람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다. 일본 의회의 독립적인 조사 결론을 보면 이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분명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는 인간이 만든 '인재'이고 막을 수 있었는데 정부가 실패한 사례다.

▲ 지난 2011년 3월 12일, 사고 발생 하루 뒤에 상공에서 촬영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모습. ⓒAP=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일반인의 방사능 노출 기준은 연간 1밀리시버트다. 이게 위험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관리 차원에서 이러한 기준이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의 복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연간 20밀리 시버트를 제시하고 있다. 세계의 어떤 정부도 이 정도 높은 수준의 방사능 허용량을 채택한 적이 없다.

이건 특히 어린이나 임산부에게 중요한 문제다. 어린이가 그 정도의 노출이 계속 되면 질병에 걸릴 위험이 8~10배 높아진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데 실제 경기가 예정된 것도 방사능에 대한 오염지역이 많다. 라오스 대표팀 같은 경우는 가장 심하게 오염돼 있는 곳에 가서 전지훈련을 하기도 했다. 올림픽은 단기적이라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올림픽 팀 같은 경우는 몇 주 동안 훈련하거나 머무르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선수에게 가족이 있는 경우 아이가 갈 수도 있고 임신부도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야구나 소프트볼 같이 미야기 근처에서 이뤄지는 경기는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으며 성화 봉송도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국가의 팀들이 만약을 대비한 비상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 올림픽을 치르는 동안에 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대비 계획이 있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지금 올림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데 그러면 안 된다.각각의 올림픽 팀이 유사시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할지 대응 매뉴얼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도쿄를 잠시 방문하는 건 문제될 것 같지 않지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