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협력' 원한다는 미국, 실제론 '갈라치기'
2019.12.02 13:30:55
[안문석의 한반도 깊이보기] 미국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한일 관계
'Alignment Despite Antagonism'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워싱턴의 조지타운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빅터 차가 1999년에 내놓은 것이다. <적대적 제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 있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이 적대감을 바탕에 갖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하는 모습을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주요내용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이라는 동맹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한일 관계가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미국으로부터 방기(abandonment) 또는 연루(entrapment)를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끼는 정도가 한국과 일본에서 크게 다를 때 양국은 갈등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으로부터 방기 또는 연루를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비슷할 때는 한국과 일본이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어느 동맹이나 동맹정치(alliance politics)는 있게 마련이고, 서로 동맹 상대국이 버리지 않을까(방기), 동맹상대국의 불필요한 분쟁에 휩싸이지 않을까(연루) 걱정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한미동맹, 미일동맹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속에 방기, 연루가 수시로 관여해 한미, 미일관계를 규정한다. 그 연장선상에 한일 관계는 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라는 제3국과 각각 동맹을 맺고 있는 적대적 제휴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미국이라는 동맹국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서로의 관계가 영향받는 묘한 사이다. 그래서 한일 관계는 단순히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아니고 미국을 포함한 한미일관계의 하위관계라고까지 할 만하다.

북한이나 북미관계에 대한 빅터 차의 보수적인 인식은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하지만 미국 때문에 한일 관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고, 미국의 행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한국과 일본에서 큰 차이가 나타날 때 한일 관계가 악화된다는 얘기는 상당히 적실성 있어 보인다. 특히 최근의 상황을 면밀히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있다.

최근 미국 아시아 전략의 핵심은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일본, 호주, 인도를 협력의 제1파트너로 삼아 중국을 포위하려 하는 전략이다. 이들 제1파트너들이 형성하는 전선을 받쳐주는 제2전선은 한국과 타이완, 베트남, 싱가포르가 구성한다.

중국을 포위하는 전선을 형성하는 전략은 중국과 갈등을 낳게 마련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이 만들어내는 분쟁에 먼저 연루되어야 하는 세력은 당연히 제1파트너들이다. 제2전선 해당국이 느끼는 연루 우려와는 다른 차원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다른 층위에 있는 만큼 역시 연루에 대한 걱정도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방기에 대한 염려는 어떤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주일미군의 역할은 점점 커져 왔다. 중국에 대한 견제가 심화되는 만큼 미일동맹은 강화되고 주일미군, 일본 자위대의 역할은 더 강조되고 증대되어 왔다.

반면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심심치 않게 문제가 되어 왔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운동 기간에도 말했듯이 대부분의 병사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라고 말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에 대한 내심을 드러냈다.

얼마 전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길에 한국의 지소미아 중단 철회를 강조하면서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까지 내비치기도 했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 대해서는 방기의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방기 우려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도 일본에게는 300% 증액을 요구하면서 한국에게는 400%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과는 타협 가능성을 높이면서도 한국과는 '파탄 나도 좋다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이다. 호르무즈 해협 한국군 파견요청, 중거리핵전력(INF)조약 폐기에 따른 중거리탄도미사일 한국 배치 시사 등도 한편으론 '한국이 안 들어주면 한미 관계는 멀어질 거야'라는 미국의 방기 협박으로 읽히기도 한다.

지소미아 중단 철회 압박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국무부의 차관급 간부 셋이 한꺼번에 온 것도 모자라 합참의장, 국방장관까지 방한해 중단 철회를 요구했다. 역시 '이걸 안 들어주면 한미 협조, 한미일 협력 다 어려워진다'는 압박이었다. '방기 우려 증폭전략'이라 하겠다.

원인 제공자 일본에 대하서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철회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쪽을 택하지 않고, 일본보다는 한 단계 아래의 동맹 한국만 강박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미국의 요구대로 지소미아는 연장되었다.

1960년대 한일 관계 정상화 협상 당시에도 미국은 일본의 주장을 두둔하며 한국을 압박했다. 일본이 식민지배와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한국인들의 주장을 외면한 채 일본의 경제협력 방식의 청구권 문제 해결방안을 지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일 역사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뒤로 미뤄졌고, 일본과 미국이 원하던 방식으로 협상은 타결되었다.

지소미아 다음은 또 무엇일까? '위안부', 강제징용, 독도 등 큰 문제가 여전히 상존하는 만큼 한일 관계는 여전히 지뢰밭길이다. 미국은 항상 협력적인 한일 관계를 원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면서 실제 미국의 정책과 전략은 둘을 갈라 세우는 것이 많았다. 이제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고, 정면으로 말하고, 바꿀 것은 바꿔야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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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안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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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문석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요크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KBS 통일부·정치부·국제부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를 지냈습니다. 2012년부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북한의 대외관계', '동북아 국제관계'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통일외교 방안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국내외의 저명한 저널에 연구결과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