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동안 가슴에 숨겨뒀다. 내 말 들어준 것만도 고맙다”
2019.12.01 10:13:50
[인터뷰] 구자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세월호 유민아빠 김영오씨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속에는 지방 좌익과 우익 쌍방 간의 보복 학살도 많았지만,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등에 의해 자행된 양민 학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 차원에서 구금당하고 대규모로 학살된 국민보도연맹원 사건이 가장 참혹한 사례다. 전국적으로 23만~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계몽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국가의 이념적 잣대로 인해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이다.

구 자환 감독은 국가폭력이 저지른 이 같은 양민학살의 역사를 17년 동안 영상언어로 꾸준히 기록해오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다. <레드 툼:2015년 7월 개봉,제39회 서울독립영화제 수상작> <해원:2018년 5월 개봉> 등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긴 화제의 다큐 영화들이 모두 그의 손에서 빚어졌다.

구 감독은 최근 한국전쟁 당시 충청남도 태안에서 자행된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을 다룬 다큐영화 <태안> 촬영을 마치고 편집 작업 중이다. <태안>은 특히 세월호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대화하는 주연급 프리젠트로 캐스팅 돼 주목을 받고 있다.

프레시안이 구자환 감독과 김영오씨를 11월 29일 담양의 대치고개에 있는 허름한 주막집에서 만났다.



▲충남 태안지역의 양민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태안>에서 구자환 감독(왼쪽)과 주연급 프리젠트로 만난 세월호 유민아빠 김영오씨 ⓒ다큐사진작가 김주형


“내 자식에게도 말 못하고 숨겨왔다”

프레시안: <태안>은 어떤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가?

구자환: 한국전쟁 당시 태안군에서 발생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다. 69년 동안 묻혀졌던 얘기를 유족들의 증언을 통해 발굴하듯 캐냈다.

프레시안: 발굴하듯…증언을 끄집어내기가 힘들었나?

구자환: 유족들의 피해의식이 심각했다. 그 사건으로 가족 중 누군가가 희생됐다는 사실 조차 69년 동안 입밖에 내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숨겨온 이들도 있다. 부역자 가족이라는 시선이 여전히 두렵고 트라우마가 깊어 비극적인 기억들이 내면으로 깊이 숨어버렸다.

유골 발굴 현장에서도 남겨진 흔적들을 보고 가족임을 확인했음에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반공 이데오로기가 강요한 끔찍한 고통의 세월을 69년 동안 겪은 것이다.

“우리 아빠, 우리 오빠가 너무 억울하다. 영화로 만들어달라”

프레시안: 구 감독이 양민학살이라는 주제에 오래도록 매달린 까닭은?

구자환: ‘민중의 소리’ 기자생활을 하던 2004년 봄에 양민학살 유골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 고 마산을 갔다. 유족 얘기를 들으며 현장을 다녔는데 주검의 모습들이 너무 처참했 다.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간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시신을 파묻는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후 그곳 근처를 한번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누구에게 얘기하지도 못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유족 할머니들이 우리 아빠, 우리 오빠가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며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억울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억울한 침묵의 역사를 깨어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레드 툼>이다.

프레시안: 유민 아빠 김영호씨를 주연급 프리젠트로 캐스팅한 까닭은?

구자환: 광주에 있는 독립영화관에서 역시 보도연맹 학살을 다룬 <해원>을 상영했는데, 그곳 에서 영오씨를 만났다.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런 역사를 많은 이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 후 <태안>을 만들려고 후원 모금을 했는데 영오 씨가 돈을 보냈다. 보통은 후원자들에게 개인적인 감사 전화를 안하는데 영오씨에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제안을 했다. 제안을 하기 전에 조금 고민을 했다.

영오씨가 세월호 유민 아빠로 유명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다큐에서 유명인을 쓰지 않는다. 내 다큐 문법을 등장 배우의 유명세로 흐트러뜨리기 싫고, 또 유명인을 써서 뭔가를 노리는 듯 한 느낌을 주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영오씨 또한 국가폭력의 피해자나 다름이 없는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유족들의 아픈 얘기를 끄집어내고 공감의 장을 열어 가는데 꼭 맞는 인터뷰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17년여 동안 한국전쟁 전후 양민학살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는 구자환 감독ⓒ다큐사진작가 김주형


프레시안: 구 감독의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느낌은?

김영오: 많이 망설였다. 세월호 싸움하면서 오해도 많이 받고 욕도 많이 먹었다. 나를 출연시킨 방송국이 좌빨 언론으로 비난받는 것도 봤다. 내가 출연함으로써 구 감독이 턱없는 비난에 휩싸일 것도 같았고, 이 때문에 영화에 피해를 줄 것도 같아 구 감독과 폐친인 아내를 통해 처음엔 거절을 했다. 그러나 그 후 구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영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내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영화에 출연하면서 느낀 소회는? 

김영오: 세월호가 전복된 후 8일 후 유빈이를 품에 안았다. 그 8일이 너무 길었다. 1년 같았 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46일 단식했던 기억도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태안 학살사건 유족들이 69년 동안 참혹했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는 얘길 들으면서 그 고통이 실감났다.

유족들이 처음엔 대부분 인터뷰를 망설였다. 마음 열기가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이윽고 말문이 터지면 봇물이 터지듯 눈물을 쏟았다. 눈물을 흘리시며 이렇게 말씀들을 하셨다. 내 말 들어줘서 고맙다. 그동안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말을 묻지도, 말을 들어줄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가슴이 아팠다. 돌이켜보니 태안 유족들과 대화하며 내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기회가 됐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에 첫 출연한 김영오씨는 태안학살 유족들과의 대화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영화 출연의 소회를 밝혔다 ⓒ 다큐사진작가 김주형


“영화에 출연하며 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회가 됐다”

프레시안: 초짜 배우로 영화 출연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김영오: 구 감독으로부터 처음 기본 대본 받고 꼭 그대로 진행되는 줄 알았다. 대본 읽으며 밤새워 외우고 연습해서 촬영 현장에 갔는데, 다큐영화는 대본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 을 현장에 가서야 알았다. 결국은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야 하고, 또 그들이 하고싶은 얘기가 무엇인지를 알아내 끄집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구 감독이 나중엔 기본 대본도 잘 주지 않았다.

프레시안 : 구 감독이 보는 배우 김영오는?

구자환: 매우 성실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배우다. 자료수집도 철저히 하고 자신이 맡은 배역 을 충실히 하려고 준비를 많이 한다. 촬영 중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유족들의 대화 에 너무 깊이 빠져든다는 점이다. 한없이 듣기만 할 때도 있다. 대화 상대의 감정선을 건드리며 극적인 상황들을 인터뷰어가 이끌어내야 하는데 듣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이다. 착하고 겸손한 사람이어서 그렇다.

“양민학살 유족들 모두 고령자다. 마음이 초조하다”

프레시안: 구 감독의 다음 계획은? 

구자환: 경상북도 지역의 양민학살을 다뤄볼 계획인데, 언제 시작될지는 모르겠다. 제작비 문 제가 늘 발길을 잡는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는데 똑같은 주제로 흥행도 되지 않는 다큐 영화 찍는다고 다시 손 내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실은 <레드 툼>도 상영관에 가기까지 10년 걸렸다. 물론 마음은 초조하다. 지금 양민학살 희생자 유족들이 모두 80대 중반을 넘어섰다. 증언들을 지금 영상에 담지 않으면 영원히 역사의 살아 있는 기억이 소실 된다. 지금 생각은 제작은 못하더라도 꾸준히 기록이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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