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 카드, 되살릴 수 있다지만…
2019.11.22 20:48:59
일본 수출규제, 미국 외교 압박 '이중 난관' 부담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지소미아, GSOMIA)의 종료를 유보했다. 일본과 수출 규제 문제에 대한 대화를 재개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정부 설명인데,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는 사실상 일본 정부의 판단에 달려있는 사안이라 지소미아 종료라는 카드를 통해 한국 정부가 얻은 가시적 성과는 없다는 평가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소미아 종료를 6시간 앞둔 22일 오후 6시 브리핑을 통해 지소미아 종료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일 당국 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협의하는 동안 잠정적으로 효력을 정지시키겠다면서, 협의의 성과가 없을 경우 지소미아 연장 효력을 다시 발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가 일본 측의 3개 항목 수출 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제소 절차도 정지시키겠다고 밝혔다. 즉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효력을 정지하고 WTO 제소 절차를 중지하는 대신 일본과 수출 규제 문제를 협의하는 테이블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이에 대해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과 과장급에서 준비를 거쳐 국장급 대화를 실시할 것"이라며 "일본이 그동안 (수출 규제 협의에 대해) 소극적이었는데 이제는 당국 간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일본 측은 (한국에) 수출 규제하는 3개 품목과 관련, 개별 품목별로 한일 간 건전한 수출 실적 축적 및 한국 측의 적절한 수출관리 운용을 통해 재검토가 가능해진다고 발표했다"며 "수출 당국 간 대화를 포함해 방향성이 있는 과정이 시작된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지소미아를) 조건부로 종료했다"고 말해 수출 규제가 해제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 당국자는 "건전한 수출실적이라는 말은 일본 기업이 한국에 물품을 수출할 때 해당 물품이 제3국으로 흘러들어갔는지 등의 여부 등을 보고, 그런 문제 없이 수출이 되면 허가 실적이 축적된다는 의미"라며 "또 한국 측에도 일본으로부터 수출된 물품들이 잘 관리‧운영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럴 경우 (수출 규제) 재검토가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수출 기업이 계속 (위의)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아서 한국에 대한 수출 허가를 계속 받아 축적되면 신뢰성이 제고될 것이고, 3년 정도의 범위 내에서 포괄 허가를 받는 제도가 있는데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세 품목이 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일본은 강제 징용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수출 규제를 풀 수 없다는 연계전략이 있었다면, 우리가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를 연계하는 전략으로 맞받아쳤고 이번에 일본의 연계전략의 고리를 깼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강제징용과 수출규제의 연계전략이 계속 유지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지소미아라는 카드를 빼들었기 때문에 일본이 수출 규제와 관련한 대화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 해제 여부는 외교부 당국자가 스스로 설명한대로 전적으로 일본 정부의 판단에 달려있고 해제 시기 역시 마찬가지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도 수출 규제 해제 문제는 "일본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일본은 수출 규제 해제 문제에서 시간 끌기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 동원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사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별도 조치가 없는 한 일본 입장에서는 수출 규제를 해제할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일본이 한국 정부의 강제 동원 문제와 관련해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촉구하면서 시간 끌기 전술을 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 당국자는 "앞으로 마냥 이 상태로 가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돼서도 안된다"며 "수출 규제 문제에서 가시적 성과가 빨리 나와줘야 한다. 그것 없이 마냥 현 상태가 진행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WTO 제소 정지 및 지소미아 종료 유보 등을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 일본의 이른바 '시간 끌기' 작전에 대응하기 위한 보호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보호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미국의 국무부,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안보 및 대외 분야의 관료들이 여러 차례 직접적인 표현으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비판하며 결정 철회를 압박해 왔고, 결국 한국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수출 규제를 비롯해 강제 동원 문제 등 아무런 확답도 받지 못한 채 지소미아 카드를 내려놓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향후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해제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소미아 카드를 다시 꺼내는 것은 현재 외교적 지형에서는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통해 당초 목표했던 결과는 이루지 못한 채 한국의 외교력만 소진해버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일본과 수출 규제 협의뿐만 아니라 미국과 진행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난관이 예상되는데, 협상 카드를 치밀하게 준비하기는커녕 지소미아를 통해 외교적인 한계를 노정해버린 상황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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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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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