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 청년이 가져야 할 자원을 빼앗고 있다"
2019.11.26 10:10:01
[인터뷰] <경계인의 시선> 펴낸 김민섭 작가

사람은 선 자리가 바뀌면 과거에 느낀 부당함을 쉽게 잊는다. 김민섭은 선 자리가 어디든 과거에 겪었던 부당함을 잊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작가다.

데뷔작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은행나무 펴냄)에서 김 작가는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며 노동자도 학생도 아닌 자신의 자리를 고민하던 경험을 담았다. 강사 일을 그만두고 대리운전기사로 일하면서는 자신을 포함한 한국사회의 모두가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하며 사는 '대리인간'임을 깨닫고 <대리사회>(와이즈베리 펴냄)를 썼다. 이 같은 깨달음은 <훈의 시대>(와이즈 베리)에서 학교, 회사 등을 거치며 각자가 몸에 새긴 누군가의 욕망인 '훈'을 되돌아보고 '대리인간'이 아닌 주체가 되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지난 10월 출간된 <경계인의 시선>에서 김 작가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바꾸기 위한 또 다른 키워드로 청년으로 대표되는 '경계인'과 '연결'을 제시했다. 그런 그를 서울 망원 카페홈즈에서 만나 <경계인의 시선>(인물과사상사 펴냄)에서 주요하게 다룬 청년과 노동조합, 그리고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조국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 작가는 "한국사회의 기성세대가 30, 40대까지도 청년으로 규정하며 청년이 가져가야 할 자원을 빼앗고 있다"며,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자신은 청년이 아니다'라는 자기규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당사자들이 모이고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이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실마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20대의 분노에 대해 김 작가는 "기성세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20대들이 공정성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당연시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서 물려준 데 대해 미안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대별로 조국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 상황에 대해서는 "한국전쟁, IMF 등과 같은 서로의 세대적 경험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했다.


인터뷰의 말미, 김 작가는 청년세대에게 "지금 겪는 아픔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기록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서울 망원동 '카페홈즈'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민섭 작가. ⓒ김성헌


우리 시대의 대표적 경계인, 청년

프레시안 : 최근작인 <경계인의 시선>에서 쓴 "경계인"이라는 표현의 뜻과 주로 청년을 경계인으로 호명한 이유에 대해 말해달라.

김민섭 : 첫 책을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썼다. 제 위치가 경계에 있었다. 저 자신을 정규직 교수로도,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감각할 수 없는 경계에서 제가 몸담고 있던 대학의 균열, 문제점이 잘 보인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경계에 속하는 때가 있는데 선 위치가 바뀌면 그때 바라본 구조의 결함이나 균열, 잘못된 것을 금방 잊게 되는 것 같다. 그때 본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미화해서) 추억하면서 정당화하게 된다. '그땐 그랬지', '내가 어렸지', '라떼는 말이야' 식으로 추억하게 되면 자신이 보았던 균열을 다음 세대에 강요하게 된다.

그런데 선 자리가 경계에서 주변부로 바뀌어도 사유하는 개인이라면 경계인의 시선을 유지할 수는 있는 것 같다. 그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청년 세대가 이 시대의 대표적인 경계인이라는 생각도 했다. 청년일 때 누구나 부당함이나, 불공정함 같은 걸 느낀다. 또, '우리 사회가 청년을 너무 오래 경계에 두는 것 아닌가. 거기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했다.


프레시안 : 청년을 경계에 오래 둔다는 이야기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김민섭 : 청년과 기성세대는 헤게모니를 갖기 위해 대립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데 지금처럼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에게 완벽하게 패배한 일은 역사적으로 없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생긴 문제 중 하나라고 보는데, 사람들이 83년생인 저한테도 청년이라고 한다. 민망하고 부끄럽다. 길에서 만나는 20대가 청년이어야지 제가 청년이면 안 된다. 지금의 청년에게 발화할 수 있는 지면이 있나 생각해보면 얼마 없다. 30, 40대에게 청년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제한적으로 발화할 수 있게 한다. 그러면서 기성세대가 '영포티(Young 40)', '마음만은 청년이다' 이런 수사를 덧입히면서 청년으로 남고 싶어 하고 청년이 가져야 할 자원을 가져가고 있는 것 같다. 3포세대, N포세대 같은 어려움도 이런 상황에서 심화되는 것 같다.


기성세대가 내가 청년이 아니라는 자기규정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내가 청년이라는 경계를 넘어 온 세대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자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 : 청년들이 치고 나가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민섭 : 대학에서의 제 경험을 이야기하면, 교수들이 정년퇴직하고 나서도 강의를 한다. 또, 교수들은 방학 중에 월급을 받는데도 계절학기 수업을 한다. 시간강사들은 방학 때 월급이 안 나오기 때문에 계절학기 수업을 하면 생계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그래도 시간강사들이 교수한테 뭐라고 하기는 힘들다. 실제로는 '교수님 열정에 감탄했어요.', '후학 양성을 위해 힘쓰시네요.' 이런 말들을 하게 된다. 결국 가진 걸 내려놓지 않는 기성세대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청년을 비롯한 경계인에게 다가가려면


프레시안 : <경계인의 시선>에서 책의 1/3 분량을 대학원생노동조합에 할애했다. 청년을 비롯한 경계인에게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김민섭 : 대학에 있을 때 노동조합이 있는지 몰랐다. 지금은 대학에서 몇 년 동안 노동하면서도 노동조합이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게 부끄럽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가입할 용기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또 부끄럽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시간강사일 때 누가 내 삶을 바꿔주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 일은 논문을 잘 쓰는 것이고, 사회, 국가, 선배, 교수들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사자가 문제를 파악하고 바꾸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바꿔주지 않는다. 자신을 당사자로 인식하고, 문제 역시 당사자가 풀어나가야 한다.

프레시안 : 역으로 노동조합이 청년과 같은 경계인에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민섭 : 경계인의 '연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대학에 있을 때 선배들이 연대라는 말을 썼다. 같은 시간에 같은 깃발 아래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구호를 외치는 걸 뜻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아무도 연대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요즘 청년들이 연대하지 않는 건 아닌 것 같다. 대신 제가 연결이라고 부르는 방식에 더 익숙한 것 같다.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얇은 끈으로 연결되어 평소에는 모르지만 필요할 때 잡아당기면 협력할 수 있는. 그 끈의 하나가 노동조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대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연대부터 만들려다 보면 운동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도 먼저 그 느슨한 연결을 만들고 확장하면 좋지 않을까.


▲ 김민섭 작가. ⓒ김성헌


둘로 갈라진 광장, 서로의 세대적 경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책을 보면, 청년 세대를 많이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조국 사태를 대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김민섭 : 20대가 조국 사태를 보고 가진 분노가 생각보다 컸다. 개인적으로는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의 아들 병역 의혹이 불거졌을 때가 오버랩됐다. 당시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분노했다. 20대들이 지금 가진 분노가 비슷한 것 같다. '간신히 올라왔는데, 누구는 아버지 때문에 쉽게 명문대에 입학하나'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20대를 보고 공정성에 매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당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면 기꺼이 참여한다. 경쟁 기준의 정의로움과 부당함은 문제 삼지 않는다'라는 식이다. 그런데 그런 구조를 만든 건 우리다. '20대의 공정성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봐야하지 않나. 기성세대가 미안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너무 염치가 없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강의하러 가면, 20대 청년들이 '자기소개서를 80장 썼는데 면접까지 간 게 하나도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된다. 제가 구조를 만들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피해자든 무엇이든 공고해지는 데 보탬을 준 사람이기는 하다. 청년일 때 구조를 바꾸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 기성세대가 염치가 있다면, 청년세대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프레시안 : 그렇다면 조국 사태에 대한 다른 세대의 태도를 보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나?

김민섭 : 60대는 광화문으로 많이 가시고, 4, 50대는 서초동으로 많이 가신 것 같다. 제 주변의 30대는 어디로도 잘 안 나갔던 것 같다. '내가 조국이다'라고 말하지도 않고, 조국에게 크게 분노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런 태도를 보이는 나의 세대와 몸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대한민국의 어떤 현대사적 사건이 영향을 줬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다음에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다.

프레시안 : 말씀하셨듯 조국 사태 당시 광장이 두 개로 갈라졌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했나.

김민섭 : 서로의 세대적 경험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우리 세대는 2002년 월드컵 응원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전까지 신촌은 (최루가스 때문에) 손수건을 챙겨야 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는 장면이 익숙한 곳이었다. 그런데 2002년 월드컵 응원을 거치면서 광장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간절하게 바랄 수 있고, 재미있게 놀 수도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꼭 응원 때문에 대표팀이 4강에 간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모이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느낌도 갖게 됐다. IMF도 우리 세대에 큰 영향을 줬다. 또 누군가는 세월호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는 한국전쟁이 그런 경험일 것이다. 한국전쟁은 이후 세대가 겪은 어떤 경험보다도 엄청난 경험이었을 거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의 몸에 새겨진 언어는 무엇일까. 이를 이용하는 세력은 누구이고 어떤 의도를 갖고 있나' 같은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각각의 세대가 자신의 세대를 기록하고, 서로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세대의 세대적 경험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느낀 것도 서로의 세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지금의 아픔을 정확히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프레시안 : 시간강사 일을 그만두고 대리운전 일을 했었는데, 요새도 하고 있나.


김민섭 : <대리사회>를 쓰고 한동안 하다가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에 육아까지 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 언젠가부터 간헐적으로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가장 최근은 지난주였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 그 팀을 응원하고 잠실 야구장에서 콜을 켜니 뜨더라. 이제는 필요할 때 이동의 수단으로도 쓰게 됐다.(웃음)


프레시안 : 작년 말에 '정미소'라는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어떤 작가를 발굴하고 어떤 책을 내고 싶나.

김민섭 : 2년 전에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이라는 책을 기획했다.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가 많다고 생각했다.글을 쓰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타인의 책을 기획하는 것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6권의 책을 냈는데, 계속 소진되어 간다.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은 했던 얘기 또 하네"하기도 한다. 개인은 소진될 수밖에 없는데 소진되고도 계속 쓰면 안 좋은 모습이 될 것 같다. 쓰지 못할 글을 쓰기보다는 젊은 작가를 발굴해 쓰고 싶은 걸 쓰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첫 책은 고등학생 작가의 책이었다. 독서실에서 300편의 시와 일기, 에세이를 썼는데 글이 너무 좋았다. 나는 고등학생 때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생각만 했는데, 그분은 교사, 학부모, 학생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서 공부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저도 읽으면서 아이 교육에 대한 생각을 얻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책은 성 소수자 군인의 책이었다. 2년 동안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섬세한 수기를 남겼다.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개인이 군대라는 구조 안에서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국가는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이 기록되어 있다.

프레시안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민섭 : 많은 사람이 경계에 있을 때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문제를 중심부로 나아가면서 '그땐 그랬지', '내가 어렸었지'하는 식으로 추억하게 된다. 추억하면 자신이 보았던 균열을 외면하고, 다음 세대에게 강요하게 된다. 그런 추억은 절대 아름답지 않다.

대신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중심부에 갔을 때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경계에 있는 수만 명이 모여야 바꿀 수 있는 걸 중심부에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바꾸기도 한다.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아픔을 기억하고 기록하면 좋겠다. 지금의 아픔을 추억하지 않게. 나중에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지 않게.


* 김민섭 작가와의 인터뷰는 보건의료노조가 발행하는 건강정보지 <건강나눔> 2019년 가을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 김민섭 작가.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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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기자
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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