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전태일 놓아주고, 새로운 전태일들에 귀기울이자
2019.11.08 11:17:50
[전태일과 청소년 기후·上]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마음을 감동시키는

1963년 6월 11일. 지금은 사라진 국가인 남베트남의 유명한 불교 지도자 꽝둑(Thich Quang Duc) 스님이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분신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남베트남 독재자였던 가톨릭 신자 응오딘지엠은 불교의 스님들이 반정부적이라는 이유로 절을 폭파하고 석가탄신일 봉축 행사마저 금지했습니다. 꽝둑 스님은 이 같은 만행에 대한 답변을 분신으로 표현했습니다.

꽝둑 스님은 가부좌를 튼 채 참선하면서 뜨거운 화염 속에서 살이 타들어 가는데도 표정 하나 일그러짐 없이 조용히 소신공양(燒身供養)을 마쳤습니다. 더구나 마지막에는 앞으로 넘어지지 않고 뒤로 넘어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모습은 전 세계 인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스님의 분신에 대해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지엠의 제수 마담 누는 땡중의 바비큐 쇼라고 조롱해서 베트남과 미국 인민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미국에는 반전의 물결이 거세게 타올랐고 케네디 정부는 얼마 후 월남 군부를 사주해 쿠데타로 지엠을 실각시켜버리고 아예 죽여 버립니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틱낫한 스님도 꽝둑 스님의 제자로서 불교운동의 젊은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틱낫한은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963년 베트남 스님들의 소신공양은 서구 기독교의 도덕 관념이 이해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좀 다릅니다. 언론들은 그때 자살이라고 했지만, 그러나 그 본질을 살펴보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항행위도 아닙니다. 분신 전에 남긴 유서에서 그 스님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압제자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인권오름> 207호 중)

▲ <경향신문> 1970년 11월 14일 자 '혹사 등 항의…분신'.


전태일, 잠을 깨운 천둥 번개의 종소리

1970년 11월 13일 한반도의 남쪽인 서울의 청계천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기독교 신자인 어느 젊은 노동자가 분신을 감행하였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스물두 살의 청년 전태일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불구덩이 속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햇빛을!", "일요일은 쉬게 하라!"라고 절규하며 죽어갔습니다.

꽝둑 스님과 마찬가지로 전태일은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저항으로 분신하지 않았습니다. 자살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돈 벌어다 주는 자동 기계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존엄한 인간임을 사람들에게 선언하고 일깨우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불꽃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헌법과 근로기준법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휴지조각인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온몸으로 들이받아 천둥 벼락의 종소리를 울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꽝둑 스님과 똑같이 자신을 공양물로 바친 자비행의 실천이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재건’ 이후 최초인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은 한국 사회를 엄청난 충격의 회오리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는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건국과 재건의 개념을 분명히 못 박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한국의 노동자들은 긴긴 노예 상태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켤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노동운동의 지평을 중심으로 재정립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의 마음도 변했습니다


전태일 이후 수많은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이 전태일을 기리며 한국 사회를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서남동, 문익환, 조영래, 그리고 이소선.

수많은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분신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종태, 박종만, 홍기일, 박영진, 변형진, 표정두, 황보영국, 이석구, 김수배, 박응수, 이대건, 김장수, 최윤범, 장용훈, 성완희.

그러나 전태일의 어머니 고 이소선은 기회만 있으면 제발 이제는 죽지 말고 죽을 각오로 살아서 억압과 착취에 맞서 끈질기게 싸우자고 호소하고 다녔습니다.

전태일 사후 49년, 2020년이면 반세기.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뀌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태일이란 이름 자체가 충격과 전율이었던 1970년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세상은 변했고 분신이란 행동의 의미 자체도 변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행동 또한 전혀 다르게 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제 분신은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때문에 아무리 절박하고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분신을 선택하는 것은 이제 중단되어야 합니다. 분신은 이제 전태일의 뒤를 따르는 자비행의 실천이 전혀 아닙니다. 폭력과 폭압, 불의와 불평등에 대한 답변으로 분신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폭력일 뿐입니다.

폭력이 아닌 비폭력 평화가 21세기의 억압과 착취에 대한 답변입니다. 화염병이 아닌 대화와 소통의 집회 시위가 불의와 부정에 대한 답변입니다. 나홀로식의 결단 대신 흥겨운 다수의 축제가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공감을 얻는 대응 행동입니다.

2016년 겨울 비폭력 촛불시위가 보여주었듯 21세기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의 문제 해결 방식입니다.

전태일, 이제 그만 이승에서 놓아주자

무엇보다도 지금은 열 서너 살 어린 여공의 하루 일당이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던 1970년이 아닙니다.

당시 '시다'들이 하루 13시간~16시간씩 꼬박 일하고 받는 한 달 월급은 1800원~3000원. 시내버스 차비 15원. 신문 한 부 값 20원. 전태일이 공부하기 위해 산 연합 중고등 통신강의록 <중학 1> 책 한 권 값 150원.

전태일은 버스값 30원을 몽땅 털어 1원짜리 풀빵 30개를 사서 점심을 굶는 나이 어린 시다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청계천에서 지금의 쌍문동까지 통금이 있는 깜깜한 밤길을 터덜터덜 걸어서 갔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집마다 차 한 대씩은 기본입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일상생활은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청계천의 어린 시다 대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주노동자들이 무려 100만 명이 넘습니다. 이주노동자를 포함 체류 외국인이 무려 240만 명이나 됩니다.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에게 한국의 최저임금은 모국의 최고임금 수준입니다.

21세기 오늘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전태일도 서남동도 문익환도 조영래도 이소선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숨을 쉬며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장삼이사 인민들입니다. 전태일과 똑같이 스물두 살의 고뇌에 찬 결단을 준비하는 청년들입니다. 전태일과 똑같이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과 자비의 행동을 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입니다.

전태일과 문익환, 조영래와 이소선은 이제 역사일 뿐입니다.

저승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게 걸핏하면 대리운전 기사 부르듯 습관처럼 전태일을 호출하고 소환하고 불러내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예의도 아닙니다. 심지어 '토착왜구'라고 비판받는 자까지 전태일을 잠 못 들게 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 <동아일보> 10월 11일 자 ''위안부 매춘' 발언 논란 류석춘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 또 막말')

그것은 일종의 비겁한 책임 회피이자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의 과제는 지금, 현재, 여기, 우리들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마땅합니다.

'나'와 우리는 전태일이 아니라 그냥 '나'와 우리로서 행동하고, '나'와 우리로서 21세기 한국을 살아야 하고 그리고 실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전태일을 의인 열사로 기억하고 그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중국의 비공식 풀뿌리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비공식으로 번역된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있기도 합니다. 동남아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전태일 평전과 전태일이 널리 회자되고 본받아야 할 노동자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 오늘의 한국 문제 해결은 오늘의 한국인들 몫입니다.

▲ 지난 4월 30일 개관한 '청년 전태일 기념관'에 전시된 전태일의 수기. ⓒ연합뉴스


최악의 세습 불평등, 대한민국을 해체시키고 맙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최악의 문제는 곪을 대로 곪아 터진 불평등 문제입니다. 그것도 대를 이어 세습되는 불평등 문제입니다. 거의 회복 불가능한 양극화 현상입니다. 결코 1970년의 절대 빈곤 문제가 아닙니다.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6%를 소유하고 소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위 90% 가구소득은 1997년 이후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조국 사태에서 수많은 청년들과 일반 인민들이 분노한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른바 진보 엘리트 인사들조차 부를 세습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범들이라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의 이른바 진보 성향 장관 후보자들 다수가 강남에서 호위호식하면서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해 쌓이고 쌓인 분노가 조국 사태에서 폭발한 것입니다.

세습 불평등과 양극화를 낳은 체제는 이제 혁신하고 개혁할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야말로 체제 전환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체제 전환은 혁명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지금의 세습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는 기후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쓰나미 앞에서의 타이타닉호 내 상층과 하층 문제입니다.

전혀 새로운 체제 전환을 모색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공멸은 필연입니다. 때문에 더더욱 사고방식과 행동의 전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과감하게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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