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자산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의 궤변
2019.11.04 08:30:19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文정부식' 4차산업혁명,19세기로 돌아가자?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내 인생을 위해서 한 거다. 스타트업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를 뺏는 거다."(11월 1일 자 <중앙일보> "내일 당장 망할지 모르는데 벤처가 어떻게 52시간 지키나" 중)

문재인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장병규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주 100시간 휴일 없이 일한다고 치면 하루 14시간이 넘는다. 2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 100시간, 일 14시간 일했다는 주장이다. 이게 사실이면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는데, 지금은 남들 밑에서 하루 몇 시간 일하는지 궁금하다.

1조 원대 자산가 장병규

장병규가 누구인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1973년 대구 태생으로 KAIST 전산학과를 나와 게임개발사와 벤처투자사를 거쳐 스타트업을 한 "성공한 1세대 벤처기업인"으로 "소탈하고 수평적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설명이 나온다.

<조선일보>에는 장병규가 "포브스 선정 2019 한국 부자 순위 47위"라는 기사가 나온다. "자산 8억9000만 달러(1조 513억 원)"란 설명도 달렸다.

장병규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는 왜 다른가"라는 <중앙일보>의 질문에 "생산 수단을 본인이 갖고 있다는 게 큰 차이다. 자동차 공장 근로자는 컨베이어 벨트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4차혁명에서는 생산 수단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머리에 들어 있는 지식과 역량, 경험, 스킬이 중요하다"고 물정 모르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1조 원 넘는 자산과 "생산 수단"을 가진 장병규는 잘 모르겠지만, 자동차 공장 근로자나 장병규 회사의 프로그램 개발 직원이나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일개 노동자에 불과하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기) 머리에 들어있는 지식과 역량, 경험, 스킬"을 사용한 결과물의 전유 여부다. 자본가는 그 결과물을 자신이 가져갈 수 있지만, 노동자는 그 결과물을 가져갈 수 없다.

장병규 회사의 직원이 아무리 뛰어난 지식과 역량, 경험, 스킬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결과물의 분배는 회사가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이는 소유주 장병규가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장병규가 한국 부자 순위 47위에 오르는 기적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 장병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 ⓒ연합뉴스


병역특례자의 '야전침대' 타령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장시간 착취 체제에 기대어 부를 축적한 때문일까. 장병규는 <중앙일보>에 본심을 틀어놓는다. "우리를 외국과 자꾸 비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한국은 자원도 없고 대외 개방성이 굉장히 높다"면서 "총 52시간을 맞추는 법안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내심을 드러낸다.

"중국은 200~300명이 야전침대 놓고 주 2교대 24시간 개발해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낸다. 한국에서 이렇게 하면 불법이다. 이러니 경쟁이 안 된다. 그만큼 한국은 일자리가 없어진 거다. 과연 누구를 위한 52시간제 정책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세 산업혁명 당시 잉글랜드나 20세기 초 일제시대의 방직 공장을 연상시키는 노동 착취 체제를 장병규는 "혁신 생태계"라 미화한다. 병역특례 덕분에 일반 병사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수준의 '금수저' 군 복무를 한 그가 "야전침대" 운운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다.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과 투자"

유엔 산하기관인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발간한 '일의 미래 글로벌 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Global Commission on the Future of Work)>'에서 전례 없는 변혁의 시대를 맞아 "인간의 얼굴을 한 투자"를 강조한다.

보고서는 "노동자의 기본권, 적정한 생활 임금 보장, 일하는 시간의 제한,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환경, 전 생애에 걸친 사회보장, 숙련 향상을 위한 평생 교육, 좋은 일자리"를 증진할 수 있도록 "기술 변화를 관리할 것(managing technological change)"을 권고한다.

보고서는 인공지능, 자동화, 로봇의 확산이 (장병규 같은) 소수 엘리트의 수중으로 부가 집중되는 현상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기술 혁신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그들의 선택권을 넓히며, 남녀 격차를 줄이고, 글로벌 불평등이 초래한 문제들을 치유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세기에 이미 '10시간' 노동법 제정


1840년대 잉글랜드에서는 '10시간 운동(the 10-Hour Movement)'이 폭발했다. 일하는 시간을 하루 10시간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운동으로 1850년대에는 미국으로 퍼졌다. 그 결과 19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하루 10시간 법이 만들어지고 미국의 가장 산업화된 북동부 주에서는 11시간제가 도입되었다.

ILO는 정확히 100년 전인 1919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창립 총회를 열고 최초의 국제 노동법인 제1호 협약을 채택했다. 협약은 하루 8시간 주 48시간을 못 박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임시 수도 부산에서 근로기준법 제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당시에도 장병규의 궤변처럼 일하고 싶어 하는 노동자들은 시간 제한 없이 일하도록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늘어놓는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이런 후안무치한 주장에 대해 영등포갑 출신의 조광섭 의원(1901~1970)은 "노무자들은 시간의 제한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 즉 얼마든지 24시간 한잠 자지 않더라도 그냥 계속 일할 것을 원하는 것같이 말씀하는 데 그것은 대단한 오해"라고 지적하면서 "일하는 분들한테 시간의 제한이 없다고 본다면 이것은 근로기준법을 만드는 자체에 생각할 여지가 있는 문제"라고 비판하였다.

주 40시간 협약까지 비준한 대한민국 정부

갑론을박을 거쳐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막을 내린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하루 8시간 주 48시간을 선언했지만, 이 법 조항은 유명무실했다. 1970년 11월 스물두 살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제 몸을 불살랐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 노태우 정권에서 주 48시간은 주 44시간이 되고, 2004년 노무현 정권에서 주 40시간이 되었다. 2011년 이명박 정권은 주 40시간을 명시한 ILO협약 47호까지 비준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를 위한 '법의 지배(the rule of law)'는 존재한 적이 없다. 근로기준법을 깔아뭉갠 관료들의 행정해석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지 3년이 다 된 오늘까지도 노동자를 주 68시간 착취해도 합법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엘리트들이 헌법과 법령을 무시한 현행의 주 68시간 착취 체제를 주 52시간으로 개선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정부 정책에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병규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현행법에서도 주 100시간 착취는 합법이다


사실 주 52시간이 전면 시행되더라도 주 68시간 넘게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회사를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쪼개는 것이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30%가 넘는 570만 명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이런 데서는 장병규가 꿈꾸는 주 100시간 일을 시켜도 괜찮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면제받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술력과 자금으로 업종을 전환해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 운송 관련 서비스업, 보건업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이들 업종은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특례업종'으로 지정된 덕분에 노동시간 관련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장병규의 1조 원은 깨끗할까


글을 마치며 의문이 하나 든다. 주 100시간 일한 것은 20대의 2년뿐이었다는 장병규의 1조 원 재산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조국 일가 털 듯 턴다면 드러날 그의 합법적 재산은 얼마나 될까.

독자들에게도 질문을 하나 던진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00년 전에 제정한 사상 첫 국제 노동법으로 하루 8시간 주 48시간을 명시한 1호 협약을 대한민국 정부는 과연 비준하고 있을까?

100년 전인 1919년은 민족 해방을 향한 3.1운동의 열기를 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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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