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연구하는 경제학은 어디에?
2019.10.30 14:17:34
[최재천의 책갈피]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빌딩 외벽에서 유리창 물청소를 하는 노동자가 있다. 그들의 눈엔 빌딩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하지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눈엔 창밖 노동자는 관심 밖이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다.

경제학 분야에서 '빈곤의 경제학(economics of poverty)'은 '경제학의 빈곤 현상(poor economics)'을 보인다. 많은 경제학자가 가진 것이 적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현실에 흥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실은 세계적인 빈곤 문제 해결 투쟁을 크게 약화시킨다. 올 노벨경제학상은 '빈곤의 경제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를 두고 어느 언론은 '의식주가 인간과 경제학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고 평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평가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한사람인 MIT 경제학 교수 에스테르 뒤플로는 "여섯 살 무렵,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테레사 수녀의 이야기를 만화책으로 읽었다. 테레사 수녀가 살던 인도의 캘커타(현 지명은 콜카타)는 1인당 거주 면적이 0.9제곱미터에 불과할 만큼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였다. 혹시 그곳은 거대한 바둑판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도시의 바닥에 가로 30센티미터, 세로 30센티미터의 격자가 그려져 있고 격자마다 사람 모양의 바둑알이 하나씩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에스테르는 이런 상상을 하며 자신이 그 도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세월이 흘러 어느 덧 스물두 살이 된 에스테르는 MIT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중에 콜카타로 방문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택시 안에서 아무리 바깥 풍경을 둘러보아도 만화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돼 있던 가난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도 있고 풀도 있었지만 정작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노벨상을 공동수상한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의 공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원제 poor economics)>는 2012년에 번역됐다. 늘 그러하듯 노벨상은 잠든 주제를 일깨운다. 독서의 한 계기가 된다. 책은 경제학의 실험, 실험경제학을 잘 설명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케냐의 경우다.

학교에서 2년간 구충제를 지급받아 복용한 아이들이 1년간 구충제를 복용한 아이들(1인당 1년분 구충제 복용비용은 구매력 환산 1.36달러다)보다 어른이 되었을 때 연소득이 20퍼센트 더 많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밥과 국의 학문이어야 한다. 

▲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이순희 옮김) ⓒ생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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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