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되지 못한 역사, 진짜 '서울'의 역사
2019.10.22 18:05:26
[프레시안books] <갈등도시> 문헌학자의 눈으로 읽는 서울
'슈퍼마켓'의 개념이 들어온 건 아마도 개화기 이후일 것이다.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슈퍼마켓은 130여개 표기법으로 존재했다. '수퍼', '마켓트', '마켙', '마-트' 등. 중간에 있는 장음 표시는 식민지 시절의 흔적일 테다. 푸른 슬레이트 지붕과 낡은 흰 간판에 '수퍼마켙'이라 써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벽에는 빛바랜 옛날 담배공사 스티커가 붙어있고 이젠 철거된 공중전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주인은 그 동네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노부부다. 외관으로 살펴보건대 가게는 60년대 즈음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슈퍼를 운영했으니 노부부는 그때만 해도 중산층에 속했을 것이다. 간판의 크기를 보니 지금은 아니지만 그 동네는 꽤나 번화가였을 것 같다. 외관이나 간판으로 당시의 시대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것, 이런 걸 ‘도시화석’이라고 한다.

<갈등 도시>(열린책들 펴냄)은 서울 곳곳의 도시화석을 찾아 서울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문헌학자인 저자 김시덕 교수의 시선 그대로다. 문헌학은 옛 문헌의 내용, 글씨 체, 종이의 재질과 잉크 등을 살피며 시대상을 그리는 학문이다. 저자는 문헌을 연구하다보면 중요한 것은 종종 뒷면에 있을 때가 있다고 한다. 책을 싸고 있는 종이, 이면지로 쓰인 연습장에 처음 적힌 내용 같은 것들이다. 당시에는 쓸모없다 여겨진 것이지만 현재는 더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저자가 서울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렇다. 우리가 아는 서울이 아니라 그 뒤편을 주목한다. 궁궐과 기와로 덮인 한옥이 아니라 '불량 주택', '낙후 지역'이라 불리며 철거되고 재개발되고 있는 곳을 저자는 '진짜 서울의 역사'라고 한다.

<갈등 도시>는 지난해 펴낸 <서울 선언>의 후속편이다. 전작에서도 저자는 조선 양반 문화가 아닌 근현대 서민 문화를 중심에 두고 서울을 답사했다. 조선 시대 한양에서 식민지 시대의 경성을 거쳐 현재 서울시의 경계가 만들어진 과정을 살폈다.

신작 <갈등 도시>에서는 범위를 조금 더 확장했다. 서울이 아니라 '대서울'이다. 확장된 서울에서 그 주변 1,2기 신도시를 포함한다. 부동산 업계에서 '서울 세력권'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비슷한데 서울시의 정치·경제·문화적 영향력이 주변 도시들로 확산되어 서울시와 주변 도시들이 만든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말한다. 저자는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이 주된 생활 권역인 사람들이 잠을 경기도에서 잔다는 이유로 서울의 역사에서 배제되서는 안 된다"며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행정 구역뿐 아니라 서울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서울 근교 경기도 지역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서울의 역사를 "'특별시'를 만들기 위한 배제와 추방의 역사"라고 정의한다. 현재의 서울은 서울이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된다 여겨진 수많은 시설과 사람들을 서울 밖으로 밀어내 만들어져 왔다. 서울 곳곳에 있던 빈민촌과 그 안에 살던 10만여 명을 지금의 성남 지역에 '트럭에 실어 떨어뜨려 놨고', 서울시에서 사용할 화장장을 경기도 고양시에 세우는 등 혐오시설을 외곽으로 밀어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 지대에 빈민촌과 화장터, 사이비 종교 시설, 군부대가 몰려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배제와 추방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쳐서 도시 내 갈등, 도시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개발과 재건축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이해충돌이 발생한다. 잘 사는 곳과 못 사는 곳을 가르는 지역 간 반목도 심각하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갈등 도시>다. 

저자는 서울의 배제와 추방이 나아가 문화와 역사도 지워왔다고 말한다. 서민들, 시민들의 흔적은 지워지고 그 자리에는 조선 시대의 왕과 사대부의 문화가 다시 소환된다. '역사 미화'인 셈이다. 일례로, 현재의 용인시 기흥구에는 한센인 정착촌인 '동진원'이 있었다. 이후 이곳은 가구단지를 거쳐 신도시가 됐고 '동진원'이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대신 공원 한가운데 세종대왕을 기리는 비석이 섰다. 저자는 이를 두고 "근현대의 가난한 자, 약자는 지워내고 봉건 시대의 지배층을 끊임없이 소환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옛 서울'이 어떤 것인지 부터 시작해야 한다. '옛 서울'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인사동과 북촌의 고즈넉한 한옥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한옥과 기와집이 줄지어 있고 한가운데에는 웅장한 궁궐이 있다. 저자는 전작에서부터 이런 인식에 '만들어진 전통을 향유하는 중산층의 세계관'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저자는 이를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재창조된 조선 시대 풍 현대 건축이나 도시 공간"이라고 평가절하 하면서 그보다 19세기 말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건물과 공간에 주목한다. 저자는 "대서울의 대부분은 이런 곳이 이루고 있다"며 "지저분하다고 부수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 대서울 다운 모습이라 생각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예시로 들며 주목하는 장소가 바로 을지로다. 을지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기, 20세기 후기와 21세기 초에 만들어진 건물이 '시간의 지층'을 이루고 있는 공간이다. 20세기 전기에 만들어진 개량 한옥과 일식 가옥. 그리고 그 사이에 솟아 있는 20세기 후기의 현대 한국 초기 건물들의 풍경이 을지로의 모습이다. 식민지 시대 일본인의 거주지이자 상업 공간이었다가 광복 후에는 월남인들이 정착해 상공업 활동을 전개한 주요 무대였던 을지로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쇠퇴했던 을지로는 최근 '힙지로'라 불리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톡톡히 겪고 있다.

저자는 특히 을지로3가를 두고 "저에겐 발견의 장소"라며 "서울의 역사가 가장 층층이 쌓여 있는 곳"이라고 평가한다. 골목길은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런 곳이 근대적인 도시로 변모한 것이 19세기 말에 일본인들이 살기 시작하면서다.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은 이 때의 흔적이다.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의 흔적은 몇몇 표지판으로 남아 있다. 을지로3가역 동쪽에는 일본식 적산가옥이 남아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폭격의 위험을 피하려고 목조 주택 단지를 철거한 공간에 오늘날의 세운 상가 등이 들어섰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에 매우 비판적이다. 조선 시대 건물을 복원한다며 근현대 건물을 철거하는 것에는 더욱 비판의 날을 세운다.

"이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무능하면서도 조건 내부 피지배층에 대해서는 가혹했던 조선 지배층과 결별하려 했던 20세기 조선 시민들의 열망을 배신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 왕조가 망한 지 100년이 지나도록 왕족과 양반의 역사와 문화를 서울과 한국을 대표하는 존재로 가르치는가. 조선 시대 내내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노비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진주 시민들이 '형평운동 기념탑'을 만들어 진주성 안에 세웠으나 현재 이 탑은 다시 진주성 밖에 밀려났다. 한국은 민주공화국이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평등하지 못하다. 조선의 왕궁과 양반들의 기와집은 보존되는 반면 평민과 시민들의 공간이던 을지로는 철거되고 노비 해방운동을 기념해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만든 형평운동 기념탑은 쫓겨난다"

<갈등 도시>는 이런 식으로 서울과 그 주변부를 세 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살핀다. 서울시를 중심으로 북쪽의 파주부터 남쪽의 시흥까지 서부를 훑는 '경인 메갈로폴리스'와 종로구와 중구, 용산구 등 옛 서울의 중심지인 '대서울의 한가운데', 북쪽의 의정부부터 남쪽의 용인까지 서울 동쪽을 아우르는 '대서울의 과거·현재·미래'다.

최초의 강남이자 한국 최대의 공업지역이었던 영등포에선 박정희 정권의 국가 폭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인신매매가 빈번하게 행해지던 파주시에선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미군 위안부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으며 서울의 화장터와 공동묘지가 옮겨간 의주로 인근을 통해서 군사 시설과 화장터 등을 밀어낸 차별적 지역 정책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또 지금은 사라진 '여성의 공간' 옥바라지 골목이나 조선 시대 평민들이 지나다니던 피맛길, 북촌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 현재 서울 '부촌' 곳곳에 남아있는 옛 중하층민들의 토속 신앙지 '부군당' 등. <갈등 도시>는 저자의 말처럼 권력과 부가 집중된 중심부가 아니라 중심에서 밀려난 존재들이 몰려있는 주변부에 주목해 힘 있는 자들이 외면하는 시민의 도시 '대서울'의 진정한 모습을 철저히 탐구한다.

<갈등 도시>는 1장 '대서울이란 무엇인가', 2장 '도시 문헌학과 도시 화석', 3장 '갈등 도시, 대서울을 걷다'로 구성 돼 있다. 풍부한 사진과 이야기하는 듯한 문체, 친절한 가이드와 답사하는 느낌이다. 지리에 다소 취약하다면 카카오 맵을 켜놓고 봐도 좋다. 개인적으로 전작을 읽지 않았다면 1장 보다는 2장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알고 있었지만 몰랐던 서울의 역사, 그래서 더욱 친근하고 풍부한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전부라 생각한 도시의 면면을 좀 더 소중히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 김시덕 서울대 교수는 문헌학자이자 서울 답사가로 활동하고 있다. 재개발이 예정된 불량 가옥, 낙후 지역, 성매매 집결지, 이름 없는 마을 비석과 찾기도 힘든 머릿돌을 찾아다닌다.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학부와 석사를 거쳐 일본의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 연구 자료관(총합 연구 대학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HK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에서 출간한 저서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2010)로 30년 넘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 고전 문학 학술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이 책은 <일본의 대외 전쟁>(열린책들 펴냄, 2016)으로 번역 출간돼 2017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이밖에도 주요 저서로 <임진왜란 관련 일본 문헌 해제>(도서출판 문 펴냄, 2010), <그들이 본 임진왜란>(학고재 펴냄, 2012), <교감 해설 징비록>(이카넷 펴냄, 2013),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메디치미디어 펴냄, 2015), <전쟁의 문헌학>(열린책들 펴냄, 2017), <서울선언>(열린책들 펴냄, 2018) 등이 있다.

▲<갈등 도시> 2019. 김시덕 지음. 열린책들 펴냄. 가격 2만 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조성은 기자
p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쫌만 더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