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선생님은?
2019.10.09 12:25:03
한국어학당 강사, 573돌 한글날 맞아 지위 보장 및 처우개선 요구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그들이 사랑하고 믿고 따르는 한국어 학습 지도자가 대학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알게 될 때 보통 경악을 금치 못한다. 비교적 어렵게 사는 러시아든 부유한 노르웨이든, 외국인 학생에게 자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의 전문인은 당연히 정규직 교원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의 한국어 선생님은 교원이 아닌 용역이나 자체직원이다. 계약서, 4대 보험, 휴가, 병가 수당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무임금 노동을 하기도 한다."

푸른 눈의 한국인 박노자 오슬로대학교 교수는 573돌 한글날을 맞아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학당 강사들에게 지지 성명을 보내며 위와 같이 말했다.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처음으로 만나는 선생님은 비정규직 노동자일 확률이 높다. (기사 아래 박노자 글 전문 게재)

전국대학노동조합 소속 한국어 교원 조합원들은 9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적 지위 보장과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이들은 "대학은 한국어 교원을 시간강사, 연구원, 자체직원, 용역 등 편의대로 분류되고 취급해 왔다"며 "대학에 적을 두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한국어를 가르치는 우리도 고등교육법의, 교육부의 교원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어 교원은 4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기도 하고, 일방적인 임금 삭감을 강요받기도 하며, 업무 외 행사에 동원되는 일도 잦고, 임금 체불도 다반사였다"며 "대학은 한국어 교원의 열악안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들이 사회적 지위 보장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류미용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강사는 "저는 수업 외에도 행정 업무, 새벽에 공항에 가서 외국인 학생 픽업하기, 학생 문제로 경찰서 가기, 아픈 학생 입퇴원 시키기 등 다양한 일을 한다"며 "이런 일들 때문에 업무량이 많아 새벽까지 일하기도 했지만, 이와 관련한 업무 수당은 받은 적이 없고 계약서도 작성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류 강사는 "학교는 이런 근무조건을 개선하기는커녕 자신들이 부여하는 무보수 행정업무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수업 시간만 주는 방식으로 갑질을 하고 있다"며 "침묵은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정당한 지위와 대가를 받는 날까지 물러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수근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강사는 "일방적으로 월급이 깎이기도 하고, 불법적인 해고가 일어나기도 하고, 과로로 쓰러지는 동료와 생활고로 그만두는 동료가 있는 곳이 한국어교육 현장"이라며 "오늘 정부와 언론은 한국어 교육이 중요한 일이라고 이야기할 것인데, 우리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중요한 사람으로 대해달라"고 전했다.


아래는 박노자 오슬로대학교 교수의 지지성명 전문


한국어 강사에 대한 부당 대우는 철회돼야 한다!


요즘 "한국과 한국어의 위상이 높아져간다"는 말을 국내외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20년 전에 미국 전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대학생은 163명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1만 4천 명을 넘었다. 해마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습자의 수는 미국에서만 해도 10% 이상 늘어난다. 이 기적을 일으킨 것은 K팝만은 절대 아니다!


구미권이나 일본 같으면 대부분의 학습자는 한 번이라도 국내로 어학연수를 가는 것이고 그들의 한국어 실력을 대학 부속 한국어 교육 기관의 선생님들은 연마시켜주고 향상시킨다. 나를 포함해서 한국어를 익힌 대부분 외국 출신들의 학습 성공 뒤에는 어학당, 한국어교육원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인내와 공들여 만든 교수법이 있다. 한국어 교육 기관에 속하는 선생님들의 노력을 떠나서는 세계 각국 ‘한글 전도사’가 되는 외국인의 존재는 성립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노력에 대학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하는가? 외국인 제자들은, 그들이 사랑하고 믿고 따르는 한국어 학습 지도자가 대학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가를 알게 될 때 보통 경악을 금치 못한다. 비교적 어렵게 사는 러시아든 부유한 노르웨이든, 외국인 학생에게 자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의 전문인은 당연히 정규직 교원이다. 해당 국가의 빈부 차이를 떠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에서 한국어 선생님은 교원이 아닌 용역이나 자체직원이다. 아예 필기계약서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동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4대 보험도 없고 휴가, 병가 수당도 없다. 수업 준비와 학생 행정에는 시간을 써야 하고 외국인 학습자와 함께 각종 행사 참가를 해야 하지만, 이는 다 무임금 노동일뿐이다. 과연 노동권 침해와 인권 유린, 착취와 차별에 기반을 둔 왜곡된 한국어 교육 제도가 지금대로 존속되는 이상 '한국어의 세계적 보급'의 꿈은 이루어질 리가 있겠는가?


한글이 세계인에게 다가가자면 K팝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한글을 가르치는 교원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대우다. 한국어 교원의 법적 지위 보장, 노동조건과 노동환경 개선, 그리고 고용안정 요구는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이며, 나를 포함한 해외 대학 한국학 교원으로서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는 요구다. 내 학생들도 서울대, 연세대, 경희대로 어학 연수를 가곤 한다.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교원으로서 정당한 대우 받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대학 및 국가 교육 당국에 강력히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 박노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원 노동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최용락 기자
ama@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