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핵발전 산업은 전세계 가난한 노동자로 유지된다"
2019.08.27 14:33:31
[프레시안books] <핵발전소 노동자>

"현대의 핵발전소는 진실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가난한 노동자의 불법적인 대량 피폭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도쿄전력의 정사원이었던 미즈노 도요즈카는 핵연료 저장 수조에 들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봤다. 백인도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즈노의 말을 들으며 미국에서 빈곤 때문에 군대에 가는 백인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한일관계 경색과 함께 도쿄 올림픽 참가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피폭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일상적으로 위험 수준의 피폭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핵발전소 노동자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일본 핵발전소 노동자 6명을 인터뷰한 책, <핵발전소 노동자>(박찬호 옮김, 반핵의사회·사회건강연구소 기획, 건강미디어협동조합 펴냄)다.

저자 테라오 사호는 피아노를 치며 토크쇼를 하는 가수다. 지난 2월에는 한국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핵발전소에서 일하다 핵발전소 노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6명의 핵발전소 노동자를 찾아 이 책을 냈다. <나는 모른다(私は知らない)>라는 노래에서는 "원전 일용직으로 피폭한 아저씨"라는 가사를 쓰기도 했다.

테라오는 첨단기술의 이미지로 매끈하게 포장된 핵발전소 안에도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 핵발전 산업의 하청 구조는 손쉽고 값싸게 이들에게 위험을 떠넘긴다. 더 위험한 업무는 외국인 노동자가 맡는다. 익숙한 이야기다.


▲ <핵발전소 노동자>


일본 핵 발전 산업에 만연한 하청 구조

암, 갑작스러운 무기력증 등 피폭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핵발전소 노동자들은 하나 같이 핵발전소의 놀랍도록 허술한 작업 환경이 사고와 피폭의 위험을 키운다고 말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일했던 다카하시 나오시는 발전소에 작은 불이 나면, 물이나 소화기를 사용하지 않고 시트로 덮어서 끄는 것이 핵발전소 노동자의 '상식'이라고 말한다. 물이나 소화기를 사용하면 소방서에 화재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카하시는 방사선 경보기가 울려도 하던 일을 계속 해야 했다고도 말한다. 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기 위해서다. 지급된 마스크는 쓰지 못한다. 핵발전소 안의 더위와 동료와의 의사소통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핵발전소 노동자들은 방사선 계량기를 종종 떼고 일한다. 눈금을 속이기도 한다. 피폭량 검사가 기준치를 넘으면 해고되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노동자는 핵발전소의 작업 환경이 불합리하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개선을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는 위로 전달되지 않는다. 테라오는 그 원인을 하청 구조에서 찾는다.

"대개는 사고나 부상 자체를 흐지부지 처리해 버린다. 왜 그런가? 도쿄전력의 은폐 때문이라는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실제로는 은폐하고 싶은 도쿄전력의 뜻을, 그 이상 충실하게 이행하려는 하청업체 대표가 있기 때문이다."

다카하시의 증언도 테라오의 이야기와 궤를 같이 한다.

“도쿄전력 사람들은 대개가 다 무지막지합니다. … 갑자기 명령하거나 규정 위반을 추궁합니다. 그런 행동에 조금이라도 대드는 모습이 보이면 뒤에서 화를 냅니다. … 우리 회사에 하청을 주는 위인들이라, 우리는 내일부터 오지 않아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다카하시는 이런 환경에서 “생활에 몰린 사람은 무언가를 주장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얼마 전 발표된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김용균 특조위의 사고조사 보고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김용균 노동자 사망의 진짜 원인으로 화력발전소의 원하청 간 수직적이고 신분제적인 구조를 지목했다. (관련기사 : 위험의 외주화, 오늘도 '가장 싼 죽음'을 찾습니다)

핵발전 산업과 핵발전소 노동자

테라오는 책의 말미에 “취재를 시작할 때,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고, 실태를 파악한 다음, 핵발전소의 시시비비를 따져보고 싶다는 동기가 있었다”며 “하지만 노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에서 보게 된 것은 강자에 억눌린 약자로서 핵발전소 노동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고 적었다.

핵발전을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입장과는 무관하게 오늘도 누군가는 핵발전소에서 일하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핵발전소 노동자의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이란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변화를 만드는 일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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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기자
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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