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민주주의는 '도금' 수준
2019.08.08 09:38:19
[프레시안 books] <책임에 대하여>
한일 갈등이 첨예해짐에 따라 일각에서는 근본 차원에서 일본 민주주의를 묻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를 자부하는 나라의 한편에서 특정 국가를 혐오하는 서적이 베스트셀러 코너를 당당히 차지하고, "나치를 배우자"는 정치인의 망언(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대신은 2013년 7월 일본국 개헌을 위해 나치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 통용되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다. 극우화의 길을 달리는 아베 정부를 바라보는 한국인은 자연히 '65년 체제'가 만든 동북아 근본 질서에 의문을 갖는 동시에, ‘일본 사회’ 자체에 관한 의구심을 갖기 충분하다. 

이 같은 시점에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해 오늘날 일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한승동 옮김, 돌베개 펴냄)가 출간됐다. 이미 한국 사회에도 잘 알려진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학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학 교수가 지난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가진 세 차례의 대담을 묶은 책이다. 서경식 교수는 잘 알려진 대로 자이니치 2세며, 다카하시 교수는 후쿠시마 출신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둘의 대담을 한승동 전 <한겨레> 기자가 한글로 옮겼다. 

둘의 대담은 앞서 2000년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김경윤 옮김, 삼인 펴냄, 국내에는 2002년 발행)라는 책으로 처음 묶였다. 이번이 두 번째 대담집이다. 

두 저자는 현대 일본을 '응답 책임을 지는 데 실패한 국가'로 정의한다. 일본이 져야 할 '응답 책임'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만행에 관한 물음, 그리고 현대 이웃 국가와 일본 내부 저항자들의 물음이다. 현대 일본은 이 같은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 이유로 두 저자는 우선 현대 일본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민주주의는 1945년 이후 일본에 도입됐으나, 이는 '도금(鍍金)' 수준에 불과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겉에는 민주주의 체제가 안착했으나, 과거의 실패를 직시하고 이를 개선할 노력은 사회적으로 일어나지 못해 겉껍질을 조금만 벗겨내도 이면이 곧바로 드러나는 한계를 일본 민주주의가 지닐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그 시원적 계기로 저자들은 1990년대 후반을 꼽는다. 일본에 이른바 '역사 수정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한 때다. 

"1991년 한국의 김학순 씨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임을 밝히고 나선 것을 계기로, 1990년대 초에 아시아 각지에서 일본의 침략 전쟁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하지만 (...) 1990년대 후반의 일본 사회에서는 역사 수정주의라고 해야 할 반동(backlash)이 보수 세력과 미디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 2000년대에 들어 (...)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북조선을 방문(2002년)해 납치 문제의 진상이 드러났지요. (...) 납치 문제를 계기로 일본 사회에는 애국 내셔널리즘적인 논조가 만연했고, 지금도 그것이 지배적입니다." (다카하시)

한편 저자들은 고이즈미 정권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신자유주의 조치 역시 일본 우경화의 한 축이 됐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한국에서도 그렇듯) 필연적으로 사회를 승자와 패자 집단으로 쪼개버리는데, "이 사회 균열의 '미봉책'처럼 국수주의적 언설(담론)이 미디어를 통해 일본 사회를 석권"해버렸다고 저자들은 평가한다. 실제 고이즈미 정권 들어 일본에서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등 극우적 논리를 전면화하려는 움직임이 강력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이와 더불어 한국에서도 일제 강점기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점도 한국 독자는 짚을 수 있겠다. 아울러 일본에서는 우경화가 지속됐지만, 한국에서는 박근혜 정권 탄핵으로 그 흐름이 중단됐다는 점도 짚을 만하다.). 

이런 우경화 흐름에 일본 좌파 세력의 저항 역시 거세게 일어났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함께 침몰함에 따라 아베의 극우적 정치가 일본을 석권했다. 내부 저항이 점차 무력화한다는 위기의식을 저자들은 공유했다. 예를 들어, 일제의 침략 역사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히노마루(일본 국기)와 기미가요(일본 국가, 둘 모두 1999년 국기와 국가로 제정. 그전까지 일본은 국가와 국기를 법률로 정하지 않았음)의 역사성을 리버럴이 무시하는 현상 이면에는 국가 권력이 강고화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했다. 

"일본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상 신조와 국가 권력이 부딪힐 경우에, 항상 국가 권력이 더 거세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 냉전 구조의 붕괴와 함께 일본사회당·총평(總評·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그룹도 변질되어 '연합(렌고, 현재 일본 최대 노총, 일본 사회의 저항 움직임이 약화함에 따라 렌고도 한국의 민주노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영향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으로 바뀌고 교원조합도 그 산하에 들어가 운동 방침으로서의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 국기라는 것에 경의를 표하는 일이 일상화된 공간 속에서 지금 말한 것 같은 역사성을 끊임없이 문제 삼기는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경식)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테러나 망언에 대한 일본 사회 양심의 목소리를 서경식 교수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대목은 특히 역사적 문제로 갈등하는 한국 독자의 관심을 끈다. 예를 들어 최근 아이치 트리엔날레 주최 측의 평화의 소녀상 기획전 중단 사태를 두고 일본 내에서도 표현의 자유에 관한 억압이라는 반발이 나오는데, 서 교수는 이 같은 저항을 두고 "공허하다"는, 언뜻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1995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나눔의 집>(변영주 감독)이 일본에 상영됐을 당시 사태를 서 교수는 예로 든다. 이번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사태와 겹쳐 보인다. 한마디로 일본의 리버럴 역시 과거에 눈을 돌려버린다는 점에서 일본 주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우익이 소방용 소화제를 스크린에 뿌려 방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에 항의하는 기자 회견이 열린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가 보았지요. 단상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이 "이것은 언론·표현의 자유에 대한 용납하기 어려운 공격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 나는 거기서 주제로 삼고 있던 것, 즉 일본 제국의 역사적인 범죄, 식민 지배의 범죄, 여성에 대한 전쟁 범죄 등을 고발하는 움직임을 표적으로 삼은 공격이라는 관점을 명확히 주장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며 듣고 있었습니다. (...) 이는 모토시마 히토시 나가사키 시장이 쇼와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가 우익 세력으로부터 저격당했을 때(1990년 1월 18일), 전체 매스컴이 한 목소리로 "언론의 자유에 대한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라고 했던 논조와도 겹칩니다.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는 모토시마 씨의 주장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제시하지 않았어요." (서경식)

한일 역사 문제와는 별개로, 현대 일본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대다수 한국인에게 가장 큰 화두는 포스트 후쿠시마일 것이다. 후쿠시마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아베 정부의 움직임과 이에 따라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일본 시민의 문제는 단순히 일본적 특수성으로만 바라보고 넘기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서도 밀양 송전탑 문제, 원전 인근 주민의 건강 문제, 미군 기지 이전 문제 등에서 시민의 권리가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원전 안전 문제는 한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서경식 교수는 후쿠시마 이후 일본 정권의 진실 은폐와 시민의 피해를 일본에서 오랫동안 가동된 분단과 차별의 논리로 해석한다. 민주주의적 가치가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오늘날 일본의 현실을 포스트 후쿠시마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다. 

"원전을 만들 때부터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특정 지역에 부담을 강요해 왔다는 의미에서 차별이며, 그렇게 해서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피해를 봉쇄하기 위해 (일본 사회는) '분단'과 '차별'을 효과적으로 작동시켜 잘 써먹었습니다. 예컨대 후쿠시마 번호판을 단 차가 주차하려 하면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다거나, 피난 온 아이들이 피난지의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지요. 크게 보면 근대 일본이 그런 분단과 차별 위에 만들어진 식민 제국인데, 그 구조가 지금의 일본 사회에서도 유효하게 기능하고 있습니다." (서경식)

책의 핵심은 전체 4개의 장으로 나뉜 대담의 마지막 장이다. 두 대담자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유럽식 보편주의(서구적 문화 가치, 신자유주의 체제만이 절대 선이라는 논리)를 내면화하면서 동아시아를 침략했고, 그 역사는 반성되지 않으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막부 말에는 요시다 쇼인(에도시대 후기 조슈번의 사상가로, 현대 일본 극우 사상의 뿌리로 꼽힘)의 존재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베 신조 씨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들고 있습니다만, 쇼인은 일본이 군비를 증강해서 류큐(오키나와), 에조의 땅(홋카이도), 그리고 조선, 타이완,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탈취한다는 대외 침략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상이 쇼카손주쿠(요시다 쇼인이 후학을 기른 사숙)를 통해 메이지 유신 지도자들에게 전승되고 제국 일본의 식민주의로 이어졌습니다. (...) 전후 일본까지 이어진 요시다 쇼인에 대한 평가 하나만 보더라도 메이지 이후의 대외 침략에 대한 정당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습니다. (...) 일본류의 '보편주의'가 있음은 분명하며, 그것은 일본의 침략을 늘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카하시)

대담자들은 일본을 유럽식 보편주의를 내면화한 아시아 최초의 근대 사회로 인식하는 동시에 '서구에 대항할 유일한 독자적 문화권'으로 자인하는 침략주의 시절의 이중적 내면화가 지금도 일본회의와 아베로 대표되는 극우주의 집단은 물론, 리버럴리스트 사회 일부에서도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대담자들은 여러 풍부한 사례를 들어 이 같은 문제가 현대 일본인의 정신 구조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주장한다. 기실 우리가 일본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근본 이유가 이 같은 모순에 기인한다고도 유추 가능한 대목이며, 일본이 '책임을 회피하게 된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음을 추정케도 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앞서 언급된 '현대 일본 민주주의는 도금'이라는 인식과도 상통한다. 그 도금의 밑바탕에는 일본 사회에 내재된 모순이 잠재하며, 그 모순은 이 같은 이중적 자기 인식인 셈이다. 전후 일본 사회는 아시아에서 손꼽을 정도로 강력한 반 자본주의 운동과 민주주의 운동의 중심지였으나, 결국 일본은 내재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늘날 아베 정권 시대에 이르고 만 것이다. 

이 같은 저자들의 말을 따르자면, 필연적으로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에 이르게 된다. '아베 정권은 나쁘다. 그런데 아베 정권은 일본 민주주의 체제에 의해 적법하게 선출된 '민주 권력'이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다카하시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문제를 정리한다. 

"거기에는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의 연호 변경과 천황 교체에서도 드러난 일본 제국 시대 이래의 본성이 존재하며, 그에 덧붙여 글로벌화 속에서 하락 중인 일본의 지위와 국력에 대한 불안이 작용한다. 헤이트 스피치로 상징되는 노골적인 배외주의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징용공 재판 판결을 둘러싼 언론의 반한·혐한 보도에 이르기까지 아베 정권의 장기화를 허용한 여러 요인들이 모두 일본 사회 안에 내재되어 있다." 

책은 특히 한국과의 역사 문제, 오키나와 문제, 포스트 후쿠시마 문제를 중요하게 언급하며 현대 일본의 오늘과 내일을 우려한다. 일본 리버럴리스트들이 <제국의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비판하는 대목, 오키나와를 일본 '본토' 지식인들이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지적하는 대목은 특히 눈여겨 읽어볼 만하다. 

한국 정치의 문제로 중요하게 거론되는 소선거구제의 모순이 일본의 정치 제도 개편 이후 오늘날 일본 정치 구조를 낳았다는 점 등 다른 대목에서 일본 민주주의의 문제를 짚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이를 언급하지 않고 오늘날 일본의 모습을 단순화하는 건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 일본의 뿌리가 일제로부터 단절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역사적 인식은 중요하게 짚어야 할 점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건 일본의 이 같은 내재적 모순을 일본만의 특수한 사항으로만 이해하고 이를 '혐일'의 논리를 강화하는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중구청의 이른바 '노 재팬' 주도 해프닝에서 한국 시민 사회는 성숙한 반응을 보였다.). 어느 사회나 내재적 모순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역시 분단 역사의 배경 아래에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좌파 세력과 결합해 반독재 전선을 형성한 모순, 민족 자본과 신자유주의 체제가 결합한 이후 일어난 모순 등을 안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문제 등 일부 대목에서는, 비록 저자들은 이 같은 점을 강조하지 않았지만, 한국인 독자 역시 일본의 모순을 통해 한국의 모순을 되새겨 봄직하다. 어떤 의미로든, 적절한 시기에 나온 대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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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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