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정당은 선거를 치를수록 더 부유해진다
2019.07.22 08:21:02
[정치혐오의 천국, 대한민국] 태백산맥보다 높은 정치장벽 下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25:29

이 마태복음의 성경구절보다 대한민국의 정치자금법을 더 잘 설명하는 문장은 없다. 레이싱 경기의 예를 보면 더 적나라하다. 열 명 남짓한 선수들이 경쟁하는 레이싱 경기가 있다. 우승자는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수상의 영예를 누린다. 반면 1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 한 선수들은 우승을 못 한 것도 서러운데 차까지 뺏긴다. 우승자는 사용한 차를 더 정비해서 더 좋은 차를 가지고 다음 시합에 임한다. 반면 차를 뺏긴 선수들은 다음 시합까지 차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다 포기하거나 결국 지난 대회에 썼던 수준의 차로 시합에 임한다. 위 이야기는 픽션이다. 황당한 상황처럼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선거에선 일상적인 상황이다.

선거를 한 번 치르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공직선거법에 명시된 선거비용제한액 기준으로 보면 4천만 원 가량 사용하는 기초의원선거부터 500억 원 가량 사용하는 대통령선거까지 다양하다. 이것도 대단히 많은 금액이다. 하지만 이건 선관위에 보고하는 공식적으로 사용한 선거비용일 뿐이다. 비공식적 선거비용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기탁금은 또 어떤가. 국회의원 1500만 원부터 대통령 3억까지 다양하다. 노동자 평균인 월 280만 원 받는 월급쟁이는 출마를 꿈꾸기조차 어렵다. 재정적인 여유가 없는 후보의 경우 선거가 끝나면 빚더미에 앉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빚만 문제가 아니다. 돈이 없는 후보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 필자도 작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캠프에 있었을 때 재정적 여건 때문에 오토바이를 개조해 유세차로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선거운동원들을 많이 고용해 규모 있는 유세를 하는 것도, 스피커가 빵빵한 유세차를 끌고 다니는 것도, 컬러로 분량을 다 채우는 공보물을 인쇄하는 것도, 에어컨도 나오는 쾌적한 사무실에서 선거사무를 보는 것도 재정적인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후보 개인에게 막대한 재정적 책임을 요구한다. 그 중에서도 후보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쓸데없이' 가중시키는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선거에 출마하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기탁금을 내야 한다. 기탁금은 소위 먹튀방지를 위한 보증금 같은 개념이다. 후보자의 난립을 방지하고 책임 있는 완주를 독려하기 위한 제도로 기탁금이 존재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기탁금을 책정하고 있다.(국회의원 선거 기준 1500만 원) 미국, 독일 같은 나라들은 기탁금 제도 차제가 없고 기탁금 제도가 있는 나라들 중 일본(3000만 원가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00만 원 이하이다. 과도하게 높게 책정된 기탁금은 시민들에게 '정치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둘째, 다음으로 출마를 위해 내는 기탁금과 선거기간에 사용한 선거비용은 성적에 따라 돌려주기도 돌려주지 않기도 한다. 이는 심각한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야기한다. 소수정당에겐 득표율에 따라 기탁금과 선거비용을 보전받는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15% 이상을 득표하면 전액을 돌려주고, 10%이상, 15%미만을 득표하면 반액을 돌려준다. 10% 미만을 득표한 후보에겐 한 푼도 돌려주지 않는다. 최근 다당제 구도가 성립되긴 했으나 아직까진 다당제로 안착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양당제 경향이 강한 한국에서 15% 이상을 득표할 수 있는 소수정당 후보는 많지 않다.

셋째, 각급 단위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은 후원회를 둘 수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각급 단위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후원회를 만들 수 있지만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후에만 만들 수 있다.(지자체장은 본선기간에만) 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을 홍보하다 끝날 짧은 시간이다. 다양한 후원방식을 갖출 시간적 여유도 없다. 또한 후원금 모금을 일정 금액 이상 할 수 없도록 제한해뒀기에 후보 개인에게 많은 재정적 부담을 지게 만든다. 게다가 기초의원 후보들은 후원회를 만드는 것조차 할 수 없다. 기초의원은 정치인으로 취급해주지도 않는 것인지 의심될 지경이다.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후보의 재정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 돈 있는 사람만 정치를 하게 만드는 제도는 정치의 문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여러 대책이 있다.

첫째, 기탁금을 폐지하거나 대폭 낮춰야 한다. 기탁금은 무분별한 입후보 등록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경우 1500만 원이 그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차피 제 기능 못하고 진입장벽 역할만 하고 있으니 폐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현행 기탁금 조항은 과다한 금액을 규정해 입후보에 대한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며 기탁금 제도의 위헌성을 주장한 바 있다. 실제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의 나라는 기탁금 제도가 없고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의 나라는 기탁금이 있더라도 100만 원 미만의 소액이다.

둘째, 비용보전 관련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15%와 10%라고 정해진 보전 기준은 근거가 없다. 왜 14.9%는 반액이어야 하고, 9.9%는 보전을 못 받아야 하는가. 기준이 높고 낮고를 떠나 득표율을 기준으로 합격과 불합격을 나누는 발상 자체가 정치혐오적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에서 할 수 있는 행위를 매우 협소하게 제한해두고 있다. 명함의 규격부터 엠프의 출력 성능까지 말이다. 국가가 이렇게까지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제약할 거면 차라리 공보, 벽보, 유세차 등 고비용의 선거운동 요소들을 국가가 집행해주거나 모든 입후보자들에게 보전해주는 것은 어떨까 싶다.

셋째, 기초의원 예비후보까지 후원회를 만들 수 있게 하고 선거비용 전체를 후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치인은 대중의 물적 지지를 통해 선거를 치를 수 있어야 한다. 지지자들에게 후원을 받지 못하게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 혹자는 후원회의 기준들을 확대해 주면 불법으로 돈을 모으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불법정치자금 문제는 오히려 후원회를 열어줘야 줄어들 문제라고 본다. 또한 수입지출 내역이 선관위에 보고되기 때문에 투명성 문제도 해결된다.

필자는 2년간 정당에서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그간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정치자금법은 소수정당과 그 후보에게 너무 가혹하다.

심상정 대통령후보 후원회 실무를 맡을 때 가혹함을 가장 강하게 느꼈다. 19대 대선 선거비용 제한액은 대략 500억. 후원회의 모금한도는 이 제한액의 5%, 25억이었다. 나머지 95%는? 자비를 쓰든, 정당 돈을 쓰든 해야 했다. 결국 심상정 후보는 후원금과 보조금 등 50억 가량 선거비용을 지출했다. 그리고 단 한 푼도 보전 받지 못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당선이 확실시 되는 상황이라 500억 가까이 지출을 했고 거의 대부분의 비용을 보전 받았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50억을 쓴 후보와 500억을 쓴 후보의 경쟁이 공정하다고 보는가? 후원금 모금한도가 5%여야 하는 근거는 물론 없다.

이러한 제도들을 통해 거대정당은 선거를 치를수록 더 부유해진다. 후보들은 설령 낙선을 하더라도 15%는 넘길 테니 파산할 염려도 없다. 반면 소수정당은 선거를 치를수록 더 가난해진다. 후보들은 당선을 꿈꾸는 동시에 파산을 걱정해야 한다. 축구경기를 할 때 한 팀에게만 발에 족쇄를 채우고 경기를 치르라고 하는 꼴이다. 정치자금법 개정이 없으면 정치는 돈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고유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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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ir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