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강한 왼손잡이' 정치를 위하여
2019.07.11 14:27:10
[김성희의 정치발전소] 정의당 당직선거를 보며

1.
얼마 전 허물없이 지내는 오랜 지인들과 식사 모임을 가졌다. 식사가 끝나고 가벼운 신변잡기로 차담을 나누던 중, 한 친구가 자신은 원래 왼손잡이였다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엔 무슨 실없는 농담인가 했다. 그와는 모두들 30년 가까운 지기다. 그동안 한 번도 그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적이 없었다. "정말? 그동안 진짜 좌파라는 사실을 숨겨온 거야?" 한 친구가 농으로 받았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른손잡이처럼 오른손을 쓰거든. 물론 그게 다 노력의 산물이지만, 오른손잡이가 어찌 그 고통을 알겠냐?"라며 짐짓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지금도 글씨를 쓰거나 그가 좋아하는 운동인 야구를 할 때는 여전히 왼손을 사용하지만, 다른 일상생활은 모두 오른손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의 왼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얼 해도 서툴고 어색한 손, 어떻게 해야 이 손이 오른손 수준으로 능숙할 수 있을까? 지하철 개찰구에서 핸드폰, 카메라 셔터까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오른손에 맞춰진 세상에서 그는 어떻게 적응했을까? 그의 말대로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다. 

2.
지금은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많이 약해졌다지만, 동서양의 문화적 전통에서 왼손잡이는 불길하고 사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동양권에서는 '좌도(左道)=사도(邪道)'라며 왼손은 사악한 것 또는 정도가 아닌 것으로 봤다. 

서양도 예외는 아니어서, 왼손잡이를 뜻하는 라틴어 '시니스테르(sinister)'는 불행 또는 불길 등을 뜻했다. 반면 오른손잡이를 의미하는 '덱스테르(dexter)'는 '옳다' '능숙하다'의 의미이다. 영어 'right-left' 역시 다르지 않다. right가 정당한 또는 권리라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반면, left는 약한 또는 바보 같은 이라는 의미로 폄하된다. 

오른손잡이로서 왼손잡이를 향한 편견을 다 아는 듯 말하는 것이 겸연쩍지만, 여전히 소수자, 약자의 알레고리로 왼손잡이를 불러내는 많은 노래와 시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왼손에 대한 메타포가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쓰이는 영역은 아무래도 정치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좌파 또는 좌익, 그에 상응하는 우파, 우익은 정치를 가르는 가장 일반적인 기준이다. 정치적 의미로서 좌-우파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세기 프랑스 혁명 때이다. 혁명 과정에서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급진적 공화파는 왼편에, 점진적 변화를 지향한 온건파는 오른편에 앉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근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발전과 더불어 좌-우는 정치 세계를 나누는 가장 보편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균형을 만들기 위해 정치적 왼손잡이들이 치러낸 희생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만큼 컸다. 우리가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고 주기적으로 행하는 선거는 보통 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해 싸워온 좌파의 노력에 크게 기대고 있다. 아무도 그 가치를 돌아보지 않을 만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정당 역시 좌파의 정치적 산물이다. 민주주의와 대중정당 모두 "좌파로부터 감염(contagion from left)"된 결과라고 했던 뒤베르제(Maurice Duverger)의 말처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정치의 많은 것이 좌파의 투쟁과 노력에 근거하고 있다.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좌파는 사회주의나 노동 등 다수 빈곤층을 대표하는 정치적 이념과 가치, 또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지칭한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사회주의가 의회, 선거, 정당과 대의제에 기초한 민주적 정치과정을 기본적인 경쟁 규칙과 정치 기반으로 수용하면서 사회민주주의는 좌파를 대표하는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구의 사회민주당, 사회당, 노동당 등이 민주정치 과정을 수용한 사회민주주의의 이념에 기초한 좌파정당들이다. 좌파는 단순히 왼쪽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기초해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하는 이념과 이를 추구하는 정당의 자연스러운 총칭이라고 할 수 있다. 

좌-우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서구 민주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란 "나는 좌파다"라고 당당하게 자신의 이념을 말할 수 있는 체제, 좌파적 이념에 기초해 시민을 폭넓게 조직하려는 정당이 있고 이런 정당이 때때로 집권할 수 있는 체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우리 정치에서는 진보라는 말이 더 흔하다. 그러나 진보(progressive)는 정치적 실체를 가리키는 적확한 정치언어가 아니다. 애초 '행진, 여행'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진보는 단어의 발전과정에 이데올로기적인 의미가 담지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보는 문화적 개념에 가깝다. 즉, 나쁜 상황에서 좋은 상황으로 향하는 것 또는 문명의 변화 같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의미가 중심적 용법이다. 

보편적 정치언어인 좌파는 '진보'와 상호 호환되지도 않는다. 과학기술의 진보를 과학기술의 좌익화라고 말하지 않고, 문명의 진보가 문명의 좌파화는 아니다. 영국의 한 보수당 정치인은 "보수주의는 질서 있는 진보"라고 정의했고, "진보적 보수"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표현도 심심치 않게 쓰인다. 정치 세계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든 모두 어느 정도는 진보적이길 원하는 듯하다. <키워드>의 저자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진보라는 말의 개념을 탐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진보(progressive)라는 단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기보다 흔히 타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설득시키려고 할 때 사용한다."(<키워드>(김성기‧유리 옮김, 민음사 펴냄) 374)
    
진보라는 말은 좌파라는 실체적 언어가 갖는 정치적 깊이와 가치를 대체할 수 없다. 


5. 
한국은 경제적으로 발전된 민주주의 나라 가운데 예외적으로 왼손(좌파)없는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진보정당들이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물론 현 문재인 행정부는 진보를 표방하고 집권했으며,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들도 있다. 그러나 문재인 행정부는 좌파적 이념이나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 노동에 대해 가부장적 온정주의 태도를 보이는지는 몰라도 노동을 중심으로 사회의 균형을 잡는 것이 정치적 목표도 아니다. 문재인의 진보는 '좌파를 제외한 진보', 또는 '자유한국당' 류를 제외한 어떤 것을 의미하는 잔여적 개념에 가깝다. 

진보 정당 역시 다르지 않다. 강령에 사회민주주의의 꿈을 지향한다고 표방하는 정당조차 정작 자신의 당명은 누구나 편리한 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두루뭉술한 용어를 채택하고 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며 좌파에 대한 편견 역시 컸던 일본조차 좌-우는 줄곧 정당과 정치세력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었다. 일본에서 좌익은 진보적인 정치세력 스스로 자신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정치언어이다. 좌파, 또는 좌파라는 개념에 인색한 한국 정치와 크게 대비된다 하겠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좌파라는 말은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좌파는 실제 존재하는 어떤 정치세력을 가리킨다기보다 우파 보수정당이 문재인 행정부나 민주당, 정의당 등 적대화한 정치세력을 폄훼하는 비칭이다. 

자유한국당에서 문재인 정부를 지칭하는 '좌파정권'이란 말은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을 말한다기보다 이 정권이 불안정하고 무능하다는 비판적 여론을 동원하기 위한 수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민주당은 스스로 단 한 번도 좌파인 적이 없었고, 좌파임을 표명하지도 않았으며, 지금도 이 정부를 좌파로 볼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자유한국당 식의 비난은 번지수가 잘못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문제는 좌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만큼 왼손잡이에 대한 고래의 편견이 정치세계에서 잘 작동하는 나라는 없지 않을까 싶다. 왼손만은, 좌파라는 낙인만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 편견을 이용하고자 하는 보수우파는 물론이고 진보임을 자처하는 정치세력 모두에게 관철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6. 
여론의 주목을 끌고 있지 못하지만, 한국의 대표적 진보정당인 정의당에서 당직 선거가 진행 중이다. 친박-비박, 친문-비문처럼, 특정 정치지도자와 친하냐 아니냐 같은, 내용을 종잡기 어려운 쟁점이 주가 되는 큰 정당들의 당내 선거와 달리, 정의당 선거는 정의당에 제기되는 핵심적 질문을 두고 쟁점을 형성한 것처럼 보인다.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체성과 정치적 능력이 이번 당대표 선거를 포함한 당직선거 전반을 가르는 쟁점이라고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들고나온 한 후보가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고, 비례대표의 개방형 경선을 들고나온 한 후보는 크고 강한 정당이라는 정치적 능력의 문제를 제기한다. 오랫동안 정의당의 치명적 문제였던 것들이다. 선거 기간 내내 두 개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고, 이를 두고 후보들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다소 격한 논쟁이 오가기도 했다. 

정의당의 선거를 보며 떠올리게 되는 것은 민주주의 이론가 필립 슈미터(Philippe C. Schmitter)의 "양손잡이 민주화(Ambidextrous democratization)"이다.(필립 슈미트의 양손잡이 민주주의는 지난 2016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에 의해 국내에 소개되었다. <양손잡이 민주주의>(최장집·박찬표·서복경·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에서 양손잡이 민주화란 한 사회가 민주화되는 데 있어, 민주주의의 보편적 원리, 가치, 규범을 강조하는 왼손잡이와 유토피아적 기대에 저항하면서 현실적 능력을 강조하는 오른손잡이가 있고, 민주화 과정이란 결국 두 개의 민주주의관이 공존하면서 양자가 변증법적으로 종합되는 것이란 의미다.   

우리가 양손잡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함의를 한 정당이 부분으로서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사회에 뿌리내리고 정치적 능력을 키워나가는 정당 만들기에 적용할 수 있다면, 정의당의 선거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왼손잡이와 정치적 능력을 강조하는 오른손잡이가 각자 자신이 중시하는 내용을 들고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를 종합해 나간다는 것은 당의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상호 간의 문제 인식을 서로 이해하고 경계를 지양(止揚)할 때 가능할 터다. 이는 선거 이후 정의당 앞에 놓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정의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심상정 후보(좌)와 양경규 후보(우). ⓒ프레시안


7.
당원으로서 어떻게 투표할지 고민하다가 서울시당 위원장에 출마한 한 후보의 슬로건이 단번에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른손이 강한 왼손잡이 정당을 만들겠다."

정의당이 부여받은 좌파적 정체성과 더 유능하고 강한 정당으로의 정치적 능력을 발전적으로 종합하겠다는 포부로 읽혔다. 이 말이 내게 특히 인상적인 것은 비단 정의당을 향해 제기되는 핵심적 요구를 통합해 내겠다는 이 후보의 전환적 의지 때문만이 아니다. 적대적 정치 양극화 속에서 작동불능상태로 깊이 함몰하는 우리 정치 전체를 위해 오른손이 강한 왼손잡이는 더 중요하게 생각됐다. 

"오른손이 강한 왼손잡이", "왼손이 강한 오른손잡이"가 있어야 분명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공존하면서, 타협하고, 서로를 종합해내는 양손잡이 한국 정치 역시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좌파로부터 민주주의가 감염되었다면, 이제 오른손이 강한 왼손잡이로부터 감염되는 양손잡이 민주주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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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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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진보정당에서 일하며, 부대변인, 전략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정치교육, 교류, 연구의 공간인 <정치발전소>를 설립했다. 현재는 정치발전소 대표와 정치기획사인 파워플랜트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