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이의 있습니다
2019.07.09 16:09:32
[함께 사는 길]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한 '진짜'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
2018년 연말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주관의 '주택용누진제TF'는 예기치 못한 2018년 폭염으로 냉방전력이 급증하고 냉방비용 부담이 늘자 미리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정부에게 여론의 공분이 향하자 2019년에는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려는 선제적인 정책 대응 차원에서 꾸려졌다. 지난 6월 18일 누진제 개편안이 발표됐다. 산업부가 설명한 개편안의 장점은 다수의 중하위 전력소비 가구들의 비용 부담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최대 다수 가구에게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주겠다는 6.18 누진제 개편안, 정말 '살림살이 어려운 국민들'을 도울 수 있을까?

▲ 실외온도와 실내온도가 차이 없는 주거 환경에서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나는 에너지 취약 계층의 현실. ⓒ에너지시민연대


전력 다소비 가구가 더 이익인 개편안

현행 누진제에 따른 전기요금은 전기사용량에 따라 200킬로와트시 이하 사용량 구간까지는 1킬로와트시당 93.3원, 201~400킬로와트시 구간은 187.9원, 401킬로와트시 초과 때는 280.6원의 요금을 적용한다. 정부는 냉방사용이 급증하는 여름철, 누진구간을 확대해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300킬로와트시 이하 구간까지 93.3원, 301~450킬로와트시 구간에는 187.9원, 450킬로와트시 초과 때는 280.6원의 킬로와트시당 전기요금이 적용될 예정이다. 200~300킬로와트시 사용량 가구와 400~450킬로와트시 사용량 가구가 혜택을 보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산업부가 추정한 개편안으로 인한 할인혜택 가구수는 1629만 가구이고 월별 가구별 평균 할인액은 1만142원이다. 6.18 개편안은 요금 인상이 없이 누진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편안이 전기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나타날까?

'전기 소비와 기온·소득 간 관계 및 누진제 개편효과 연구'(사단법인 이컨슈머, 2017년 12월 31일 발표)를 보면,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기 소비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연구는 단독주택, 빌라/다세대주택에 거주하는 소비자, 60대 이상의 소비자, 월평균 소득 300만 원 이하의 소비자를 주 응답자로 한 것으로 조사 결과 '누진단계 및 누진배수가 전기사용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더 많았고,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소비자들의 전기사용량도 실제 더 많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누진배수의 완화가 전기사용량의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 이하에서는 누진단계 및 누진배수가 전기사용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응답이 가장 많은 반면, 소득 100만 원 이상에서는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많았다. 누진제 완화로 전기요금이 싸지면, 일정 소득 이상 가구에서는 전기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 것이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고 이상폭염이 일반화된 기후변화시대에는 더욱 당연한 일이다.

값싼 전력의 소비 증대가 불러오는 것


문제는 그 결과다. 주지하다시피,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보건 피해가 급증하는 시대인데 기후변화를 부르는 원인은 화석연료 남용이고 가장 큰 단일 탄소 배출원은 석탄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에너지전환부문의 발전소들이다. 싼 전기는 화석연료 발전소 가동을 늘리고 기후변화를 재촉한다. 누진구간 확대 기반의 6.18 누진제 개편안에 의한 싼값의 전기 공급이 그 혜택을 보는 1629만 가구에게는 전기 소비를 확대해도 된다는 정책신호로 해석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컨슈머의 연구 내용을 잘 살펴보면 그 1629만 가구 가운데 저소득 계층은 소득 수준의 제한으로 인해 전기요금을 깎아주어도 냉방전력을 쉽게 확대하지 못한다. 소득 평균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이상폭염에 대처할 충분한 냉방을 할 수 있지 그렇지 못하다면 냉방전력을 늘릴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에너지시민연대'(이하 에시연)가 2011년 이래 지속적으로 혹서/혹한기의 에너지 취약계층 실태조사를 해온 결과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에시연의 2011년 조사 대상 132가구 중 99가구(75.6퍼센트)가 60대 이상 노인이었고 이들 중 62가구는 독거노인이었다. 월 소득이 없는 가구는 87.1퍼센트로 115가구나 됐다. 에어컨을 소유한 가구는 한 가구도 없었고 선풍기 냉방 가구는 67.4퍼센트인 89가구였다. 아예 냉방수단이 없는 가구도 31.8퍼센트에 달했다. 그 결과 폭염 시 어지럼증, 호흡곤란, 두통 등 이상증상 경험이 56.1퍼센트인 74가구에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2018년 조사 때까지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에시연은 응답자의 주거 상태, 희망 에너지 복지제도에 관해서도 조사했는데 그 결과, 주거는 건축 후 30년 이상의 노후 단독주택에 임대 거주가 가장 많았고 희망하는 에너지 복지제도는 바우처와 현물 지원 요구가 가장 컸으며 그 뒤를 이은 것이 전기나 가스 등 에너지 요금 할인이었다. 이상과 같은 조사 결과는 에너지 취약계층의 소득 수준에 맞춰 해석돼야 한다. 워낙 주거 환경이 불량해 전력과 가스 등 에너지 소비 대비 효율이 낮고 월 소득이 매우 낮아 에너지 소비가 작아도 냉방광열비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왜 응답자들이 요금 할인을 첫 번째로 꼽지 않고 바우처 확대를 우선 요구했는지 알 수 있다. 에어컨 소유 가구가 매우 적고 소득 대비 냉방전력 비용이 크므로 전기, 가스, 난방, 등유, 연탄을 구매할 수 있는 이용권(바우처)을 지급받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누진제 혜택은 이미 받던 것이지 추가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함께사는길


에너지 취약계층 돕는 복지정책은


에너지 취약 계층에게 누진제 완화로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는 에너지 다소비형 냉방수단 소유율 자체가 낮은 에너지 취약계층의 냉방수단 소유 실태를 살펴볼 때 크게 효과적인 에너지 복지대책이라고 볼 수 없다. 소득이 없거나 부정기적 소득만으로 살아가는 독거노인 가구가 에너지 취약계층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들의 냉난방 에너지 이용권을 보장하려면 누진제 완화와 같은 간접 지원이 아닌 주거환경 개선과 소득 보조와 같은 삶의 조건을 직접 개선시키는 정책이 더 필요하다. 다시 말해 에너지 취약계층을 돕는 에너지 복지정책은 싼 전기를 공급하는 게 아니라 전기를 구매할 소득 보조, 냉난방 기구 구매 보조와 무상 지원, 냉방수단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불량 주거환경 개선 등 전반적인 생활복지의 확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값싼 전기 혜택이 다소비자에게 집중되어 갈수록 전력소비를 늘리는 결과를 부를 위험성이 큰 6.18 누진제 개편안은 사실상 여름마다 만성적인 건강 피해를 경험하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장기적으로 해치는 일이 될 것이다. 전력소비 증가는 결국 환경보건상의 피해로 나타나고 그 피해가 집중되는 계층은 사회경제적 약자인 에너지 취약계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녹색당의 논평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폭염으로 인한 기후 사상자는 해마다 늘고 있음을 기억하라. 2018년 기준 온열질환자수는 4526명(실외작업장 노동자가 1274명), 이 중 사망자가 48명(70대 이상이 33명)이었다. 폭염 사상자가 주로 빈곤층과 고령자 등 건강 약자인 셈이다.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노후 주택과 작업 현장 개선, 지원 정책은 별도로 수립해야 할 중요한 영역이다."(6월 4일 녹색당 논평)

6.18 누진제 개편안이 놓친 중대한 정책 핵심은 바로 그런 에너지 취약계층이 입는 환경보건 피해의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지 못한 점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전기요금에 이런 비용을 계상하는 '진짜 에너지 가격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6.18 누진제 개편안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갔다. 정책 재수정이 필요하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고 에너지 취약계층은 누진제 완화가 아니라 종합적 복지정책으로 돕는 것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에너지 전환을 재촉하며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게 보는 사회적 약자, 에너지 취약계층을 돕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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