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와 '글로벌 망신'부터 걱정하기 전에
2019.07.07 18:23:45
[기자의 눈] 결혼 이주 여성의 절반이 가정폭력 경험한다

베트남 출신 부인을 한국인 남편이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SNS에 퍼지면서, 이주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의 심각성에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베트남 출신 A(30) 씨는 지난 4일 오후 9시부터 3시간 동안 전남 영암군 자신의 집에서 남편 B(36) 씨로부터 주먹과 발, 소주병 등으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폭행 현장에는 두 살배기 아들도 있었다. A 씨의 지인은 지난 5일 남편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전남 영암경찰서는 7일 특수상해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남편을 긴급 체포했다.

A씨는 갈비뼈 등이 골절돼 전치 4주 이상의 진단을 받았으며,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 B씨의 폭행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영상 속의 남성은 거친 언사와 욕설, 끔찍한 폭행을 휘두르고 있으며, 피해 여성은 무방비 상태로 폭행을 당했다. 어린 아들이 엄마를 부르며 울다가 폭행 장면에 놀라 도망치는 모습까지 영상에 담겼다.

이 사건은 주위의 도움으로 피해 여성과 아이가 가해자와 분리됐고, SNS를 통해 남편의 폭력의 심각성이 알려지면서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해당 사건 조사과정에서 한국말이 서투른 피해 여성이 가장 자주 사용한 말은 "잘못했습니다. 때리지 마세요"였다는 언론 보도를 보건데, 남편 B씨는 상습적으로 폭행을 휘둘렀다고 할 수 있다.

결혼한 이주 여성이 한국인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일은 부끄럽게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리다 죽음에 이르는 일까지 안타깝게도 드문 일이 아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상임대표 허오영숙)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최근까지 남편(동거인)이나 시아버지 등 가족에 의해 살해된 이주 여성은 거의 20명에 이른다. 


국내 사망 이주여성 명단 (집계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 레*** (2007년 3월 대구, 베트남)
임신한 몸으로 갇혀있던 아파트 9층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떨어져 사망

- 후*** (2007년 6월 충남 천안, 베트남)
입국 한 달만에 남편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해 갈비뼈 18대 부러져 사망

- 쩐*** (2008년 3월 경북 경산, 베트남)
입국 일주일만에 14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

- 체** (2010년 3월 강원 춘천, 캄보디아)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수면제 먹이고 방화하여 사망

- 탓**** (2010년 7월 부산, 베트남)
입국 일주일만에 조현병 환자인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 강** (2010년 9월 전남 나주, 몽골)
가정폭력 피해 몽골여성 E씨를 보호하려다 E씨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 황** (2011년 5월 경북 청도, 베트남)
출산한지 19일 만에 남편에 의해 칼로 난자당해 사망

- 팜*** (2012년 3월 강원 정선, 베트남)
조현병 남편에 의해 사망

- 리** (2012년 7월 서울 강동구, 중국)
평소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 김** (2012년 7월 강원 철원, 중국)
남편의 폭력으로 4일 동안 뇌사 상태로 있다가 사망

- 응*** (2014년 1월 강원 홍천, 베트남)
남편이 목졸라 살해

- 전*** (2014년 1월 경남 양산, 베트남 )
남편이 목졸라 살해

- 서** (2014년 7월 전남 곡성, 베트남)
남편이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

- 아*** (2014년 8월 충남 천안, 캄보디아)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교통사고를 위장해 살해

- 김** (2014년 11월 경기 수원, 중국)
동거남이 살해

- 응*** (2014년 11월 제주, 베트남)
한국 남성이 살해

- 누*** (2014년 12월 경북 청도, 베트남)
남편이 살해

- 이** (2015년 12월 경남 진주, 베트남)
이혼 후 자녀 면접권을 가진 전남편이 아이와 함께 살해

- 부*** (2017년 6월 서울, 베트남)
시아버지가 살해

- A씨 (2018년 12월 경남 양산, 필리핀)
남편이 살해


결혼 이주 여성의 42% "가정 폭력 경험", 68% "성적 학대 경험"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번씩 때려야 한다"는 속담이 존재할 정도로 여성에게 폭력적인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 문화 속에서 외국인 여성들은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다. 한국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정 부모, 친구 등 자신을 도울 사람들이 적거나 한명도 없는 등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남아시아 출신을 무시하는 한국의 인종차별 의식, 현지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이 아닌 결혼중개업체 등을 통한 결혼 과정까지 겹치면서, 이 여성들은 한국인 남편(가족 구성원)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2018년 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387명(42.1%)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이 중 38.0%(147명)가 가정에서 폭력 위협을 당했고, 19.9%(77명)는 흉기로 협박당했다. 성행위를 강요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적 학대를 당한 여성은 무려 68.0%(263명)에 달했다. 


이번 사건으로 결혼 이주 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정 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한번 확인된 만큼, 이주 여성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전국의 이주여성쉼터에 입소한 폭력 피해 이주 여성과 동반아동의 연중 입소 인원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연 평균 1000명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 이민 비자(F6)로 입국해 귀화 신청을 한 이들 중 불허를 받은 사람은 평균 30% 가까이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불안한 한국에서의 체류 신분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결혼 이주 여성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가정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지적한다. (이주민 차별에 대한 논의를 먼저 시작하라, 2019년 5월 9일자 보도자료) 

근본적으로는 결혼 이주 여성을 한국인 남편의 동등한 배우자라기 보다는 자녀를 출산하고, 시부모 등 남편 가족을 돌보는 한국의 차별적인 가족 구조를 온존시키기 위한 존재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살펴봐도 다문화가정의 '성 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언급에 그칠 뿐 실질적으로 이를 담보하기 위한 내용은 전무하다. 

또 이번 사건은 범죄 유형으로만 따지면 가정 폭력 사건이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지난 1일 발간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긴급전화(1366) 상담 중 가정폭력은 18만9057건(53.7%)으로 가장 많았다.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피조사자 10명 중 1명 이상이 배우자로부터 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가정폭력이 한국 내에서 얼마나 다발하는 일인지 알 수 있다. 지난 5월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이 아내를 골프채로 폭행해 살해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가정 폭력은 '사적인 일' 내지는 '사소한 일'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가정폭력 근절이 여성의 안전과 생존권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한국 사회가 다시 한번 깨닫기를 바란다. 바른미래당의 하태경 의원처럼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관계를 우선적으로 걱정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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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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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