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그날의 광주 녹두서점 일가족 이야기
2019.06.15 12:30:40
[서평] <녹두서점의 오월>
오는 18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애홀에서 <녹두서점의 오월>(김상윤·정현애·김상집 지음, 한겨레) 출판 기념회가 열린다. <님을 위한 행진곡>의 김종률 작곡가와 이를 초연한 오정묵 전 광주MBC PD가 출간 축하 공연을 열고, 이들이 이 곡을 녹음할 공간을 빌려준 황석영 소설가도 특별 초대손님으로 참석한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녹두서점을 경영하던 저자 세 사람이 각자의 경험을 나눠 실은 책이다. 이들 가족은 모두 5.18 유공자가 됐다. 책의 출간을 기념해 저자들과 인연이 있던 임진택 판소리명창이 서평을 보냈다. 편집자.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전에, 먼저 밝혀야 할 일이 있다. 작년 초 나는 광주 광산구와 협의하여 판소리 <윤상원가>를 창작하는 작업을 벌인 바 있는데, 이 일이 성사되도록 앞장서준 단체가 '(사)윤상원기념사업회'였다. 제작 관련 협의와 더불어 창작 자문을 얻기 위해 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상윤 형을 만났더니, 뜻밖에 아직 공개하지 않은 원고를 꺼내 나에게 보여주는 것 아닌가? 그 원고는 김상윤 형이 쓴 것, 부인 정현애 여사가 쓴 것, 그리고 동생 김상집이 쓴 것 이렇게 세 종류였다.

내가 그 글들을 바로 읽은 것은 창작판소리에 활용할 목적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 글들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것은 아무리 광주항쟁을 직접 체험했다 하더라도 세월이 이만큼 흐른 지금 그 기억을 이렇게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며, 한 가족 세 사람이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하나의 사건을 겪고 바라본 시각과 생각들이 당시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됨으로써 항쟁의 실체가 더욱 선명히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원통히 돌아가신 이들에 대한 죄스러움과 죽음 앞에서의 악몽이 남아있는 김상윤 형에게 이 글들은 단순 기록 자료만으로 보관되기에는 너무 아까우니 겸손하게만 처신하시지 말고, 광주 지역 이외의 많은 사람이 읽게 하여 후대에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명저로 남을 수 있도록 하자고 설득한 후 모 신문사 출판부로 전달한 바, 흔쾌히 출판을 수락해주었던 것이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한 가족 세 사람이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하나의 사건을 겪고 바라본 시각과 생각들을 각자의 생생한 기억에 바탕하여 입체적으로 구성한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다. 1980년 5월 17일 밤 광주 청년운동권 핵심 중 한 명인 김상윤은 갑자기 들이닥친 예비검속으로 감옥에 잡혀 들어갔고, 남편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정현애는 다음날 새벽부터 구속자 가족들의 연락처이자 집합소가 된 녹두서점을 지키며 놀라운 집중력으로 상황을 정리해나간다. 거기에 군대를 제대한지 두 주일밖에 되지 않은 시동생 김상집이 특유의 과감성과 전투성을 발휘, 공수부대가 판치는 거리로 나서 항쟁의 한복판에 뛰어든다. 

여기에 함께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바로 윤상원 김영철을 비롯한 들불야학 강학들과 나이 어린 야학생들, 박효선을 비롯한 극단 광대의 남녀 단원들, 정상용 이양현을 비롯한 광주 민주운동권 청년들, 여성모임 송백회 홍희윤 회장과 현대문화연구소 임영희 간사 등이다. 뿐만 아니라 광주항쟁 수괴로 조작되어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정동년 씨 부인 이명자 씨, 전남도청 진압 뒤 구속된 명노근 교수의 부인 안성례 씨를 비롯한 구속자 가족들, 광주YWCA 조아라 회장과 이애신 총무 등 항쟁에 직접 간접으로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마치 영화 장면처럼 파노라마로 전개된다.

앞서 나는 이 책의 초고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음을 고백했거니와, 완성되어 출간된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그 감동과 흡인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분명히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3인 3색의 이 글이 애초에 자전적 기록이면서 일종의 목격담임에도 마치 잘 찍은 한편의 영화처럼 너무나 그 인물과 장면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것이 정교한 편집과 교정을 거쳐 세 사람의 체험 기억이 담긴 옴니버스 구성으로부터 드디어 영화 편집의 핵심 원리인 융합적 몽타주 미학에 수준 높게 도달했기 때문이라 나는 평가하고 싶다. 

항쟁의 상황실이 되어버린 녹두서점! 그 녹두서점이 보고 겪은 항쟁의 긴박하고 처절했던 상황을 접하고 나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수구집단의 광주항쟁 폄훼가 얼마나 황당무계한지를 알 수 있다. 80년 5월의 광주항쟁은 군부독재의 부당한 폭압과 잔악한 학살에 광주시민 모두가 분노하여 일어난 정당방위 행위였다. 항쟁의 주체 세력은 처음엔 대학생들이었으나, 다음에는 만행을 목격한 시민 모두가 들고 일어났으며, 마지막 도청 사수에는 주로 기층 민중이 남아있었다. 거기에는 북한군의 침투나 잠입 선동 따위는 전혀 없다. 오히려 총을 들고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은 만약 북한이 사태를 오판하여 개입한다면 총구를 그들에게 돌리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난무한 것은 계엄군 측의 공작 뿐, 계엄사는 도청 내부에서 소위 독침사건을 조작하는가 하면, 무력진압 후에는 가두시위에 앞장선 여성을 모진 고문을 가해 간첩으로 조작하기도 했다.  

<녹두서점의 오월>을 읽고 나면 광주 시민이 총을 들어 목숨을 걸고 독재에 대항하여 싸운 의미를 깨닫게 된다. 또한 녹두서점 사람들이 공포 속에서 끝내 살아남기 위해, 또 사형에 직면한 가족과 동지들을 어떻게든 살려내기 위해, 어떤 고난 속에 어떤 악전고투를 벌였는지 그 전말을 새롭게 접하게 된다. 그것도 딱딱한 보고서가 아니라 잘 만든 장편영화 한 편을 보듯이 아주 흥미롭게 감동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순결했던 광주 항쟁의 생생한 기록이다. 이 책은 녹두서점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그 해 5월 광주는 시민 모두가 한 가족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년이 광주항쟁 40주년! 이 책이 이제라도 전국에 널리 퍼져서 두루 읽히는 것은 물론, 마치 영화처럼 펼쳐진 이 책의 인물과 내용을 소재로 진짜 영화가 한 편 제작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출가이면서 판소리 광대인 내 입장에서는 녹두서점을 소재로 뮤지컬 <레 미제라블> 못지않은 대규모 한국적 음악극(창극)을 한 편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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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y@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