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싸워서 이긴 사람들로 기억하자"
2019.01.17 08:21:03
[프레시안 人스타] 이은의 변호사

2019년 새해 들어서도 '미투(#METOO)' 폭로는 계속 되고 있다.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에 이어, 지난 14일에는 유도 신유용 전 선수가 열일곱 살 때 자신을 지도하던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해 고발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심석희 사건', '신유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이런 책임을 어떻게 방기해왔는가를 깨달았으면 한다. 신유용 전 선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더 이상의 열일곱 살의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며 '신유용 사건으로 기억해 달라'고 했던데,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제 사건에 대해서도 '이은의 사건'으로 기억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코치한테 당한 성폭행이나 직장 내 성희롱 같은 피해로서가 아니라, 구조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이 문제를 꺼내놓은 사람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이 빛나는 이름들을 기억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이은의 변호사는 삼성전기 근무 시절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자 인사 불이익 등 부당한 처우를 받아야만 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삼성과 싸워서 이겼고", 그 과정에서 <프레시안>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회사를 그만둔 뒤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고, 주로 성폭력 피해자들의 변호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이 변호사는 양예원 씨의 변호사이다. 양 씨는 지난해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에 모델로 나섰다가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뒤늦게 폭로, 가해자를 고발했다. 그는 지난 9일 있었던 1심에서 승소했다. 양 씨는 판결이 끝난 뒤, "잃어버린 삶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재판결과가 위로가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댓글 등을 통해 '2차 가해'를 한 이들에 대해서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양 씨의 손을 잡아주며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인터뷰 내내 이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험과 우리 사회의 법, 제도와의 괴리를 강조했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여성들이 '미투'를 통해 쏟아내고 있는 변화에 대한 요구와 바람에 응답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와 함께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는 바뀔 준비가 다 되어 있고, 바뀌었고 우리 사회가 바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이제는 사회가, 정부가, 법원이, 수사기관이 해주어야 한다. 현재 총체적 난국인 것이 피해자는 이미 바뀌었는데, 그다지 바뀌지 않은 틀 안에서 아프다고 소리쳐야 하는 형국이다." 

다음은 지난 14일 있었던 인터뷰 전문이다.

▲ 이은의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2019년 들어 체육계 내에서 '미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데 이어, 유도 신유용 전 선수가 고등학생 당시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이은의 :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감독자와 피감독자, 선생과 제자 관계에서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서로 좋아서 눈이 맞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자가 여성이어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건을 볼 때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가 자신의 역할과 롤에 대해 너무나 무식한 사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학생이고, 남학생이고, 우리가 그들을 '청소년, 미성년'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아동만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니라, 실은 청소년들도 보호해야 한다. '13세 미만'이라는 나이 기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프레시안 : 한국은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만 13세로 하고 있는데, 외국은 만 16세가 보편적이다.

이은의 : 맞다. 한국 나이로 치면, 열일곱 살, 열여덟 살인 것이다. 기획사 사장이 여중생인 연습생을 임신시킨 사건과 관련해서도 피해자가 청소년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교사에 준하는 감독자의 역할과 의무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아직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경찰, 검찰, 법무부까지 통칭해 사법기관은 이런 부분에 대해 훨씬 더 둔감한 면이 없지 않다.

방금 예를 든 기획사 사건에 '아이가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다는 것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관계가 진행되면서 감정의 혼란이 생기고 사랑한다고 느낄 수도 있고 혹은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획사 사장과 여중생의 관계의 첫 출발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이었을까?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 잘 살펴보지 않는다.

감독자의 지위가 명확한 관계 안에서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얘가 나를 유혹해서' '얘도 좋아서 했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된다. 애초에 그 사람은 감독자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감독자의 지위가 업무상 상사인 것과 교사인 것은 다르다. 업무상 상사나 고용주는 보호자는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지도하는 사람은 보호자다. 그러니까 같은 의무가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아이가 합의를 했다고 해도, 더 나아가 섹스를 요구했다고 해도, 심지어 아이들이 성인이 아닌 이상 성적 접촉을 하면 안 되는 의무가 교사에게는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의무를 어떻게 방기하고 있었는지가 '심석희 사건', '신유용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체육계 성폭력 관련해 2008년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안을 내는 등 10년 전에 크게 문제가 됐던 일이다. 10년 동안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 또 매우 유사한 패턴을 갖는다. 감독자가 처음에는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해서 항거하기 힘든 정신적 심리적 상태 빠지게 만들다가 나중에 성폭행까지 저지르게 된다. 피해자가 참다 참다 못 참고 폭로를 하면 가해자는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폭행 사실을 증언해줄 증인 등을 찾으면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다시 감독자로 복귀하고 피해자는 운동을 그만두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은의 : 체육계만 그런 게 아니라 다 똑같다. 이런 경우, 외부 전문가 등을 위촉해서 조사위원회 구성하고 신고를 하라고 해도 제대로 신고를 안 한다.

왜? 피해자들의 심리상태는 초식동물의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초식동물들은 항상 앞을 보면서, 맹수들이 오나 안 오나 살피면서, 풀을 뜯어 먹는다. 약자라서 그렇다. 호랑이나 사자가 먹으면서 주변을 살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그냥 먹는다.

미성년 시절에, 자신의 진로에 대한 지도 혹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가해를 받게 되면, 극도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고 해도, 이게 진짜 조사인지 확신을 갖기 어렵다. 저 멀리서 오는 게 나를 도와줄 개인지, 나를 잡아먹으러 오는 늑대인지에 대해 굉장히 불안해한다. 그래서 그 확신이 없으면, 말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은 더한다. 당사자도 이렇게 말하기 힘든데, 피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어떻게 줄 수 있겠나. 대한체육회나 이런 차원에 맡기는 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가 협업을 통해 전수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폭력만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조사를 남녀 불문하고 해야 한다. 저는 성폭력도 남자 피해자 역시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에 의한 남자 피해자, 또 여자에 의한 남자 피해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연맹이나 협회에서 은폐할 경우, '기관장이나 협회장을 날리겠다'고 하면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본다. 연맹이나 협회들이 거의 다 기금 받아서 운영되는데 정부가 '기금을 끊겠다'고 강력하게 하면 된다. 지금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코치들을 비호하고 감싸던 연맹이나 협회를 믿고 신고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문체부가 '사건을 은폐하는 연맹에 확실히 불이익을 주겠다', '기관장의 책임을 묻겠다'고 하면 다소간이나마 지형이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심석희 사건', '신유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이런 책임을 어떻게 방기해왔는가를 깨달았으면 한다. 신유용 전 선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더 이상의 열일곱 살의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며 '신유용 사건으로 기억해 달라'고 했던데,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제 사건에 대해서도 '이은의 사건'으로 기억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코치한테 당한 성폭행이나 직장 내 성희롱 같은 피해로서가 아니라, 구조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이 문제를 꺼내놓은 사람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이 빛나는 이름들을 기억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 변호사의 경우, 성희롱 피해자가 성폭력 전문 변호사가 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피해자들도 더욱 신뢰하는 것 같다.


이은의 : 아니다. 사실 제 사건은 성희롱 사건이라기보다는, 성희롱 피해를 회사에 고지한 후 회사가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것이 주된 다툼이었고, 언론 보도도 '삼성과 싸워서 이겼다'는 점에 더 방점이 찍혔었다.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는 이유도, '피해자 출신 변호사'라기보다는 이긴 사건의, 직접 사건을 이긴 당사자라서 찾아온다.

제가 '피해자들의 자랑스러운 이름 석 자는 나가도 됩니다'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랬던 사람들에게는 족적이 있다. 말했든, 싸웠든, 이겼든 그 족적에 대한 것이지, 그들이 성희롱으로 기억되길 바라서, 성폭력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성희롱 피해자 출신 변호사'가 아니라 엄밀히는 성희롱 피해와 조직의 불이익에 대해서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유용 전 선수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내가 이 사건을 당했어'를 기억해줘'가 아니라, '내가 이 사건을 당해서 이걸 고소하고, 내 이름을 걸고 말했어. 그리고 그 이유는 다른 열일곱 살의 유용이들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나의 이름으로 기억해 줘'라고 하는 지점과 우리 사회가 이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오차가 있다. 피해자들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부분과 우리 사회가 궁금해하고 기억하고 논하는 부분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 사회는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과 어떻게 처리됐는지와 피해자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일어난 자극적인 상황에 더 관심이 있긴 있다. 그러니 그 사건 선에서 떠올리는 것은 성폭력 피해 사실이 이렇게 널리 알려진 사건으로써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머리에는 결국 성폭력만 남는다.

이런 차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성폭력 사건을 피의자의 이름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차이를 알고 하는 주장이다. 그러니 가해자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어야 한다는 것도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피해자의 의도에 대해 우리가 알고 기억해야 한다는 점이다. 


▲ 이은의 변호사가 양예원 씨의 손을 꼭 붙잡고 있다. 구속기소된 '비밀 촬영회' 모집책 최 모 씨의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 9일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프레시안 : 현재 '양예원 사건' 변호를 맡고 있다. 지난 9일 있었던 1심에서 가해자에게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됐다. 1심은 이겼지만, 가해자가 바로 항소를 했다.

이은의 : 1심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다. 피고인은 원래 항소를 다 한다. 양예원 씨 사건이든 아니든, 피고인 입장에서는 그대로 무죄 다툼을 할 것이라고 해도 항소해야 할 것이고, 자기가 자백 반성을 할 것이라고 해도 양형을 줄이려고 할 것 아닌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항소는 안 할 수가 없다.

프레시안 : 1심 끝나고 기자회견할 때 양예원 씨 손을 계속 꼭 잡고 있었다. 어떤 의미였나?

이은의 : 양예원 씨가 많이 떨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엄청 과감해 보이겠지만,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다. 이제 한국 나이로 스물일곱 살이고, 스튜디오 촬영을 했던 때가 고작 스물, 스물하나, 이럴 때였다. 양예원 씨가 용감하고 똑똑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 2차 가해까지 입고 이제야 '이렇게 나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니, 떨리는 자리인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수고했다, 괜찮다는 의미로 옆에서 손을 계속 잡아줬다.

그날 예원 씨가 "뭐라고 얘기해요?"라고 물어봤을 때 "지금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메일함이 폭탄이 됐다. 너무 많은 분들이, 양예원 씨 2차 가해 관련해 많은 증거 자료를 보내주고 있어서, 지금은 일단 메일을 모아만 놓고 있다.

프레시안 : 2차 가해 관련해 '악플러를 법적 조치하겠다'고 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은의 : 저는 '언론 프렌들리'한 변호사이지만, 댓글을 갖고 기사를 쓰는 것에 대해선 매우 유감이다. 어떤 사건에서든 댓글이 여론을 대표하고 있지 않다. 특히 성폭력 사건에서는 일단 한쪽의 목소리가 커지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일단 댓글을 달지 않는다. 자기 커뮤니티에서만 이야기한다. 그래서 다른 온도의 커뮤니티는 보지 않고, 기사에 달린 댓글이 마치 네티즌 여론인 것처럼 기사를 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편향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양예원 씨 사건도 보면, 분명 피해자는 일관되게 자물쇠를 본 것은 아니라고 얘기를 했는데, 한두 명이, 소수의 어떤 사람들이 '야, 네가 그 당시에 거짓말했잖아. 문 잠근 것 봤다고 했고, 어쩌고' 이렇게 몰고 가면, 그 이후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양 씨는 이미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다.

양예원 씨 사건이 전형적인데, 우리 사회에 '깨진 창문의 원리'가 있다. 누가 어느 집을 지나가는데 창문이 깨져 있다. 누가 거기다가 휴지를 던져. 이렇게 누가 휴지를 하나 버리고 나면, 그걸 지켜보던 사람이 저쪽에서 '아, 저기는 휴지통인가?'라고 생각해 자기도 휴지를 버려. 그리고 휴지가 깨진 창문 안에 두 개 세 개 있으면, 다른 사람도 지나가면서 '아, 여기 뭔가 문제가 있는데?' 생각하다가도 사람들이 휴지를 버린 걸 보고, '여기는 휴지통'이라고 말하며 휴지를 버린다.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의 성폭력, 미투 사건에 많이 일어나고 있다. 자기들이 피해자가 맞다고, 누가 봐도 거짓말을 안 할 것이라고 매우 확신되는, 아동 성폭행 사건이나 매우 성공한 사람의 경우, 금메달을 땄다거나 검사인 경우 이러면 믿어준다.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어'라고. 그런데 '그 외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어'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있다.

제가 93학번인데, 대학에 들어갔을 때 여성학 책을 보면 가부장제는 여자를 '성녀'와 '창녀'로 보는, 혹은 '결혼할 여자'와 '술집 여자'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있다. 이게 문제다, 이런 게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이와 유사한 이분법적 구분이 일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예전에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면 안 믿어줄 것 같아서, 욕을 먹을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는데, 지금은 말은 할 수 있다. 그런데 말한 다음에 욕을 먹고 의심을 받는다. 우리 사회가 변한 것 맞나? 묻고 싶다. 그렇게 별로 바뀌지 않았다, 제가 볼 때는.

프레시안 : 양예원 씨 1심 선고와 같은 날, 안희정 항소심 결심공판이 있었다. 위력 행사와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인정 여부가 관건인데 어떻게 전망하나?

이은의 : 제가 관여하지 않고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는 왜 피해자에게 '구체적이고 일관적인 진술'을 넘어 '구체적이고 일관적인 감정'을 요구하는가라는 의문이다. 우리가 피해자들에게 되게 구체적이고 일관적인 진술을 넘어 구체적이고 일관된 어떤 감정과 태도들을 요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한 치도 어긋남 없는 자기 기억의 재현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 역시 폭력은 아닐까?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중요한 지적이다.

이은의 : 양예원 씨도 본인이 촬영 날짜를 잡아달라고 하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맨 처음 비공개 촬영회에서 있었던 추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어차피 이미 이만큼 찍혔으니까 여기서 찍을까?' '여기서 잘 보여서 유출되지 않게 해야지' 등 다양한 마음이 들 수 있다. '너는 일관되게 그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어야 해' 이런 시각 자체가 폭력적이다.

결과적으로 무죄 판결이 난 기획사 사장과 여중생 사건도 마찬가지로, 피해자에 대한 이런 전형적인 인식에 기반한 판단이었다.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했던 애정표현이 있다. 그렇다고 처음 이 둘의 관계의 시작이 '강간'이 아니라 피의자가 말한 것처럼 '사랑'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해부터 우후죽순으로 미투 폭로가 이어지고 있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동안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해 말하지 못한 이유는 말해봤자 가해자 처벌은 제대로 되지 않고 피해자만 상처를 받는 일이 통상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범죄가 다뤄지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미투 사건들도 법정에서 다뤄지는 방식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이은의 : 물론 법은 정의도 추구하지만, 사회 안정도 추구하기 때문에 법이 사회보다 먼저 바뀔 수는 없다. 이 지점은 인정한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와 함께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는 바뀔 준비가 다 되어 있고, 바뀌었고 우리 사회가 바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이제는 사회가, 정부가, 법원이, 수사기관이 해주어야 한다. 현재 총체적 난국인 것이 피해자는 이미 바뀌었는데, 그다지 바뀌지 않은 틀 안에서 아프다고 소리쳐야 하는 형국이다.

최근 언론 칼럼에 썼던 내용인데, 예를 들어 얘기해보고 싶다. 한 여성이 가해자가 강간을 시도하다가 팔꿈치로 가슴을 눌러 가슴뼈에 금이 갔는데, 이것을 증거로 고소를 했는데 검찰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 이후 가해자는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했다. 피해자이면서 피의자로 오랫동안 법정 싸움을 하다가 저에게 찾아온 것이다. 관련 서류를 찾아보다가 너무 황당한 기록을 찾아냈다. 검찰이 불기소 이유서를 보내면서 피해자에겐 '무고 혐의가 없다'고 쓰여 있는데, 가해자가 받은 것에는 그런 말이 안 쓰여 있었다.

그래서 문서를 변조했다고 생각하고, 가해자를 고소했다. 경찰이 조사를 해보니, 해당 지역 검찰 전산실에서 이렇게 떼어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당시에 어떻게 발급이 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고, 이렇게 발급될 수는 있다고 한다. 저는 이런 말이 금시초문인데, 그러면서 경찰이 고소를 취하하는 게 어떻겠냐고, 검찰을 압수수색할 수는 없지는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가해자는 증거불충분으로 기소가 안 됐을 뿐이지 피해자가 무고를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인데, 이 중 무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삭제해서 가해자가 줬을까? 검찰이 전산실 직원에게 요구한 것인지, 아니면 전산실 직원이 임의로 지운 것인지, 어느 경우더라도 충분히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판결문은 변조하면 바로 문제가 되는데, 검찰은 중간에 이렇게 임의로 뭔가 하나를 삭제해서 발부해도 알아낼 방법도 문제제기해서 책임자를 처벌할 길이 없다. 이런 권한을 도대체 누가 줬나? 만약 권한을 준 적이 없다면, 내부에서 징계를 해야 하는 문제다. 게다가 그로 인해 피해자가 고소를 당해 또 다른 피해를 보고 있는데, 이걸 조사할 수 없다고 수사기관이 고소를 취하하라고 간접적으로 완곡하게 종용하고 있다.

이렇게 피해자 입장에서 성폭력 사건이 사법체계에서 다뤄지는 과정을 보면 여전히 너무 비어있는 구석이 많다.

프레시안 : 앞서 댓글을 통한 2차 가해 문제에 대해 잠깐 언급했는데, 현재 매우 심각한 문제이면서 동시에 교육과도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댓글을 기반으로 '미투가 성별 갈등을 조장한다'는 식으로 백래시의 빌미로 삼기도 한다.

이은의 : 지금과 같이 처벌하면 안 된다. 2차 가해성 댓글을 다는 일부 네티즌들은 '벌금 한 50만 원, 100만 원 정도면 끝난다'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고,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이버상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이 몰래카메라를 통한 불법 촬영 범죄가 시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라고 본다. 온라인에서의 에티켓이나 룰이 현실 세계에서의 상황처럼 또는 그 이상 엄정해야 한다는 걸 사법기관이 고민해야 할 때다. 온라인에서 섬세한 법이나 법의 적용이 지금 굉장히 부족하다. 어쩌면 이건 성폭력 사건보다 더 갈 길이 멀다고도 할 수 있다.

▲ 이은의 변호사는 '삼성전기 98사번 이은의 대리'로 산 12년 9개월의 기록을 담은 책 <삼성을 살다>(사회평론 펴냄)와 우리 시대 차별과 갑질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담은 책 <예민해도 괜찮아>(북스코프 펴냄)를 냈다. 그리고 대중들을 상대로 한 강연 모음집 <불편할 준비>(시사인북 펴냄)를 공저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누고 싶다. 학교 수준에서 성교육이라는 것은 지금도 굉장히 추상적이고 단선적이며 실질적인 내용은 빠져있다. 여성들에게 실제 어떤 상황이 일어났고,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남성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뿐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도 성교육은 그냥 의례적으로 시간만 채우면 되는 차원의 교육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은의 : 대학생들 사이에 이런 사건들이 많이 있다. 학교에서 술을 마시고 시간이 늦어서 귀가하지 못해서 동아리 방이나 서로의 자취방에서 자다가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가끔 발생한다. 그러면 검사들은 '누가 술 먹고 거기서 자래?' 이런 생각으로 불기소를 너무 쉽게 낸다. 수많은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우리가 이런 내용을 가르친 적이 있나? '네가 알아서 몸 간수를 했어야지'라는 가해자 옹호의 논리로서가 아니라, 피해자 입장에서의 예방 조치라는 걸 우리가 제대로 교육하고 있을까?

가령 학교나 회사 같은 공동공간은 시건장치(잠금장치)가 사실은 명확하지 않아서 내부자들은 들어올 수 있을 때, 그런 공간에서는 자는 것 좋지 않다. 그럴 때는 부모에게 연락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던가,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가 경찰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던가, 아니면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로 가라. 호텔은 체크아웃할 때 돈을 내니까 보호자에게 연락해 돈을 가져다 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뒤에 용돈으로 갚으면서 한 달 동안 반성하면 된다. 이런 방법을 가르쳤냐는 것이다. 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 집을 몰라서 여관에 데리고 갔어요' 이런 사건이 엄청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찰을 불러야 한다. 경찰을 통해 이름과 인적 사항 조회하면, 집 주소나 연락처가 바로 나온다. 그런데 이런 게 교육이 안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가 먼저 안겨 왔고, 그래서 같이 여관에 갔는데, 서로 원해서 자게 됐다'는 가해자 변명이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또 매우 중요한 지점은 '준강제추행', '중간사건'은 피해자가 불리하다. 기억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가해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가해자가 자기에게 불리한 말을 하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 그에 의존해서 그 진술을 따라가다 보면, 사건이 잘 되겠냐는 것이다. 쓰러져있는데 끌고 가는 모습이 CCTV에 담겨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바람처럼 잘 안 된다. 


그래서 저는 가해자를 옹호하기 위한 피해자 교육이 아니라, 피해자를 위한 피해자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방식으로 가해자들에게 가해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차용되지 않는 그런 젠더 감수성 교육이 무엇보다 사법기관과 적용자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성희롱을 하고 성폭력을 하면 잡혀가' '성희롱·성폭력을 당하면 신고해야 해' 이런 식의 교육을 하고 있다. 중간이, 중요한 행간들이 빠져있다.

또 하나, 학교에서 성교육은 자격을 가진 성교육 강사들이 해야 가점을 받는 식으로 되어 있어서 이를 좀 다변화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 의사나 법조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굉장히 다를 수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교육을 좀 다양하게 할 수 있는 다각화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人스타'는 프레시안이 선도적으로 제기하거나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이슈와 연관된 인물을 선정해 진행하는 인터뷰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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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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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명선 기자
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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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과 길거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지금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기자' 명함 들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