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을 둘러싼 세 가지 오해와 진실
2017.03.04 16:07:28
[기고] 복지국가와 기본소득 아이디어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본소득을 내건 녹색당과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복지국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주로 엇갈리는데요.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가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 입장을 밝히자, 정원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에 이어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가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프레시안은 반론, 재반론을 언제든 환영합니다. 편집자

(☞원문 바로 가기 :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원문 바로 가기 : 이재명의 기본소득이 가짜라니요?)

지금 정치 상황에서 가장 도드라진 정책 아젠다 중 하나는 '기본소득'이다. 특히 이재명 예비 후보가 내건 토지 배당은 (액수가 매우 적긴 하지만)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한다는 의미에서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청년배당은 사실 사회수당이지만 이른바 노동 가능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준다는 의미에서 기본소득의 정신과 닿아 있다. 그럼에도 사회수당에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모습 때문에 기본소득 지지자들만큼 불편한 사람들이 복지국가론자들이다.

정치인과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기본소득을 '가짜'라고 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의 한국형 복지국가라고 말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이 공동대표의 주장은 또 다른 혼란을 낳고 있다. 이상이 공동대표는 '지금 기본소득 제도를 반대하는 이유'라는 칼럼에서 지금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가짜'라면서 진짜는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충분히 주는 소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예로 독일의 좌파당을 들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한국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을 마치 약을 팔기 위해 온갖 거짓말로 대중을 현혹시키는 못된 사람들로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본소득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우파 기본소득론자와 좌파 기본소득론자는 다르다

이상이 대표도 잘 알고 있듯이 기본소득은 정치적 스펙트럼의 여러 지점에서 지지받고 있으며 반대자도 마찬가지로 분포하고 있다. 특히 우파 기본소득론자들의 목표는 기본소득으로 기존의 다양한 복지 제도를 대체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이 대표는 "좌파든 우파든 기본소득은 복지국가를 대체하려는 기획이다"라는 소제목 하에서 우파 기본소득론자들만 거론하면서 좌파까지 싸잡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예로 든 독일 좌파당, 한국의 노동당과 녹색당,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모두 기존의 복지 체제 전부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고 한 적이 없다. 교육과 의료 등 이른바 사회서비스의 형태로 주어지는 게 바람직한 복지 제도를 기본소득으로 맞바꾸자고 하지 않으며,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이런 사회서비스의 공적 성격을 강화하고 전달 체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권리로서 충분한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말하지 않았고, 의도하지도 않은 것을 들고 나와 애써 비판하는 이유는 이상이 공동대표가 자신이 그리는 복지국가상과 '진짜' 기본소득이 대립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이 공동대표가 정작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가짜' 기본소득이 아니라 진짜 기본소득이다. 그가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우선적이고 근원적인 이유는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국가를 대체하려는 기획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상이 대표는 복지국가 체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복지국가 체제는 국민 모두에게 생애주기에 걸쳐 보편적으로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그에 이어지는 문장이다. "복지국가들은 소득의 보장을 위해 보편주의 원칙의 사회보험과 사회수당 제도를 운용한다." 사회수당이야 범주별로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외로 할 수 있지만, 사회보험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물론 면제할 수도 있고 상징적인 액수만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보험료를 납부하고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소득은 어디서 나오는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고용, 노동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상이 공동대표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복지국가 체제에서는 근로 능력이 있는 성인들은 누구라도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도록 하고, 국가는 국민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 복지국가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용 노동 혹은 완전 고용! 복지국가는 하나의 모델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현상이기도 하다. 현대 복지국가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미국 주도로 재편된 전후 자본주의 체제의 장기 호황을 토대로 한다. 대공황으로 인한 사회 해체의 위기, 총력전 속에서의 국민(people)의 동원, 공산주의의 확대 등은 전후 세계의 이데올로기적, 상식적 최저선을 만들었고, 이는 빈곤 퇴치와 상대적 평등의 강화를 목표로 하고, 케인스주의를 운영 방식으로 하는 복지국가 경제복합체를 탄생시켰다. 이 복지국가 경제복합체의 기초는 완전 고용과 잘 조직화된 노동조합의 상호 작용이다. 이로부터 적절한 소득, 충분한 소비,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자원의 동원 등이 가능했다. 이것이 보통 베버리지-케인스 모델, 즉 완전 고용, 사회보험, 사회서비스, 공공부조 등으로 이루어진 전후 복지국가의 구조이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사회보험에 기초한 모델은 구조상 남성 가장의 고용 노동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젠더 평등이라는 목표 하에 여성의 경제적 진출과 복지국가의 진화가 이루어지긴 했다. 하지만 '노동력의 여성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노동의 유연화와 신자유주의의 진전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회보험의 확대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약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1980년대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산 조사에 기초한 급여에 의존하게 됐다. 유럽에서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다시 떠오른 건 이런 맥락에서였다. '남성 중심적의 완전 고용'을 전제로 한 복지국가 체제는 '개혁'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후 주류가 된 것은 복지국가 모델은 그대로 놓아두고 그 전제가 되는 완전 고용의 달성을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 투자 국가' 같은 방향이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불안정한 노동체제의 확산과 사회복지 비용의 삭감이었다. 또한 더 우려되는 것은 '완전 고용의 신화'가 폴란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키가 생각한 것과는 반대로 배타주의와 유사파시즘의 대중 정치적 동원의 구호가 되었다는 것이다.

'진짜' 기본소득은 고용과 뗄 수 없는 복지국가 모델과는 달리, 고용과 분리되며 권리에 기반한 소득을 주장하는 아이디어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필요'와 '직접적 기여'의 윤리에 기초한 기존 복지국가 모델과는 거리가 있다. 기존 복지국가 모델에서도 복지 수급과 접근을 권리라고 본다. 하지만 이는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권리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에서 말하는 권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이는 자연적, 사회적 자원을 공유로 보고 여기에 모두가 n분의 1의 몫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 이는 자격에 따른 것이지 기여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최근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본소득론자는 '작은 정부' 옹호?

최근 들어 기본소득 지지자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케인스주의 계열의 경제학자들로 더 이상 고용 노동을 통한 유효수요의 창출이 어렵다는 인식 속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흔히 IT업계 종사자들인데, 이들은 인공지능(AI)과 로봇화로 상징되는 제4차 산업혁명은 인간 노동력을 불필요하게 만들며 따라서 임금과는 다른 형태의 소득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이들은 (이들만은 아니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경제의 특성, 즉 한계비용의 제로화와 모두의 기여 등에 주목하면서 앞서 말한 것과 유사한 공유와 몫이라는 사고를 하면서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으므로 기본 소득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연합뉴스


사실 제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없애버릴지 그렇다면 얼마나 없어질지를 지금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 이상이 공동대표는 제4찬 산업혁명에 대처하는 한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기존의 일자리는 줄어들겠지만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에서 그랬듯이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정말로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겨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런 질문은 가능하다. 일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은 어떻게 되는가? 그 다음으로 기계가 인간 노동을 절약할 수 있다면 그게 나쁜 것인가? 앞의 질문에 대해 이상이 공동대표는 "일자리들 간의 임금과 복지 격차를 최소화해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총체적인 개입주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그 개입주의 전략의 주요한 한 가지 방향은 노동시간 단축이어야 한다는 것을 덧붙인다. 노동시간 단축은 인간 노동의 절약이라는 방향과 맞물려 모두가 자유 시간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과 관련이 있다. 물론 우리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노동자들의 협상력 강화 및 개인들의 자유로운 활동 선택으로 고용노동의 질이 더 좋아지리라고 예상한다. 즉, 기본소득과 복지국가 모델은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기본소득 반대 이유가 재정 때문?

끝으로 이상이 공동대표는 '진짜' 기본소득, 그의 주장대로라면 1인당 최저 생계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 이유로 그는 초보적인 복지국가 단계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복지 체계를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우선적인 재정 순서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기본소득에 반대할 때 보통 많이 나오는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는 이유를 든 셈이다. 재원 마련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조금 넘고, 조세 부담률이 24%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상이 공동대표가 말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라도 상당한 수준의 증세가 불가피하다. 우리는 조세부담률을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34%까지는 올려야 한다고 보고, 이럴 경우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과 질적으로 향상된 사회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어떤 방식의 조세 개혁을 할 것인가이다.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 및 소득세와 법인세에 대한 누진세 확대라는 전통적인 방향이 당연히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이자 자산 양극화 시대인 오늘날에는 이것만으로 불충분하다. 토지를 비롯한 자산에 대한 과세와 공유부에 대한 과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앞서 말한 공유와 몫이라는 기본소득의 정신에 잘 부합하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재명 후보가 말하는 토지 보유세 15조 원을 2만5000원씩 나누어줄 게 아니라, 더 급한 데 써야 한다"는 주장은 과녁을 잘못 겨냥한 것이다. 토지 보유세는 정부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걷는 세금이 아니라 공유에 기초해서 배당을 위해 걷는 것이고 곧바로 모든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공적 사회보장이라는 생각이 등장한 것과 같은 시기에 등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일반화된 것은 고용노동과 사회보험에 기초하여 필요에 따른 보장을 하는 복지국가이다. 이에 반해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특정한 시기에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직 충분히 해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윤리 및 국가의 통치 방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기술적, 경제적 변동은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기초하고 있는 공유와 배당이라는 아이디어를 새롭게 전개할 수 있는 틈을 열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기본소득이 이제는 현실적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복지국가는 하나의 모델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현상이기도 하다. 역사적 현상에는 그 배경과 고유의 구조가 있기 마련이며 그것이 한계에 도달했다면 다른 것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물론 복지국가를 시대에 맞게 고치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까지 폄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앞서도 말했듯이 기본소득과 사회복지가 같은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고, 같은 목표, 즉 인간의 자유, 정의, 존엄을 추구한다면 좀 더 개방된 자세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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