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의 고발, 그리고 김병로의 고발
2018.07.10 09:41:18
[양지훈 변호사의 법과 책] <부러진 화살>

사법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2018년 여름 <부러진 화살>(서형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2009년 초판)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은 해직 교수인 김명호가 2007년 1월 학교를 상대로 한 교수지위확인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받자, 항소심 재판장을 집으로 찾아가 직접 석궁을 발사한, 이른바 석궁 사건의 형사재판을 다룬다. 법원 안에서 펼쳐지는 변호인과 피고인, 검사의 공방과 이에 대한 법관의 판단을 보여주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법정 르포물이다. 초판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는 않았던 것 같고, 3년 후 같은 이름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뒤늦게 화제가 되었다. 책의 부제는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였다.

책을 처음 접했던 2009년에 나는, 형사소송법을 접하지도 못한 법학전문대학원 1년생이었는데 재판부의 '불공정'한 재판 진행에 매우 분개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9년 만에 다시 읽은 <부러진 화살>은 조금 심드렁한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고, 오히려 다른 지점에서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로스쿨 1학년의 강렬하지만 어설펐던 감흥은 어느덧 사라지고, 6년 남짓의 변호사 생활만큼 달라진 생각의 차이와 최근의 사법 스캔들로 배가된 다른 감동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피해자 양승태 대법관의 명예훼손 고발장이 말해주는 것

법원행정처발 사법 스캔들은 이제 검찰에 의해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의 3차 조사보고서 공개 직후 검찰 조사 전 수사 개시와 관련된 쟁점 중 하나는, 대법원장 혹은 대법관이 직접 관련 범죄의 고발 주체로 나서는 것이 적정한지 여부였다.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이 사건에 대해 직접 고발하면 이후 진행될 재판의 공정성이 문제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이다. 사법부 최고 법관이 고발 주체가 되는 것이 범죄 성립 여부를 떠나 이후 진행될 수사에서도 공정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6년 2월경에는 당시 양승태 대법관과 몇몇 고위 법관들이 명예훼손죄의 피해자로 기재된 고발장이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사실이 있다. 당시 양 대법관 등은 고발장 접수 과정에서 이를 방조하거나 묵인함으로써 수사 개시의 발단이 된 것이다. 형식상 고발장은 당시 대법원 경비대장을 고발인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부러진 화살> 38쪽). 그러나, 명예훼손죄는 그 때나 지금이나 반의사불벌죄로써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재판 과정에서 양 대법관 등이 처벌에 반하는 의사를 명시할 경우 피고인 김명호는 처벌받지 않는 것인데, 책에서 변호인이 처벌 의사를 법원에 확인하자는 주장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2007년 석궁 사건의 형사 피고인이었던 김명호 교수와 양승태 대법관의 관계는 10여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양승태 대법관은, 대학의 입시문제 오류를 지적하고 해직된 김명호 교수가 1997년 처음 부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을 당시 항소심을 담당했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였다. 사건 패소 이후, 2005년경 김명호 교수는 ‘양승태 대법관님, 입시부정도 대학의 자유재량입니까?’라는 피켓을 들었던 것이 명예훼손의 범죄 사실로 고발된 것이다(<부러진 화살> 33쪽). 대법원 경비대장이 직접 고발인으로 등장하게 된 경위는 무엇이었을까.

고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담당 검사의 기소로 재판으로 이어졌고, 2007년 8월 17일 김명호의 명예훼손 사건 재판에 출석한 경비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6년 3월경 제가 법원 경비 담당 책임자로서 고발하게 된 것은 대법원 재판 사무국에서 여러 가지 검토해서 고발장을 작성을 했는데 제 이름으로 하자고 해서 () 사주가 아니고요. () 지금 저에게 고발 취하할 생각이 있는지 묻고 계신데, 이 건은 명의만 제가 한 것으로 되어 있는 거지만 고소는 전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 어렵습니다. 혼자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허위인지는 재판 사무국에서 판단을 하는 것이지 저는 잘 모릅니다."(<부러진 화살> 73~74쪽).

결국, 김명호는 이후 석궁 사건 재판과 명예훼손 사건이 병합·심리되어 명예훼손죄에 대해서도 일부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 법관이 어떤 범죄의 피해자로서 피의자를 고소하거나 제3자가 이를 고발하는 것은 각각 권리 행사의 일환이므로 논하기 어렵다. 다만, 대법관이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된 사건에서 대법원 경비대장 명의의 고발장이 접수되고 그 가해자가 형사 재판을 받게 된 것은 조금 묘한 장면이라고 하겠다. 경비대장이 법정에서 '사주가 아니고요'라고 말한 것도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는 진술이다. 특히, 법정 증언과 같이 고위 법관들이 대법관을 위하여 고발장을 대리 작성해주고 이를 검찰에 접수하게 한 것은, 최근 법원행정처 엘리트 법관들의 '충성 행위'와 겹쳐 보여, 법원을 바라보는 변호사인 나는 착잡한 감정을 숨기기 어렵다.

대법원장의 또 다른 고발, 가인 김병로의 반민특위 고발 사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법관들의 존경을 받았던 이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민법, 형법 등 기본 법률을 기초한 법관, '한국 사법정신의 초석'을 세운 법관, 꼬장꼬장한 딸깍발이 선비 이미지를 가진 법관, 가인 김병로.

과거 우리 현대사엔 대법원장이 직접 행정 권력의 수장들을 검찰에 고발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제헌국회가 1949년 친일파인 민족반역자에 대한 처벌을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김병로 대법원장을 재판장으로 하는 특별재판부를 구성했었다. 그러나 일제의 고등경찰이었던 자들이 여전히 경찰의 실권을 잡고 있었고, 특히 이승만 대통령 역시 반민특위법의 실행을 방해하고 있던 와중에,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여 특경대를 해체하고 그들의 무장을 해제시킨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한 김병로 대법원장은 이러한 행동이 상부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당시 내무차관 장경근, 치안국장 이호, 시경국장 김태선, 중부서장 윤기병 등 6명을 상해 및 공무집행방해죄로 검찰에 고발한 것이었다(한국의 법률가상(최종고), 길안사).

앞서 사법피해자가 들었던 피켓을 이유로 시작된, 대법관의 명예훼손 고발 사건과 초대 대법원장의 고발 사건의 차이가 보여주는 지점은 명확하다. 법관의 진짜 명예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김병로 대법원장은 1953년 법관훈련회의에서 법관의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법관의 몸가짐은, 첫째 세상 사람으로부터 의심을 받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만약 일반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면 법관으로서는 최대의 명예손상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서로서로가 주의를 환기하여 공통적인 책임감을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명예실추는 법관 전체의 명예실추가 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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