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어? 내 새끼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2018.07.05 14:26:38
[죽음 그후 ②] 외식업체에서 일하다 목숨 끊은 이 군 이야기
제주도, 한 고교실습생이 프레스에 짓눌려 사망했다. 7개월이 지났다. 이제 누가 관심을 두고 있을까.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LG유플러스 여고생 자살, 제주 음료회사 사고... 연달아 특성화고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과정에서, 그리고 현장실습으로 취업한 학생이 일하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조기취업형 현장실습 전면 폐지' 계획을 발표하면서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없애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일선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재학 학생의 반발이 거셌다.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없앨 경우,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교육부는 두 달 후인 2018년 2월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안정적 정착 방안(안)'을 발표한다. 문제가 되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게 아닌, 보완·수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안전이 확보된 경우에 한해 겨울방학 전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즉, 안전 등 일정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를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선정한 뒤, 이러한 기업에 한해서만 학기 중 취업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선도기업으로 인정되지 않는 기업은 겨울방학 이후, 즉 학기가 끝난 뒤 취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직업교육을 위한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땜질식 처방'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다시 제2의 LG유플러스, 제주 음료회사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이 문제일까. 

<프레시안>은 과거 특성화고 현장실습 과정에서, 그리고 이후 취업했다가 사고를 겪은 학생들의 유가족을 만났다. 그들이 생각하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제도, 그리고 특성화고 시스템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들어보았다. 


누가 우리 아들을 죽였나요?

2016년 5월 8일 일요일 아침. 이날을 아버지 이상영 씨는 아직 잊지 못한다. 새벽 7시께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급히 경찰서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안 좋은 일이 생겼다며 아들의 죽음을 전달했다. 급히 옷을 입고는 달려나갔다. 전날 "잘 다녀오겠다"며 일하러 나선 아들이었다. 

그날 밤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토요일이면 회사 회식을 가끔 하는지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전에도 회식이 늦어지면 동료 집에서 자고 오던 아들이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인 줄 알았다. 그렇기에 아들의 부고(訃告)를 믿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겠지".

하지만 달려간 경찰서에서 확인한 아들은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자살이라고 했다. 아들에게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싸늘한 시신은 아들이 분명했다. 

아들은 7일 새벽 5시, 일하던 외식업체 음식 창고 앞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아들의 옆에는 외식업체 근무복이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유서는 없었다. 자연히 아들이 죽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다만 남은 사람들이 생전 그가 남긴 자취로 그의 죽음을 추적할 뿐.

경찰서에서, 장례식장으로, 돌고 돌아 아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 그는 지친 발걸음을 떼다 문 앞에 놓인 건강보조식품을 발견했다. 생전 아들이 택배로 주문해 놓은 어버이날 선물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어버이날 선물까지 준비했던 아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아들의 일을 아버지는 몰랐다

특성화고에 다니던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12월, 현장실습으로 대형프렌차이즈 외식업체에 취업했다. 아들 전공과는 관련 없는 취업이었다. 아들 전공은 인터넷쇼핑몰.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에 능했던 아들이었다. 특성화고에 진학해 그쪽 분야로 진출하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아들의 뜻은 확고했다. 마지못해 허락했다. 

아들은 고등학교 3년을 착실히 보냈다. 그 결과 전산, 회계 등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5개나 획득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취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아들이 전공과 상관없는 외식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간 이유다. 

외식업체는 담임교사가 추천해 준 곳이었다. 현장실습을 할 당시, 학교 담임교사는 아버지를 학교로 불렀다. 취업설명을 위해서였다. 아버지도 아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제일 궁금한 게 아들이 자기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현장실습 나가는 데 괜찮은가였다. 담임을 만나 제일 먼저 그것부터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담임은 그 외식업체의 장점만을 늘어놓았다. 규모가 대기업 수준이고 연봉도 높다고 했다. 그런 조건이기에 잠깐 일하면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그 말을 믿고 아들을 맡겼다."

그렇게 아들은 그곳에서 약 6개월 동안 일했다. 그간 아버지는 까맣게 몰랐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후에야 알게 됐다. 아들이 그곳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일했는지.

일한 지 4개월 만에 10kg이 빠진 아들

'외식업체 00지점 양식부 막내'가 아들의 직책이었다. '수프 끓이기'를 담당했던 아들은 출근 첫날부터 숨지기 전날까지 매일 오전 11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근무했다. 더구나 아들은 지각할 경우, 대체근무를 하기 위해 더 일찍 출근해야 했다. 스케줄대로라면 ‘오전 11시 출근’을 해야 하지만 이러저러한 ‘벌칙’ 명목으로 2시간 먼저 나오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집에서 업체까지는 1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집 근처에 외식업체가 운영하는 지점이 있었으나 그곳은 이미 인력이 채워져 있기에 일부러 먼 지점으로 가야 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자정이 넘기 일쑤였다. 

'학교-학생-기업' 3자가 함께 작성하는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는 하루 7시간 근무, 최대 1시간 연장 근무가 가능하다고 돼 있었다. 또한 아들과 업체 간 따로 맺은 근로계약서에도 '하루 11시간 미만 근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았던 셈이다. 

일도 쉽지 않았다. 아들은 수프를 발에 쏟아 2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3주 동안 4번 병원을 방문해서 화상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그럼에도 회사를 쉴 수 없었다. 수포가 생기는 화상이었으나 주방용 장화를 신고 계속 일해야 했다. 

직장 내 괴롭힘도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이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욕먹기"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친구와 카카오톡 대화에서는 "뛰어내리려 하는데 보러 올래"라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원래도 좀 마른 편이었던 아들은 출근 4개월 무렵엔 몸무게가 10㎏이나 빠져 48㎏밖에 나가지 않게 됐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아들은 그날도 벌칙으로 오전 9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하지만 1시간 지각을 했고, 상사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오후에 매장을 나간 아들은 다음날 새벽, 해당 매장이 운영하는 식료품 공장 바로 앞 골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만 들었더라도...

아버지는 부당한 처우를 견디다 못해 아들이 자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찰과 고용노동부 조사에서는 이를 밝혀내지 못했다. 업체 상담일지, 동료 증언 등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자연히 아들의 죽음을 두고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게 됐다. 자식을 그런 업체에 보낸 학교에 항의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들이 죽은 뒤로는 한 번도 담임교사를 본 적이 없는 아버지였다. 아들을 그런 곳에 보내서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만 들었다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는 않았을까. 늘 회의하는 아버지다. 

"아들 사고 이후, 학교를 찾아갔다. 그런데 담임교사는 이미 자리를 피한 뒤였다. 겨우 교장을 만나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교장은 자기 책임은 없다며 원칙대로 했다고 앵무새처럼 말할 뿐이었다. 국가 정책대로 움직였기에 자기네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했다. 되묻기도 했다. 졸업 후 자살한 사건이나 사고에 의해 죽은 사건도 모두 학교에서 책임지라고 하면 어느 학교가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고. 그러면서 졸업생들까지 A/S를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자기네는 정부와 교육청 지시를 따랐으니 따지려면 교육청과 국가를 상대로 싸우라고 했다. 그러지 않으려면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자신이 순진하게 담임교사의 말만 믿은 것을 후회했다. 뒤늦게 알게 됐다. 취업률을 높여야 하는 담임교사 입장에서는 성과를 위해 아들을 그런 업체에라도 취업시켜야 했다. 아버지 자신에게 온갖 달콤한 말을 늘어놓으며 아들을 그런 업체에 가도록 부추긴 이유다. 

야속했다. 담임교사는 이미 알고 있음에도 아버지나 아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힘든 부분이 어떤 게 있는지, 임금은 어떻게 되는지, 일하는 데 힘든 부분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줬다면 내가 아들을 그 업체에 보내도록 했을까' 아버지는 반쪽 눈으로 아들 취업을 결정했다는 게, 그리고 그 결과가 죽음이라는 게 견디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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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무사안일주의

아들과 같은 외식업체에 취업한 학생이 10명이나 되지만, 지금은 모두 그만둔 상태다. 그만큼 일이 힘들었고, 비전도 없었던 셈이다. 

"아들이 간 곳은 사람을 구하기 힘든 곳이었다. 임금도 최저임금에 불과했고, 잔업도 늘 해야 했다. 주방 일이다 보니 작업환경도 열악했다. 알아보니 상당수가 취업해서 일주일 일하다 그만두는 식이었다. 이게 반복되니 업체에서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특성화고 실습생들은 한 번 들어오면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 학교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두면 낙인이 찍힌다. 학교도 취업률이 걱정 아닌가. 그러한 업체와 학교 간 '쿵짝'이 잘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데려와서는 마음껏 부려먹은 것이다. 함께 간 아들 친구도 위궤양 걸리고 손가락을 다치고 그랬다."

아들의 죽음 후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 못내 답답한 아버지다. 대표적인 게 현장실습제도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일하다 죽는데, 최소한 이를 원점에서 논의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학교는 취업률 때문에 아이들을 업체에 내보내지만, 정작 그런 아이들은 얼마 못 버티고 그만둔다. 열악한 환경, 그리고 비전 없는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나도 공업고등학교 출신이다. 30년 전에는 졸업하면 곧바로 취업했고, 그게 평생 일자리가 됐다. 산업화 시대였으니 가능했다. 그런데 교육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산업구조는 바뀌었는데, 그때 사용한 현장실습제도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과거와 구조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게 특성화고를 새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교육부에서 지난 2월 '선도기업에 한해 현장실습을 진행하겠다'고 개선안을 발표했으나 아버지는 실효성 없는 처방이라고 일축한다. 현장실습을 진행하는 업체의 80~90%가 영세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안전 등 일정기준을 갖춘 중견기업의 경우, 실력 있고, 경험 있는 사람을 뽑지 굳이 특성화고생을 뽑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정기준을 갖춘 선도기업에 한해 현장실습을 진행하겠다? 앞뒤가 맞지 않는 개선안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이 씨는 "특성화고생을 업체가 채용하는 이유는 인건비가 싸고 부려 먹기 편하다는 점"이라며 "특성화고 설립 취지가 전문인력 양성이라고 하지만, 현재는 소기업의 재정 문제 등을 해결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을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것일까. 아버지는 답답할 뿐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 식의 무사안일주의는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듯했다.  

"현장실습 제도가 돈도 벌고 학생이 성장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는가. 전혀 아니라는 것을 이와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학부모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취업 나가 돈 버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 노는 것보다는 사회 경험을 하는 게 좋다는 취지다. 그런데 그렇게 나간 취업에서 자기 자식이 죽었다고 생각해보자. 희박한 확률이기는 하지만 누군가는 죽는다. 하지만 우리는 '내 새끼는 아니겠지' 하면서 애써 외면한다. 희박한 확률이기 때문이다. 나도 아들이 죽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교욱부나 교육청도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학생이 일하다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로, 그리고 학생 개인의 문제로 넘긴다. 이런 인식과 책임회피가 정당한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대다수는 지금의 구조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들의 죽음 이후에도 죽음은 계속되지만 시스템은 바뀌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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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한 아버지

통신사 사무직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죽고 난 뒤, 작은 커피점을 열었다. 더는 그 일을 하기 힘들었다.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 있노라면 끊임없는 의문과 회의가 밀려왔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들이 죽은 지 2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 

커피점을 차린 이후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꼬박 14시간을 일한다. 나이 든 몸으로 일하다 보니 집으로 들어갈 때면 파김치가 된다. 아들도 이렇게 일했을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시리다. 

그렇게 일해도 한 달 손에 쥐는 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임대료, 자재비 등으로 허리가 휜다. 그래도 육체노동을 하니 밤에 잠은 잘 온다. 그거 하나는 편하다. 하지만 이따금 아들 생각이 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지금의 현장실습 구조 속에서는 또다른 누군가가 다치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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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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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