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잡는 과거'를 알면, 이 악수가 얼마나 놀라운지 알게 된다
2018.06.12 12:08:48
김정은 "발목 잡는 과거" 언급...시리도록 아픈 '북미'의 기억
12일 오전 9시(현지 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 회담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세기의 악수'를 나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발을 묶었"지만 "우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여기 왔다"고 강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옳은 말씀"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의심 없이 (북미가)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관련기사 : "우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

북미 간 '발목을 잡는 과거'는 간단치 않다. 북미 관계가 여기까지 오기는 김 위원장의 말 그대로 쉽지 않았다. '북미관계'는 일반에게, 특히 미국인에게는 잊힌 과거였다. '발목을 잡는 과거'는 70년 전, 김정은 위원장의 조부인 김일성 주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세기의 악수 ⓒ AP=연합


미국에게 김일성은 '스탈린의 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적이었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거기에서 출발했다. 조선인민군 창군식에서 스탈린의 초상화가 비로소 내려가기 전, 김일성은 만주에서 활동하다 일제의 토벌을 피해 소련 땅으로 넘어갔다. 그때 태어난 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믿지 못했지만 미국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북미 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한국전쟁은 이후 한반도 핵 위기로까지 이어지며 70년 가까이 이어진 두 나라 갈등의 핵심 원인이 되었다. (☞관련기사 : "한국전쟁, 1949년 38선 충돌 통해 형성됐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은 신무기 '네이팜탄'을 북한에 쏟아부어 전 지역을 불태웠고, 김일성을 위시한 북한 지도부는 지하 벙커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미국은 핵무기 사용 직전까지 갔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목격한 바 있던 김일성과 북한군은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북한이 1만 5000개 이상의 '지하 시설'을 갖춘 병영 국가가 된 이유다. 이 트라우마는 북한이 미국에 갖고 있는 가장 강렬한 것이다. 

미국은 북한을 '인간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미개인'으로 여겼다. 이같은 인식은 전쟁 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1968년, 미 해군 소속 정찰함 푸에블로 호가 북한 원산 앞 해상에서 북한 해군에 의해 나포된 푸에블로호 사건은 미국에게 트라우마다. 82명의 미 해군 인원이 11개월이나 붙잡혀 있다가 풀려났는데, 이 사건으로 미국은 체면을 심각하게 구겼다. 미군 함정이 적국에 나포된 사건은 극히 드문 일이고, 당시 이 사건의 키는 북한이 쥐고 있었다. 결국 미국은 굴욕적인 사과를 해야 했지만, 여전히 푸에블로호는 대동강에 '전시'돼 있는 북한의 '승전물'이다. 이후 1976년 판문점 도끼 사건 등 북미 관계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존재해 왔다. 

이후 미국과 북한은 상호 적대정책을 핵심 국시로 삼았다. 북한은 반미를 국가 이념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첫손에 꼽을 북한 전문가인 박한식 전 조지아대 교수는 최근 저서 <선을 넘어 생각한다>(부키 펴냄)에서 북한을 반미, 반일을 국시로 삼는 민족주의 체제로 정리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냉전 체제가 끝난 이후에도 북한을 비롯한 대외의 적을 새로이 규정, 이를 군산복합체제의 원동력으로 만들어 국가를 운영했다. (☞관련기사 : 영구 전쟁국가의 탄생

1980년대 냉전이 해체되면서, 북한은 서서히 잊혀 갔다. 1990년대 북한 핵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북한의 핵개발 시도든, 대미 적대 행위든 일련의 위기들은 다른 세계사적 사건에 묻혀갔다. 

1차 북핵 위기로 꼽히는 1993년, 북미는 이른 정상 회담을 통해 위기를 해소하고 두 나라 관계를 복원할 계기를 마련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사용하려 한다면, 이는 북한의 최후가 될 것"이라며 강력한 경고를 할 정도로 위기 상황이 커졌다. 그러나 두 나라는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물밑 협상을 추진했다. 당초 남북정상회담까지 고려되었으나, 남한 김영삼 정부의 반발과 김일성 주석의 사망, 미국 내 반 클린턴 진영의 반발이 겹쳐 이른 해결을 맞지 못했다. 위기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로 겨우 해소됐다. 2000년 클린턴 행정부는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하기도 했다.

제네바 합의는 그러나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2001년 '아들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네오콘이 득세했다. 2001년 9.11테러를 겪은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2001년 10월 부시는 김정일을 '피그미'로 부르고, "나는 김정일을 증오한다"고 했다. 2002년 1월 19일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정한다. 한국 전쟁 당시 '오리엔탈리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성적 사고보다 도덕적이고 추상적인 판단을 우선시한 '신념 집단'인 네오콘 그룹은 북한을 악마화했다. 당시 제네바 합의 파기를 주도한 게 지금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만나고 있는 존 볼턴이다. 

2005년 2월, 기어이 북한은 핵보유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 반발하며 미국은 같은 해 9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의 북한 정부 예금 2500만 달러를 동결 조치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꾸준히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2016년 4차 핵실험까지 벼랑 끝 전술을 이어가며 핵 보유에 성공했다. 갈등은 10년 내내 이어졌다. 그나마 한반도 위기 해소를 위해 노력하던 한국에서도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남북관계도, 6자회담도 모두 흐지부지됐다. 

미국과 북한은 서로 적대했고, 그들이 진행한 협상들은 모두 사실상 무용지물이 돼 왔다.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다시금 기회가 왔다. 미국에서도 전통적 대외 정책 기조와는 거리가 먼 자세를 가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섰다. 한국 정부는 북미 간 중재자를 자임하며 두 나라 간 고리를 다시 연결키로 했다. 북한이 이에 화답했으나, 일각에서는 북한 내 군부의 반발도 있었으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역시 '발목을 잡는 과거'와 '그릇된 관행'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미국 내 강경파의 반발도 마찬가지다. 불신이 서로의 눈을 가렸기에, 불신의 관성이 작용했다는 지적으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목을 잡는 과거'는 결국 해묵은 대립의 역사다. 이를 이번 정상회담에서 극복할 수 있을까? 세계의 눈이 두 정상으로 향한 이유다. 

▲ 12일 북미 두 정상이 역사적인 악수를 나눴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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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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