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불안, 건강 불평등 더 키운다
2018.06.08 15:17:54
[서리풀 연구通] 양질의 공공주택 공급 늘려야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많은 이들이 미래를 불안해한다.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 줄어드는 연금과 늘어나는 의료비로 불안한 노후와 같은 원인이 있겠지만, 내가 맘 놓고 편히 살 집이 없다는 주거 불안도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한국의 주거 불안정 문제는 계속 심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66%가 주거비(임대료 및 대출금상환)에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하였고, 자가 거주나 전세 가구에 비해 월세 가구의 부담이 훨씬 컸다. 특히 월세 가구의 비중이 큰 저소득층, 청년 가구는 소득대비 지출해야 하는 주거비가 높은 취약계층이다. (☞관련 자료: "<2017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 발표")

주거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쾌적한 방, 깨끗한 수도시설, 제대로 된 냉난방시설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소음이나 대기의 질, 도로와 같이 집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 집 주변 이웃과의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환경을 포함하는 이웃 효과(neighboring effect)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졌다.

또 다른 측면으로, 지금 사는 집에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상태(housing tenure status)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주거의 안정성을 판별하는 지표로 자가 거주 여부를 사용하는데, 자가 거주자는 세입자보다 정신 건강 수준이 높고 장애가 있을 확률이나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낮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자가-전세-월세의 순서로 정신건강이 나빠지고 삶의 질이 낮아진다는 근거가 있다. (☞관련 논문 : "주거비 부담 요인이 월세 거주자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분석")

최근 <노인학저널: 사회과학(Journals of Gerontology: Social Sciences)> 2017년 호에는 뉴질랜드의 50세 이상 장년, 노년층을 대상으로 주거 불안과 건강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바로 가기 : "Loneliness, socio-economic status and quality of life in old age: the moderating role of housing tenure"


주거가 불안정한 세입자의 건강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는 사실은 기존에도 알려져 있었지만, 연구진은 장기적 효과를 보고자 했다.

2010년, 2012년, 2014년의 <뉴질랜드 건강, 일과 은퇴 조사(New Zealand Health, Work & Retirement study)> 자료를 이용하여 2009~2010년 기준 50세 이상 장년, 노년 2697명을 대상으로 자가 거주자/세입자 여부에 따른 우울 정도와 삶의 질 수준을 분석하였다. 이는 나이, 성, 결혼상태, 주거지역, 은퇴 여부, 경제적 생활 수준의 차이를 보정한 후에 이루어졌다. 


연구결과, 자가 거주자인 경우 세입자에 비해 우울 수준이 낮고, 삶의 질 수준이 높은 것은 예상대로였지만, 두 집단의 격차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커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자가 거주자는 우울 수준이 더 낮아지고 삶의 질은 더 높아진 반면, 세입자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된 결과였다.


(a) 시간에 따른 평균 우울 점수(Mean Depression Score)의 변화(높을수록 우울)
(b) 시간에 따른 평균 삶의 질 점수(Mean Quality of Life Score)의 변화
(주: Home owners(자가 거주자): 검은 선, Tenants(세입자): 회색 선)

연구진의 설명에 따르면, 주거가 불안한 사람은 불안정함, 걱정, 소속감의 결여, 곤란과 같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반면, 자기 집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집은 단지 물리적 안전을 줄 뿐 아니라 자율성, 연속성, 통제력, 지위의 측면에서 존재적 안정감(ontological security)을 주고, 이러한 효과는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신혼부부나 저소득층, 청년을 위해 낮은 이율의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정책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제 곧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청년이나 노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하는 후보도 많다.

이렇게 해서 조금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지도 모르나, 정책의 대상이 되지 않을 더 많은 사람의 주거 안정은 보장할 수 없다. 뉴질랜드의 사례처럼 집을 가진 사람과의 건강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빚을 내어 집을 사도록 하는 정책은, 주거비 부담이라는 면에서 주거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좋은 주거는 건강과 삶의 질에 필수적이며, 무엇보다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투자 상품이 아닌 공적 재화의 성격을 가진 양질의 공공주택을 지금보다 훨씬 더 늘려야 한다. 상품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로서, 누구나 장기적 주거가 가능한 제도로 바꿔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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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dram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