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배우러 갔으니, 돈 받지 말라고요?
2018.05.29 09:20:56
[구의역, 그후 2년 ①] 특성화고 졸업생 박영민 씨
2016년 5월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 씨(20)가 사망했다. 진입하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이는 참사였다. 스무 살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가방에는 컵라면과 젓가락이 유품으로 발견됐다. 

당시 2인1조 작업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게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혔다. 효율성이 스무 살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비정규직이었던 김 씨는 특성화고 출신 노동자였다. 그가 일하던 회사는 현장실습으로 취업한 곳이었다. 

그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프레시안>에서는 김 씨의 죽음 이면에 드러난 여러 키워드 중 '특성화고'를 집중해보고자 한다. 구의역 2주기에 앞서 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소속 노동자 세 명을 만났다. 그들은 김 씨와 마찬가지로 특성화고를 막 졸업한 스무 살이다. 그들을 통해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노동조건과 현황 살펴본다.   

ⓒ프레시안(최형락)


3년 동안 배운 거라고는 납땜질

박영민(가명 20) 씨는 인터뷰를 끝내고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다. 피자헛 주문상담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정식 직원이 아닌 아르바이트 자리다. 올해 수능을 준비 중이다. 내년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학 가기 전, 자신의 용돈 벌이를 하려 아르바이트를 준비 중이다. 

그는 특성화고 출신이다. 서울 지역 특성화고에서 스마트전자통신과를 전공했다.

'통신 및 전자회로에 관한 지식과 기능을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며, 각종 전자기기 제작 및 설계 능력을 기른다.'

학과 소개란에는 이렇게 돼 있지만 박 씨가 지난 3년 동안 배운 것이라고는 전자회로 납땜질뿐이었다. 

물론, 전공을 심화해서 가르치는 '방과후수업'은 전문 강사를 불러서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전문 강사 수업은 학생들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높다. 전문 강사는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기본지식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가르친다. 

하지만 박 씨를 포함한 학생들은 그런 기본지식은 배워본 적이 없다. 그나마 학원에 다니며 보충수업을 들은 극소수 학생들만이 방과후수업을 따라갈 뿐이다. 자연히 수업 시간에 게임만 할 뿐이다. 

복교생에게 쓰이는 '패배자' 이미지

그렇다 보니 학원에 다니는 등 스스로 노력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방과후수업도 빼먹지 않는다.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업체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란 넘기 어렵다. 

"취업을 열심히 준비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네트워크 회사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다. 낙심을 많이 했다. 3년간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 그렇겠나. 그 친구는 자신이 볼품없는 고등학교를 나와서 그렇다고 자조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시선도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현실론을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우리 반에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었다. 음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가겠다고 결심하고는 당시 현장실습으로 다니던 업체도 그만뒀다. 그랬더니 선생이 그 친구를 따로 불러서는 'O신' 소리를 하면서 콜라컵으로 정수리를 때렸다. '대학은 나중에 가도 되는데, 왜 그러느냐', '어차피 네 수준으로는 대학에 못 간다'. 이런 악담을 퍼부었다."

학교는 취업률이 떨어지니 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 덧붙여 현장실습에서 돌아온즉슨, 복교생은 범죄자 취급을 했다. 교사는 복교생에게 "그런 것도 못 견디는 등신"이라며 대놓고 폄하했다. 그러면 아이들도 교사를 따라 돌아온 학생을 놀리고 낙인찍는 식이었다. 

그렇게 복교생에게는 '패배자'라는 이미지를 씌웠다. 일종의 본보기였다. 

▲ 구의역 참사 2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는 이은아 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위원장. ⓒ프레시안(허환주)


회사에 배우러 가서는 왜 돈을 내놓으라 하느냐고?

박 씨의 중학교 때 꿈은 정치인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자기가 정치인이라면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치인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춘기가 끝날 무렵 깨닫게 됐다. 

포기는 빨랐다. 공부를 못하기에 일단 빨리 취업하자는 생각을 했다. 동네 형이 박 씨가 졸업한 학교를 다녔다. 그 형을 보면서 학교가 괜찮다는 '착각'을 했다. 박 씨가 특성화고에 진학한 이유다. 실제 대부분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아무런 정보 없이 '깜깜이' 입학을 한다. 

그렇게 동네 형 때문에 들어왔어도 3학년 2학기가 되면서 취업현장, 즉 현장실습에 나가야 했다. 학교는 3학년 여름방학 때, 업체 한군데를 박 씨에게 소개했다. 은행 전산기기 수리 업체라고 설명했다.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1주일 동안 일해 본 뒤, 업체에서 정식 채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박 씨가 사는 곳은 노원구였으나 회사 위치는 구로구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 12시에야 집에 들어왔다. 하는 일은 간단했다. 은행과 전산 업무를 맺고 있는 카드회사를 돌아다니면서 컴퓨터가 잘 있는지를 확인하는 업무였다. 한마디로 노가다였다. 

서울 지역 곳곳에 분산된 카드회사를 발품 팔며 돌아다녀야 했다. 기술을 배우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1주일을 일했다. 

하지만 결국, 정식직원으로 고용되지 않았다. "사교성이 없어 정식 채용이 되기 어렵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박 씨가 해고된 직후 박 씨와 같은 학교, 같은 과 학생이 채용됐다. 심지어 전화 받는 업무였다. 

"결국, 거래처 컴퓨터를 확인해야 하는 일주일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던 셈이었다. 학생인 나를 뽑으면 좀 더 싸게 쓸 수 있으니 그랬다. 변형적인 현장실습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5일 일하고 받아야 할 돈이 약 30만 원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어렵게 '받아내야' 했다. 업체는 박 씨가 그만둔 뒤, 한참이 지나도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 박 씨가 매달릴 곳은 학교뿐이었다. 일한 돈을 주지 않는다고 알렸다. 그러자 담임교사는 되레 박 씨를 나무랐다. 

"회사에 배우러 가서는 왜 돈을 내놓으라고 하느냐. 너는 사회에 대한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어." 

누가 누구에게 예의를 운운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5일 동안 일하면서 박 씨가 배운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발품 파는 잡일에 불과했다. 담임교사의 쓴소리에 쓴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학교 이름 묻더니 한참을 웃는 면접관

그래도 취업은 해야 했다. 박 씨는 아르바이트 이후에도, 학교에서 추천해주는 여러 업체에서 면접을 보았다. 단순 업무 업체 등 가기 싫은 회사도 있었다.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그다지 없었다. 

여러 차례 면접을 봤으나 모두 낙방했다. 어떤 곳에서는 면접을 보는데, "일을 못 하게 생겨서 안 되겠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중 백미(白眉)는 노래방 수리업체 면접이었다. 학교 모의면접에서 면접관으로 참여한 업체 이사가 박 씨를 좋게 봤다. 자기네 업체 부장과 연결해준다며 면접을 보라고 했다. 좋은 기회라 여기고 면접을 보러 갔으나 결과는 최악이었다. 대놓고 모욕을 당했다. 

"과거 우리 학교가 '날라리' 학교였다. 하지만 최근 학교이름이 바뀌면서 과거 안 좋은 이미지와는 결별했다. 그런데 당시 면접관이 과거 학교 이름을 질문했다. 대답을 안 할 수 없어서 'OO공업고등학교'라고 말했더니 면접관이 갑자기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이더라. 그리고는 한참을 웃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무척 수치스러웠다. 우리 학교가 아무리 저급하다 해도 사람 면전에다가 그렇게까지 해야 했었나 싶었다."
 
박 씨는 그때 대학 가려는 마음을 굳혔다. 어서 대학에 가서 고등학교 학력을 지우고 싶었다.  일종의 신분세탁이었다. 수준 낮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며 수모 받는 게 더는 견디기 싫었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이유다. 

ⓒ프레시안(최형락)


현장실습의 딜레마 

2016년 기준으로 593학교에서 6만16명의 학생, 그리고 기업 3만1404개가 산업체 현장실습에 참여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 학교·학생·기업 삼주체가 바라보는 현장실습은 학습이 아닌 조기취업이라는 점이다. 그 근거로는 현장실습생에게 지급되는 실습수당이 꼽힌다. 이는 최저임금 이상을 주도록 돼 있다. 

기업은 체계적인 교육보단 빠르게 업무현장에 투입한다는 점에서, 학생의 경우에는 전공이나 적성보다는 임금 때문에 현장실습에 참여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현장실습 참여 학생이 어떤 처우에서 일하는지 관심을 두기보다는 보다 많은 학생이 현장실습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이렇다 보니 현장실습 과정에서 여러 지적사항이 나오는 상황이다. 교육부가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특성화고 현장실습 실태를 점검한 결과, 직업교육훈련촉진법 등을 위반한 부당행위가 465건이나 적발됐다. 

부당행위 적발 관련해서는 표준계약서를 쓰지 않은 사례가 238건으로 가장 많았고 근무시간 초과(95건), 부당한 대우(45건), 유해위험 업무(43건), 임금 미지급(27건), 성희롱(17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현장실습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것이 아니면 박 씨처럼 대학에 진학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업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업체를 찾을 경우, 업무환경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에 빠진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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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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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