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와 개성, 통일 준비 '가상도시' 만들자
2018.05.21 15:31:20
[인터뷰]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

'선'을 넘는다는 것, 70년 넘게 분단국가로 살아온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금기'로 여겨졌다. 남한과 북한 사이의 '선'은 땅에만 그어진 물리적인 표식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 속에도 자연스럽게 그어졌다. 남한 사회에는 언어적·사상적·정치적 '금도'에 대해 가혹한 처벌이 있었고, '분단체제'는 어느덧 남한 국민들에게 자연스러운 정치·사회·경제적 질서로 여겨졌다.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정치세력이 두 번 집권하는 동안, '종북'은 특정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낭떠러지로 밀어내는 '주문'으로 작용했다.

남한 사회가 이렇게 변화하는 동안 북한 역시 '3대 세습'이 일어났고, 체제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핵무기 개발이 추진되는 등 '선'을 확고히 하는 변화가 진행됐다.

지난 4월 27일,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손을 잡고 판문점의 '선'(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선'에 가로막았던 많은 논의가 쏟아졌다. 정치적·군사적 의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선'을 넘을 수 있다고 전제하자, 사람들은 수많은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한에게 북한이라는 존재는 '경제적 부담'만이 아니라 중국을 넘어 유럽까지 이어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

군사접경지역인 '파주 을'이 지역구이자 대통령 직속 기구인 북방경제협력위원회 특별고문이기도 한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강조하는 지점이다. '중국통'이기도 한 박 의원은 현재 남북한 평화체제가 논의되는 국면에서 '차이나 패싱' 등 중국에 대한 일각의 분석도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파주 DMZ 내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평화공단을 만들어 통일경제특구를 조성하자"면서 "개성과 파주가 통일 준비를 위한 일종의 '가상도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파주 통일경제특구'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다음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박 의원과 인터뷰 내용이다.

▲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중국과 북한, '목표'가 다르다

프레시안 : 한반도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도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4.27 남북 정상회담 전후 중국의 반응은 어땠는가.

박정 : 남북 정상회담 소식에 중국이 보인 첫 반응은 '우리가 큰 역할을 했지?'라는 것이었다. 중국은 자신들이 유엔(UN)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면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데 한몫했고, 그 결과 북한이 남한에 손을 내밀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2050년 세계 1등 국가'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19차 전당대회에서 '2021년까지는 중산층이 충분히 확보된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를 이루고, 2035년까지는 기본적으로 현대화한 사회주의 국가를 구축하고, 2050년까지는 세계에서 지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현대화한 사회주의 강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북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그래서 '중국이 먹고살 만큼만 도와주고 번영하게는 안 도와준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을 끌어들여서 외교적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불편해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또 일부에서는 북한의 친미화를 우려하고 있다.

박정 : 외교는 자국의 이익 여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최근 들어 북한이 중국과 잦은 만남을 가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은 14개 국가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북한도 그중 하나로, 중국 입장에서는 인접 국가에 대한 '평화적 관리' 차원에서 골칫거리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2005년 4차 6자회담 당시 중국이 의장국으로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낸 것도 같은 이유다.

무엇보다 한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중국이 북한 주도권을 뺏기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지리적, 역사적으로 미국에 앞서 있다.

▲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 시계방향으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국가주석. ⓒ프레시안


통일을 위한 '가상도시'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서까지 국제무대에 나오는 데는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 같다. 한국과 미국이 과연 그 기대를 적절하게 채워줄 수 있을까?

박정 : 북한의 경제 규모가 작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스위스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무기 개발에 열중할 때 인민들이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또 아버지에서 아들로 세대가 바뀌면서 1950년대 '천리마 운동'이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 더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경제 성장을 통한 체제 확립을 자신하고 있다.

북한은 지하자원과 인적자원이 훌륭하기 때문에 남한의 개발과 교육이 마중물이 된다면, 기대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앞선 실패와 경험을 바탕으로 다각도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4월 송영길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과 중국을 방문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책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과 차하얼학회와 간담회를 갖고, 북극항로 공동개척과 몽골 고비사막에서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를 중국~한국~일본까지 전선으로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협력을 제안했다. 

또 진뤼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총재를 만나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 철도연결, 가스관 연결 등 남북한 사업에 대한 AIIB의 참여 가능성을 문의했다. 이 자리에서 진 총재는 북한이 AIIB 비회원국이지만 이사회 승인을 거쳐 금융지원이 가능하다고 언급하며 비핵화가 진전될 경우 지원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프레시안 : 북한을 통한 중국과의 연계가 한국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박정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유라시아지역의 경제협력과 발전을 위해 대통령 직속 기구인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만들 때만 해도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접촉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한 달 뒤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서 '신북방정책'의 물꼬를 텄으며, 석 달 뒤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한국의 신북방·신남방정책 간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적극 발굴하기로 했다. 최근 북한 비핵화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일대일로와 신북방정책이 시너지를 낼 날도 머지않았다.

남북 간 철도 연결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이미 2만여 킬로미터(km)에 이르는 고속철도를 구축했다. 따라서 임진각과 개성을 잇는 경의선만 복구하면, 우리는 전 세계 고속철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철도로 여행도 하고 물류도 운송할 수 있다. 북한 역시 같은 차원에서 경의선과 동해선을 말하고 있다. 경의선은 사람의 흐름이 중점이 되겠지만, 동해선은 물류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다.

프레시안 : 20대 국회 1호 법안인 박정 의원의 '파주 통일경제특구' 법안도 바로 그 점을 겨냥한 것 아닌가.

박정 : 그렇다. 파주 DMZ 내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평화공단을 만들어 통일경제특구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개성공단이 노동집약적 산업을 하는 곳이라면, 파주 통일경제특구는 첨단산업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곳으로 두 도시의 산업적 연계가 가능하다.

한발 더 나아가 개성과 파주가 통일 준비를 위한 일종의 '가상도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자유 왕래와 거주가 가능한 중립지대인 셈이다. 중국과 대만도 갈등과 대립을 반복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오가며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지 않나. 가상도시가 통일에 대한 사회적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설치된 이정표가 해당 도시의 방향과 거리를 말해준다. ⓒ연합뉴스


'협상가' 문재인이 옳다

프레시안 : 남북 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북한을 참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 :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말했지만, 우리는 경제를 외면한 채 핵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북한은 장마당도 열며 경제성장에 관심을 보였는데 말이다.(웃음)

프레시안 : 지난해 5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문재인 대선 후보를 표지인물로 선정하며 '김정은을 다룰 줄 아는 협상가(The Negotiator)'라고 표현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문재인 정부 1년 동안 외교안보 분야에 정말 큰 변화가 있었는데, 평가한다면?

박정 : 당시 민주당 대통령선거대책본부에서도 '문재인=협상가'라는 평가에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그 어떤 협상가보다도 훌륭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지 않나. 또한 '베를린 구상'에서 '판문점 선언'까지 한반도 비핵화라는 평화 기조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프레시안 : 국회의원, 특히 여당 의원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대한 지원 내지는 뒷받침에 대한 고민이 클 것 같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지속적으로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다.

박정 : 국회나 정부 모두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제1야당만 조금 어긋나는 것 같다. 일부 의원들이 과거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야당의 견제가 여당에게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소금 역할을 하지만, 음식에 소금을 과하게 뿌리면 못 먹지 않나.(웃음)

몇십 년간 쌓여있던 이데올로기가 한 번에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전협정 65년 만에 평화협정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 결과 종전선언이 가능한 날이 올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다. 80%를 넘나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보수언론이 몇십조 원에서 몇백조 원에 이르는 '통일 비용'이 든다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지만, 통일을 미룰수록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은 커진다. 특히 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저출산과 저성장 사회에서 벗어날 돌파구가 없다. 경제적 부담과 통일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꼼꼼히 설계해 미래세대를 설득해야 한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판문점 공동취재단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명선 기자
overview@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방송국과 길거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지금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기자' 명함 들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