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4 11:17:14
[함께 사는 길] 원전사고 피해자가 100년 후 후손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7년, 후쿠시마 관련 뉴스는 일본에서조차 격감했다. 국민의 관심은 멀어졌고 '이젠 지겹다!'고 귀를 막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피난민 숫자는 8만 명이 넘고, 가족이 흩어지고 고향을 잃은 이들은 그보다 더 많다. 최근 폐로 작업이 진행되는 원자로 내부를 원격조작 로봇이 촬영한 영상이 공개됐다. 사고원전에 남은 핵연료는 여전히 사람이 1분만 접해도 죽음을 맞을 정도의 고농도 방사능을 내뿜고 있다. 완전 폐로까지 30년이 걸릴지 50년이 걸릴지, 폐로비용은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사고 피해액과 처리비용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 방사선 양이 높아 출입이 제한되는 '귀환 곤란 지역'에 있는 자신의 집에 임시 귀가한 켄지 씨 내외. ⓒ노다 마사야


100년 후의 인류에게

마스크를 쓴 경비원이 통행증을 확인한다. 후쿠시마 지역으로 들어가는 철문이 열렸다. "마치 저세상으로 가는 경계를 통과하는 것 같아요." 운전자 켄지(62) 씨 옆 보조석에 앉은 그의 아내(59)가 중얼거렸다. 차창 밖은 시골풍경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뭔가 심각하게 어긋나 있었다. 농작물이 자라던 들판에는 멋대로 자란 버드나무가 가지를 뻗치고 잡초가 우거졌으며 버려진 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야생동물들이 마을 곳곳에서 목격됐다. 인간의 숨결이 사라진 마을을 자연이 삼키고 있었다.

켄지 씨 부부의 집이 있는 후쿠시마 현 나미에마치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북서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사고 직후 바람의 영향으로 고농도 방사능 구름이 덮쳤지만, 오염 상황이 제때 알려지지 않아 주민들의 피난이 늦어졌고 주민들은 고스란히 피폭됐다. 이 지역은 지금도 방사선 양이 매우 높고, 출입이 제한되는 '귀환 곤란 지역'으로 남아있다. 전신을 감싼 방호복을 입고 일시 귀가 허락을 얻어 들어온 길이다. "한순간의 사고로 수십 년 동안 돌아오지 못할 곳이 되다니." 켄지 씨의 아내는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차에서 내려 허리 위로 웃자란 잡초를 헤치고 걸어 집으로 갔다. 멧돼지가 현관을 깨고 실내에 들어온 흔적, 원숭이와 쥐가 음식을 찾아 방을 헤집어 놓은 흔적이 보인다. 야생동물들의 털과 배설물이 다다미방 위에 가득하다. "집이 죽었네요!" 켄지 씨의 아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녀는 먼지 쌓인 피아노로 가더니 선 채로 경쾌하고 밝은 리듬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의 교가였다. "그래도 여기가 마음의 고향이에요." 피난을 가도, 이사를 가도 마음에 구멍이 난 느낌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배출된 방사성 물질 대부분은 세슘137로 보인다. 그 반감기는 30년이다. 독성이 100분의 1로 줄 때까지 200년이 걸린다. 고농도의 방사능에 오염돼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지역은 곧 지도에서 지명조차 사라질지 모른다. 켄지 씨 등 주민들은 사람이 살았던 증거를 남기기 위해, 또 원전사고의 참상을 전하기 위해 향토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미래세대가 언젠가 이 땅에 돌아와 고향을 재생할지 모릅니다. 우리 작업은 원전사고의 피해자인 우리가 100년 후의 후손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 사고 1년 후 후쿠시마 원전. ⓒ노다 마사야


▲ '우리 미래를 끊지 말라!'는 메시지를 내걸고 시위에 참여한 어린이. ⓒ노다 마사야


방사능에 오염된 마을에서

후쿠시마 제일 원전에서 북서쪽으로 흘러간 방사능 구름은 나미에마치 지역 북쪽 산을 넘어 고원에 펼쳐진 인구 6000명의 이이타테무라 지역에서 비가 되어 떨어졌다. 당시 이 마을은 해일 피해 지역민들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그 비를 많고 피폭됐다. 원전사고 3개월 뒤 마을 전 주민이 피난을 떠났다. 너무 늦은 피난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 2017년 봄, 일본 정부는 "오염 제거가 진행되어 안전이 확인됐다!"며 주민 귀환 정책을 시행했다. 사고 전 인구의 1퍼센트가 돌아왔다. 모두 노인들이었다. "정부는 안전하다지만 집 주변만 오염 제거 작업을 했을 뿐 마을 총면적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산림은 여전히 오염이 심각하다"고 하세가와 겐이치 씨(64)는 지적했다. 제염 작업과 자연적인 방사능 물질의 확산으로 마을의 공간선량은 사고 직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 수치는 사고 전보다 최소 5배 최대 50배까지 높은 연간 5밀리시버트 수준이다. 이 수치는 우크라이나에서 제정된 '체르노빌법'에 따르면 '강제 이주 지역'에 해당한다. 일본의 일반인 연간 피폭 한도 기준은 1밀리시버트로 법률이 정하고 있다. 귀환자들은 외부 피폭뿐 아니라 식품으로 인한 내부 피폭도 당하고 있다. 복숭아, 쌀 등 방사성 물질의 오염에 강한 작물도 있지만 산에 자생하는 버섯의 경우, 식품안전기준치의 100배를 초과하는 오염도를 보인다. 무엇이 얼마나 오염된 식품인지 누구도 모른다.

하세가와 씨는 내년에도 마을에 올 예정이지만, 낙농을 재개할 순 없다고 포기한 상태다. "내가 짠 우유를 어떻게 안전하다고 사람들에게 먹으라 할 수 있겠어요?"

ⓒ노다 마사야


미래 없는 미래

하세가와 씨는 체르노빌 사고로 출입이 금지된 고향에 돌아가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나러 우크라이나에 다녀왔다. 왜 위험한 지역에 그들이 돌아갔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고향이니까!" 그들의 대답에 하세가와 씨도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나의 미래를 보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현재 피난지의 가설주택에 살며 때때로 고향 마을을 찾는다. 마을에 오면 마을 곳곳의 잡초를 베고 밭을 갈아 메밀 농사를 짓는다. 출하가 목적이 아니라 메밀의 오염도를 확인하면 세슘의 이행률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밭 곳곳에 제염 작업에서 나온 방사성폐기물을 채운 검은 팩이 쌓여있다. 235만 개나 된다.

현재 후쿠시마 현에서 갑상선 암으로 의심되는 어린이는 193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방사능에 의한 건강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하세가와 씨의 아들과 손자들은 마을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 "아이가 없는 마을에 미래는 없다. 우리가 이 마을의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고향을 지키고 싶다." 하세가와 씨는 오늘도 밭으로 나갔다.

세계시민들에게

원전 안전 신화는 허구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가 계속되는데 정부와 원전산업계는 원전의 해외 수출을 추진하는 등 에너지전환 대신 원전산업의 재개를 공식화하고 있다. 후쿠시마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과 세계 시민들이 또다시 어디에서 벌어질지 모를 비극의 재래를 막기 위해 나서야 한다.

▲ 마을의 모든 장소에 쌓인 방사성 폐기물. ⓒ노다 마사야


▲ 이이타테무라 지역 중에서도 방사선 양이 높은 지역의 출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트가 차도에 설치돼 있다. ⓒ노다 마사야


▲ 방호복을 입고 조상들의 묘소를 찾은 세키바 카즈요 씨. ⓒ노다 마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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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