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촛불 이후를 이야기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2018.03.30 13:42:23
[표지 너머 책 세상 ⑯] 소확행 트렌드의 의미
소확행(小確幸: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 요즘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 등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트렌드 코리아 2018>(미래의창 펴냄)이 제시해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라이프 트렌드죠.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트렌드와도 궤를 같이 합니다. 

말 그대로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경향이 근래 들어 강해지고 있습니다. 저축하기보다, 진급을 위해 기업에서 야근하며 아등바등 살기보다 '지금 현재'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리며 살자는 삶의 자세가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일찍 퇴근할 수 있는 회사에서 조금 적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다 정시에 퇴근해, 일과 후에는 적극적으로 취미를 살리는 삶이 야근에 혹사당하는 삶보다 낫다는 인식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소확행에 관한 관심은 도서 시장에서도 드러납니다. 지난 11일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8일까지 힐링 에세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24% 증가했습니다. 교보문고의 최근 한 달간 힐링 에세이 판매량은 전월 동기 대비 123.4% 증가했습니다. 

도서 목록을 살펴보면 <신경 끄기의 기술>(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갤리온 펴냄), <옵션 B>(셰릴 샌드버그·애덤 그랜드 지음, 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포기하는 연습>(나토리 호겐 지음, 전경아 옮김, 세종서적 펴냄), <최고의 휴식>(구가야 아키라 지음, 홍성민 옮김, RHK 펴냄), <미라클 라이프>(할 엘로드 지음, 전행선 옮김, 한빛비즈 펴냄) 등이 소확행 트렌드에 맞춘 대표적인 도서라 할 수 있습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기존 도서 주요 구매층인 30~40대 여성보다 20대의 관심이 두드러집니다. 이는 뭔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기존 대안적 라이프 트렌드의 중심이 3040 세대였다면, 소확행은 확연히 20대 시장에 강하게 어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대는 소비력이 전 노동 연령층 중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합니다. 축적 자본이 없는데다, 취업 빙하기를 보내는 탓에 삶의 조건 개선 가능성도 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소확행을 '한국판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 달관 세대)' 현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미 미래에의 희망이 차단된 이들이 이제 현실로 눈을 돌리려는 경향이 소확행 트렌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뿐일까요?

지난 26일 '표지 너머 책 세상'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출판문화연구소에서 소확행 트렌드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와 이홍 한빛비즈 이사는 이번 현상을 두고 크게는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가 여전히 대안을 찾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현상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면서, 이 현상을 더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 26일 '표지 너머 책 세상'은 이홍 한빛비즈 편집이사(좌),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우)와 함께 소확행 현상을 다뤘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10대 90 사회, 소확행을 낳다

-소확행 트렌드에 언론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취미를 공유하는 소모임을 소개하는 스마트폰 앱이 나오고 있습니다. 귀농에 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확행에 관한 확신을 전하는 출판물이 베스트셀러 목록 상단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돈이 있는 이라야 가능했던 욜로 트렌드가 순식간에 지고, 이제 소확행이 중요한 트렌드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우선, 이런 트렌드가 나타난 배경에 관해서부터 의견을 나눠 보죠. 

장은수 : 이전 세대 삶의 원리란 취직만 하면 죽을 때까지 모든 그림이 그려지는 구조였습니다. 일단 취직하면 자연스럽게 연봉은 오르고, 누구나 중산층의 삶에 도전할 수 있었죠. 자연히 정부 정책도 청년의 취직을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하지만 이 원리가 이제 망가졌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를 흔히 '1대 9대 65대 25 사회'로 표현합니다. 최상층 1%와 중산층 9%, 평범한 평균 이하의 삶을 누리는 65%와 최하층 25%로 나뉜 사회라는 의미죠. 

여전히 정부 정책과 사회 구조는 중산층 신화 재현에 맞춰졌는데, 실은 90%의 사람이 이제 '상위 10%' 계급이 된 중산층을 꿈꾸기 불가능합니다. 중산층 하한선은 소득(급여) 기준으로 대략 연봉 7000만 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계층 사다리에 오르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확행은 이에 답하는 트렌드입니다. 욜로 따위 거창한 삶이 아니라 정말 소소한 소비로 일상에 만족하자는 트렌드가 일어났습니다. 욕망을 키우고 살려 하기보다, 더 작은 일상을 행복하게 보내자는 의식이 강해졌습니다. 

어찌 보면 소확행이란 자기 보호의 기술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남의 가치를 따르느라 내 삶을 망치기보다,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자는 경향이 두드러지니까요. '좌절의 경제학'이 작동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나만의 것'에의 확신을 주는 책이 최근 많이 팔립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정문정 지음, 가나출판사 펴냄), <신경 끄기의 기술> 등이 대표적이죠. 

이홍 : 거시적 전망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제 앞날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삶의 자세 자체에 피로감과 회의감이 큰 시대입니다. 사실 이런 삶의 태도는 인류사적 측면에서 혁명적입니다. 인류는 늘 미래를 보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중세 시대로 들어가 보죠. 종교가 현세의 불합리한 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해 신자로 하여금 사후 세계를 기대하게끔 했습니다. 현세는 불행해도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믿음으로 현실의 불합리를 견디게끔 하는 장치였죠. 현대에 들어 우리가 노동하고 교육받는 이유 역시 미래에의 기대를 키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이런 기대를 하는 이가 없는 '따분하고 절망적인'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미래 물적 토대가 단순히 부실화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적 토대를 쌓은들, 얻을 게 없다는 생각이 전면적으로 자리했습니다. 

아울러 짚어볼 점이 있습니다. 앞서 소확행의 의미를 미래에의 불신으로 본다면, 현재에의 불신 역시 소확행을 낳은 원인입니다. 

기본적으로 소확행의 트렌드화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건 젊은 세대의 기존 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입니다. 청년 세대는 기존 우리 사회를 지탱한 체제 어디에도 기댈 수 없다는 불신이 강합니다. 정치, 종교, 교육, 성공신화 등 기존 우리 체제를 유지한 모든 개념에의 불신이 당장의 삶에 만족하고 집중하는 태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미래도 불투명하고 현재도 불만족이라면, 사람이 갈 곳은 없습니다. 자기만의 성을 쌓을 수밖에 없죠. 통상 이런 현상을 개인화로 쉽게 설명합니다만, 이기주의로 등치되는 개인화와 소확행은 다릅니다. 소확행의 이면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확행은 사토리 세대 가치관?

-곧바로 떠오르는 사례가 일본의 사토리 세대입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지나면서 일본 젊은층 사이에서 우리의 소확행과 같은 삶의 트렌드가 강하게 일어났죠. 소소한 소비에 집중하고, 무리해서 취업하려 하기 보다 취미에 몰두하는 경향이 자리 잡았습니다. 소확행 현상을 '한국판 사토리 세대의 등장'으로 봐도 될까요?

장은수 : 글쎄요. 사토리 세대 현상과 소확행은 조금 결이 다르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 얘기에 앞서, 우리나라 386 세대 삶의 가치관을 조금 짚어 보죠. 여태 우리나라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제도를 바꾸거나 국가를 바꾸는 방식이었습니다. 체제가 바뀌면 개인이 그에 맞춰 행복의 조건을 가진다는 경험이 있었죠. 대표적인 사례가 민주화 혁명을 이끈 386 세대관입니다. 지금의 정치 시스템으로는 행복이 커지지 않으니 정권을 바꿨죠. 촛불혁명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가치관에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도만 바꾼다고 과연 내가 행복해지느냐는 물음이 나옵니다. 정권만 바뀌면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해결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사라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조건이 같아지고, 남녀 임금 격차가 해소되나요? 해결된다손 치더라도 속도가 매우 더딜 겁니다. 그 사이 우리는 계속 투쟁하면서 살 거냐는 본질적 질문을 자신에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이 우리가 행복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내 삶의 본질을 지키려는 자세가 소확행의 본질임을 짚어야 합니다. 

-일본 사토리 세대관에 포기, 절망의 정서가 있는 반면, 소확행 트렌드는 더 적극적으로 내 삶을 지키려는 태도를 반영한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장은수 : 그렇습니다. 

지금껏 우리는 일을 더 하고 월급을 더 받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대표적 사례죠. 물질적 양을 늘리면, 즉 돈을 더 받으면 삶의 행복이 커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청년 세대는 이런 축적의 경험이 없습니다. 부의 증가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설사 부가 증가하더라도 문제입니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소처럼 일만 하는 게 과연 행복한 삶이냐는 근본적 질문을 이제 이른바 '좌파' 청년이 아니라도 누구나 합니다. 

이 점에서 소확행은 영적인 트렌드라는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최근 소확행을 위시한 사회적 트렌드, 예컨대 환경 문제에 관한 관심, 동물권에 관한 관심 등을 보면, 기본적으로 기존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독립출판, 귀촌, 마을공동체 만들기 등의 움직임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행복의 목표가 변했습니다. 소확행은 지금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복 추구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확행을 추구하는 이들은 사토리 세대와는 분명 다릅니다. 

앞서 386 세대와 지금 청년 세대의 세대경험을 이어가 보죠. 소확행을 추구한다면, 국가 권력이 변하든 아니든 내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더 큰 힘에 의존하지 않고 내 일상을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일종의 생활 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변화는 이제 기성 세대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홍 : 장 대표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결국 소확행이 무엇이냐를 다시금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물질적 조건에 집착한다면 소확행이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급여 차이가 확연함을 전제하고 소확행을 이해하려는 이는 결코 소확행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급여 차이가 두 배나 나는데 어떻게 중소기업 노동자가 대기업 노동자만큼 행복할 수 있느냐는 물적 조건에 관한 의문이 떠오르니까요. 

소확행이란 내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 안에서 온전한 나의 시간을 확보하고, 온전한 나를 찾겠다는 태도입니다. 기존 우리 사회관으로 이해하려면 소확행의 표면만을 훑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성 삶의 전제 자체를 부정하는 게 소확행의 출발점이겠죠. 

앞서 소확행을 혁명적 태도로 본 이유입니다. 인류가 언어와 문자를 가진 큰 이유는 상호작용에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즉, 타인과 상호작용한다는 건 오랜 기간 인류가 추구한 삶의 가장 근본적 전제조건이었습니다. 이런 경향을 더욱 강화하는 게 지금의 초연결사회죠. 

그런데, 소확행은 자신만의 울타리와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초연결사회를 지향하는 경향과 충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류 사회 발전의 기본 전제였던 집단적 관성에서 벗어나 개인의 영역 구축으로 움츠려 행복을 찾겠다는 건 다소 무리하게 이해를 하자면 어느 정도 '반사회적인 속성'을 갖는다고도 볼 수 있거든요. 자족의 가치를 크게 본다는 건 여태 우리가 추구한 경향과 분명 결이 다릅니다. 

▲ 일상을 행복으로 채워야 삶이 행복하다는 가치관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는 기존 성공 신화와 정면 충돌한다. ⓒwikimedia.org


나라 망하든 말든, 내 삶이 더 중요

-소확행 트렌드가 큰 틀의 기술 변화, 즉 초연결사회로의 이행과 충돌한다면 결국 이 흐름도 얼마 못 가 사장되지 않을까요? 소확행도 일종의 마케팅 트렌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당장 떠오릅니다. 

이홍 : 그런 시각도 나올 수 있겠죠. 초연결사회에 관한 반발로 이해할 구석도 있습니다. 

장은수 :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앞서 이홍 대표가 소확행을 인류사적 혁명이라고 했는데, 이에 동의합니다. 소확행이 지금 지니는 의미를 진지하게 짚어야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인류는 '카르페 디엠'의 논리에 맞춰 살았습니다. 순간의 삶의 즐기는 자세는 자본주의가 득세하며 사라졌습니다. 막스 베버가 제시한 프로테스탄트 윤리관, 곧 금욕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는 자세가 자본주의와 함께 수백 년간 새로운 인류의 가치관이 됐죠. 이 윤리관이 저축과 미래에의 기대, 즉 현재를 희생하고 축적하라는 가치관을 낳아 자본주의 체제를 가동했습니다. 

그런데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인 지금은 어떤가요? 축적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삶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미래가 없는데, 행복하려면 다시 '카르페 디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 없는 성장을 가져올 4차 산업혁명은 이런 경향을 더 심화할 겁니다. 이런 경향이 단순히 하위 90%의 삶만 지배할까요? 상위 1% 사람에게도 소확행은 중요한 트렌드가 될 겁니다. 

-내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삶의 태도로 최근의 많은 트렌드를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예컨대 출산율 저하가 대표적입니다. 경제적 불안함이 출산율 저하를 낳는 중요한 원인이겠으나, 그뿐이라고 믿는 젊은 층은 없을 겁니다. 육아에 내 삶을 희생하기보다, 지금 내 삶의 조건을 지켜줄 생활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젊은 층은 소득의 크기와 관계없이 출산에 소극적일테니까요. 

그렇다면, 소확행은 정부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트렌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출산율 통계 관련 기사에 항상 따라붙는 보도 태도는 '국가 경쟁력 약화'이지 않습니까?

장은수 : 이런 사회가 계속된다면 사회가 망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는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데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내 삶을 내가 사는데요. 이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없지 않느냐고요? 무슨 상관입니까? 내 삶이 바뀌는데요. 

우리가 북유럽 사회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과 한국이 다른 점은, 그들의 경우 사회가 개인의 위험을 책임진다는 겁니다. 국가가 내가 살면서 겪을 다양한 위험을 책임진다면, 우리는 현재를 즐길 수 있고 다양한 삶의 방식에 도전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부에게 중요한 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는 육아에 있어서도 다른 길을 고민해 볼 수 있겠죠. 

중소기업 노동자 커플이 한 가정을 꾸리면, 둘의 월급으로 꽤 괜찮은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나쁜 삶'으로 전락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정부가 고민할 건 국가 경쟁력 운운이 아니라, 아이를 낳으라고 출산 지도를 만들 게 아니라 무상보육과 무상교육 시스템 등을 적극적으로 정비해 개인의 걱정을 국가가 대신 떠맡을 체제를 급진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개인에게 국가를 걱정하라고 강요해선 안 됩니다. 그건 산업화 세대의 가치관, 386 세대의 가치관입니다. 그래서 얻은 게 뭔가요? 2008년 금융위기 전에는 개인의 부와 국가의 부가 같이 상승했습니다. 이제 국가만, 대기업만 돈을 법니다. 개인은 계속 가난해지는 체제입니다. 짧게 봐도 10년, 길게는 IMF 체제 이후 20년간 우리는 이런 체제를 살았습니다. 이들에게 낡은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들 먹힐 리 만무하죠. 

-앞서 소확행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를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비교했는데, 이제는 북유럽과 비교할 때군요. 소확행 트렌드를 우리 사회가 끌어안을 길은 북유럽식 제도 정비라고 보시는 듯합니다. 

장은수 : 작은 사회 혁명이라고 본다면 그렇죠. 

이홍 : 덴마크식 휘게(Hygge) 라이프와 소확행에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개인을 중심으로 편안함을 추구하고, 소박한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는 점이 그렇죠. 다만 휘게에 명확한 건, 자연적 조건입니다. 

기본적으로 북유럽 대부분 국가는 불모의 땅에서 성장했습니다. 가용 토지가 척박한 땅에서 사람들이 적응하는 법은 자연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순응하는 방식이었죠. 그들의 삶에 자연과의 조화가 큰 가치를 차지하는 면이 있습니다. 

일본 사토리 세대관과 휘게의 다른 점이자, 소확행과 휘게의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소확행 가치관과 사토리 세대관은 현재에 순응하고 내 삶에 몰입한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이는 북유럽인의 자연적 순응과는 다릅니다. 장 대표께서는 사토리 세대관과 소확행의 차별점을 이야기하셨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소확행과 북유럽식 세계관의 차이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요.

▲ 서울둘레길을 걷는 시민의 모습. 소확행은 단순 트렌드로 치부할 수 없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서울시


이제는 우리계발이 핵심

-우리 사회는 여태 소확행을 트렌드로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의 말씀을 정리하자니, 자연스럽게 소확행을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정의해야 할 듯합니다. 현재 소확행 트렌드를 조명하는 언론·출판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개인화에 맞춰져 있습니다만, 보다 큰 틀에서 이 흐름을 정리할 필요가 느껴지네요. 

이홍 :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태 우리 사회 이데올로기의 기본은 부에의 욕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욕망에는 한계나 만족이 없습니다. 이건희가 자신의 부에 만족할 리 없죠. 즉,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에게 결코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이 이데올로기가 이제 망했습니다. 

이제 소확행으로 드러난 건,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무너진 지 10년 만에 개인이 신자유주의에 복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됐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시스템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관성에 따릅니다. 자연스럽게 개인이 사회와 마찰하고 있습니다. 소확행 트렌드를 지금이야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강하지만, 이미 개개인에게 깊이 뿌리내린 의식의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이를 더 깊이 조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장은수 : 지금 젊은 세대도 기존 체제에서 백퍼센트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삶의 표준 모델은 공부에 투자하면 잘 산다는 거죠. 하지만, 이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뿌리 깊은 사농공상 의식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요리사와 판사가 서로 존경하면서 이야기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변화죠. 

-자연스럽게 언론·출판은 소확행을 통해 사회와 개인의 올바른 조화를 이야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는군요. 

이홍 : 맞는 말씀입니다만, 지금 소확행 트렌드류 서적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건 아니냐는 지적도 하고 싶습니다. 

사실 자기계발서가 사회 현상을 의식해서, 즉 타깃화해 만들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현재 '소확행 서적'으로 분류되는 책 중 명확히 소확행 현상을 이야기하는 케이스는 없죠. 기존에 나온 책 중 '소확행 트렌드에 맞는 서적'이 뒤늦게 규정될 뿐입니다. 

지금 소확행 서적으로 거론되는 내용의 책은 자기계발서 시장에서 늘 쏟아져 나왔습니다. 2030이 절망에 빠졌다는 소리가 이미 10년 된 이야기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88만 원 세대>가 나온 지 한참 되지 않았습니까? 멘토니 힐링이니 하다가, 이제는 극단적으로 개인적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 근 5~6년간 붐을 이뤘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들 책은 관계와 관련한 이야기를 담았죠. 다만 변한 건, 과거에는 '관계를 잘 맺어라'는 내용이 트렌드였다면 지금은 '관계를 끊고 내면에 집중하라'는 책이 주류라는 점이 다릅니다. 

장은수 : 지금껏 우리가 생각한 '행복한 관계'의 핵심은 가족과 회사였습니다. 즉, 경제 공동체가 다른 모든 공동체에 우선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소확행과 관련한 움직임을 보면, 경제 공동체가 다양한 다른 공동체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취향 공동체, 마을 공동체 등이 과거보다 매우 중요한 공동체로 떠올랐죠. 미셸 마페졸리의 <부족의 시대>(박정호·신지은 옮김, 문학동네 펴냄)가 이야기하는 핵심입니다. 

과거에는 '자기' 계발이 핵심이었습니다. 지금의 대안적 공동체가 중요시하는 건 자기계발이 아니라 '우리계발'입니다. 다른 행복을 끝없이 계발하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찾자는 게 지금 큰 틀에서 소확행류에 묶을 수 있는 책들의 공통 이슈입니다. 크게는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모타니 고스케·NHK히로시마 취재팀 지음, 김영주 옮김, 동아시아 펴냄),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더숲 펴냄) 등도 이 흐름에서 거론할 수 있는 책이죠. 

문명사적으로는 탐욕 경제의 종말을 논하는 모든 책이 크게는 소확행 이데올로기와 통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모든 이가 인간의 모든 욕망을 채우려면 지구가 망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제 우리의 탐욕 자체를 줄일 수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가 접어들었음을 인정할 때입니다. 대전환이 일어나는 시대죠. 이에 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왔습니다. 

소확행은 새로운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로서 소확행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시금 '촛불혁명 이후'를 거론하게 됩니다. 앞서 우리는 촛불혁명도 크게는 386적 가치관 혁명의 하나라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촛불혁명이 끝날 때 한 이야기인 '이제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때'의 중요성이 새삼 재론될 때인 듯합니다. 이데올로기로서 소확행을 중요하게 본다면, 일상의 민주화에의 시도 역시 큰 틀에서 소확행으로 볼 수 있을 법하네요. 

장은수 : 맞습니다. 매우 첨단의 신호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일상 혁명에 집중하려는 대중을 다시금 거대 정치판으로 되돌리려는 힘과 맞서는 사회를 보게 될 겁니다. 당장 노동시간 개혁 이야기가 나올 때 '예전에 주 68시간 일해서 아이 학원비를 댔는데, 갑자기 국가에서 52시간만 일하라고 하니 투잡 뛰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판치지 않습니까? 

이 측면에서, 이제 자기계발서 말고 인문학이 소확행에 답해야 합니다. 마페졸리의 '신부족주의'와 같이, 포스트 근대적 삶의 움직임을 인문학이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한국 사회를 이해할 새로운 시선을 계속 열어줘야 합니다. 

앞서 우리는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소확행을 이야기했습니다만, 소확행이 신자유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거대 담론 차원의 개념은 물론 아닙니다. 지식인들은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이홍 :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확행이 마케팅일뿐 아니냐는 지적 역시도 돌아봐야 합니다. 한참 웰빙 유행이 일 때, 실제 웰빙 소비가 가능한 이는 일부 상위권 계층이었습니다. 소확행을 함부로 상품화하려는 움직임도 분명 일어날 겁니다. 여행 상품, 주말 레저 상품, 고급 음식 등에서 이런 포장 움직임이 일어나겠죠. 본질과 표면을 가려 짚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