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장, '젊은 정양리'를 꿈꾸다
2018.04.01 13:58:25
[귀농통문] 사람과 사람이 만날 일이 많아졌다
정양리 마을이 속한 경삭북도 상주시 모동면의 지역적 특성은 '해발 200~400미터 중산간지대로 비옥한 토질과 일교차가 심하여 포도를 비롯한 과주재배에 적합한 지역'이라고 상주시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도 모동면은 대다수 농가가 포도를 재배하는 지역이다. 그곳에서 '향유네 집'으로 알려진 유기농 포도 농부이자, 40대 젊은 이장인 귀농 19년차 박종관 님을 만나 귀농 초기 체험과 귀농자가 꾸준히 늘어가는 정양리 마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에서 마을이장이 되다

귀농하기 전, 20대 박종관의 막연한 꿈은 마을 이장이었다. 사실 '마을 이장'하면 농촌생활을 다룬 인기 장수 TV프로그램이었던 <전원일기>에서 최불암이 연기한 양촌리 김 회장을 떠올릴 정도였을 뿐, 농촌마을이 어떤 곳인지 이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때였다. 이상하게도 그이가 연기한 삶의 모습에 무척 마음이 끌렸다. 비록 꿈은 막연했지만, 결단과 실행은 빨랐다. 대학을 졸업한 해인 1998년에 결혼과 함께 귀농을 했다. 귀농과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사를 일거에 감행한 20대 청년 부부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돈과 경험 중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하고 시작한 터라 자리 잡는 데 어려움도 많았다.

초기에 집도 농토도 없어서 겪는 어려움이 가장 컸다. 집은 물론이요 밭 한 뙈기가 없어 남의 땅을 빌려서 하는 농사였기에 땅 주인 사정에 따라 여러 번 마을을 옮겨야 했다. 게다가 마을 주민들과 관계는 항상 어려웠다. 동네 행사가 있어 마을 회관에 가면 마을 어른신들 틈 속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와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같은 마을에 살아도 주민 속으로 녹아들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이 마을 저 마을 옮겨 다니다 보니, 더욱 땅과 마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떠도는 삶은 농사와 공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정양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그는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비록 농사 방식은 다르지만 티 안 내고 성심을 다해 농사짓는 모습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민과 만남에도 진정성을 다하면서 서서히 신뢰를 쌓아갔다. 물론 제 혼자만의 노력으로 될 일은 아니었으리라. 마을 어르신들의 지긋한 관심과 열린 마음이 있어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새마을 지도자를 거쳐 마을 이장으로 선출되었다. 귀농한 지 14년, 정양리로 온 지 4년만의 일이다.

▲ 아이는 마을의 미래. ⓒ박종관


인구가 늘어나는 귀농 마을

정양리 인구는 현재 67가구, 총 149명인데, 최근 10년 간 무려 24가구 47명의 귀농·귀촌자가 유입되었다. 특히 50대 이하의 젊은 층이 13가구 28명이라고 하니, 단지 마을 인구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평균 연령대가 낮아지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게다가 2010년 3명의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매년 한 명 이상의 아기가 태어나고 있다. 조만간 소멸 위기에 몰린 지역이 늘어나는 데 비하면 희망이 보인다. 요즘 농촌에서 보기 힘든 '특별한' 마을이다.

마을 인구가 늘어난 데에는 누구보다 마을 이장인 박종관의 역할이 컸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생태귀농학교 강사로, 청년 100일 학교나 소농학교 등에 현장 실습장을 제공하는 농부로, 이래저래 인연을 맺은 이들의 귀농 상담가로 다양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도시에서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낯선 농촌으로 내려가는 데 필요한 이론과 실기뿐 아니라 정신적 지지까지 한꺼번에 제공해줄 수 있는 이가 어디 흔하겠는가.
지금은 그러한 통로가 자신 하나로 굳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을 만날 때는 혼자가 아니라 마을 사람 여럿과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또한 좀 더 공식성을 띠고 정규화된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자체적인 힘으로 마을귀농학교를 열기도 한다. 이 마을귀농학교는 마을 청년들이 주축을 이룬다.

어울림을 만들어가는 문화 마을

어린이부터 노인, 여성과 남성, 원주민과 도시 이주민, 이주여성과 원주민 등 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마을이라는 한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 부딪히면서 섞이는 활동이 필요했다. 우선 전통적인 마을 단위의 의식들을 다시 살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5년 전부터 매년 개최하는 '정양 대보름잔치'는 모든 과정을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한다. 윷놀이, 투호던지기, 연날리기, 달집태우기까지 남녀노소가 모두 어울릴 수 있는 한마당 축제가 되었다.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동제'도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마을 이장으로서 가장 뜻깊게 여기는 의식은 '지신밟기'다.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정양 풍물패'가 길놀이를 하고, 그해 새로 귀농한 가정집을 방문하여 복을 빌어주면서 잘 정착하기를 기원한다. 그 순간 공동체로서 하나 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전통문화를 통한 어울림 외에도 문화예술교육 지원프로그램이나 의료단체의 자원봉사 등 연계할 수 있는 외부 지원사업을 적극 유치했다. 자체 힘으로 마련한 어린이, 어른, 어르신 3대가 매년 함께 떠나는 여행, 단체 영화 관람은 주민 호응이 높은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다양한 연령층이 섞여 있는 모임이나 또래 연령층끼리 따로 모이는 동아리도 여럿 생겼다. 문화예술 활동이 활발해지니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일이 많아졌다. 농촌도 예전과 달라서 두레나 울력보다 혼자 일하는 농사가 주가 되다 보니, 사람끼리 만나는 기회가 사라졌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 마을 변화의 디딤돌이 되었다.

미래를 함께 그리는 열린 마을

"내가 죽기 전에 이 돈 다 쓰고 죽어야지." 어르신들이 종종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신다. 마을 공동기금에 대해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마을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장 박종관은 진단했다. 예전엔 아이들이 마을회관에서 떠들기라도 하면 시끄럽다고 역정을 내시던 어르신도 이제는 달라졌다. 아이들이 떠드는 모습이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어디서 온 것일까? 서로 얼굴을 마주할 일이 자주 생기고, 귀농 가족들도 마을 주민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전문가 도움을 받아 마을포럼을 열었고 마을 비전을 세워나갔다.

이제껏 마을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주민 의견이 고르게 반영되지 못했다. 오랜 세월 내려오던 묵은 관습이나 인습에 따라 목소리 크고 자기주장에 강한 소수가 전체를 좌지우지하곤 했다. 사실상 대다수 사람들 생각은 무시되기에 십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여럿의 의견을 반영하여 일을 하면, 결국에는 자신은 물론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 하나둘 생겨났다. 개인 성향이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마을 구성원이 내리는 의사결정 방식, 일 추진 절차와 형식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이장으로서 주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소통을 위해 문자서비스, 마을 온라인카페, 마을 카톡방 등을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 귀농자의 정착을 빌어주는 지신밟기. ⓒ박종관


마을을 넘어 지역으로

최근 들어 정양리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마을이 되었다. 2016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연합뉴스가 주관하는 '귀농귀촌 우수 마을'로 선정되었고, KBS <다큐멘터리 3일>에 '농부의 탄생-상주 정양리 귀농마을 72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타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제4회 행복한 마을 콘테스트'에서 문화·복지 부분 금상(대통령상)도 받았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정양리 사람들이 새롭게 시도한 노력이 쌓여서 이룬 가시적 성과일 것이다. 평생을 정양리에 살아온 마을 어르신들은 경연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준비과정에서 겪은 협력과 소통 체험이 앞으로 마을이 성숙하는 데 지렛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지난해 3월 모동면에 '모동 작은도서관'이 세워졌다. 면의 어르신들과 귀농자들 모두가 힘을 모은 결과였다. 이 도서관은 지역민의 자원봉사와 자발적 참여로 운영된다. 피아노 교재 '체르니'를 이수한 청소년이 초등학생에게 '바이엘'을 가르치는 식의 재능기부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도시였다면 돈으로 해결했을 터인데, 전문직 교사가 아니라서 가르칠 꿈도 꾸지 않았을 사람들이 찾아낸 '적정 문화'인 셈이다. 집에서 안 쓰거나 필요 없어진 물건을 물물교환하거나 벼룩시장 형태로 팔아보고 싶은 주민 한 사람이 '개미장터'를 기획하자,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고, 또 그 행사가 허전하지 않도록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야외 분식 코너를 준비하여 합류하기도 한다. 지역 도서관이 다양한 문화운동 근거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귀농에서 개인의 강한 신념과 결단이 주요 동력이었지만 이제는 귀농 동기와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 '마을 귀농', '이역 귀농', '공동체 귀농'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귀농자 출신 이장 박종관은 앞으로 마을을 넘어 지역 차원에서 연대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각기 마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있고, 마을과 마을이 만나 지역에서 도모해야 좋을 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의 핵심은 역시 사람이라고 믿는다. 지난 몇 년간 쉼 없이 많은 일을 시도해온 '젊은 이장'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정양리에는 모든 연령층 중에 20대가 없는데, '청년이 살 수 있는' 마을을 꿈꾼다. 공동의 마을기금을 적립할 수 있는 마을 차원의 소득거리도 찾고 싶단다. 머지않은 미래에 활력 넘치는 '젊은 정양리'로 변화하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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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