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왜 지역 문제로 축소되었나?
2018.01.12 16:26:29
[기고] <광주백서>의 의미와 관련하여
2016년 10월부터 시작돼,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판결로 마무리된 촛불 혁명은 민주주의 복원과 도약의 기회를 가져온 것은 물론, 80년 5월 광주 항쟁의 진상 규명의 새로운 전기를 밝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촛불 혁명은 1주년을 맞았다. 뜻있는 많은 이들에게는, 문재인 정권 하의 개혁이 더디고, 느려 보인다.  그나마, 제 속력을 내고 있는 것은 광주 항쟁의 진상 조사인 듯하다. 그러나 그 속사정을 어지간히 아는 사람들은 이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항쟁은 무려 37년 전에 일어났고, 그 동안 왜곡과 천시에 시달려왔다. 쉼 없이 진상요구 투쟁을 행한 광주 시민과 민주 시민들이 있었으나, 사실상 진상 규명과 학문적 연구는 역설적으로 1996년 전두환 노태우 구속 이후 답보 되었다.

지역 문제로 축소된 '광주'

돌이켜 보자면, 광주 항쟁 진실 투쟁의 두 개의 기둥, 즉, 역사적 평가와 진상규명 그리고 피해자 보상과 명예회복은 분리해서 진행했어야 했다. 다시 말해, 피해자 보상과 명예 회복은 몇 가지 원칙 아래, 새로운 대상자들이 나올 때마다 꾸준히 해야 하고, 역사적 평가와 진상규명은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시행해야 했다. 그러나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이 본격 시작한 김영삼 정부는 피해자 보상과 명예 회복을 대가로 진상 규명을 피해가자는 것으로 틀을 잡았다. 1993년 5월 13일에 발표한, 5월 항쟁에 대한 김영삼의 특별 담화는 그 시작이었고, 1995년 전-노 구속은 사법부의 힘을 빌린 이 기본 틀거리의 정점이라면, 1997년 전-노의 사면의 그것의 완성이라 할 수 있겠다. 

▲<광주백서>(소준섭 대표 기록, 어젠다 펴냄) ⓒ어젠다

말하자면, 군부와 정치권을 비롯한 한국의 집권 엘리트는 광주를 지역의 문제로, 사법적 처리 대상으로 가둬 버렸다.

2017년 하반기에 들어서, 광주 항쟁 관련 뉴스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광주항쟁의 진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대부분의 뉴스가 일종의 리사이클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신군부의 광주 폭격 준비설부터 광주 교도소 암매장 그리고 그 엄청난 탄환 소요까지 88년 5공청문회 정국 이후 한 번쯤은 드러나고, 한 번쯤은 보도된 내용들이다.

결국, 보상을 통해 광주를 달래고, 진상 규명을 유보한 것은 한국 현대사 가운데 가장 찬란한 민중항쟁을 지역 문제로 축소시켰다. 발포 명령자 규명을 포함한 진상 규명을 계속할 구조는 없고, 동력은 약하니 정체됐고, 대중의 의식에서도 희미해졌다. 또한 9년 보수정권 기간 내내, 극우들의 광주 항쟁의 왜곡이 가능했다. 그래서 촛불혁명이 열어준 정치 공간, 2017년, 우리는 광주의 대한 집단 이해는 심화되지 못하고, 안타까운 복기와 복습을 거듭하고 있다. 

<광주백서>의 의미와 관련하여

나는 이 복잡한 사정의 피해자 중의 하나가 소준섭의 <광주백서>(이하 "백서")라고 생각한다. 알려진 대로, 1982년 비합법 출판물로 출간된 "백서"는 항쟁 이후, 광주의 진실을 인쇄물로 알리는 최초의 시도였다. 소준섭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학생운동으로 수배 중인 저자가 김상집을 비롯한 10여 명의 항쟁 참가자에서 증언을 청취, 토론 후 이 소책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광주백서"는 1985년 풀빛출판사에서 출간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넘어")의 골격을 제공했다. 이 책은 나와 닉 마마타스(Nick Mamatas)가 "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로 편집 번역하여, UCLA Monograph Series로서 1999년에 미국에서 출간됐다. 그 후 2016년, 5.18 기념 재단이 판권을 영구히 확보해 새로 출간됐다.  

"넘어넘어"가 사실상, 광주 항쟁의 성전으로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는 사이, 이 책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백서"는 거의 빛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불행한 사실이 위에서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한 광주의 지역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80년 5월 항쟁 10일 동안, 광주는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다. 그 고립은 군사적이며 물리적이었다.  그 후 광주의 고립은 정치적이며, 지역적이었다.  그 정치적 지역적 고립 속에서, 광주는 광주 외부에서 이뤄진 "백서"라는 공헌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탓에, 지난해에 "넘어넘어" 증보판이 출판되었건만, 역시 "백서"의 가치는 여전히 온전히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소준섭의 <광주백서>의 재출간은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을 끝내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 믿는다. 
 
설갑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G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5.18 기념재단: 2017)의  편집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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