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 정치적 소비, 어떻게?
2018.01.06 15:16:59
[격월간 민들레] 개념 있는 소비도 연습이 필요하다
소비는 정치다

소비란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보를 탐색하고 재무적·시간적 자원을 할애하여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획득하고 사용한 후에 처분하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의사결정을 포함한다. 새것을 구매할지, 누군가가 쓰던 것을 쓸지 혹은 직접 만들지 결정하고, 구매하기로 했다면 어떤 특징을 고려할지도 결정해야 하는데, 가격과 질, 그 상품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상징도 고려 대상일 것이다.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만이 아니라 그 상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할 수 있을 테고, 그런 특징을 종합해 그 상품을 사용할 때 내가 어떤 느낌이 들게 될지도 고려할 것이다. 또한 상품을 사용하고 처리하는 과정도 소비다. 얼마나 오래 쓸지, 쓰고 나서 누구에게 줄지, 어디에 기부할지, 어떻게 버릴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 소비자는 물질적 상품만이 아니라, 그 상품이 지니고 있는 상징 혹은 소비의 과정에서 스스로 획득하는 의미를 소비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주목한 지점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옷을 선택할 때 기능만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까지 고려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와 권력 또한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여자는 섹시해야 돼, 남자는 강해야 돼,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이 성공이야' 같은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권력에 대해 소비자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내면화할 수도 있고, 그에 부응하지 않았을 때 배제될 게 두려워 호응할 수도 있으며, 혹은 그런 가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소비는 이미 정치다. 다양한 가치와 권력이 충돌하거나, 그에 지배받거나, 저항하고 협력하는 사회적 과정이 정치라고 본다면, 소비자는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권력의 작용 안에서 선택하고, 그러한 가치들을 수용, 저항, 타협, 변형하면서 소비를 통해 특정한 의미와 상징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같은 옷을 이용해 365일 다른 패션을 창조한 하나의 옷 프로젝트. 어시스트 블로그(http://assistar-blog.tumblr.com) '유니폼 프로젝트' 갈무리


정치적 소비, 일상의 정치

사회학자 미첼레티(M. Micheletti)는 정치적 소비란 소비자가 상품을 선택할 때 정치적, 윤리적, 환경적 측면을 고려해서 선택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정치적 소비 대신 사회책임 소비, 윤리적 소비,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소비, 소비자 시민성 등의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의미는 비슷하다.) 소비에 있어서 개인적 이익과 손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해, 사회적 이해를 고려하여 결정하는 소비를 의미한다.

정치적 소비의 예는 다양하다. 건강만이 아니라 환경과 농민의 삶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친환경 지역농산물을 선택하는 것, 노동력을 착취해 생산된 상품을 멀리하고 공정하게 생산된 제품을 선택하는 것, 납품업체에게 '갑질'하는 회사의 제품을 멀리하고 다른 대안을 선택하는 것 등이다.

정치적 소비가 최근 강조되는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현대사회에서 정치 참여의 변화와 관련지어 설명한다. 정당이나 노동조합에 참여하거나 선거에 투표하는 것과 같은 전통적 정치 참여만으로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필요에 부응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정치 참여 방식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소비가 중요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이제 생산 영역에서의 노력만으로는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든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글로벌 경제에서 개별 국가의 규제 밖에 있는 다국적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정치 참여가 더욱 중요해졌다. 수요의 변화를 통해 생산 영역의 변화를 견인해내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학자들이 보는 정치적 소비의 가치는 일단, 일상 속에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정당이나 대중 집회에 참여하고 투표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 일에는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또한 전통적 정치 조직은 공식적이고 위계적인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의무감이 요구된다. 반면 정치적 소비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참여할 수 있고, 진입이나 탈퇴에도 부담이 적다. 시민들은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구성원이 되어야 할 때보다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더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진입이 쉬운 정치 참여 형태라는 것이다. 문턱이 낮은 소비 영역에서의 참여를 통해 좀 더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이어질 수도 있다. 몇몇 연구자들은 정치적 소비를 하는 소비자가 다른 정치 참여 행위에도 더 적극적이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정치적 소비에 참여함으로써 신뢰와 자신감을 학습하고 사회화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생활협동조합에서 친환경 식품을 소비하는 것을 예로 들면 건강과 같은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동기화된 소비자가 환경 문제와 같은 공적인 가치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된다.

또한 정치적 소비는 특정한 가치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정당에 가입하고 투표를 하는 등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다. 1년에 한두 번 집회를 나가고 마음이 뜨거워질 수는 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상기하고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소비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일상생활에서 정치적 소비를 지속함으로써 특정한 가치가 사라지거나 약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해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불매운동. ⓒ연합뉴스


소비를 성찰하는 교육

교육적 관점에서도 정치적 소비가 중요하다.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시민교육의 일환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적 성장과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그렇다.

일상적으로 개인의 필요와 다른 이의 필요와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은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자아를 실현하면서 살아가되, 다른 이들의 삶을 돌볼 줄 알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왕따'와 같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자라길 바란다. 그러한 면에서 일상의 소비를 성찰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러한 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훈련이다. 어릴 적 할머니로부터 "밥알 한 톨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1년 내내 비춰주는 햇빛과 농부의 수고가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자랑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단순히 음식을 남기지 않게 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일상이 다른 사람의 노동과 생태계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배웠으리라.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비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역량과 겸손함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치킨이나 커피 한 잔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역순으로 관찰하면서 관련된 사람들을 적어보고 그들이 했을 고민을 상상해보는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으며 우리의 소비 결정이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상호의존성을 구체적으로 배우는 과정이었다.

또한, 학습이 효과적이려면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체험에 기반을 두고 삶과 연결해야 한다. 소비를 성찰하고 배움의 현장으로 포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교육 방법일 수 있다. 태양광 발전기를 아파트에 설치하고 계량기에서 전기 생산량과 사용량을 확인하고 나니 아이들이 전기 사용에 더 민감해졌다거나, 태양계에 대한 수업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상의 소비는 매 순간 교육의 현장으로 포착될 수 있는 지점이다.

억압받고 있는 아이들의 일상을 복원하고 해방하기 위해서도 소비의 정치성을 성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부장적이고 물신적이며 폭력적인 권력 속에서 여성(남성)스럽지 않아서, 풍족하지 않아서, 주류가 아니어서 받게 되는 억압은 상당하다.

'나는 개성이 있다, 나는 환경과 타자를 고려한다, 쓰레기를 양산하는 부유한 삶보다 환경을 돌보는 성찰적 삶이 더 멋있는 삶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인식을 접하게 되면 더 많고 더 비싸고 더 새로운 브랜드를 구매하지 못해서 생기는 박탈감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남들과 똑같은 고가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든 가방을 메는 것이 멋진 일일 수 있고, 누군가가 오래 사용해 그 역사와 삶이 담겨 있는 물건을 쓰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소비가 될 수도 있다.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뉴욕의 시민 시나 마테이켄(Sheena Matheiken)가 했던 '하나의 옷 프로젝트(uniform project)' 영상을 보고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이 재기발랄한 여성은 365일 동안 한 가지 옷(실제는 똑같은 옷 일곱 벌)을 입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옷을 기본으로 하고, 나머지는 직접 만들거나 중고가게에서 구입하거나 선물로 받은 장신구만을 이용해서 매일 다양한 패션을 연출하고, 매일 사진을 찍어서 올린 것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에게 기부를 받아 고향의 빈민가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이 비디오 클립을 보면서 학생들은 많은 영감을 받았다.

아이들에 대한 경제교육에서는 주로 합리적 소비가 강조된다.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한된 소득으로 가장 큰 만족을 얻는 법을 배우는 셈이다. 그런데 합리적 소비를 판단하는 기준이 물질만이 아니라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필요를 타인의 관계와 연결해본 적이 있는 학생이라면, 사회에 순응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지식과 경험을 가진 학생이라면, 정치적 소비야말로 합리적 소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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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