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헤이그협약을 어지럽히는 '미꾸라지'
2017.12.21 01:36:43
[한국 해외입양 65년] 2. 입양의 정치경제학 ⑪헤이그협약의 탄생 배경

* 이 기사는 이경은 고려대학교 인권센터 연구교수, 제인 정 트렌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대표의 도움으로 취재, 작성되었습니다.


데이비드 스몰린 컴벌랜드 법대 교수는 국제입양을 '화전'에 비유했다. 화전민이 쓸고 간 자리가 황폐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이 쓸고 지나간 국가에서 아동 복지 시스템이 황폐해진다는 지적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을 계기로 탄생한 국제입양 산업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국제 정치상황에 따라 주요 송출국을 옮겨가며 확산됐다.

별다른 규제 없이 확장되던 국제입양 시장은 아동 인권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이 커지면서 국제적 규율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엔 1980년대 중반 한국과 1990년대 초반 루마니아의 '국제적 스캔들'이 있었다.

루마니아의 기괴한 '아기 시장'

1989년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졌다. 루마니아는 그해 차우세스쿠 정권이 무너지면서 경제가 붕괴했고, 아이들도 이 상황에 그대로 노출됐다. 

당시 루마니아에는 600여 개 시설에 13만 명의 아이들이 수용돼 있었고, 서구의 언론을 통해 이런 아이들의 모습이 보도되면서 "아기 시장”이 들어섰다. <뉴욕타임즈>는 1991년 3월 루마니아의 불법 입양 실태에 대해 심층 취재 보도했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루마니아는 1991년 2552명의 아동을 미국으로 입양 보내면서, 수십년째 미국으로 입양 보낸 아동 수 1위 국가인 한국(1817명)을 뛰어넘었다. 

이 신문은 여아를 입양하기 위해 루마니아를 찾은 신디와 그녀의 시어머니 베티를 동행 취재했다. 신디와 베티는 '아기 브로커' M과 G와 함께 입양 대상 아동을 찾아 나섰다.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신디는 수십명의 아기를 안아본 뒤 아드리아나라고 불리는 여자 아기를 선택했다. 간호사는 "아드리아나의 부모가 입양의 대가로 10만 레이(2800달러)와 자동차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브로커 G는 자신이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신디에게 말했다. 브로커는 바로 아드리아나의 엄마가 사는 집을 찾아 입양 동의를 받고 4만 레이로 가격 협상을 마쳤다는 소식을 신디에게 전해줬다. 이 모든 일이 하루 만에 끝났다.

하지만 신디는 며칠 후 아드리아나가 B형 간염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브로커를 통해 다시 친부모에게 돌려보냈다. 그녀는 다른 입양 브로커를 고용해 알렉산드라라는 여자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고, 알렉산드라가 B형 간염과 에이즈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오자 뛸 듯이 기뻤다고 말한다.

신디처럼 아이를 입양하기를 원하는 미국, 캐나다의 입양부모들이 루마니아로 몰려들자, 루마니아에서 입양은 달러 암시장에 이은 새로운 암시장(black market)을 형성했다. 북미에서 루마니아 입양 전문이라고 하는 300여 개의 입양 중개기관이 생겨났고, 동유럽에서도 G와 M같은 브로커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런데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면서 낙태 금지가 풀리고 산부인과 병동에 버려지는 아동의 숫자가 급감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입양부모가 원하는 아동은 신생아였다. 그들은 '600개 아동보호시설에 있는 13만 명의 아동'들이 아니라 가정에 있는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을 입양해갔다. 그 과정에서 브로커들은 친생모에게 아이의 친권이 박탈되는 '완전 입양'이 아니라 잠시 아이를 맡기는 '위탁'인 것처럼 설명하는 일도 잦았다. 브로커들은 입양부모와 친생모 사이의 통역을 일부러 엉터리로 하기도 했다. 미국인과 캐나다의 입양부모들이 루마니아에서 입양 대상 아동을 찾아다니는 모든 활동은 '불법'이었고 '뇌물'이 횡행했다. 하지만 정부가 무너진 상태에서 누구도 이런 '광풍'을 통제할 수 없었다. 1991년 루마니아 정부는 '국가입양위원회'를 만들고 불법 입양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커다란 시장이 형성된 상태에서 정부 규제는 쉽지 않았다.

루마니아의 입양으로 포장된 사실상 '아동 거래'는 국제적 스캔들이 됐다. 이 사건은 1993년 헤이그 국제사법회의에서 국제입양의 절차와 요건을 규정한 국제조약인 '헤이그국제입양협약(1993 Hague Convention on Protection of Children and Cooperation in Respect of Intercountry Adoption, 이하 헤이그협약)'을 채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루마니아는 결국 2003년 국제입양을 전면 금지시켰다.

1991년부터 헤이그협약 협상에 참여했지만 25년째 비준 못하는 '한국'

헤이그협약의 결정적 계기가 된 국가는 루마니아였지만, 논의의 시작점을 제공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이그 국제사법회의는 1988년 총회에서 국제입양 되는 아동들을 위한 새로운 협약을 준비할 것을 결의했다. 1980년대 중반은 한국이 매해 7000-8000여 명의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내던 시기였다. <뉴욕타임즈>를 포함한 외신은 출생아동의 1%가 해외로 입양되는 한국의 상황을 보도하며 "아동 수출 국가"라고 비판했다.

헤이그협약은 국제입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를 규제하는 국제협약이 전무한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됐다. 1989년 유엔 아동권리협약(UN CRC)이 10년 가까운 논의 끝에 마련됐지만, 일종의 원칙을 천명한 유엔 협약이 담을 수 있는 내용은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한국은 1990년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지만, 국제입양과 관련된 21조 (a)항은 유보했다. 최대 아동 수령국인 미국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국제입양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있던 유럽의 아동 수령국 중심으로 실효성 있게 회원국을 구속할 수 있는 국제협약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은 1991년 5월부터 주요 송출국 자격으로 당시 헤이그국제사법회의 회원국도 아니면서 헤이그협약 문안 협의 과정에 참여해 왔고, 1993년 협약문 합의시 서명대상 국가로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2017년 현재 98개국이 비준한 헤이그협약에 한국은 아직도 가입하지 못했다. 가입 전 절차인 서명도 2013년에서야 겨우 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서명식을 갖고 '2년 내 가입'을 약속했지만, 5년 가까이 지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경은 고려대 연구교수는 '국제입양에 있어서 아동 권리의 국제법적 보호'(2017)라는 논문에서 "한국이 주목 받는 이유는 주요한 아동 송출국이면서도 협약 성립 20년이 넘도록 자국의 아동을 '비헤이그 절차'에 따라 입양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이 이 협약을 비준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의 헤이그협약 비준이 늦어졌던 사유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동의 국제입양 수월성이 맞춰진 국내법제와 헤이그협약의 기준 간 격차가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헤이그협약 서명 전 모습. 한국만 '공란'으로 비어 있다. ⓒ이경은


헤이그협약 주요 내용은...


헤이그 협약은 전문 및 총 48조로 이뤄져 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원칙) 원가정 보호가 원칙이며 원가정 보호가 불가능할 경우 국내에서 보호할 수 있는 가정을 찾고 그래도 없으면 국제입양을 선택할 수 있다.

○ (입양의 효력) 입양국의 입양결정을 다른 체약국에서도 인정한다.

○ (입양의 절차) 입양절차 전반을 국가 책임으로 규정한다.

- (입양신청) 양친될 자가 본인 거소지의 중앙당국에 신청한다.

- (양부모 조사) 수령국 중앙당국이 입양신청자의 적격여부 및 입양적합성에 대한 보고서 작성, 아동 출신국에 송부한다.

- (입양결정) 출신국 중앙당국은 아동의 신원 및 입양적합성에 대한 보고서 작성, 입양동의 확보 및 입양 여부를 결정하여 통보한다.

- (이동) 양부모가 아동과 함께 이동, 국가기관은 출입국과 이주 허가를 책임진다.

□ 국제입양 담당기관

○ (중앙당국) 체약국은 협약이 부과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하나의 중앙국가기관을 중앙당국으로 지정한다.

○ (공적기관 또는 인가단체) 일정범위 내에서 중앙당국의 업무를 공적기관이나 인가단체(비영리기관)에 위임 가능하다.


헤이그협약의 '구멍', 한국과 미국

헤이그협약의 또 하나의 '구멍'이 바로 최대 아동 수령국인 미국이다. 미국은 1994년 이 협약에 서명했으나, 2007년에서야 비준할 수 있었다. 2000년 제정된 '국가간 입양법'(Intercountry Adoption Act)은 2008년에 이르러서야 발효됐다(이경은, 위의 논문). 이 법은 헤이그협약 적용을 명시했지만, 헤이그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에서 오는 아동의 경우, 헤이그협약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미국에서 국제입양은 복음주의 기독교에서 입양을 선교의 주요한 수단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고, 교회와 연결된 입양기관과 입양부모들은 일종의 정치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국가간 입양법'에 이런 조항이 들어간 것도 이들의 정치적 압력이 작용한 결과다. 

실제로 미국은 입양 대상 아동이 들어오는 국가를 과테말라, 라이베리아, 르완다 등 헤이그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로 옮겨 다니면서 각종 불법 입양 스캔들을 일으키고 있다. 

2007년 인구 1600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인 과테말라는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 다음으로 많은 아동(4728명)을 미국에 입양 보냈다. 이는 그해 과테말라 신생아 100명 당 1명 꼴이었다. 오랜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은 과테말라는 1996년 내전이 끝나면서 국제입양이 급속히 증가했다. 미국의 입양 수요가 급증하면서 과테말라에서도 해외입양이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게 됐다. (관련기사 바로 보기

그러다보니 불법 조직들이 개입해 아이를 납치하거나 빈곤층 여성들에게 소액의 돈을 주고 임신을 반복하게 하는 일도 발생했다. 과테말라 여성단체인 '생존자 재단'(Survivors Foundation)은 '아기를 도둑 맞았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을 도와 국제입양 비리를 고발하고 나섰다. 아이를 빼앗긴 친생모들이 단식투쟁을 벌이고, 불법 입양 산업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과테말라는 2008년 헤이그협약에 가입했다. 

그러자 미국은 라이베리아, 르완다 등 아프리카 국가로 '파이프 라인'을 옮겼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캐서린 조이스가 쓴 <구원과 밀매>에는 2000년대 중반 라이베리아 입양 열풍에 대해 고발했다. 

"2003년부터 2008년에 이르기까지 미 국무부는 1200여 명의 라이베리아 입양아가 미국으로 입국했다고 밝혔다. 입양 수수료는 3000-6000달러였다, 라이베이라에서 이런 입양 수수료는 상당히 괜찮은 뜻밖의 횡재를 할 기회로 보였다. 고아원의 수는 전쟁(라이베리아 내전) 전 10개 가량이었는데, 전후에 114-120개로 껑충 뛰었고, 총 인구 300만 명 밖에 안 되는 라이베리아는 세계 제8위의 입양 송출 국가가 되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입양 절차를 처리하는데 약 1년이 걸리지만, 라이베이라에서는 몇 주 또는 며칠이면 될 수 있었다. 뇌물도 판을 쳤다. 라이베리아 정부 관료를 만날 때 지폐 수백 달러 뭉치를 찔러주면 해결됐다고 한다."


친생가정에서 이탈된 아동에게 부유한 선진국에서 새 가정을 찾아 안정적으로 양육될 수 있도록 한다는 국제입양의 명분과 달리 입양 이후에도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아동들도 많았다. <구원과 밀매>에서 미국의 테네시주로 입양된 쿨라의 사례를 소개했다. 


쿨라는 13살 때 4명의 친자녀와 4명의 라이베리아 출신 입양아가 있는 가정으로 입양됐다.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발전기 한 대로 생활하고 있었고, 겨울에는 나무 장작을 떼는 난로로 보온을 했다.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고, 변기는 통으로 물을 길어다 씻었다고 한다. 8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너무 배가 고파 때로 거위와 칠면조를 직접 잡아먹었다. 쿨라는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로 갔다"고 말했다. 입양아동들은 학교도 가지 않았다. 양부모는 그들에게 "미국에서는 흑인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양부모는 입양아동들을 피가 나올 정도로 심하게 때렸고, 집 밖으로 내쫓아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몇날 며칠을 현관 입구나 차 안에서 담요도 없이 자도록 했다. 입양아동들은 "양부모들은 우리를 노예와 비슷하게 대했다"고 증언했다. 

오리건 주에 사는 근본주의 그리스도교 신자인 네이슨 부부는 무려 78명의 아이를 입양했다. 이들은 친자녀도 6명이 있었다. 이들 부부는 문서를 위조해 아이들을 계속 입양했고, 후원자들에게 기부금을 받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1995년 입양아동 중 3명이 사망한 사실이 밝혀져 이들은 재판을 받게 됐다. 하지만 우발적 살인과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고, 입양 관련 문서 위조와 갈취 행위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 부부는 겨우 60일 금고형을 받았고, 이 가정에 있던 수십명의 입양아동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국도 미국의 '국가간 입양법'에서 예외로 둔 '헤이그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이 헤이그협약에 가입이 어려운 이유'에 대한 설명이 다음 기사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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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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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