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기는 한 명으로 족하다"
2017.12.06 19:17:26
[기자의 눈] 갑자기 분주해진 삼성의 언론 대응, 오류투성이

현재 법정 구속돼 있는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당초 일정대로라면, 그는 지난 2015년부터 은퇴 프로그램 적용을 받아야 했다. 


장 전 사장은 삼성의 로비와 정보 업무를 총괄했었다. 그가 국가정보원, 언론사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문자가 최근 공개됐다. 장 전 사장이 관리한 인맥의 범위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이재용 체제 삼성에선 설 자리가 좁았다. 그는 '이건희 사람'이었다. 


은퇴 앞둔 장충기에게 내려온 동아줄, 감옥으로 이끌다

이런 그에게 동아줄이 내려왔다. 바로 최순실, 정유라 모녀. 


은퇴 프로그램 적용을 코앞에 둔 2014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승마 유망주' 지원을 부탁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답을 찾아낸 건 장 전 사장이었다. 최순실 씨가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였다. 결국 삼성은 정유라 씨를 지원했다. 장 전 사장은 이재용 체제 삼성에서도 승승장구할 듯싶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은 결국 꼬리를 밟혔다. 온 나라가 촛불로 뒤덮였다. 그게 일 년 전이다.

예정대로 은퇴 프로그램이 적용됐더라면, 편안한 노후를 보냈을 장 전 사장은 지금 차가운 감옥에서 지낸다. 박근혜, 이재용, 최순실 역시 마찬가지.

민주주의 역사에선 큰 진보다. 수구세력과 재벌의 추한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1조 2항을 누구나 새기게 됐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 개인으로 좁히면, 장 전 사장이 야속할 게다. 폭넓은 인맥에서 나온 특유의 정보력을 장 전 사장이 차라리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이 부회장이 구속될 일은 없었을 테니. 삼성이 최순실 씨에게 의지했던 건 조바심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장악을 확실히 보장하기가 어렵다는 것.


갑자기 분주해진 삼성의 언론 대응, 왜?


삼성의 역사에도 교훈이 남았다. 법과 상식을 넘어서는 편법을 제안하는 참모는 결국 총수를 해친다. 아울러 기업 경영에도 부담을 준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갸우뚱하게 된다. 삼성은 과연 법과 상식을 존중할 자세가 돼 있나.

'삼성 뉴스룸'이라는 웹사이트가 있다. 여기엔 '알려드립니다'라는 코너가 있다. "언론의 오보나 온라인에 떠도는 루머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는 코너"라고 소개돼 있다. 요컨대 '오보'와 '루머'를 정확한 사실로 정정하는 역할이다. 한동안 글이 뜸했는데, 최근 갑자기 잦아졌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오보'와 '루머'가 갑자기 흔해졌다. 둘째, 삼성에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삼성의 반박 글, 법원 판결과 정반대 

이 가운데 첫째 가능성이 맞는지 검증하는 건, 결국 사실과 논리다. 하지만 '알려드립니다' 코너에 게재된 글은 대부분 사실관계가 심각하게 엉켜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삼성전자 직업병 관련 보도를 반박하면서, 삼성은 이렇게 적었다.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회사 인사자료와 고용보험자료를 통해 확인 가능한 반도체회사 근로자 및 퇴직자 22만968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암 사망자 위험 수준이 일반인보다 낮다고 분석했고, 2010년 조사 대상을 확대해 추가 조사를 벌였지만 역시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최근 판결이다. 대신 삼성이 같은 글에서 "오랫동안 특정 시민단체의 입장을 주로 이야기 해온 학자"라고 칭한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의 조사 결과는, 법원이 존중했다.

삼성이 법원을 존중한다면, 최근 판례부터 확인하고 글을 썼어야 했다.

반도체 공장 감광액에 벤젠이 없다고?

'알려드립니다' 코너에 있는 글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감광액이 누출됐다는 보도에 대해 삼성 측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근거없는 불안감 조장"이라는 표현을 쓰며 반박했다. 이 글 역시 오류투성이다. "감광액은 중대 유해물질이 아닙니다", "감광액에는 벤젠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일단 법원 판결문과 정반대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사건에서 법원은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실험과정 등에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볼 근거도 없다"고 못 박았다. 백도명 교수가 이끈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조사 결과는 '감광액에는 벤젠이 들어있고, 벤젠은 1급 발암물질'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삼성이 다른 글에서 자기네 주장의 근거로 삼았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결과 역시 삼성 측 주장과는 정반대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업체가 사용하는 감광액을 공정온도로 가열하면 공기 중에 벤젠이 검출된다. 공장의 실제 온도에선 작업자가 벤젠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아울러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6년 내놓은 자료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반도체 공장에서 쓰는 감광액은 유해물질 맞다. 과학자와 법원이 함께 인정한 사실이다. 그런데 삼성은 과학과 법을 통째로 부정한다.

조직 문화 비판까지 반박?

최근에는 '알려드립니다' 코너가 "삼성의 성공은 시대의 산물… 보스의 리더십 신화 버려야"라는 <한겨레> 기사를 다뤘다. 삼성을 취재한 미국인 기자 제프리 케인을 인터뷰한 기사다. 삼성의 권위적인 조직 문화를 북한에 빗댄 내용이다. 삼성 측은 "회사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임직원들의 자부심에도 깊은 상처"를 줬다며 반박했다.

몹시 이례적이다. 사실을 전하는 기사가 아닌, 개인의 소감을 다룬 기사까지 반박 대상으로 삼았다. 북한에서 나고 자란 이는 북한 문화가 권위적이라는 지적에 공감하기 어려울 게다. 하지만 북한 밖에서 자란 이가 잠깐 방문했다면, 북한 문화가 이상하게 비칠 수 있다. 삼성 안팎에서 조직 문화에 대한 느낌이 다른 건 자연스런 일이다. 그게 굳이 반박할 일인가. 


한국 기업 조직 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비판은 이미 여러 차례였다. 프랑스 사람인 에리크 쉬르데주 씨는 LG전자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을 냈다. 제프리 케인 기자 인터뷰보다 훨씬 높은 수위로 LG전자 조직 문화를 비판했다. 읽다보면, LG전자 임직원 입장에선 불쾌할 법 하다. 하지만 LG전자 측이 이 책을 공개 반박하지는 않았다.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가하는 조직 문화 비판을 정색하고 반박하는 게 오히려 우습다.

삼성 뉴스룸 속 '알려드립니다', 누구 보라고 쓰는 글일까?

'알려드립니다' 코너에 요즘 잇따라 실리는 글은 대부분 과학과 법원 판례, 그리고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일이 갑자기 왜 생겼을까. 앞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언론의 '오보'가 갑자기 흔해졌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삼성이 오류투성이 정보를 뿌리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삼성에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

이 부회장의 구속에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 삼성 수뇌부가 지닐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을 게다.

'알려드립니다' 코너에서 갑자기 늘어난 글. 누구에게 보여주려 쓰는 걸까.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법과 상식을 넘어서는 대응은 총수에게조차 해롭다는 점.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동아줄을 잡으려던 장충기 전 사장. 이런 사례는 하나로 족하다.


▲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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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석 기자
mendram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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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복지, 재벌 문제를 주로 취재했습니다. 복지국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내려고 김용철 변호사의 원고를 정리했습니다. 과학자, 아니면 역사가가 되고 싶었는데, 기자가 됐습니다. 과학자와 역사가의 자세로 기사를 쓰고 싶은데, 갈 길이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