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실제로 평화를 추구하는가?
2017.12.07 02:40:48
[기고] 평화올림픽에 대한 단상
올림픽은 과연 평화를 추구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신화에 가깝다. 올림픽의 역사에는 전쟁으로 인해 경기가 취소된 경우도 있었고, 냉전기간에는 보이콧으로 인해 온전한 국제스포츠경기로서 올림픽이 가지는 의미가 퇴색되기도 하였다. 경기 도중 테러집단의 공격으로 인해 선수단 및 임원이 살해당하는 비극도 있었고, 군국주의와 인종주의를 앞세운 프로파간다의 장으로 전락한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과거 국제스포츠를 'war minus the shooting', 즉, '총성 없는 전쟁'이라 칭한바 있다. 비록 축구경기를 두고 한 말이기는 하나, 그의 표현은 올림픽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올림픽 평화를 이야기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Olympic Truce' 바로 '올림픽 휴전'이다. 이러한 휴전 선언은 고대 그리스시대, 올림픽이 열릴 때면, 전쟁 중이던 도시국가들이 잠시 무기를 내려놓고 경기가 무사히 진행되도록 도왔다는 전통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과연 이러한 관습이 오늘날에도 지켜질 수 있을까? 사실 현대사회는 고대사회와 큰 차이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정정치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종교가 가지는 영향력이 상당했다. 그리고 올림픽 스포츠 경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중의 신인 제우스를 섬기는 제례의식의 일부였다. 때문에, 모든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신들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올림픽기간에 잠시 전쟁을 멈춘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오늘날의 국제사회에는 국가주의가 만연하다. 정치적 이익을 고려하여,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참가하기도, 나아가 불참하기도 하는 것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올림픽은 표면적으로는 국가 간 우호증진을 말하지만, 실질적인 내용면에선 국가 및 애국주의를 도모하는 측면이 강하다. 아울러 전쟁과 무력시위는 국가가 국익을 지키기 위해 취하는 최후의 정치적 수단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올림픽 시작과 함께 전쟁 중인 국가가 포성을 멈추기를 기대하는 것은 다소 낭만적이며 나아가 순진하기까지 한 상상력이다.

그렇다면 왜 올림픽 평화론이 대두하는가? 그것은 올림픽 평화론이 다름 아닌 IOC가 21세기 들어 내세운 새로운 의제이자 프로파간다이기 때문이다. 현대올림픽을 치르는데 있어 개최국가가 지불해야하는 경제적 그리고 환경적 비용은 어마아마 하다. 그리고 소위 Olympic Legacy 즉, 올림픽 유산이라는 포장 아래 종종 등장했던 사회, 문화, 경제, 생활체육 분야의 긍정적 파급효과는 2004년 이후 열린 올림픽의 경우 대부분 과장된 것이거나, 심지어 허구인 것으로 드러났다. 엄청난 금액을 들여 건설한 경기장들은 올림픽 이후 무용지물로 전락하거나 폐허가 되기도 했다. 결국 오늘날 올림픽은 지속가능하지 못한 이벤트인 셈이다.

이러한 위기적 상황에서 올림픽 평화론은 IOC가 올림픽 개최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의 성격이 농후하다. 선언적으로 그럴싸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효과를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모두 명확히 따져보기 애매하고, 거기에 UN이라는 정부 간 국제기구의 상징적인 후원도 받고 있으니 IOC에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좋은 홍보 전략이 또 있을까? 이러한 점에서 올림픽 평화는 IOC가 새롭게 설정한 Intangible Olympic Legacy, 즉 무형의 올림픽 유산인 것이다. 안개와 같은 PR이 따로 없다.

더욱이 국제적 긴장과 갈등이 지금보다 심각했던 60-80년대, 반전주의자들의 평화운동을 조롱하듯 무시하고, 월남전에 사용된 고엽제와 폭탄제조를 통해 큰 이익을 얻은 기업이, 오늘날 평화를 부르짖는 올림픽의 공식후원사이기도 하니 이러한 모순이 또 있을까? IOC는 평화라는 담론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할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반전과 평화운동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올림픽 개최국의 시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글은 체육시민연대 금요칼럼(2017년 12월 1일자)에 실린 내용을 약간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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