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전하는 이용마 기자의 아주 긴 리포트
2017.11.02 17:22:42
[프레시안 books]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2년 MBC 노조가 장기 파업에 들어갔다. 결국 정부의 강경 대처를 견디지 못한 MBC는 시청자들에게 버림받은 지금의 모습이 됐다. 

당시 파업하던 이들을 취재했다. 현장에서 지켜본 그들은 늘 한 가지 커다란 궁금증을 갖게끔 했다. 

신념을 가진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다. 우리 대부분은 신념과 고집 사이에서 갈등하며, 현실과 이상의 중간에서 헤매고, 당위와 타협의 선택 기로에서 길을 잃는다. 한 번 가진 신념을 지키기란 더 어렵다. 우리 주위의 숱한 이가 다른 신념을 바꾼다. 잘 나가는 정치인을 비롯해, 유명인일수록 그럴 가능성은 더 크다. 어떤 사회이든, 개인이 시스템의 주류가 된다는 건 시스템에 자신을 맞춰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MBC 노조의 패배는 필연적이었다. 당시 노조의 파업 환경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대중은 노무현 정부에 실망한 상태였다. 언론인들의 파업에 공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정부가 바뀌고 사장 인사가 단행되는 것만으로 두 방송사 뉴스가 지금과 같아지리라 구체적으로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MBC 사상 최장인 170일의 파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급여가 끊기고, 숱한 이가 해고당하고, 업무 복귀 후 많은 이가 강제 전보 조치됐지만 파업은 멈추지 않았다. 파업의 결말은 패배로 이어질 것이 뻔한데, 무엇이 그들에게 그토록 강력한 파업 동력이 되었을까.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이용마 지음, 창비 펴냄)는 파업 당시 MBC 노조 홍보국장을 지내다 해고된 이용마 기자가 장래에 두 아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많은 이가 알다시피, 이 기자는 해고 후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그가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건네는 이야기 형식의 이 책 제목이 과거 파업 취재 당시 내 궁금증에 단호한 형태로 대답한다. 물러섰다간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절박함이 당시 그들의 외침이었다. 

87학번인 이 기자는 책머리에 아버지로서 자녀의 인생에 등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건네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한다. 왜 아버지가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까지 무릅쓰고도 당시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를, 즉 왜 아버지가 신념에 따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책에 인생 전반의 경험을 정리해 풀었다. 어린 시절 개인적 이야기부터 호남 출신으로서 겪은 차별의 현실, 87학번으로서 독재 체제가 민주 체제로 전환하는 한가운데를 지낸 경험을 담백하게 풀었다. 

아울러 기자로서 겪은 경험담을 당시 세상사와 엮어 정리했다. MBC의 과거를 미화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직업인으로서 겪은 기자 조직의 모순을 서술하고, MBC 내에서 어떤 부당한 인사가 일어났는지, 어떤 내부 정치적 고려가 기자의 발목을 잡았는지도 찬찬히 서술했다. 이명박 정부와 싸운 언론인으로서 마냥 노무현 정부를 좋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이용마 기자는 책 말미에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누구보다 파업 현장에서 생생한 경험을 한 그가 전하는 말은 과거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이기도 하다. 마치 선수교체하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 입맛에 맞는 이가 공영방송사 사장에 앉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지를 서술하면서, 그는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길임을 강조한다. 

마침 2일을 기해 MBC 사장은 교체가 확실시되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 교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정권 입맛에 따라 이 같은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MBC는 방송문화진흥회와 정수장학회가 지분 70%와 30%를 소유하고 있는데, 방문진 이사회는 여야 정치권 추천으로 구성된다. 방문진 이사를 정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여야 이사 비율은 6대 3이다. 필연적으로 정치적 영향을 받게끔 되어 있다. 

KBS도 마찬가지다. 사장과 임원 인사권을 쥔 KBS 이사회는 여야 7대 4 비율로 구성된다. 공영방송사 지배 구조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이용마 지음, 창비 펴냄) ⓒ프레시안

이 기자는 정치권이 공영방송 임원진 선임 과정에 완전히 손 떼고, 국민대리인단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영방송 사장 입후보자를 대상으로 여야가 청문회를 개최하되, 선임권은 이를 지켜본 국민대리인단이 가지게끔 하자는 주장이다. 공영방송이 정치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뉴스 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고, 그래야만 공영방송이 정부 입맛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끝까지 자사에 관한 고민을 담은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는 '기자 이용마'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전하는, 한국 사회 전반을 방대한 양으로 정리한 뉴스 리포트로 읽힌다. 개인적 경험담과 한국 사회상을 자연스럽게 교차해, 독자가 부담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게끔 했다. 한 마디로 깔끔하게 정리해 잘 이해되는, 전달력 좋은 뉴스 리포트다. 

그럼에도 이 책을 관통하는 송곳 같은 무엇이 느껴지는 이유는, 책 제목대로 이 책이 그의 진심을 담은 신념 전달체이기 때문이다. 과거 파업 현장에서 보았던 그 확신에 찬 얼굴로, 이 기자는 자녀에게 전하는 솔직한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다른 보통의 사회 관련 서적과 달리, 독자가 책의 학습자, 관찰자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드는 힘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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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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