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부모, 스웨덴에 가 보았다
2017.10.13 03: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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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스웨덴에는 장애인 시설이 없다, 왜?
지난 여름,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진행한 스웨덴 스톡홀름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다.

내가 장애인 복지를 주제로 연수를 간 것은 미국 위스콘주 연수, 영국 연수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스웨덴에서는 스톡홀름시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장애인 복지 서비스 제공 기관과 관련 단체, 정책모니터링 기관 등 12개 기관을 방문하고 총 16회 미팅을 했다.

연수 기간 동안 현지 가이드를 자처한 두 분이 있었는데 공무원 말린과 동시통역사 제인이었다. 말린은 휠체어 도움을 받는 장애 당사자로서 1974년 스웨덴에 입양된 한국인이다. 한국 부모를 찾고 싶어서 수소문한 끝에 본인을 홀트아동복지에 맡긴 경찰관을 찾을 수는 있었지만 아직 부모님은 만나지 못하여 늘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제인은 초등학교까지 한국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교포로, 스웨덴 남편을 만나 스톡홀름에 살고 있는데, 다섯 살 아들이 뇌병변 장애인이다. 우리를 만나자 부모연대 스웨덴지부를 창립하겠다 약속하며 연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현지 장애 당사자와 부모가 연수 기간 동안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준 것이다.

▲ 연수 첫날 스웨덴 장애인정책조정기관 앞에서 기념 촬영. ⓒ민자영


장애인 정책의 뿌리는 인권


연수 첫날부터 영국과 미국 연수와는 참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웨덴 장애인정책조정기관(The swedish agency for participation) 공무원은 우리가 1970년대 스웨덴 수준의 나라에서 왔다는 걸 알면서도 겸손했다. 왜 스웨덴으로 왔는지 우리에게 되물었는데 당연히 복지국가를 배우러 왔다고 하니, 스웨덴은 참 많이 부족하다 토로했다. 노르웨이에 비해 여러 가지로 제정할 법도 많고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에 미치지 못하는 게 많다면서 애석해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개념을 설명했다. 연수 내내 방문기관을 다니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듣게 될 줄이야. 처음에는 우리가 그 정도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나 싶어 약간 불쾌한 마음마저 생길 정도였다. 나중에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스웨덴에서는 인권을 중요시했다. 인권이 장애인 정책의 뿌리였다.

대한민국은 유엔으로부터 장애인권리협약을 지키지 않는 성년후견제도를 시정하라고 권고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정부는 고치려는 시늉조차 없다. 대부분 시민들도 인지적 손상이 있는 정신 장애인에게 성년후견제는 필수라고 여긴다. 아직도 장애인은 산속 깊은 곳이나 외딴 섬에 모여 시설에 사는 게 당연하다는 사회 분위기와 일맥상통한다.

스웨덴에서는 장애를 바라보는 눈이 우리와 정말 달랐다. 장애가 있어도 한국처럼 남들과 똑같이 되어야 한다는 집단의 강박은 느낄 수 없었다. 스웨덴에서는 태어난 자녀에게 장애가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처럼 가족이 해체되지 않는다.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 시선 때문에 온가족이 자살하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부모들이 '내 탓이오' 하면서 여기저기 좋다는 곳을 발품 팔아 찾아다니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가진 돈을 치료에 쏟아 붓는 일도 없다. 장애인이 발생하는 순간부터 가족 간 갈등과 경제적 손실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부모도, 말기 암 선고를 받은 것과 똑같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지는 현상을 겪는 부모도 없다.

스웨덴 시민들은 국가를 곧 '국민의 집'으로 여긴다. 스웨덴이라는 집에서는 그 누구도 아파하거나 굶주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장애인 거주 시설을 완전 폐지하다


공공기관만 방문하였더라면 결코 얻지 못했을 이야기를 스웨덴 지적장애인협회(FUB)에서 들을 수 있었다. 애초 기대하지도 않았던 스웨덴 탈시설의 역사였다.

FUB 사무국장인 주디스는 '이제부터 부끄러운 과거를 이야기 하겠다. 바로 탈시설과 시설폐쇄법이 제정되기까지의 역사'로 말을 시작했다. 그녀는 스웨덴 시설 폐쇄 정책에 영향을 미친 인물 칼 그루네발트(Karl Grunewald) 박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칼 그루네발트(Karl Grunewald, 1921~2016, 아동정신과 의사)

- 한국과도 인연이 있음. 1950년, 한국전쟁 때 의사인 본인과 10명의 의사, 간호사와 함께 한국을 방문. 전쟁 중 기아, 상해 등 병원에서의 경험은 이후 칼 박사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결정적 영향을 미침.

- 그 이후 칼 박사는 보건복지부의 공무원이자 위원으로서 시설과 전문 병원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였고, 언론을 통해 시설의 폐해를 폭로함. 당시 보건복지부는 시설을 자랑스러운 복지 제도로 소개해 왔음에 반해, 칼 박사는 시설의 문제점을 지적. 당시 TV와 라디오를 통해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기에 보건복지부는 칼 박사를 해고하지 못하였음. 그가 쓴 보고서는 유명세를 탔고, 케네디 가문으로부터 상을 받기도 하였음.

 - 칼 박사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설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한 왕성한 활동을 수행하며 <바보로부터 시민으로> , <돌봄개혁> 등의 저서를 남겼음.


칼 박사는 "시설 밖으로 내보내는 게 끝이 아니다"라며 한 사람의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끝까지 거주인을 추적하며 연구했다. 그리고 행동 문제로 인해 약물을 복용해야 했던 거주인이 시설내에 살 때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아 못했던 일을 지역 사회에 살면서 셀프케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이 시설을 잘 폐쇄하는가가 중요했기에 칼 박사는 몇 가지 원칙을 마련했다. 정상화의 원리(그 사람의 삶이 보통 사람과 같아야), 일상생활 보장의 원리, 작은 그룹의 거주 환경 조성의 원리(지역 사회 한 가운데 위치해 있어야) 등이다. 이를 토대로 칼 박사는 300명의 거주인, 가족과 직원에 대해 인터뷰를 실시했다. 또한 시설에서 나왔을 때 더 좋은 삶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사람들도 인터뷰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300명을 시설 밖으로 내보내기까지 총 8년이 걸렸다.

당시에는 장애인이 지역 사회에 살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후속 연구결과 그렇지 않았다고 보고되었다. 처음에 시설 폐쇄 결정이 내려졌을 때 80%의 부모가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후속 연구 결과를 통해 반대하는 부모의 숫자가 크게 줄었다. 1985년 국회의 결정으로 모든 시설이 폐쇄되었고, 그 결과 1999년 12월 31일 강제 폐쇄 명령 이후 스웨덴에는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웨덴은 대대적인 탈시설 정책 단행에 맞춰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서비스 제공 체계를 마련했다. '특정 기능 손상이 있는 사람을 위한 지원과 서비스에 관한 법(Law of Support and Service for Person with Certain Functional Impairments, 이하 LSS)'이 바로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1994년에 제정된 LSS는 활동보조 서비스, 조언 및 기타 지원, 동행 서비스, 휴식 지원 서비스, 12세 이상 학생을 위한 단기 보호 서비스, 주거 서비스, 가족 또는 가정에서의 생활 지원, 주간 활동 등 10가지 서비스 제공을 규정한다. 2016년 현재 LSS 서비스 이용 인원 중 87%가 발달장애인이다. 나머지 대상은 뇌손상장애 및 기타 영역 장애인이다.

LSS 체제에서는 이용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해 지역구청에 신청하면 보건, 의료 등 관련 자료와 면담을 통해 서비스가 최종 결정된다. 면담에는 이용자와 보호자는 물론 담당 사례관리사 이외에 다른 분야 관련 스텝들도 함께 참여해 서비스 내용을 논의한다. 서비스 적격성 판정에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되며 △다른 방식으로는 욕구를 충족할 방법이 없는지 △요구되는 서비스가 개인의 고유한 능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것인지 등이 고려된다.

서비스 판정과 제공 과정이 전문가/제공자 중심이 아니라 이용자 개인의 욕구에 중점을 둔 것이 인상 깊었다. 두 장밖에 되지 않는 신청서류, 서비스 연계 후 진행되는 확인 조사가 '부정 수급'이 아닌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이용자가 존중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 등은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다.

'장애인 시설폐쇄법'을 통과시키자 


아직도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이야기할 때 돌봄의 주체인 부모나 가족이 죽고 난 이후 혹 부재가 생길 경우 결국 당사자는 거주 시설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언어로 의사소통이 부족한 발달장애 당사자에게 비언어소통방식(그림카드 등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휠체어를 지원하는 것처럼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편의 제공을 뒤로 한다. 가장 가까운 부모조차 도전적 행동 반사회적 행동이라고 여기고 소통이 안 되니 도심과는 멀리 떨어진 시설에 맡겨야 한다고 여긴다.

한편으로 양심 있는 시설장이 운영하는 좋은 시설을 부모가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양심 있는 시설장이 운영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시설인가?', '무엇이 좋은 시설인가?' 결국 장애인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비장애인들이 관리하는 형태이다. 당사자 자기결정권 없이 누군가 먹으라고 할 때 먹고 잠을 자라고 할 때 잘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모든 인간은 -비단 장애인 뿐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현대 사회의 다양해진 가족의 형태에서 스웨덴의 탈시설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모든 시설은 한 사람의 장애인에게 가장 좋은 집이 되어야만 한다.

스웨덴 공무원들은 "가정도 시설"이라고 했다. 최중증 장애인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우리의 요청으로 그룹하우징에 갔을 때 우리 연수단의 많은 회장님들은 그곳은 시설이라고 말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스웨덴 시설은 없으나 –시설 안내인이 최대한 시설다운 모습을 없앤 곳이라 설명했지만– 우리는 시설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면에서 우리와는 크게 달랐다. 최중증 부모님들은 한국에 이렇게 독립된 개인 공간이 보장되고 지역에서 함께 살 수 있다면 기꺼이 보내고 눈감을 수 있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날 우리는 스톡홀름 결의를 다졌다. 가능한 빨리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시설폐쇄법을 만들자고 말이다. 당장 스웨덴처럼 시설 폐쇄 명령을 내릴 순 없고 또한 무조건 공간적 탈시설만을 주장할 수도 없겠지만, 우리 안에서 알차고 실질적으로 탈시설 내용을 준비하자고 했다. 그래야만 대한민국도 국민의 집이 되고, 가족구성원 중 장애인이 있는 모든 가정이 시설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스웨덴 연수에서 탈시설의 역사를 듣고 현실을 관찰한 건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를 기억하고 독자와 공유하고자 스웨덴에서 진행된 질의응답의 일부를 그대로 소개한다.

Q1 : 시설 폐쇄 이후 다시 시설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는가?
A : 1999년까지 정신적장애인의 시설 강제 폐쇄 결정 이 후 대안이 없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이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 살 수 있는 집을 찾는 것은 정부의 책임으로 하고,지역 사회로의 안정적인 전환을 위해 같은 시설에서 일했던 직원과 함께 배치하는 등의 조치를 마련했다.

Q2 : 시설 폐쇄 시한 결정의 법적 근거는?
A : 정부의 결정이었다. 이와 같이 시설 폐쇄를 결정하지 않으면 예산을 주지 않는 방침으로 이루어냈다.

Q3 : 폐쇄된 시설은 공립시설인가 사립시설인가?
A : 공립시설이 대부분이었으며 일부 민간시설도 있었으나, 민간시설 폐쇄를 위해 정부가 이를 사들였다. 그래서 시설 폐쇄가 가능했다.

Q4 : 발달장애인의 행동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문제를 지역사회 내에서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별도의 중재기관이 있는가?
A : 특정 행동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에 대한 기술을 많이 배우게 된다. 별도의 행동중재기관과 행동지원서비스가 있다.


스웨덴 장애인단체가 '의무고용제' 반대하는 이유는? 


지금 와 돌이켜보면 많은 질문들이 참으로 한국스러웠다는 자평을 하게 된다. 수치로 산출해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건지.

우리의 질문들은 이랬다. 직업교육 시 직무지도원 당 몇 명의 장애인을 지원하는가? 해당 프로그램의 예산은 얼마이고 몇 명이 대상인가? 국가가 지원하는데 몇 %가 민간 지원인가?

이런 방식의 질문을 하면 대게 스웨덴 공무원들은 대답을 못하고 당황스러워 했다. 심지어 이런 류의 질문은 처음 받는다고 했다.

공무원이 일을 안 해서 수치를 산출 못하는게 아니다.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만족할 때까지 더 많은 시간과 조력자와 예산이 투입된다. 필요하면 다시 재판정하는 모습이 서비스를 받는 사람 중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단순히 활동보조 주간 배정이 대한민국의 4배라고 하는 수치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스톡홀름시청 고용담당기관에서 우리에게 브리핑했던 분은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분이었다. 거리에서 뿐만 아니라 TV를 틀면 장애를 가진 모델이나 탤렌트 코미디언들도 자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에게 스웨덴에서 장애인 의무고용률에 대해 물었다. 대답은 "없다"였다. 아니 '왜 장애인중심인 나라에서 의무고용이 없지?' 하며 의아해하는 순간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몇 해 전에 입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장애인단체들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장애인단체들이 주장한다. '우리는 장애를 가진 특권이 있는 사람으로 보호받거나 부각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이 차별이다.' 듣는 순간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한편으로 스웨덴 장애정책의 3대 주체 중 하나인 장애인단체의 역할이 새삼 중요하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

영국과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곳의 사회서비스나 전반적인 시민의식이 부럽긴 했다. 하지만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받은 충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스웨덴에서 보고 들은 것들은 장애인 가족 지원 활동을 하는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우리는 아직도 장애인 편의시설이라 하면 신체적 장애인의 이동권밖에 생각 못하는 반면, 스웨덴 사람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차별"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스웨덴에서는 비언어소통만 가능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세심한 시청각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발달장애인의 모습이 얼마나 편안해 보였는지…. 한국에서 과잉 행동이 심해 격리된 장애인들이 떠올라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나는 이러한 일들은 단지 예산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알았다. 스웨덴은 탈시설뿐 아니라 고용을 통한 온전한 사회통합을 목표로 했다. 이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고 모든 일반법 내에서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 2012년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출범식. 장애인부모들의 노력으로 2014년에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한민국을 '국민의 집'으로 만들자.


스웨덴의 지도자들은 말로만 국민의 심부름꾼이 아니었다. 철학이 있는 정치를 하고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있을 때 조력자가 그들을 향해 '지금 발달장애인이 너희 때문에 힘들어하니 조용히 해!'라고 말하는 나라였다. 국가는 국민의 집이라는 슬로건이 어색하지도 않았다.

가정에 새로 태어난 새 생명이 장애가 있다고 해서 불행해 하지 않는 나라. 우월함과 우수함을 앞세우기보다는 보편적이고 평등한 "얀테라겐(Jantelagen : 얀테라는 마을에서 생겨난 중용의 도, 협력과 합의의 문화가 배여 있는 생활원칙. 빼어난 한 사람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원이 참여해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문화가 익숙한 나라여서일까. 스웨덴 방문 전에는 와닿지 않았던 "얀테의 법칙"이 기관과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온 지금 피부에 와닿는다.

스웨덴에 머물면서 인간적이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는 단어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솔직히 스웨덴 언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무연고의 내가 그곳에서 내 아이들을 데리고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을 그러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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