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컨트롤타워 아냐'에 맞춰 불법으로 대통령훈령 변경
2017.10.12 17: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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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보고 시점 30분 늦춰...'위기관리기본지침'도 불법 변경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 보고 일지와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사후에 조작한 정황이 담긴 파일이 발견됐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지난달 27일 국가위기센터 내 캐비닛에서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불법 변경한 자료를 발견했으며, 이번 달 11일에는 국가안보실 공유 폴더 전산 파일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의 상황 보고 일지를 사후에 조작한 정황이 담긴 파일 자료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우선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태가 벌어진 당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보고 시점이 담긴 상황보고 일지 조작 의혹과 관련해, 임 실장은 "이번에 발견된 문건에는 참사 당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한 시점이 오전 9시 30분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청와대 홈페이지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자료 등을 통해 "4월 16일 오전 10시에 세월호 사건 최초 보고를 받고 대통령이 10시 15분에 사고 수습을 위한 첫 번째 지시를 했다"고 발표한 것과 30분 차이가 난다.

박근혜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사고 6개월 뒤인 2014년 10월 23일, 세월호 최초 보고 시점을 30분 늦춘 오전 10시로 변경한 수정 보고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임 실장은 30분을 늦춘 보고서를 작성한 배경에 대해 "첫 보고 시점과 대통령의 첫 지시 사이의 간격을 줄이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최초 보고를 받은 즉시 박 전 대통령이 사태 수습을 위한 지시를 내렸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상황일지를 조작했다는 의심이다. 그는 "당시 1분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대목"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공개한 문서. 세월호 참사 최초 보고 시간이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30분에서 오전 10시로 사후 수정된 흔적이 남아 있다. ⓒ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법으로 변경한 정황도 공개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시행되던 기본지침에 따르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위기상황 종합관리 컨트롤타워 역할 수행한다고 돼있었다. 그러나 이 기본지침이 14년 7월 말, 김관진 안보실장 지시로 안보는 국가안보실이, 재난은 안전행정부가 관장한다고 불법적으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기존 지침은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의 위기 관리 국정수행을 보좌하고 국가 차원의 위기 관련 정보의 분석 평가 및 종합, 국가위기 관리 업무의 기획 및 수행체계 구축 등 위기 상황의 종합 관리 기능을 수행하며 안정적 위기 관리를 위해 전략 커뮤니케이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청와대는 이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필사로 '국가안보실장은 국가 위기 관련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수행을 보좌한다'로 불법 수정했다.

즉, 세월호 참사의 책임 소재를 청와대가 아닌 안전행정부로 떠넘기기 위해 김관진 당시 안보실장의 지시로 위기관리기본지침에 대한 불법 변경이 이뤄졌다는 게 임 실장의 설명이다. 

임 실장은 "이 불법 변경은 2014년 6월과 7월, 당시 김기춘 실장이 국회에 출석해 '청와대 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 아니고 안전행정부'라고 국회에 보고한 것에 맞춰 사후에 조직적인 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박근혜 청와대는 대통령 훈령인 위기관리기본지침을 변경하면서도 법제처 심의를 거치지 않고 불법적으로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 실장은 "위기관리기본지침은 변경은 법제처장의 재가 받은 훈령에 번호 부여 등의 절차 거쳐야 한다"며 "이런 절차 무시하고 청와대는 필사로 붉은 볼펜으로 수정한 지침을 2014년 7월 31일에 전 부처에 통보했다"고 했다.

▲ 임종석 비서실장이 공개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불법 변경 정황 자료 ⓒ연햡뉴스


임 실장은 "왜 이런 일이 진행됐을지 사건의 성격을 짐작할 것"이라며 "(문건 공개 여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지만, 관련 사실이 갖는 성격, 국정농단의 참담한 상황이 너무 지나치다고 봤다"고 자료를 공개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어떻게 국가의 중요 사무들을 이렇게 임의로 변경하고 조작할 수 있었는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임 실장은 이어 "국정농단의 표본적인 사례라고 봐서 관련 사실을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혀 진상 규명을 위해 당시 국가안보실장이던 김관진 전 실장 등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조사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임 실장은 한편, 자료 공개에 따른 정치적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에 발견된 자료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통합적 국가재난 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개정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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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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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