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세우려 무릎 꿇은 부모, 언제까지…
2017.10.06 00: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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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通] 교육권, 장애아동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풍성하고 따뜻해야 할 한가위 연휴 기간에도 여전히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과 관련하여 갈등하고 있는 주민과 장애아 부모들도 그들 중 하나이다. (☞관련 기사 : 특수학교 반대 이유가 "발달장애아동은 위험해서"?)


추석연휴가 지난 후 다시 재협의에 들어간다고 하니, 아마도 날 선 신경을 부여잡으며 명절 연휴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아이들 학교를 짓기 위해 부모들이 무릎 꿇고 애원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도 50년 후의 시민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이 모습을 본다면 더욱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50년 전의 장애아동 부모가 이 현장을 방문했다면, 장애아동 부모들이 세상으로 나와 우리 아이들도 동등하게 교육받게 해달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크게 감격했을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낯선 주장이라도 도덕적, 과학적 정당성을 얻으면 규범으로 자리 잡고, 낡은 생각들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물론 혁신적 주장이 출현하자마자 바로 사회적 규범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동안 '서리풀연구통'에서는 주로 최신 연구결과를 소개해왔지만, 오늘은 장애에 대한 규범을 바꾸는 데 일조한 오래된 '고전' 논문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장애'의 정상화 개념을 정립한 1969년 논문이다.

이 논문은 1969년 니르제(Bengt Nirje)가 스웨덴 지적장애아동협회 소속으로 활동할 때 발표한 것으로 "정상화 원리와 인간 관리의 함의(The Normalization Principle and its human management implications)"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1994년 <국제사회역할긍정가치저널(International Social Role Valorization Journal)>의 고전 논문 코너에서 다시 소개되기도 했다. 


니르제는 이 논문에서 '정상화 원리'의 '정상화' 개념을 최초로 정의했다. 정상화 원리는 1950년대 덴마크 정부 정신지체과에 근무하던 뱅크 미켈슨(Bank-Mikkelson)이라는 행정관이 장애인 부모회 활동에 관여하면서 구체화했던 사상이다. 뱅크 미켈슨은 본인의 신념이자 사상을 법에 담았고, 니르제는 그의 활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뱅크 미켈슨이 1959년 덴마크의 내각행정령에 서술한 정상화 원리는 "지적장애인이 가능한 보통(정상)에 가까운 존재로 생활할 수 있게 만든다"로, 매우 간명했다. 그러나 1963년까지 '정상화'는 이론적 개념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니르제는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현실적 용어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1969년 논문에서 '정상화' 개념을 정의한 것이다. 


니르제는 논문에서 뱅크 미켈슨이 법령에 게재한 문구를 언급하면서, "정상화 원리란 일상생활에서 모든 지적장애인의 생활양식이나 조건을 비장애인의 환경과 생활방식에 가능한 가깝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그리고 정상화 원리의 다양한 측면과 함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정상화(nomalization)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상적 리듬을 의미한다. 그것은 당신이 심각한 장애가 있다 할지라도 평범하게 침대에서 빠져나와 옷을 입고 정상적인 상황에서 식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하루의 리듬이란 (장애를 이유로) 형제자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아도 되고, 너무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설은 개인에게 리듬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때대로 집단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정상화 원리는 보통의 일상적인 삶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거나 학교에 다니고, 다양한 장소에서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이 "집" 같은 하나의 건물에서만 정해진 모든 활동을 해야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셋째, 정상화란 개인적으로 중요한 가족 행사와 휴가를 보통의 연간 리듬으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가를 통해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자기 삶의 상황을 바꾸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한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여행이 심각한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넷째, 정상화란 생애주기에 따른 정상적인 발달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우선 아이들은 가능한 따뜻하고, 풍부한 감각과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해야 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특히 지식과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자극을 받아야 한다. 지적장애아동이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경우, 이 측면은 특히 중요하다. 또한 보통(정상)의 사회에서 학령기 아동과 청소년들은 특별히 그들을 위해 구성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유년기는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에 대해 배우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얻고, 학령기 이후 삶의 건전한 토대가 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우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또한 교실 밖의 사회적 경험이 개인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섯째, 정상화 원리는 지적장애인들의 선택과 바램, 욕구가 가능한 고려되고 존중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여섯째, 정상화는 혼성 세계에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별을 분리해 지내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올바른 발달을 방해한다.

일곱째, 지적장애인이 가능한 정상에 가깝게 존재할 수 있기 위한 전제 조건은 다른 모든 시민과 같은 경제적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다.

여덟째, 병원, 학교, 집단 주택 같은 물리적 시설의 기준이 보통 시민이 확보한 동일한 종류의 시설의 기준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은 정상화 원리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시설의 크기가 사회에서 정상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인정되는 정도여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시설의 위치를 계획할 때, 지적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격리된 환경에 배치해서는 안 된다.

니르제는 정상화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지적장애인을 정상적으로 만든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조건을 가능한 정상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정상화(normalization)' 개념을 오독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니르제는 보통의 시민들이 그러하듯, 장애가 있더라도 각자의 리듬대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니르제의 정상화 원리에 따르면, 지적장애 아동은 생애주기에 따라 정상적인 발달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 경험에 아동의 욕구와 바램이 반영되어야 한다. 지적장애가 있다 할지라도 아동의 수준과 욕구에 맞는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보통의 아동이 경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정상화 원칙은 이미 50년 전에 주창된 이론이고, 이제는 그다지 혁신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다. 물론 서울 강서구에서 벌어진 갈등에는 이러한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이 뒤엉켜 있다. 지역 간 차등 개발에서 비롯된 오래된 지역 격차도 그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나의 취약성이 다른 이의 취약성을 밟고 일어서도 괜찮은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취약하다는 이유로 사회정의 같은 윤리적 규범을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교육의 기회를 공정하게 보장하는 것은 사회정의에 부합하며, 장애아동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보통'의 아동과 마찬가지로 장애가 있는 아동도 통학가능한 곳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삶에서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일도 연대할 일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살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모두가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머리를 맞대고 다시 한 번 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부족하고 취약한 이들 사이의 사회적 연대를 통해 공존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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