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위협 시기, 다시 군함도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
2017.09.25 16:56:45
카카오톡 친구추가
[프레시안 books]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 서평
그것은 노예사냥이었다. 1800년대 초 영국인들이 아프리카 상아해안 인근의 육지에서 흑인들을 총으로 위협하고 체포하여 족쇄를 채워 잡아들였던 그 비인간적인 노예사냥 말이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펴냈고, 박수경과 전은옥이 옮긴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선인 펴냄)을 읽으면서 이 노예사냥 장면이 떠올랐다. 

일제 강점기 300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은 왜 고향을 떠나야 하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무슨 일을 겪게 될 지도 모른 채 타국으로 끌려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 노역을 해야 했다. 일제가 조선인을 강제로 일본 전역의 공장이나 탄광에 배정한 강제 징용 때문이다. 이들 중 2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1940년대 부산항에서 시모노세키를 거쳐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다카시마(高島)와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軍艦島)―의 해저 탄광으로 끌려갔다.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은 이렇게 사냥 당해 끌려가 하시마 해저 탄광에서 강제 노역한 조선인 500명과 중국인 250명의 신음을 40년 이상 동안 추적해 온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의 보고서다. 이 책은 그들이 어떻게 하시마로 끌려가게 되었는지, 해저탄광에서 얼마나 비참한 처우를 받았는지, 어떻게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었는지, 군함도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조선인 6명과 중국인 3명의 증언을 통해 담았다. 저자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침략 전쟁을 벌이며 아시아 민중―특히 조선인과 중국인―을 강제로 징용하여 저질렀던 비인간적인 만행을 고발해, 범죄의 진정성 있는 참회와 배상을 일본 정부 당국에 촉구하고 있다. 

1942년 열 네 살이던 어느 날 2명의 일본인에게 붙들린 서정우(1928년생, 경남 의령)는 트럭에 실려 부산으로 끌려갔다가 연락선으로 시모노세키에 도착한 뒤, 다시 야간열차로 나가사키를 거쳐 종착지인 하시마로 압송되었다(37쪽). 농부였던 김선옥(1923년생, 충청북도 청천면)은 18세이던 1941년 미쓰비시 회사 사람들에게 잡혀 부산과 시모노세키, 나가사키를 거쳐 하시마로 강제로 압송되었다(46쪽). 최장섭(1929년생, 대전)은 열 네 살이던 1943년 학교에서 나무총으로 청년 훈련을 하던 도중 붙들려 함열(현재 전북 익산시 함열읍)에서 기차로 부산에 끌려갔다가, 부산부터는 일본인 하라다의 손에 이끌려 후쿠오카의 하카타와 나가사키를 거쳐 하시마로 압송됐다(52쪽). 조선인은 모두 이렇게 사냥당한 짐승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하시마로 끌려갔다. 

500명이 넘는 이 조선인 징용자들은 영화 <군함도>로 널리 알려진 그 악마의 섬 하시마에 도착해서 가혹한 노동 환경 하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이들은 고향에서 끌려 나올 때도, 이곳에서 노역을 할 때도 노예였다. 바다의 파도만이 둘러싼 절해의 고도인 하시마에서 고립된 채 아무런 희망도 없이 오직 죽지 않기 위해 강제 노역을 해야 했던 그들의 삶을 노예가 아닌 다른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서정우는 도착한 다음 날부터 바다 밑 탄갱에 투입되어, 콩깻묵을 씹으며 일했고, 몸이 아파도 치료를 받기는커녕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39쪽). 김선옥은 해저 터널 채탄 현장에 투입되어 먼지와 가스로 뒤범벅되고 빛도 없는 곳에서 석탄을 채굴하고 터널의 침목을 박는 일을 하며 등뼈가 휘도록 기어 다녔다(48쪽). 최장섭은 지하 1000미터 채탄장에 투입되어, 지하의 열기로 땀이 범벅인 상태로 훈도시 한 장 두르고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을 일하다가 영양실조에 걸렸으나, 방파제 위에서 몸을 쉬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었다(55쪽)." 

이 노예 노동의 처참함은 영화 <군함도>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혹자는 상아해안에서 미국 남부 농장으로 끌려와 목화를 따야했던 아프리카 흑인과 하시마로 끌려온 조선인 징용자의 삶을 액면 그대로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곳 농장엔 햇볕이 있었고, 맑은 바람도 있었고, 힘껏 달려볼 트인 공간도 있었다. 하지만 군함도의 해저 탄광엔 빛도 없었고, 바람도 없었고, 공기마저도 부족했다.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을 읽노라니, 영화 <군함도>에는 나오지 않는 하시마 탄광 조선인이 당한 처참한 사연에 가슴이 시려진다. 강제로 끌려와 처참한 노역을 당하다가 원자폭탄 투하로 방사능 피해를 당한 그들이 굶주림 때문에 원폭에 노출된 콩을 볶아먹는 비극적인 장면은 슬픔 그 자체이다. 이렇게 슬프고도 억울한 사연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하시마 조선인 징용자들의 증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8월 9일 저는 아쿠노우라의 조선소에서 피폭을 당했습니다. (…) 커다란 비행기 B29가 날아와서, 번쩍 빛이 나는가 했더니 엄청난 폭음이 들렸습니다. 유리가 깨지고 막사가 무너지고, 여기저기서 불길이 번지고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 이후 우리는 도로 정비를 명받았습니다. 엉망진창이 된 도시를 정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불타서 허물어진 전차 안에는 완전히 타버린 사체가 나뒹굴었습니다. (…) 제가 지금 같은 몸이 된 것은 원폭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 기침을 하다 세면기의 절반을 채울 정도로 다량의 피를 토하였습니다." (41-3쪽. 서정우의 증언)

"8월 9일 저는 일을 마치고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어요. 원폭이 떨어지고 7일째쯤 되는 날 나가사키로 갔습니다. 거리에는 말이 죽어 있었습니다. 전봇대도 구부러지고, 집은 모두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뒷정리를 하기 위해 끌려간 것입니다." (49-50쪽. 김선옥의 증언)

"8월 16일에 (…) 우리는 원폭 피폭의 뒷정리 작업을 명받은 거야. 시내는 폐허가 되어 이었고, 타고 남은 창고 안에 콩이 사방으로 흩어져 뛰어있어서, 배가 고프니까 가마에 콩을 구워 먹었어."(58쪽. 최장섭의 증언)

"사체를 밟으면 형태가 사라져버릴 정도로 그냥 맥없이 부서졌어. (…) 타고 남은 재보다 못한 정도였지. (…)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불에 타서 창고 안에 남아 있던 탄 콩 같은 것을 끄집어내서 볶아 먹었지." (73쪽. 박준구의 증언)

원자폭탄이 무서운 이유는 그 재앙이 한 순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원자폭탄에서 방출된 방사능은 생명체의 유전자를 바꿔 그 독이 소멸되지 않게끔 하기 때문이다. 몸속에 투입되어 암과 같은 만성적 질병을 일으키는 방사능이 완전히 소멸하려면 최소 300년은 지나야 한다니, 일단 원자폭탄의 방사능에 피폭된 이는 살아생전 다시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결코 선한 무기가 아니었고 이 무기를 투하한 미국의 결정은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었다. 그 원폭 투하는 결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만행이었다. 무장한 군인이 무장한 군인을 상대로 벌이는 군사적 대결이 전쟁일진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무장 군인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민간인을 살상했다.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대부분은 모두 전쟁 수행 능력이 없는 노약자와 부녀자, 그리고 전행 수행과는 무관한 노동자였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원폭 투하가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버금가는 또 다른 만행이 아니었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하물며 미국의 원폭투하로 인해 수만 명의 조선인들이 살상되었으니…. 물론 미국의 원폭투하가 비인간적 만행이라고 해서 일본 제국주의가 영토 확장의 야망으로 아시아 국가를 침략하면서 저지른 수많은 만행과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지음, 박수경·전은옥 옮김, 선인 펴냄) ⓒ프레시안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북한에 대한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물리적 타격 암시 발언, 한국 강경파의 전술핵 배치 주장으로 핵 전장이 될 위험에 처한 한반도의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도, 이 책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은 일독할만한 가치가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미국의 핵무기(원자폭탄)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인류에게 초래한 대재앙을 상기하며 어떤 전쟁도, 어떤 핵무기도 반대하는 데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세계시민으로서 우리는 전쟁 불사를 외치는 곳곳의 군산복합체에 맞서 세계의 양심적인 시민들과 연대해야 한다. 일본 정부 당국과 (주)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이 은폐하고 있는 범죄적 만행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50년 가까이 실천적으로 행동해온 ‘나카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회원들이 그러한 양심적 시민이다.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은 1970년부터 1993년까지 이 모임을 이끌었던 고(故) 오카 마사하루(岡正治) 목사와 오카 목사의 타계 이후 2017년 1월까지 이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았던 나가사키대학의 다카자네 야스히로(高實康稔) 교수, 현재의 사무국장 시바타 도시아키(柴田利明)가 일본 정부 당국에 과거 범죄적 행위의 진실을 인정하고 공개해 진정으로 반성하고 평화를 존중하는 나라로 거듭나기를 촉구하며 정리한 보고서이다. 이들은 피해자가 당한 고통과 침해된 인권에 진정으로 감정이입을 하며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진실을 추적해 왔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 모임의 회원들은 자신들의 조국 일본이 과거 저지른 과거의 범죄적 행위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평화를 존중하는 나라로 거듭나기를 오늘도 촉구하고 있다. 

노예사냥으로 이국땅으로 끌려가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해방도 되기 전, 원자폭탄의 재앙을 맞이해야 했던 조선인 징용자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이 서평을 바친다. 더 많은 분이 이 책과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해 본다. 
기사를 끝까지 읽으셨다면…

인터넷 뉴스를 소비하는 많은 이용자들 상당수가 뉴스를 생산한 매체 브랜드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뉴스 유통 방식의 탓도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뉴스를 남발하는 매체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은 독립·대안언론의 저널리즘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저널리즘에 부합하는 기사에 한해 제안 드립니다. 이 기사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주신다면, 프레시안의 언론 노동자, 콘텐츠에 기여하는 각계 전문가의 노고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쓰겠습니다. 프레시안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언론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eday@pressian.com 다른 글 보기